[기고] ‘성추행’이라 쓰고 ‘권력갑질’이라 읽는다

송문희 고려대 정치리더십센터 연구교수

현직 부산시장이 성추행사건으로 사퇴 기자회견을 했다. 그런데 “면담과정에서 불필요한 신체접촉이 강제추행으로 인정될 수 있음을 깨달았다”거나 “경중에 관계없이 용서받을 수 없다”는 말에서 자신의 범죄성에 대한 인식이나 피해여성에 대한 사과의 진정성은 느껴지지 않았다.

▲송문희 고려대 정치리더십센타 교수 ⓒ 프레시안DB

이에 대해 성추행 피해여성 역시 직접 입장문을 내고 “면담이 아니라 업무상 호출로 불려간 것이었고, 명백한 성추행이었으며 법적 처벌을 받는 성범죄였다”고 반박했다. 2016년 한국형사정책연구원이 직장인을 대상으로 성희롱 피해경험 조사를 한 결과 여성의 52%가 성희롱 피해를 당했는데 가해자는 직장상사나 고용주가 65.4%로 압도적으로 많았다. 다음으로 직장동료(37.1%), 거래처 직원(13.7%), 직장 부하직원(7.1%) 순으로 나타났다.

직장 내 성추행은 그 속성이 권력관계가 수반된 폭력이다. 성을 매개로 한 가장 저열한 수준의 직장 갑질이다. 직장 내 성추행범죄의 피해자는 대부분 직장 내 약자이다. 가해자가 괴물이거나 악마라서 이런 행동을 하는 것이 아니다. 문제의 핵심은 권력을 남용 ·악용하는 구조에 있다. 피해자가 견디기 힘든 아픔과 상처를 입었음에도 그 사실을 쉽게 공개할 수 없는 것은 가해자가 지닌 막강한 권력 때문이다.

그동안 여성들은 자신들의 피해를 힘들게 외쳐왔지만 쉽게 묻혀 버리곤 했다. 권력자의 성폭력에 대한 고발이 터져 나와도 반짝 이슈로 끝나고 어느새 가해자가 슬그머니 복귀하는 악순환이 반복되어왔다. 계약직인 경우 잘릴까봐 성추행당해도 문제 제기조차 힘들다. 이런 현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직장상사는 자신의 지위를 이용해 쉽게 성추행을 감행한다.

20~30대 여성 직장인들은 ‘MeToo’를 하고 싶어도 결국 모든 짐을 혼자 짊어지고 가야 해 나서기가 쉽지 않다. 위계연공·남성중심적인 직장에서 가해자들은 여성들의 업무 평가나 정규직 전환 등의 ‘키’를 쥐고 있는 남성 상사들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힘들게 신고했어도 문제 직원 등으로 낙인찍혀 원만한 직장생활이 어려워져 ‘중도 퇴사’하는 경우가 많다.

2017년 7월 서울여성노동자회 실태조사에 의하면 직장 내 성희롱이나 성추행을 문제 제기했다가 불이익이나 따돌림을 견디지 못해 퇴사한 이들이 10명 중 7명꼴로 나타난다. 성폭력을 당한 뒤 파면이나 해고 등 신분상 불이익을 당하거나 따돌림, 폭언, 폭행, '꽃뱀' 꼬리표 등 정신적 학대를 겪은 비율도 절반이 넘는 57%에 달했다.

한편에선 인터넷에서 성폭력 피해자와 가족의 '신상'을 터는 일까지 벌어진다. 고통스러운 피해를 힘겹게 용기 내어 세상에 공개했던 이들이 이처럼 2차 피해로 더 큰 고통을 받고 있는 참담한 현실이다. 이번 사건의 경우에도 부산시는 피해여성이 추가 피해를 보지 않도록 세심하고 철저한 보호조치를 우선적으로 강구해야 할 것이다. 언론 역시 피해여성의 신상털기나 확인되지 않은 추측성 내지 가십성 보도로 2차 가해를 해서는 안된다. 피해자의 신상정보에 초점이 맞춰줘야 할 필요도, 이유도 없다.

남녀를 불문하고 직장에서 성폭력은 삶의 안정성에 치명적인 영향을 끼친다. 2017년 한국노동연구원의 ‘직장 내 근무환경 실태조사’에 따르면 남성 응답자 중 13%가 “직장 내 성희롱 상담 경험이 있다”고 답변했다. 남성도 여성 못지않게 사내 성희롱 관련 상담 경험이 많은 것으로 나타난 것이다. 남성도 성희롱 피해의 예외가 아니라는 말이다.

직장 내 성범죄가 어느 한 개인의 일탈행동이 아니라 구조적인 문제에서 비롯됨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이제는 피해를 낳게 한 권력구조의 문제를 제대로 바라봐야 한다. 단순한 성의 문제가 아니라 위계적인 권력을 통한 폭력 문제에 맞서기 위해서는 남녀가 서로 힘을 합쳐야 한다. 또한 직장 내 성폭력 사건이 제대로 조사되고 엄하게 처벌되어야 피해자들이 성폭력 문제를 신고하고 지적할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질 수 있다.

“잘못한 사람은 처벌받고, 피해자는 보호받아야 한다. 그것이 상식이다!”라는 피해여성의 말이 깊은 울림으로 남는다. 과연 우리는 이 당연한 상식이 통하는 사회에서 살고 있는가?

▲송문희 교수는...

1968년 출생, 고려대학교 정치외교학과를 졸업 후 동 대학원에서 정치학 석사와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동아시아연구원(EAI), 통일연구원에서 연구원을 지냈다. 현재 고려대 평화와민주주의연구소 정치리더십센터 연구교수이자, 한국정치평론학회 이사, 한국협상학회 여성특별위원, 대한민국지식중심 공동대표 겸 사무총장, 한국공유정책연구원 정책실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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