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조 달러 부양책은 뉴스에만....우린 당장 도움이 필요하다"

[코로나19, 미국의 민낯③] 미국 실업률, 2차 세계대전 이후 최고 기록할 듯

미국 매사추세츠주 우스터에 사는 22세의 올리비아 베르테히머 씨는 지난 3월 중순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일하던 식당에서 해고됐다. 올리비아는 지난 3월 말 의회를 통과한 2조2000억 달러(2700조 원) 규모의 경기 부양책의 혜택을 자신도 받을 수 있을 것이라 기대했지만 안타깝게도 대상에 포함되지 못했다.

그가 일하던 식당은 장사가 잘 안되면서 근로 시간을 계속 단축시켰고, 그는 주 정부가 요구하는 최소 근로 시간과 최저 임금 요건을 충족하지 못했다. 의회를 통과한 법안에는 시간제 근로자, 자영업자, 프리랜서 등 다양한 형태의 노동자들도 실업급여를 받을 수 있도록 했지만, 각 주의 노동부에서 구체적인 지원 대상에 대한 기준을 마련하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소요될 전망이다. 주 노동부는 한꺼번에 밀려든 실업급여 신청에 허덕이고 있다고 한다.

애리조나주 프레스콧에 사는 미스티 슐러 씨도 비슷한 경험을 했다. 식당에서 웨이트리스로 일하던 그는 실업 급여를 받기 위한 최소 노동시간을 채우지 못했다며 거절당했다. 당장 생계비가 걱정인 그는 언제 새 일자리를 구할 수 있을지 막막한 상황에서 "너무나도 무섭다"고 말했다. (<USA투데이>, 4월 17일자 보도)

뉴욕 잭슨 하이츠에 살고 있는 방글라데시 출신 이주노동자 라자아 베굼 씨도 코로나 사태로 식당에서 해고됐다. 자신의 룸메이트 3명 모두 일자리를 잃었고, 이들은 돈이 없어 하루에 한 끼만 겨우 먹는다. 더 최악인 것은 이들 중 2명은 코로나19 증상이 나타났다. 베굼 씨는 자신도 곧 코로나에 걸릴 것이라고 생각한다. (<뉴욕타임스>, 4월 12일자 보도)

뉴욕주 로체스터 사는 케오헤인 씨는 코로나 사태 이전인 지난해 말에 해고됐다. 그는 자신의 은행 계좌로 실업급여가 입금되기를 한달째 기다리고 있다. 노동부는 그의 실업급여를 자신은 받은 적이 없는 직불카드로 보냈다고 안내했다. 그는 거의 매일 주 노동부에 전화를 하는데 관계자와 통화조차 하기 힘들다. 그의 은행 계좌엔 이제 잔고가 10.35달러 남았다고 한다.

뉴욕에 거주하는 멜빈 테일러 씨는 지난 연말 실업급여를 은행의 카드 형태로 받았다. 그런데 해당 은행은 최근 실업급여를 청구하는 실업자가 급증해 관련 업무가 폭주하면서 문제가 생길 소지가 있어 보이는 그의 카드를 자동으로 취소했다고 통보해왔다. 그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은행 직원과 장시간("3시간 59분 27초") 통화를 했지만 해결하지 못했다. 돈이 한푼도 없는 그는 결국 외투와 바지 주머니를 전부 뒤져서 20달러를 모았다. 그 돈으로 쌀과 파스타를 사서 집에 있는 향신료를 넣은 밥과 국수로 끼니를 때우고 있다. 그는 쓴 웃음을 지으며 "생각보다 쌀에 어울리는 향신료가 많더라"고 말했다. (<뉴욕타임스>, 4월 17일자 보도)

미국 4월 실업률 20%대 찍을 수도...2차 세계대전 이후 최악의 경제 상황

코로나19로 인한 후폭풍은 이제 시작 단계다. 가장 직접적이고 큰 영향은 '일자리'의 문제다. 미국 노동부는 지난 16일 코로나19 확산을 방지하기 위한 격리 조치가 본격화된 지 한달 동안 2200만 명 이상의 미국인들이 일자리를 잃었다고 발표했다.

2008년 세계 금융위기 당시 미국의 실업률은 최대 9.6%까지 치솟았다. 코로나19 사태 초입인 지난 3월의 실업률은 4.4%를 기록했다. 식당, 호텔, 영화관 등 각종 서비스 업종이 사회적 거리두기 정책으로 문을 닫기 시작하면서 일시해고(layoff)가 본격화된 4월의 실업률은 전월 대비 10.4%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2008년 금융위기 때 2년에 걸쳐 진행된 10%대에 가까운 대규모 실업이 2020년 코로나19 사태 때는 불과 한달 만에 닥쳤다.

주요 투자은행들은 오는 2분기 중 미국의 실업률이 최대 20%까지 상승할 것으로 봤다. 제이피모건(JPM), 골드만삭스(GS), 뱅크오브아메리카(BoA), 바클레이즈(Barclays) 등 주요 IB 4곳의 2분기 미국 실업률 전망치는 평균 16.4%였다. 세인트루이스 연준은 32.1%까지 상승할 것으로 전망했다. 이같은 실업률이 현실화되면 2차 세계대전 이후 신기록을 세우는 셈이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지난 18일 미국의 올해 경제성장률을 -5.9%로 전망했다.

여전히 까다로운 실업급여 신청..."트럼프 이름 새기느라 수표 발송 늦어져"

충격을 완화하기 위해 트럼프 정부와 미국 의회는 지난 3월 25일 2조2000억 달러 규모의 경기부양책을 통과시켰다. 하지만 상당수의 미 국민들은 아직 실질적인 혜택을 받지 못하고 있다.

천문학적 규모의 경기부양책에는 연간 총소득 7만5000달러 이하 개인에게는 1인당 1200달러(약 145만 원)를 지급하며, 부부는 2400달러를 받고 17세 미만 자녀 한 명당 500달러가 추가된다는 내용이 포함된다.

트럼프 정부는 이 지원금을 수표로 지급하겠다고 했는데, <워싱턴포스트>는 지난 14일 국세청(IRS) 고위관계자를 인용, 미 재무부가 일부 시민들에게 지급될 재난지원금 수표에 트럼프 대통령의 이름을 새기도록 하는 전례없는 지시를 내렸다고 보도했다. 이 신문은 트럼프 대통령 이름을 새기는 작업을 하느라 당초 16일 발송될 예정이었던 수표의 발행이 늦어지고 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미 재무부는 대통령 이름을 새기느라 수표 발송이 늦어지는 것 아니냐는 의혹은 부인하면서 "예정대로 다음 주 중으로 발송이 될 것"이라고 해명했다.

트럼프 정부는 긴급 재난지원금 이외에도 코로나19 사태로 급증한 실업자들에게 실업급여 지급도 늘리기로 했다. 앞으로 4개월 동안 현재 주당 300달러 수준인 실업급여에 600달러를 추가로 지급하기로 했고, 수혜 대상도 정규직 근로자만이 아니라 시간제 근로자, 우버 드라이버, 온디맨드 등 배달업체의 일을 하는 배달기사 등 '긱 이코노미'(gig ecomony)에 종사하는 노동자, 자영업자 등 다양한 고용 형태의 노동자들도 포함하기로 했다.

그 범주에 드는 많은 실업자들이 뉴스에서 알려진 것처럼 실제로 혜택을 받지 못하고 있다고 호소하고 있다. 노동시장에 매우 다양한 형태의 노동자가 존재하고 있기 때문에 실제 수혜 대상을 선정하는 각 주의 노동부는 매우 혼란스러워 하고 있다고 한다. 최소 노동시간, 최소 임금 등 자격 제한을 여전히 요구하는 주들이 대다수이며, 이 조건에 걸려 많은 실업자들이 수당을 못 받고 있다.

"결과는 참담하고 미칠 지경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실업급여 신청서를 채 다 작성하기도 전에 온라인 신청서가 다운되어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 실업자들은 문의 전화를 하려고 해도 몇 시간 동안 무작위로 연결을 기다려야 한다. 그들은 재수 좋게 연결이 되더라도 자신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말하는 관계자들의 목소리를 들을 뿐이다. 다행히도 신청서를 제출한 뉴욕의 신청자들 중 일부는 새벽 2시에 그들의 정보가 맞는지 확인하려는 주 노동부의 전화를 받고 잠에서 깨었다."(<뉴욕타임즈>, 4월 17일자)

미국사회보험학회 스티븐 원드너 선임연구원은 NYT와 인터뷰에서 "의회는 다양한 형태의 노동자들을 위해 옳은 일을 하려고 했지만 실제 이들이 실업급여를 받는 것에는 어려움을 겪을 것"이라면서 "현실은 엉망진창"이라고 말했다.

"시간제 노동자, 자영업자의 44%가 이미 경제적 한계 상황에 처해 있었다"

코로나19로 미국 경제가 휘청하고 있지만, 가장 큰 피해를 받는 이들은 늘 그랬듯이 가장 가난한 이들이다. 미국 도시 연구소(Urban Institute)는 21일 오후 코로나 사태로 일자리를 잃은 저임금 노동자가 1433만 5660명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이는 연 소득 4만 불 이하의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한 추정치이며, 영세 자영업자나 긱 이코노미 종사자는 포함되지 않는다고 연구소는 밝혔다.

대다수의 실업자가 이미 경제적으로 한계에 처한 상태였다는 점에서 실직은 이들에게 더욱 고통스러운 일이다. 도시연구소는 지난달 20일 발표한 보고서에서 노동시장에서 가장 취약한 계층이라고 할 수 있는 시간제 근로자와 영세 자영업자의 44%가 지난 한해 주택, 공공요금, 식품, 의료 등 일상생활을 유지하기 위한 지출에 어려움을 겪었다고 밝혔다. 이는 적어도 이런 형태의 물질적 어려움 중 하나를 보고한 정규직 노동자의 비율보다 두 배 이상 많았다. 특히 시간제 근로자의 27%, 영세 자영업자의 26%가 식료품과 생필품 구입에 어려움을 겪었다고 답했다.

또 시간제 근로자의 4분의 1 이상과 자영업자의 21%가 예상하지 못한 비용 400달러를 한달 안에 마련하는 데 어려움을 겪을 것이라고 답했다.

이미 벼랑 끝까지 몰린 이들이 코로나 사태로 낭떠러지 아래로 추락하고 있는 셈이다.

"영세 자영업자나 시간제 근로자들에게는 집에서 일하는 것이 선택사항이 아니다. 많은 사람들이 고객의 수요가 마르고, 폐업하고, 교대 근무가 취소되고, 해고되면서 급여를 받지 못할 것이다. 전체 임금 노동자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시급제 노동자는 현재 경제위기로 가장 큰 타격을 받고 있는 소매업 및 여가 접대 인력의 3분의 2를 차지한다. 최근 조사에 따르면 전체 시급 노동자의 약 4분의 1만이 그들의 일의 일부를 집에서 할 수 있다고 한다."

연구소는 이들을 상대로한 광범위하고 강력한 조치가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조만간 미국 각 가정에 지급될 재난지원금, 긴급 실업 급여, 의료 지원과 식료품 지원, 소규모 자영업자를 위한 지원금, 파산 신청 등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연구소는 "경기가 거의 침체되기 전에 이미 재정적으로 불안했던 이들은 잃어버린 소득을 대체할 강력한 조치가 없다고 심각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미국에서 코로나 사태로 생활이 어려워진 사람들이 푸드뱅크에서 무료로 음식과 생필품을 받기 위해 몰려든 모습은 팬데믹으로 인한 경제 위기로 어떤 사람들이 고통을 받고 있는지 보여준다. ⓒ로이터=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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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홍기혜

프레시안 편집·발행인. 2001년 공채 1기로 입사한 뒤 편집국장, 워싱턴 특파원 등을 역임했습니다. <삼성왕국의 게릴라들>, <한국의 워킹푸어>, <안철수를 생각한다>, <아이들 파는 나라>, <아노크라시> 등 책을 썼습니다. 국제엠네스티 언론상(2017년), 인권보도상(2018년), 대통령표창(2018년) 등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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