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亞인종주의는 트럼프 재선전략...팬데믹 가도 인종주의 남을 것"

[코로나19, 미국의 민낯②] 트럼프 정부, 아시아계 대상 폭력 외면하는 이유는?

지난 4월 5일 뉴욕 브루클린에서 한 아시아계 여성이 정체불명의 남성에게 '염산 테러'를 당했다. 경찰에 따르면, 이 여성은 밤 11시께 자신의 집 앞에 쓰레기를 버리러 나왔다가 집 앞 계단에서 기다리고 있던 남성에게 불시에 공격을 당했다. 피해 여성은 상반신과 얼굴, 양손에 2도 화상을 입고 병원에서 치료 중이다.

지난 3월 14일 미국 텍사스주 미드랜드에서는 아시아계 가족 3명(아버지, 2세, 6세 자녀)이 식료품점에서 19세 남성이 휘두른 칼에 찔리는 끔찍한 사고가 발생했다. 미국 연방수사국(FBI)의 수사 보고서에 따르면 "용의자는 이 가족이 중국인이라서 코로나 바이러스에 감염된 것으로 생각하고 흉기를 휘둘렀다"고 한다. FBI는 이 사건을 인종혐오 범죄로 보고 수사를 진행 중이다.

지난 3월 10일에는 뉴욕 맨해튼 한인타운에서 20대 한인 여성이 한 흑인 여성에게 "마스크는 어디 있느냐"며 마스크를 쓰지 않았다는 이유로 폭행을 당하는 일이 발생했다.

아시아계를 상대로 한 인종 혐오 범죄는 심지어 의료진을 대상으로도 일어났다. 캘리포니아를 중심으로 활동하는 아시아퍼시픽정책기획위원회(A3PCON)는 최근 코로나19(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사태 이후 증가한 아시아계 대상 폭력, 범죄에 대한 신고를 받고 대책을 모색하기 위해 'Stop AAPI(Asian American Pacific Islander) Hate' 사이트를 만들었다. 이 단체에 따르면, 캘리포니아에서 한 아시아계 의사는 출근하는 길에 심한 욕설과 함께 "중국으로 돌아가라"는 말을 들었다고 한다. 또 아시아계 간호사는 환자에게 약을 배달하다가 환자가 뱉은 침을 맞는 수모를 당하기도 했다.

▲뉴욕 브루클린에서 한 아시아계 여성이 자신의 집 앞에서 쓰레기를 버리려다 괴한에게 '염산 테러'를 당했다. ⓒabc7ny 화면 갈무리

한인들도 주요 피해 대상....미 의회도 대책 촉구하지만 트럼프 정부는 요지부동

이 단체는 3월 중순부터 웹사이트를 통해 신고된 각종 피해사례가 1500건이 넘는다고 15일 밝혔다. 여성 피해자가 남성에 비해 2배로 많으며, 아동이 피해자인 경우도 6.3%나 된다고 한다. 폭력이 발생하는 장소는 주로 식료품점, 약국, 큰 도매유통상점이라고 덧붙였다. 이 단체에 신고된 피해 사례 중 상당수가 미주 한인들이기도 하다. 지난 3월말까지 접수된 피해 사례의 16.5%(673건 중 111건)가 한인이 피해자였다고 한다.

이처럼 증가하는 혐오범죄에 대응하기 위해 그레이스 맹 하원의원은 '코로나 사태로 인한 아시안 상대 인종주의 규탄 결의안'(H.Res.908 : Condemning all forms of anti-Asian sentiment as related to COVID-19)을 지난 3월 25일 발의했다. 맹 의원은 뉴욕 퀸즈가 지역구이며, 본인은 중국계 미국인, 남편은 한국계 미국인이다.

이 결의안 통과를 지원하는 활동을 하고 있는 미주한인유권자연대(KAGC) 송원석 국장은 프레시안과 전화 통화에서 "코로나19로 인한 공공 보건 위기는 미국 사회의 모두를 위협하고 있지만 만연한 혐오와 편견 때문에 아시아계 시민들의 피해는 더 심각하다"며 "현재 124명의 연방 하원의원의 공동 발의를 통해 지지를 확보했다"고 밝혔다. KAGC는 코로나 사태와 관련해 혐오, 차별, 폭력 등 부당한 피해를 경험한 한인들의 신고를 받고 연방 의원실에 민원 접수 등을 지원하는 활동도 하고 있다.

상원의원들도 이 문제에 대한 대책 마련을 요구하고 나섰다. 민주당 상원의원 12명은 지난 10일 미국 민권위원회에 "코로나19 팬데믹과 관련된 반아시아 정서 문제를 예방하고 해결하기 위한 연방 기관의 공동 노력이 없다"며 정부 차원의 노력을 촉구하는 서한을 보냈다. 이 서한에는 민주당 대선 경선 후보였던 엘리자베스 워런 의원(매사추세츠), 카멀라 해리스 의원(캘리포니아)도 참여했다.

실질적인 피해가 급증해 당사자들이 호소하고, 의회에서도 정부의 대책 마련을 촉구하고 나섰는데, 트럼프 행정부는 이를 철저히 외면하고 있다.

NBC 보도에 따르면,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는 이와 관련된 답변을 거부했다. 앞서 2003년 사스 사태 때는 CDC 차원의 권고안을 내놓았다. 법무부도 아직은 복지부동이다. 법무부는 "아시아계 미국인, 아시아인 등에 대한 증오범죄와 차별금지법 위반을 최대한 기소할 것"이라는 원칙적인 입장을 밝혔을 뿐이라고 NBC가 16일 보도했다.

트럼프-폼페이오-폭스뉴스, '우한 연구소 바이러스 유출설' 제기

트럼프 정부는 아시아계에 대한 혐오, 차별, 폭력 등을 방지하기 위한 노력보다 오히려 이를 부추기는 듯한 정치적 언설을 내놓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15일(현지시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가 중국에서 만들어진 것이라는 일각의 '음모론'을 입증하기 위한 조사를 공식화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백악관의 코로나19 태스크포스(TF) 브리핑에서 중국 우한의 연구소에서 코로나19가 유래했다는 보도에 대해 "우리는 지금 벌어진 끔찍한 상황에 대해 매우 철저한 조사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트럼프 정부에 우호적인 보수언론인 <폭스뉴스>는 이날 코로나19가 중국 우한의 연구실에서 실험 도중에 발생한 것이며 이는 생물학적 무기라기보다는 바이러스 판별과 퇴치 능력에서 중국이 미국보다 더 낫다는 것을 보여주려는 목적의 실험이었다고 보도했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도 이날 <폭스뉴스>와 인터뷰에서 우한 바이러스 연구소가 처음 확진자가 발생한 우한의 재래시장에서 얼마 떨어져 있지 않다고 거론하며 "우리는 바이러스가 우한에서 유래됐다고 알고 있다. 중국 정부가 공개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코로나19가 우한의 연구소에서 발생했을 가능성에 대해선 <워싱턴포스트>도 지난 1월말 이스라엘의 생화학전 전문가 대니 쇼햄 박사의 주장을 근거로 의혹을 제기하기도 했다. 다만 쇼햄 박사는 "확실한 증거는 없다"고 선을 그었다. 또 앞서 2017년 과학전문지 <네이처>에서 중국의 정보 통제를 문제 삼으며 우한 연구소에서 생물안전등급 4등급 실험을 하는 것의 위험성에 대해 경고하면서 유출 위험을 문제 삼기도 했다.

중국의 바이러스 실험 과정에서 이런 비극이 발생했을 가능성이 전혀 근거가 없다고 볼 수는 없지만, 미국에서 세계에서 가장 많은 코로나19 확진자와 사망자가 발생하고 있는 지금 이 시점에 대통령과 국무장관이 크게 관심을 기울일 이슈인지에 대해선 의문이다. 16일 오후 8시 현재 미국 내 코로나19 확진자 수는 67만7056명, 사망자수 3만4580명으로 집계됐다. 전세계 확진자의 32%, 사망자의 24%가 미국에서 발생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에게 이 문제를 제기했는지에 대한 질문에 "그와 연구실 이야기를 논의하고 싶지는 않다. 지금은 부적절하다"고 답하는 등 의혹 해소를 위한 실질적인 행동으로 이어지고 있지도 않다. 마크 밀리 미국 합참의장은 지난 14일 국방부 기자회견에서 중국 연구소에서 바이러스 유출된 것이라는 의혹에 대해 "아직 결론이 난 것은 아니다"면서도 "자연적으로 생성된 것 같다"고 밝히기도 했다.

또 의혹의 성격상 지금 당장 해소될 수 있는 것도 아니라는 점에서 대중들의 관심을 '중국'에 묶어두기 위한 문제제기로 보인다.

WHO 자금 지원 중단에 전 세계 발칵....빌-멀린다 게이츠 재단은 1억5000만 달러 추가 기부

트럼프 대통령은 바로 전날 브리핑에서는 WHO의 중국 편향성을 문제 삼으며 현재 팬데믹 상황에 대한 책임론을 제기하면서 WHO에 대한 자금 지원을 중단하겠다고 밝혔다. WHO가 중국으로부터 나오는 보고들에 대해 제대로 조사했더라면 코로나19가 지금처럼 확산되지는 않았을 것이란 주장이다. 미국이 지난해 WHO에 지원한 금액은 4억 달러로, WHO 예산의 15%를 차지한다.

전 세계가 코로나19 대응에 공조를 해야 하는 상황에서 이를 주도해야 하는 국제기구의 지원을 끊겠다는 트럼프 대통령의 발표에 비판이 쏟아졌다.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은 15일 성명을 내고 "지금은 바이러스와 그로 인한 충격적인 결과를 막기 위해 국제사회가 연대해 협력해야 할 때"라고 비판했다.

중국 외교부 자오리젠 대변인은 이날 "미국의 결정은 WHO의 능력을 약화하고 국제 방역 협력을 해치며 세계 각국, 특히 능력이 취약한 국가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비판했다. WHO에 2000만 달러를 제공한 중국은 상황 변화에 따라 자금 지원을 늘릴지 검토하겠다고 덧붙였다.

영국, 프랑스, 독일, 핀란드, 스위스 등 유럽 각국도 외교 담당 장관 성명을 통해 트럼프 대통령의 결정을 비판하고 나섰다.

미국 내에서도 트럼프 대통령의 결정에 대한 비판이 일고 있다. 야당인 민주당 뿐 아니라 재단을 세워 질병 퇴치.의료기술 개발 지원 활동 등을 해온 마이크로소프트(MS) 창업자인 빌 게이츠도 비판하고 나섰다. 빌 게이츠 '빌 앤드 멀린다 게이츠 재단' 이사장은 15일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에 대해 "세계의 보건 위기가 닥친 와중에 WHO에 대한 자금 지원을 중단한다는 건 위험한 소리"라고 트위터를 통해 입장을 밝혔다.

더 나아가 멀린다 게이츠 재단 공동의장은 이날 "WHO는 코로나19 대유행에 대처할 수 있는 기관"이라며 치료제, 백신, 공중보건 조치 개발 가속화를 위해 1억5000만달러(3067억 원)의 추가 기금을 마련했다고 밝혔다고 로이터통신이 보도했다. 게이츠 재단은 총 2억5000만 달러를 코로나19 대응을 위해 기부했다.

"아시아 인종주의는 트럼프 재선 전략의 일환...팬데믹은 끝나도 인종주의는 남을 것"

앞서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3월 26일까지 공식 브리핑에서 여러차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를 '중국 바이러스'라고 부르기도 했다. "인종차별적 발언"이라는 비판에도 불구하고 "이 바이러스가 중국에서 시작됐다는 사실을 지적하기 위한 것"이라며 굽히지 않았다.

이처럼 트럼프 대통령이 코로나 사태를 '중국 탓'으로 돌리려는 것은 직접적으로는 미국이 세계 1위 코로나19 발생국이 된 책임을 전가하기 위해서다. 특히 재선 도전하는 트럼프 대통령 입장에선 오는 11월 대통령 선거가 코로나 대응 실패에 대한 책임을 묻는 선거가 되는 것을 차단해야 한다.

코로나19 사태에 대한 '중국 책임론'은 코로나 대응 실패를 덮으려는 일차적인 차원의 전략만이 아니다. 트럼프 정부의 탄생의 근간이기도 했던 '인종주의'를 재선에서도 다양한 방식으로 활용하려는 전략으로도 해석할 수 있다. 전염병으로 발생한 국가적 위기로 인한 국민들의 불안감을 부추겨 정치적 분열을 조장하고 이로 인해 정치적 이득을 꾀하려는 전략이라는 비판이 가능하다.

아시아계 미국인에 대한 팟캐스트를 진행하고 있는 제프 양 씨는 "트럼프 정부는 중국인들이 위협으로 인식될 수 있도록 책임을 떠넘기려 하고 있다"며 "이는 트럼프의 대선 캠페인의 일환으로 보인다"고 PBS와 인터뷰에서 말했다.

신시아 최 A3PCON 공동대표는 "팬데믹 사태에 우리는 바이러스에 감염되는 것에 대한 두려움과 함께 인종주의에 저항해야 하는 일이 현실의 일부가 됐다"며 "반 아시아 인종차별을 해결하기 위해 정부와 정치지도자들이 더 많은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팬데믹이 끝나도 인종주의는 계속될 수 있다"고 호소했다.

김동석 미주한인유권자연대 대표는 프레시안과 전화 통화에서 "트럼프 정부는 이미 외부의 적으로 중국을 설정해 놓고 책임을 돌리려고 하는 방향을 잡은 것으로 보인다"며 "아시아계 미국인들은 지금 이 문제가 어떤 방향으로 비화될지 큰 두려움에 사로잡혀 있다"고 말했다.

김 대표는 1990년대 초반 걸프전의 여파로 미국 정부가 극빈자들을 상대로한 예산을 줄이면서 시작된 흑인 빈민층의 불만이 LA에서 한국계 미국인들과의 갈등으로 비화된 '4.29 폭동' 처럼 코로나 사태 이후 예상되는 경제불황 국면에서 아시안계가 공격 대상이 되는 일도 벌어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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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홍기혜

프레시안 편집·발행인. 2001년 공채 1기로 입사한 뒤 편집국장, 워싱턴 특파원 등을 역임했습니다. <삼성왕국의 게릴라들>, <한국의 워킹푸어>, <안철수를 생각한다>, <아이들 파는 나라>, <아노크라시> 등 책을 썼습니다. 국제엠네스티 언론상(2017년), 인권보도상(2018년), 대통령표창(2018년) 등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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