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사람들 내면에는 독재자가 잠들어 있다. 항상 깨어날 기회만 엿보고 있다. 세상을 불평등하게 만드는 강한 독재자들이 생기지 않도록 하는 방법이 생활자치, 마을자치다.
로마황제들과 같이 절대권력을 행사하는 일종의 광란상태는 어느 시대에나 존재해 온 보편적 질병이다. 누구나 자기 밑에 있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이걸 해, 내 뜻이 그렇고 내가 그걸 좋아하니까.” 하지만 그것은 잘못된 정신적 질병과 같은 행위다.
우리 각자에게는 개인 권력에 저항하게 하는 무언가가 있고, 그 무언가는 존중받아야 한다. 실제로 우리는 근본적으로 천부인권을 가지고 있는 평등한 존재다. 당연히 나에게 복종을 강요할 권리가 있는 사람은 세상 아무도 없다.
그런데도 그런 명령을 내리는 사람이 있다면 우리는 모욕감을 느끼며 용납하기 어려워야 한다. 가장 무자비한 독재자는 가장 가까이 있는 독재자다.
마을 안에 독재자가 있다면 그것은 우리 삶을 망치는 가장 두려운 대상이 된다. 마을 안에 독재자가 만들어지지 않도록 하는 방법이 마을 민주주의이고 풀뿌리 강화다. 그리고 이웃과 함께 하는 방향과 방법을 만드는 일이 마을자치다.
법과 제도에 의해 강제되고 차별되는 일들이 마을 입장에서는 너무도 많다. 마을내 땅 소유권과 관련한 갈등은 농촌마을에서 비일비재하다. 국가가 해결 못하고 있는 지적불부합문제가 근본원인이다.
복지사각지대, 지역과 마을간 격차, 각종 무분별한 규제, 불합리한 교통신호체계, 마을회관시설 노후화 등등 마을에는 너무나 많은 일들이 차별되고 있다.
도시보다는 농촌에 더 많다. 마을자치는 우리가 마을에서 생활하는데 불편한 요소가 무엇인가를 찾고 이웃과 함께 차별을 해결해 가는 실천해 나가는 과정이다.
마을공동체를 통한 풀뿌리 마을민주주의 강화는 리더들과 함께 의제설정부터 우리가 제안하고 만들어 가야 한다. 이를 통해 우리의 행복도를 높일 수 있는 대안을 우리 스스로 만들어야 한다. 이런 과정에서 독재가 되지 않으려면, 늘 우리는 과정과 절차를 중시해야 한다.
그렇지 못하면 아무리 좋은 의도로 추진한다고 해도 독재가 된다. 권력을 행사하는 사람의 첫 번째 의무는 겸손이라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신이 아닌 이상 혼자서가 아니라 우리는 우리의 이웃과 함께 실천해야 한다.
거만함은 권위가 아니다. 우리는 법이 될 수 없다. 법은 모두에게 공평하고, 우리는 단지 법을 해석하고 적용할 뿐이다.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 더 타당하게 만들려면 우선 우리 자신이 그 법을 따라야 한다. 마을에서 법과 상식을 지키는 일은 우리 삶의 질을 보장하는데 중요한 아주 기본적인 요건이다.
안타깝게도 우리 사이에서 이웃 간 상호 존중감이 점점 사라지고 있다. 나의 기준으로만 세상을 보고 해석하려는 경향이 강하다. 물론 이는 존중받고 싶은 부분을 강조하지 않아서가 아니다. 그 잘못된 원인은 지위가 높은 사람은 삶의 일상적인 의무를 준수하지 않아도 된다는 편견에서 나온다.
우리는 재산이나 권력이 늘어나면 복종과 겸손의 정신도 함께 더 커져야 한다는 사실을 잊는다. 지위가 높아지면 법으로부터 자유로워진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자신의 임무를 가장 존중해야 하는 이들이 그 존중의 가치를 높이려고 노력하지 않게 되고 그 때문에 존중도 줄어 든다.
꼭 두드러져야 하는 것이 있다면 오로지 ‘더 나은 사람’이 되고자 하는 바람뿐이다. 더 나은 사람이 되려고 노력하는 사람은 더 겸손해지고 더 다가가기 쉬워진다. 더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이웃과 함께하는 일을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
우리는 사회적 동물이라서 나 혼자서 더 나은 사람이 되기는 어려운 게 아니라 불가능하다. 조직에 몸담은 구성원이라도 내가 사는 마을에서 일어나는 일은 눈여겨보고 이웃과 함께 풀어가야 한다. 다양한 문제가 무엇인지를 고민하는 일은 우리의 삶을 더 풍족하게 하고 행복하게 하는데 필수적인 요소라고 볼 수 있다.
그러한 과정에서 이웃을 존중해야 우리 마을의 문제에 대한 인식이 생길 수 있고 이들과도 더 친숙해진다. 더 알게 될수록 얻는 것은 더 많아지고 잃은 것은 없어지는 것처럼 나 혼자서도 더 나은 삶을 만들어 갈 수 있다는 거드름을 줄일 수 있다.
마을 풀뿌리 민주주의는 국가의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서라기보다 더 우리에게 필요한 일이다. 우리는 정치가 풀뿌리 민주주의에서 시작된 것이 아니라 국가와 정부에 의해 위로부터 발전되어 그 뿌리가 약하다.
이제 국가로부터 시작된 독재와 위로부터의 정치에서 벗어나야 한다. 마을자치혁신을 만들어야 한다. 마을로부터 혁신이 마을 자치형태로 이루어져야 할 시점이다.
코로나 19 바이러스 공포가 전세계적으로 확산하면서 공동체와 가정이 중요시되고 있다. 개방성, 국민참여를 통한 민주주의와 공동체에 대한 중요성이 드러나고 있다.
코포라티즘적 시각에서 더욱 국가가 더 발전하려면 국가코포라티즘(state-coportism)이 강한 우리나라는 사회적 코포라티즘(social-coporatism)을 마을로부터 만들어내야 한다. 마을자치를 통해 만들어 가야 한다. 풀뿌리 기반 마을을 혁신하고 발전시켜야 한다.
그 과정과 절차는 혁신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혁신은 이 세상의 어느 곳에선가 새로운 관행이 되는 새로운 방식이나 제품이다.1) 새로운 기준은 한 국가에서 나타나 다른 곳으로 퍼지기도 하고, 한 지역에서 출발해서 전국으로 퍼져 나가기도 한다.
이러한 혁신은 무엇이든 새로운 것들의 창조(착상과 개발)와 선도적 도입을 포함한다. 혁신적인 사람들과 기업들은 단지 시작일 뿐이다. 혁신이 성공하려면, 새로운 것을 개발을 시작할 것인지, 제안된 프로젝트에 자금을 투입할 만한 가치가 있는지,
새로운 제품이나 방법이 개발되면 사용할 가치가 있는지 판단할 전문성과 경험이 있는 사람들이 필요하다. 혁신과 모방은 원칙적으로 구분되는 것이지만 둘 사이의 경계는 불분명하다.
마을혁신이 기업혁신과 다른 점은 마을 혁신은 기업처럼 역할분담이나 조직이 견고하지 못하다는 점이다. 그리고 사업의 목적이 기업처럼 100% 수익 목적으로 주주의 이익을 위해 일하는 구조가 아니다.
그렇지만 경제공동체 사업의 경우 수익을 목적으로 하면서 그 수익을 마을주민들의 생활개선을 위해 쓰는 예도 있다. 공익을 추구하지만 마을 이외 지역의 주민들을 위해 수익분을 쓰지 않는다는 점에서 또 다르다. 마을 안에서 사업에 참여하는 사람들이 중심이 되어 운영하면서 역할분담을 한다는 점이 기업과는 다르다.
우리는 역동성이란 개념도 잘 이해할 필요가 있다. 이것은 혁신의 이면에 깊이 자리한 역량과 설비의 복합체이다. 변화의 동력과 그것을 위한 재능, 새로운 것들에 대한 수용성, 그리고 이것을 가능하게 하는 제도가 여기에 포함된다.
따라서 역동성이라 개념은 현재의 조건과 장애물을 제쳐두고 혁신하려는 의지와 역량을 의미한다. 마을 공동체에 어떻게 역동성을 부여하여 더 행복한 마을을 만들 것인가는 잠자는 마을주민들의 역량을 일깨우기 위한 중요한 부분이다. 이러한 역할을 공공 부분이 다양하게 추진할 수 있을 때, 더 좋은 행복한 마을 만들기가 가능해진다.
1)과학자들은 그 구매자가 나타났는지와 무관하게 새로운 방법이나 제품의 발명을 혁신이라고 부르는 경향이 있다. 1912년 슘페터의 저작 이후 혁신이란 언제나 단지 새로운 것의 개발만이 아니라 새로운 관행을 의미했다.
김주원 농도상생포럼 회장·전 강원연구원 선임연구위원
juwon59@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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