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도 하차한 샌더스가 미국에 던진 '특별한' 메시지

바이든, 민주당 단합 강조...트럼프 "샌더스 지지자, 공화당 와라"

"우리는 이데올로기 싸움에서 이기고 있고 전국의 청년들과 노동자들의 지지를 받고 있지만, 민주당 대선 후보가 되기 위한 싸움에서는 이기지 못할 것이라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나는 오늘 선거 캠페인 중단을 선언합니다."

미국 민주당 대선경선 후보인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버몬트)이 8일(현지시간) 오전 11시 45분 자신의 홈페이지와 SNS 등을 통해 생중계된 영상을 통해 지지자들에게 '특별한' 메시지를 전했다.

"나는 더 좋은 소식을 전해줄 수 있기를 바랐지만, 나는 당신이 이미 진실을 알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조 바이든 전 부통령보다 확보한 대의원이 300여 명 부족하며, 승리로 가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샌더스 의원(이하 직함 생략)은 이어 선거 운동 중단이 "매우 어렵고 고통스러운 결정"이었다고 밝혔다.

"지난 몇 주 동안 제인(부인)과 나는 선거 캠프 책임자들, 또 많은 지지자들과 함께 승리의 가능성에 대해 솔직한 평가를 했습니다. 만약 내가 후보가 될 수 있는 길이 있다고 생각할 여지가 있었다면, 나는 분명히 캠페인을 계속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런 길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샌더스가 민주당 대선후보가 되는 것은 2016년에 이어 2020년에도 실패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도전이 유의미했다고 강조했다.

"지난 5년간 우리 운동이 이데올로기적 투쟁에서 승리했다는 사실을 부인하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입니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사람들은 이런 생각들이 급진적이고 주변적인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오늘날, 이런 아이디어들은 이미 주류가 됐습니다. 상당수는 이미 전국의 도시와 주에서 정책으로 시행되고 있습니다."

바이든, 트럼프 정권의 재집권을 막을 수 있을까?

샌더스는 자신의 사퇴 결정을 반대하는 지지자들이 있을 수 있다고 인정했다. 민주당 지지자들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라는 "미국 역사상 가장 나쁜 대통령"의 재집권을 막아야 한다는 생각이 절박하다. 샌더스의 후보 사퇴로 인해 사실상 민주당 대선후보가 된 바이든이 트럼프 대통령을 이길 수 있을까? 현 시점에서 누구도 자신 있게 답하기 어려운 질문이다.

더욱이 미국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광범위한 확산으로 국가적 위기 상황에 처했다. 전염병은 불가항력적 변수지만, 각 나라의 정권이 어떻게 대응하느냐에 따라 천지 차이의 결과를 낳고 있다. 코로나19 사태에서 트럼프 정부는 결코 좋은 점수를 받을 수가 없다. 미국은 8일 오후 현재 확진자는 42만여 명으로 세계에서 가장 많이 발생했고, 사망자는 1만4000여 명으로 이탈리아 다음으로 많이 발생했다. 특히 샌더스가 정치적으로 대변해온 중산층 이하의 미국민들은 코로나19에 상대적으로 더 취약하다. 이들은 미국의 시장화된 의료시스템 하에서 제대로 치료 받기도 어렵고, '사회적 거리두기'를 위한 봉쇄 정책으로 인한 경제적 타격도 더 직접적으로 받고 있다. 트럼프 정부가 이들의 고통을 제대로 헤아리고 있을까? 바이든은 과연 트럼프 대통령과 실질적인 차이를 만들어낼 수 있는 지도자인가? 이 역시 답하기 어려운 질문이다.

"이기는 길이 보이지 않았다"는 샌더스의 결론이 타당하다고 생각하지만, 여전히 많은 지지자들이 그의 사퇴를 받아들이기 힘든 것은 이런 의구심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샌더스 의원이 8일 동영상 생중계를 통해 대선 경선 후보 사퇴 입장을 밝히고 있다. ⓒ샌더스 의원 홈페이지 화면 갈무리

바이든 "샌더스와 그 지지자들에게 다짐한다"...트럼프 "샌더스 지지자들은 공화당으로 와라"

CNN 등 언론 보도에 따르면, 샌더스는 이날 오전 바이든에게 전화로 사퇴 결정을 사전에 통보했다고 한다. 바이든은 이날 개인 성명을 발표해 샌더스의 지지자들에게 이탈하지 말고 자신의 중심으로 결집할 것으로 호소했다. 바이든은 "나는 당신(샌더스)의 주장이 무엇인지 알고 있다"며 샌더스 정책을 일부분 수용할 것이며 "당신의 지지자들에게도 같은 다짐을 한다"고 말했다. 그는 "나는 우리가 이 나라에서 해야할 일이 시급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며 샌더스 지지자들을 포함해 민주당이 트럼프의 재집권을 막기 위해 단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트럼프는 이날 샌더스 사퇴에 대해 트위터에 올린 글에서 "민주당과 민주당전국위원회(DNC)가 꼭 원하던 대로 끝났다. 사기꾼 힐러리의 낭패와도 비슷하다"며 "버니의 사람들은 공화당에 와야 한다"고 주장했다. 트럼프는 "AOC(알렉산드리아 오카시오 코르테즈 하원의원)와 다른 3명(샌더스 의원 지지를 공표했던 여성 하원의원들)도 '슬리피 조'를 지지하는 것처럼 보이지 않는다"고 거듭 비아냥 거렸다. '슬리피 조'(졸린 조)는 트럼프가 바이든을 비난하기 위해 자주 사용하는 표현이다.

한편, 샌더스의 사퇴가 민주당에 오히려 부정적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는 관측도 제기된다. 김동석 미주한인유권자연대 대표는 본지와 전화 통화에서 "샌더스의 사퇴는 워싱턴 권력의 균형이 깨지는 신호탄"이라며 "극우주의자들인 공화당의 '프리덤 코커스'에 대한 대응 동력이 절반은 상실될 수 있다"고 말했다. 트럼프가 이번에도 2016년 대선 때와 마찬가지로 극우주의자들을 동원해 대선을 치루려고 새롭게 진용을 짜고 있는 상황에 중도주의자인 바이든이 얼마나 효율적으로 대응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는 지적이다.

김 대표는 샌더스가 사퇴 입장을 밝히면서 '이데올로기적으로는 승리했다'고 말한 것처럼 "그가 제기하는 이슈는 미국 시민사회의 실제 현장을 가장 정직하게 대변하고 있다"며 "그의 노선이 민주당의 주류가 이미 됐어야 하는데 민주당 주류들의 기득권 지키기 때문에 결국 오늘과 같은 상황이 벌어지게 됐다"고 안타까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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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홍기혜

프레시안 편집·발행인. 2001년 공채 1기로 입사한 뒤 편집국장, 워싱턴 특파원 등을 역임했습니다. <삼성왕국의 게릴라들>, <한국의 워킹푸어>, <안철수를 생각한다>, <아이들 파는 나라>, <아노크라시> 등 책을 썼습니다. 국제엠네스티 언론상(2017년), 인권보도상(2018년), 대통령표창(2018년) 등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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