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우선주의 vs. 중국몽…2020년까지 갈등의 축

[최성흠의 문화로 읽는 중국 정치] 미중 '무역전쟁'은 경제 문제를 넘어선다

미국이 중국산 세탁기, 철강, 알루미늄, 태양전지판 등을 필두로 중국산 수입품 1300개에 고율의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하자 중국은 트럼프의 정치적 지지기반에 타격을 가하는 대두 등 106개 품목에 대해 관세보복을 하겠다는 발표를 했다. 이 조치가 정식으로 발효되려면 60일 정도가 남았기 때문에 이 발표들은 전쟁의 시작이라기보다는 전쟁을 알리는 선전포고에 가깝다. 하지만 선전포고만으로도 증시가 출렁이는 등 현실 경제에 영향을 미치고 있으므로 이미 전초전은 시작된 것이다.

중국몽의 기치를 내걸고 강력한 집권체제를 확립한 중국 국가주석 시진핑은 집권 초기부터 강대국의 야망을 공개적으로 천명했었다. 취임 초기인 2013년 6월에 캘리포니아의 휴양지 써니랜드(Sunnylands)에서 열린 미중 정상회담에서 시진핑은 '신형대국관계(新型大國關係)'라는 개념을 언급했다. 양국이 대립과 충돌을 피하고, 서로의 핵심이익과 주요관심사를 상호존중하며 공동번영을 위해 협력하자는 것이 신형대국관계의 대체적인 내용이다. 내용만으로 보면 상호존중, 호혜공영, 협력동반자처럼 중국이 취해왔던 기존 외교정책의 연장선으로 보인다. 그러나 '대국'이라는 명칭이 붙었기 때문에 의미는 완전히 달라졌다.

충돌과 갈등을 지양하고, 인류공영을 위해 노력하자는데 미국이 반대할 이유가 없어서 원론적으로는 동의했다. 문제는 상호존중의 의미이다. 정상회담 직후에 중국의 국무위원 양제츠(楊潔篪)는 기자들에게 정상회담의 내용을 브리핑하면서 상호존중이란 서로의 핵심이익과 중대한 관심사를 존중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중국의 핵심이익은 무엇이며, 그 이익을 존중할 경우 어떤 결과가 초래되는지에 대해 미국의 학계와 정계에서 우려의 목소리가 나왔다. 중국의 핵심이익은 그들의 불행했던 근대사에서 도출된 주권과 영토의 보전과 관련된 것이다. 여기에는 대만, 티벳, 신강 위구르, 남중국해, 센카쿠열도 등의 문제가 포함된다.

시진핑 주석은 이듬해 1월 다보스 포럼에서 월드포스트(Worl Post)와 인터뷰에서 '투키디데스의 함정'을 피하기 위해서라도 신형대국관계는 이루어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투키디데스의 함정이란 하버드 대학의 그래함 앨리슨(Graham Allison) 교수가 투키디데스의 저서 '펠로폰네소스 전쟁사'에 착안한 개념이다. 고대 그리스의 역사학자 투키디데스는 기존의 강국 스파르타가 신흥강국 아테네의 부상을 두려워한 나머지 선제공격을 했다고 설명했다. 양국의 구조적으로 긴장관계에 있던 두 나라가 전쟁을 하게 된 결정적인 이유는 국가이익과 두려움 그리고 명예라는 치명적인 요인이 있었다는 것이다. 시진핑은 그런 전쟁이 일어나지 않도록 양국이 슬기롭게 협력해야 한다는 취지로 말했지만 다르게 생각하면 중국을 강국으로 존중하지 않으면 전쟁이 날수도 있다는 엄포로 들리기도 한다.

미국의 학계와 전문가들은 중국의 이 새로운 개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야할지 고민할 수밖에 없었다. 실재로 중국이 미국과 동등한 강국이 되기를 원하는 것일 수도 있고, 적어도 자신들의 핵심이익을 인정해 주기를 원하는 것일 수도 있다. 아니면 시진핑 집권의 정당성을 확립하기 위한 국내용 레토릭일지도 모른다. 미국 국가안보회의(National Security Council) 아시아 담당관 에반 메더리오스(Evan Mederios)는 시진핑의 월드포스트 회견 후에 부루킹스 연구소 기고를 통해 "새로운 모델을 건설하기 위해 미국이 중국의 핵심이익에 동의하고 이를 수용해야 한다고 하지만 그것은 중국의 개념일 뿐이다. (…) 핵심이익보다는 공통의 이익에 더욱 초점을 맞춰야 하고, 쌍방의 이익을 구성하는 민감한 지역문제와 세계적 도전을 함께 해결할 방법에 집중해야 한다"고 중국을 반박했다. 이것이 미국 내에 형성된 대체적인 반응이기도 하고, 만약 미국이 중국의 핵심이익을 인정한다면 미국과 중국주변국의 관계 설정이 불안정해지기 때문에 신형대국관계를 액면 그대로 받아들일 수는 없다.

중국은 신형대국관계에 대한 미국의 반감을 의식하고, 문제가 된 핵심이익이라는 개념은 점차 언급을 자제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미국의 보수주의자들은 중국의 이러한 태도에 대해 불쾌감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바둑으로 치자면 몇 점 깔고 접바둑을 두는 하수가 고수와 같은 대접을 받겠다고 하는 것과 마찬가지기 때문이다. 이러한 보수주의적 정서가 지난 미국 대통령선거에서 트럼프의 당선에 일조했는지도 모르겠다. 트럼프는 대통령선거 기간 중에 "중국이 우리나라를 강간하도록 계속 내버려둘 수 없다"는 극단적인 말을 하기도 했다. 지금 벌어지고 있는 무역갈등은 중국이 먼저 신형대국관계라는 선전포고를 했고, 트럼프 대통령은 이에 반격한 셈이다.

트럼프는 4일(현지시간) 트위터에 "지금 무역전쟁을 하는 것이 아니다. 무역전쟁은 어리석은 전임자들에 의해 이미 패했다"고 썼다. 8일에는 "무역분쟁과 관련해서 어떤 일이 벌어지더라도 시주석과 나는 언제나 친구가 될 것이다. 중국은 무역장벽을 낮출 것이다. 왜냐면 그것이 옳은 일이기 때문이다. 세금은 상호적인 될 것이고, 지적재산권 문제도 해결될 것이다"라고 썼다. 트위터를 통해 밝힌 두 가지 입장을 음미해 보면 트럼프의 진심을 엿볼 수 있다. 이 전쟁은 중국이 먼저 시작한 것이며 중국이 무역장벽을 낮추고, 지적 재산권 문제를 해결한다면 미국과 중국은 친구가 될 수 있다는 뜻이다. 또 무슨 일이 벌어질지 알 수 없다는 의미도 포함되어 있다. 단지 '강간' 같은 험악한 표현대신에 부드러운 어조를 택했지만 내용은 분명 그렇다.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AP=연합뉴스

무역전쟁이 무역전쟁으로만 끝난다면 어떻게 해서든지 협상은 시작될 것이고, 합의를 찾아내게 될 것이다. 많은 전문가들이 그렇게 될 것을 예상하고 또 기대한다. 그런데 만약 상호적인 관세문제 외에 다른 일이 벌어진다면 문제는 복잡해진다. 전쟁은 원래 계획한 방향으로 진행되지 않는다. 한국에 사드(THAAD)가 배치됐을 때 한국 상품 불매운동이 벌어지고 반한감정이 퍼졌듯이 미국상품 불매운동과 반미감정이 폭발하면 경제적인 문제를 넘어서게 된다. 물론 중국인들의 민족주의적 행위는 당국의 통제 하에 진행되는 것이고, 미국을 압박하는 수단으로 사용될 수 있지만 예상치 못한 사건이 터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투키디데스가 얘기한 두려움, 국가이익 그리고 명예의 문제가 양국의 갈등을 부추기고, 극단적인 대결구도가 형성될 수도 있다. 중국이 레짐 체인지(regime change)를 진심으로 원하고 있다면 그런 일이 벌어지지 말란 법도 없다.

미국과 중국의 갈등은 경제적인 문제뿐만 아니라 정치적인 문제에 있어서도 한반도를 비롯하여 중국 주변국들에게 심대한 영향을 미친다. 중국의 핵심이익과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그중북한은 주도적으로 먼저 움직이기 시작했다. 트럼프는 이런 북한이 고마울 것 같다. 대선 때부터 중국과 결전을 치루고 싶었지만 북핵문제 해결에 지렛대를 쥐고 있는 중국에 대해 과감한 압박을 가하지 못하고 차일피일 미루고 있었는데 김정은이 불현듯 그 문제를 해결해 주었다. 남북 정상회담, 북미 정상회담이 이미 결정되어 있는 상태에서 김정은 위원장은 시진핑 주석을 만났다. 일단은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북한은 자신들의 이익을 최대한 얻을 수 있는 기회는 마련한 셈이다. 북중 정상회담에서 시진핑이 뭔가 약속을 했겠지만 UN의 강력한 경제제재에 동참하고 있는 중국이 그리 미더운 존재는 아니다. 핵을 폐기하는 대가로 누구에게서 무엇을 얼마나 얻어낼 수 있을지 저울질을 하고 있을 것이다.

미국이 중국을 압박할 수 있는 또 하나의 강력한 수단은 대만(臺灣) 문제이다. 1979년에 미국과 중국은 외교관계를 수립하고, 대만과 단교했다. 그때 발표한 미중수교 공동성명서 제2조에 "미합중국은 중화인민공화국 정부가 중국의 유일한 합법정부임을 승인한다"라고 되어 있고, 제7조에는 "미합중국 정부는 오직 하나의 중국이 있고, 대만은 중국의 일부분이라는 중국의 입장을 승인한다"라고 되어 있다. 이로부터 '하나의 중국' 원칙이 유래한다.

그런데 제7조의 문장을 음미해보면 '하나의 중국'과 '대만은 중국의 일부'라는 문구에 있는 '중국'은 중화인민공화국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대만을 포함하여 중국은 하나라는 입장을 미국은 인정한다는 뜻이다. 단지 제2조에 의해 그 중국에서 중화인민공화국이 유일한 합법정부라는 것을 승인(recognize)한 것이다. 중국은 2조와 7조에서 서술어를 모두 '승인한다(承認)'로 번역했지만 영어판에는 제7조에는 '중국의 입장을 인정한다(acknowledges chinese position)'이라고 되어 있다. 'recognize'와 'acknowledge'가 비슷한 의미이긴 하지만 '공인(公認)하다'라는 의미로 외교문서에 사용할 때는 거의 대부분 'recognize'로 쓴다. 중국은 그 단어를 '승인하다(承認)'는 같은 단어로 표기했다.

1982년에 미국은 미중 성명서를 통해 '두개의 중국' 또는 '하나의 중국, 하나의 대만' 정책을 추진하지 않겠다고 천명함으로써 '하나의 중국' 원칙에 동의했지만 중화인민공화국의 주권이 대만까지 포함하는지에 대해서는 어떤 공식적인 입장이 없다. 이 원칙이 선례가 되어 중국과 수교하면 대만과 단교하고, 대만과 수교하면 중국과 단교하게 되었다. 왜냐하면 둘 중 한 나라가 유일한 합법정부가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번 무역전쟁이 과열되면 그 끝에는 대만문제가 기다리고 있다. 무역전쟁이 협상을 통해 해결되더라도 대만문제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중국과 미국 모두 이미 포석을 두었다. 중국은 3월 1일 중국에 투자하는 대만기업과 기업인 및 기술인력에 대해 중국현지인과 동등한 대우를 하는 '대혜31조(臺惠31條)'라는 특별조치를 발표했다. 특히 첨단기술과 에너지 및 농업분야 등 중국이 중점적으로 육성하는 분야에 투자하는 기업은 중국기업이 받는 특혜를 동일하게 받을 수 있게 했다. 그 외에도 대만기업에게 중국기업에 버금가는 다양한 혜택을 부여하고 투자를 적극 유치해서 양안관계가 더욱 긴밀해지도록 유도하고 있다. 대만의 분리독립보다는 하나의 중국으로 남는 것이 유리하다는 인식을 심어주는 것이다.

이에 뒤질세라 트럼프는 3월 16일에 '대만여행법'에 최종 서명을 함으로써 '하나의 중국' 원칙을 흔들어 놓았다. 그는 이미 대통령에 당선된 직후 당선인 신분으로서 대만 총통 차이잉원(蔡英文)과 전화통화를 해서 중국을 놀라게 했던 적이 있다. 이 법에 의하면 미국과 대만의 모든 수준의 관방 간 교류가 가능해졌다. 고위공무원의 상호방문도 가능해졌고, 대만의 고위 공무원이 미국에 입국할 때 지위에 합당한 예우를 받을 수 있게 됐다. 또한 대만 경제문화 대표부 등 대만에 의해 설립된 조직이 미국에서 활동할 수 있으며 미국 의회의원, 연방 및 지방정부 관리와 대만의 고위공무원도 이 활동에 참여할 수 있게 됐다. 이전에는 미국 국무원과 국방부의 고위공무원은 관방의 신분으로 대만에 갈 수 없었다.

'하나의 중국' 원칙은 중국의 핵심이익 중의 핵심이다. 대만 여행법이 통과되자마다 대만 남부의 대도시 가오슝(高雄)시 시장 천쥐(陳菊)가 미국을 방문했으며 미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 부차관보 알렉스 웡(Alex Wong, 黃之瀚)이 뒤이어 대만을 방문했다. 법의 통과만으로 끝난 것이 아니라 이 법이 효력을 가지고 있음을 선례로서 보여준 것이다. 이에 대해 중국 항공모함 랴오닝함이 대만해협을 항해하며 시위를 했고, 중국 국방부 대변인 런궈창(任國强)은 3월 29일 열린 기자회견에서 "대만은 중국의 일부분이고 국가의 안전과 통일 그리고 위대한 부흥은 그 어떤 세력과 수단으로도 막을 수 없다. 중국 군대는 확고한 결심, 충만한 자심감, 충분한 능력으로 국가주권과 영토를 완전하게 지킬 것이다"라고 강조했다.

지금 시작되고 있는 미중 간 무역갈등이 단순히 경제적인 문제가 아니고 중국의 확장전략에 대한 미국의 반응일 수도 있다. 혹은 미국우선주의(america first)라는 트럼프의 공약과 중국몽(中國夢), 위대한 중국의 부흥이라는 시진핑의 공약이 충돌하는 것일 수도 있다. 중국이 미국의 요구조건을 어느 정도 수용해서 무역장벽을 낮추고, 일부 품목에 대해 개방을 실시해서 일단 문제가 봉합될 수는 있지만 본질적인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적어도 2020년까지 미중 간의 갈등 요소는 살아 있는 것이다. 그 해는 미국대통령 선거가 있는 해이고, 중국공산당 창당 100주년이 되는 해이며 대만 총통 선거가 있는 해이기도 하다. 그때까지 미국과 중국이 어떤 합을 맞춰가며 외교를 펼칠지 모르지만 북한이든 대만이든 혹은 남중국해의 베트남이든 필리핀이든 그들은 단순히 장기판의 졸이 아니라 이 상황에서 피해를 최소화하거나 이익을 극대화하려는 이기적 생물체라는 것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상황이 급변할 변수가 많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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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성흠

한국외국어대학교에서 강사로 학생들을 가르치며 중국 문화에 대한 글을 쓰고 있다. 대륙연구소, 북방권교류협의회, 한림대학교 학술원 등에서 연구원을 역임했다. 중국의 관료 체제에 관한 연구로 국립대만사범대학교에서 석사 학위를 취득했고, 중국의 정치 문화에 대한 연구로 건국대학교에서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한 권으로 읽는 유교> 등의 번역서와 <중국 인민의 근대성 비판> 등 다수의 연구 논문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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