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십자사 해명에 대해 재반박한다"

[기고] 혈액 사업의 문제점

내가 지난 11일에 쓴 기고문(관련 기사 : 적십자사를 정말 어찌할까?) 에 대한 적십자사의 해명자료가 12일 나왔다. 적십자사는 내게도 해명자료를 보내줬지만, 정말 이게 해명인가 하는 의구심이 들 정도로 허술하고 내용이 없었다. 적어도 상대방이 문제제기를 했으면 거기에 대한 근거자료와 각종 팩트를 들이대고 반박을 해야 하는데 내게 보내준 자료는 그런 게 아니었다. 한마디로 요약하면 '우린 그런 일 없고 다 정당하게 처리했다'는 말 뿐이다. 적십자사의 해명(관련 기사 : 적십자사 "면역 검사시스템 구매 입찰 공정하게 진행")에 대해 조목조목 반박해보겠다.


1. 대한적십자사는 면역검사시스템 구매와 관련 일부 기업에게 특혜를 준 사실이 없다?

대한적십자사는 해명자료에서 "면역검사시스템 구매를 진행함에 있어 지난 2017년 2월 6일부터 2월 10일까지 보건복지부 감사를 받은 사실은 있습니다. 하지만 감사 결과 입찰과 관련하여 일부 외국 기업에게 특혜를 주었다는 의혹에 대해서는 감사결과 사실이 아닌 것으로 판명되었습니다. 다만 일부 절차상의 문제에 대해 지적을 받고 그 결과에 대해서는 조치를 완료하였습니다."라고 하였다.

적십자는 일부 절차상의 문제라고 주장하나 2017년 3월 보고된 복지부의 감사보고서 내용을 보면 이렇다. 적십자사는 업체제안요청서가 공개되기 이전인 2016년 1월 25~26일 실시한 '2016년 제1차 면역검사장비심의 실무위원회'에서 임의로 2개업에 자사 시스템을 설명할 수 있도록 하고, 역시 업체제안요청서가 공개되기 이전인 2016년 4월 25일 개최된 '면역검사시스템 평가관련 업무회의'에서 Befree 시스템(지멘스사의 장비)과 PRISM 시스템(애보트사의 장비)을 평가용 장비로 정하고 설치 일정을 업체와 논의 후 정하기로 했다. 이런 보고서 내용을 보면 말이 공개입찰이지 이미 특정 업체들을 염두에 두고 입찰을 진행하기로 한 것이다. 당시 복지부 기관경고의 내용은 "유사사례가 재발하지 않도록 향후 계약준비의 모든 과정에서 공정성을 기하시기 바랍니다."이다. 일부 외국 기업에게 특혜를 주지 않았다는 직접적 표현이 없다는 이유로 '감사결과 사실이 아닌 것으로 판명하였다.'라는 주장을 하는 것은 적십자사의 한글 해독 능력이 현저히 떨어지는 것을 반증하는 것이다.

2. 특정업체를 위해 입찰공고를 미룬 사실이 없다?

적십자사는 해명자료에서 "면역검사 시스템 구매와 관련하여 혈액의 안전성 강화를 위해 가장 정확하고 우수한 장비나 시약을 사용하는 정책을 유지하고 있으며, 구매절차 및 방법에 대해 공정하고 엄격하게 진행하고 있습니다. 면역검사시스템 구매 입찰서류 마감일은 3월 14일까지로 공고일과 관계없이 입찰서류 마감일 이전에 허가를 득한다면 유효하게 입찰에 참가할 수 있었습니다. 따라서 특정 업체의 약품 허가일에 입찰공고일을 맞추어 편의를 제공하였다는 취지의 내용은 사실이 아닙니다."라고 밝히고 있다.


하지만 대한적십자사는 2016년 입찰 실패 이후 장비노후와에 따라 에러 및 수리 발생이 증가하고 있으며 중요한 혈액관리사업을 지체할 수 없다는 취지로 2017년 9월 28일 혈액관리위원회에서 후속입찰에 대한 계획을 승인받았다. 혈액관리위원회의 위원인 나도 당시 적십자사가 화급하게 시간을 다투는 이 문제에 대해 위원회 회의에서 매우 강하게 어필하였던 기억이 있다.

하지만 그 다급하다던 시스템 도입은 웬일인지 바로 시행되지 않았다. 적십자사는 2017년 10~11월 진행하기로 하였던 경쟁입찰이 왜 3개월 이상 지연됐는지 그 이유에 대하여 설명해야 한다. 관련업체가 입찰에 필요한 시약의 인허가를 받는 시점은 적십자의 답변처럼 서류 제출 마감일인 2018년 3월 14일 이전이면 충분하다. 하지만 해당 시약의 인허가를 담당하는 업무는 적십자의 소관이 아닌 식품의약품안전처의 소관이고 보통 인허가에 걸리는 시간은 누구도 확정할 수 없다. 나와야 나오는 거니까. 관련업체가 서류마감일 이전까지 인허가를 받을 수 있을까 노심초사 하는 것보다는 입찰이 늦어지더라도 관련업체가 인허가 획득이 확정되는 것을 기다리는 편이 안전하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나만의 생각일까? 그게 아니면 가만히 시간만 질질 끌다가 왜 해당 업체의 시약 인허가가 나오는 올해 2월 1일 그날 입찰공고를 기다렸다는 듯이 내냔 말이다. 적십자사에선 '우연의 일치'라고 해명할 셈인가?

3. 특정업체에 차별적으로 연구용 혈액검체를 제공한 적이 없다?

적십자사는 해명자료에서 "임상시험연구에 제공되는 혈액검체는 혈액관리법 시행령 제6조(부적격혈액 폐기처분의 예외) 2호에 근거하여 제공되고 있습니다. 연구 기관의 신청에 따라 생명윤리심의위원회 및 연구용혈액수급심의위원회를 거쳐, 법과 절차에 따라 신청한 연구 기관에 차별 없이 제공하고 있습니다."라고 법조문까지 들어가면서 이야기한다.

하지만 적십자사가 차별 없이 제공하였다면 어떤 기준에 의해서 누구에게 어느 정도 양의 혈액을 제공하였는지 관련 자료를 공개해야 한다. 특히 양성을 비롯한 음성 검체 모두 관련 자료를 공개하라. 그렇지 않다면 당신들이 혈액검체를 차별 없이 제공하였다지만 아무리 요구해도 아무 이유도 듣지 못하고 혈액검체를 제공받지 못한 국내 업체를 소개시켜주겠다.

위의 글에서 2월 1일 인허가를 획득한 업체의 시약 허가 사항을 보면 적십자사가 500개의 검체를 제공한 것으로 나와 있다. 적십자사는 음성으로 판정한 검체가 적십자 외부의 실험에서 혹시라도 양성으로 밝혀지면 2005년의 악몽이 재현될까 걱정이 많지 않나? 그래서 음성 검체의 경우 공동연구를 진행하여도 외부업체에는 제공하지 않아왔던 것 아닌가? 그런데 이번에 유착 의혹이 불거진 해당업체는 왜 검체를 제공했을까? 그것이 알고 싶다.

4. 노후화된 면역검사시스템 입찰은 공정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적십자사는 "2018년 입찰의 규격평가위원회의 구성은 외부 전문가와 적십자 전문가 동수의 위원회(10인)로 구성하였습니다. 외부위원 5인은 대학병원 소속의 교수 3인, 국가 병원 소속 의사 1인과 질병관리본부의 혈액관리책임자 1인으로 모두 혈액관리 경험이 풍부한 수혈의학 전문가들로 적십자사와 특수 관계는 없습니다."라고 선정절차가 공정하게 진행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특수관계가 있었는지 없었는지는 규격평가 의원회의 명단과 경력 그리고 전 직장을 밝히면 될 일이다. 2017년 보건복지부 감사 보고서에 의하면 추진 전반에 외부전문가의 의견수렴이 없어서 객관적인 업무처리 있어서 부족한 부분이 보인다는 지적이 있었다. 그런데 이제는 내부와 외부 인원을 동수로 구성해서 했기 때문에 공정성을 확보했다고? 그렇다면 내부와 외부의 인원이 누가 들어가 있었는지 밝혀야 의혹을 해소할 수 있다.

이미 외부에는 그 위원회에 해당 업체의 지원을 받는 사람이 위원으로 들어가 있다는 소문이 파다하다. 이런 소문을 둘러싼 의혹을 해소하기 위해서라도 명단을 공개해야 하지 않겠나?

5. 특정업체 시약을 밀어주기 위해 평가 방식을 변경한 바가 없다?

적십자사는 해명자료에서 "현재 입찰규격에 따른 진단시약은 식약처 품목허가를 득한 제품으로 다수의 국내병원에서 사용되고 있으며 세계보건기구(WHO)에서 권고하고 있는 시약입니다. 적십자사는 입찰 공고 상 특정 시약을 제한한 적이 없으며, 당연히 평가 방식도 변경한 바가 없습니다."고 밝혔다.

이런 전문적인 것들을 국민들이 어떻게 알겠냐고 생각하면서 호도하지 마라. 물론 그 시약은 세계보건기구에서 권고하는 시약은 맞다. 하지만 혈액원과 병원의 진단은 시스템이 다르다. 환자의 개별 개별 맞춤으로 검사해야 하는 병원과 한꺼번에 대량으로 동일한 혈액검사를 해야 하는 적십자사 혈액원의 시스템은 다르다는 이야기다. 면역진단시스템과 분자진단 시스템이라는 두 가지 진단 시스템을 갖출 필요가 없다는 말이다. 그래서 항원항체 검진시약에서 항체검진 시약 방식으로 변경한 사실이 있다. 그건 항원항체 검진 시약의 경우 혈액원 시스템에서는 위양성이 많이 생겨서 헌혈자들의 클레임이 끊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미 적십자사의 혈액수혈연구원에서 발간한 논문에도 항원항체 시약의 경우 위양성이 많아서 anti-HIV를 항체시약으로 명기하지 않았나? 그런데 왜 그 시약업체는 입찰에 참여하게 했을까?

복지부는 선정주체를 적십자사에서 혈액관리위원회로 이관하라

다시 말하지만 관할 감독 기관인 복지부는 적십자사의 이처럼 의혹이 제기될 수 있는 선정절차를 중단하게 하라. 그리고 선정주체를 혈액관리위원회로 이관하여 선정위원을 새로 꾸려 한 점의 의혹도 없이 공정하게 선정절차를 다시 진행하라. 거듭 이야기하지만 혈액사업은 전 국민의 피로써 시작되고 피로써 완성된다. 윤리와 도덕의 근간이 무너지면 혈액사업은 끝장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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