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생 발전이란 무슨 말인가? 경축사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기후 변화에도 대응하고 우리 모두의 생존 기반도 다지는 발전이 되어야 합니다. 격차를 확대하는 발전이 아니라 격차를 줄이는 발전이 되어야 합니다. `고용 없는 성장'이 아니라 일자리가 늘어나는 성장이 되어야 합니다. 서로가 서로를 보살피는 따뜻한 사회가 되어야 합니다. 길어진 생애 주기 전체에 걸쳐 자신의 행복을 자유롭게 추구할 수 있는 사회가 되어야 합니다." 또 이 구절 앞쪽에는 " '탐욕경영'에서 '윤리경영'으로 '자본의 자유'에서 '자본의 책임'으로, '부익부 빈익빈'에서 '상생 번영'으로 진화하는 시장경제의 모델이 요구되고 있습니다"라고도 말하고 있다. 전후 맥락을 자르고 이 문구만 보는 나라 안팎의 사람들은 마치 한국의 진보정당 대표, 아니 저 북구 스웨덴 사민당 당수의 연설로 착각을 할지도 모를 정도다. 세상 만사를 극우와 극좌의 둘로 나눌줄 밖에 모르는 자유기업원장 김정호를 비롯한 "극우 자유시장주의자", 또는 고삐풀린 정글 자본주의자들이 "한국이 사회주의의 길로 들어서고 있다는 것은 거의 확실하다"라고 억지를 부릴 구석이 전혀 없지는 않겠다.( 김정호, "MB, 한국경제의 사회주의化 시작? ",<월간 조선>, 2011/6).
그러나 "세계에 유례를 찾기 어려운 `일자리 나누기'와 중소기업에 대한 집중 지원을 통해 대량 실직과 기업의 줄도산 없이 위기를 넘어섰습니다"라거나, "녹색성장 비전을 제시하고, 기후 변화에 대한 대응을 선도하는 나라가 대한민국입니다"라는 경축사 구절에 오면 웃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정치권의 경쟁적인 복지 포퓰리즘이 국가 부도 사태를 낳은 국가들의 전철을 밟아선 안 됩니다."라거나, "재정 위기는 다른 위기와 달리 해결할 마땅한 수단이 없기 때문에 가장 위험한 위기입니다. 재정 건전성을 유지해야 어떠한 위기도 대응할 수 있습니다."라는 구절, 그리고 "한ㆍ미 FTA가 GDP 5.7% 성장과 35만 개 일자리를 가져온다는 분석도 있습니다...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해 한ㆍ미 FTA는 조속히 비준되어야 합니다."라는 구절에 와서는, 드디어 꿈을 깨고 아, 이 경축사가 보수 프레임으로 굳게 무장하고 대대적 공세를 펴는 글임을 깨닫는다.
올해 66돌 광복절 경축사의 공생발전론은 확실히 국어 공부는 많이 될 것이다. 그렇지만, 작년 65돌 경축사의 '공정한 사회'론이 그랬듯이 현실적 효과는 별로 기대하지 않아도 좋을 듯하다. 이 정부가 조장한 오늘의 "두개의 대한민국"과 두 국민 분열체제, 재벌 주도 싹쓸이 자본주의 또는 약탈• 독식자본주의의 야만성 , 기득권의 과잉보호• 과잉개방과 대조되는 노동• 복지의 과소 보호간 모순이, 빚 좋은 개살구에 지나지 않을 경축사 몇 마디로 크게 변할 까닭이 있겠는가. 더군다나 대규모 부자감세와 4대강 사업으로 국가 채무를 마구 늘려놓고는 복지 확대 때문에 재정건전성이 악화된다니 적반하장이 따로 없다. 미국의 재정부실 또한 복지 때문이 아니라 감세와 군비지출 때문이 아닌가.
그렇지만 나는 단지 이번 경축사의 허구성을 비판할 목적으로만 이 글은 쓰는 것은 아니다. 이로부터 배울 것도 있다는 생각이 들어 이 글을 쓴다. 이번 경축사는 진보 개혁 세력의 대안 담론인 보편적 복지국가 담론을 "경쟁적인 복지 포퓰리즘"이라고 공격하고 있다. 그러면서 영문을 잘 모르는 국민이라면 솔깃할 수도 있는 재정위기 위험을 들고 나오고 있다. 그러면서 "공생 발전"이라는 담론을 띄우고 있는 것이다. 이 논조는 근래 조선일보가 <자본주의 4.0>시리즈로 수행하고 있는 작업의 기조와 거의 흡사하다. 조선일보는 신자유주의 (자본주의 3.0)이후 두 개의 대안을 거론하면서 정부개입을 확대하는 '복지 포퓰리즘'은 재원을 고갈시켜 지속불가능한 길이고, 이에 반해 기업생태계를 개선하는 '공생 성장'이 지속가능한 자본주의 4.0의 새 대안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 기획은 그냥 배척하기만 할 이야기는 아니라고 본다. 이런 담론 공세에 대해 진보 개혁진영은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나는 흥미롭게도 이번 경축사 안에 그 답이 있는 게 아닌가 생각해 본다. 위에서 인용한 바와 같이, 경축사는 " '탐욕경영'에서 '윤리경영'으로 '자본의 자유'에서 '자본의 책임'으로, '부익부 빈익빈'에서 '상생 번영'으로 진화하는 시장경제의 모델이 요구되고 있습니다"라고 쓰고 있다. 나는 "자본의 책임", 상생 번영, 윤리 경영, 이것은 보수의 의제이기 이전에 진보의 의제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 의제를 놓고 진보는 보수와 싸워야 할 것이다. 우리에게 있어, "자본의 책임"이란 자본 일반의 책임이기 이전에 소수 재벌의 책임이다. 그리고 그 재벌의 책임이란, "내 눈에 흙이 들어가기 전에 노조는 안된다"라는 것을 무슨 자랑처럼 신조로 삼고 새로 창립된 삼성에버랜드 노조의 간부에 대해 곧바로 해직을 통보한 삼성재벌의 책임, 2년 이상 사내협력업체에서 근무한 노동자는 정규직으로 간주해야 한다는 법원 판결조차 간단히 무시하는 현대자동차 재벌의 책임, 그리고 조남호 회장이 해외 도피 행각 53일 만에 귀국해서는 여전히 정리해고 철회 거부입장을 고수한 한진 중공업의 책임을 말한다.
200일을 훌쩍 넘긴 김진숙의 크레인 농성과 희망버스 이야기로 돌아가 보자. 김진숙과 희망버스는 무엇을 원하나? 사람들은 왜 '희망의 버스'에 오르는가? 한 참여자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몇몇 소수의 사람들을 제외하곤 대부분의 사람들이 전혀 희망적이지 않은, 절망적인 시절을 지내고 있기 때문이다. '정리해고'와 '비정규직'이 일상화된 대한민국에서 왜소해진 것은 '일반 시민의 생존권'이요, 비대해진 것은 '자본의 권한'이다. 사람을 죽이기도, 살리기도 하는 자본의 힘 앞에 시민들이 무기력해진 것도 이미 오래다. 이런 와중에 김진숙 지도위원이 영도조선소 85호 크레인 위로 올라갔다. 그리고 '희망의 아이콘'이 됐다. 이윤보다 '사람'을 택한 수많은 사람들이 주말도 반납하고 부산으로 향하는 이유다." (장우석, "사람들이 '희망의 버스'에 오르는 이유", 2011/8/9,www.ohmynews.co, ).
김진숙의 처절한 크레인 농성이 유례없이 200일 이상 지속되고 희망버스의 시민연대 행렬이 이어지면서 보편적 복지국가 담론은 노동의 가치를 존중하는 복지국가 담론, 노동과 복지가 동행하는 진보 담론으로 변화되고 있는 중이다. 그러나 지금 희망버스는 두 개의 한계 지점 앞에 멈춰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 하나는 광범한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동참을 아직 끌어 내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노동 연대에 대한 일반 국민들의 거리감 내지 부담을 털어내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김종배, "조선일보'의 '선수'와 진보세력의 '선빵'", www.pressian.com, 2011/08/03 ). 이런 한계 지점을 돌파하기 위해서라도 복지 의제를 그것만으로 분리, 고립시키지 말고 노동의제, 그리고 다시 재벌개혁 의제와 함께 가는 통합적인 진보의제로 제기해야 할 것이다. 정리해고자, 비정규직 노동자, 영세자영업자, 중소상공업자, 청년 학생 등 재벌독식 양극화자본주의 체제에 의해 배제당한 모든 사회계층들의 생활상의 요구, 민생민주의 요구를 안아 담을 수 있는 핵심 고리로서 , 잃어버리고 있었던 재벌 개혁의 의제를 다시 전면에 내세워야 할 것이다.
97년 이후 지난 10년의 대한민국을 책임졌던 자유주의적 민주정부는 재벌 개혁의 관문을 통과하지 못하고 '삼성 공화국'의 벽 앞에서 좌절했다. 재벌 개혁이야말로 한국사회에서 가장 광범한 국민적 공감을 얻을 수 있는 의제인 데도 불구하고 말이다. 따라서 다시 폭넓게 '일반 시민의 생존권' 대 비대해진 '자본의 권한'의 대립구도를 세워야 한다. 그럴 때 국민대중에 가장 폭넓게 공감을 얻을 수 있는 진보의 길도 열릴 것이다. 66돌 광복절 경축사에서 이명박 정부가 제기한 "자본의 책임"과 "공생발전"이란 의제는 진보에게 반면교사와 같다. 이제 복지 의제, 노동 의제와 함께 제 2라운드 재벌 개혁 의제, '공공의 적'과 다름없이 된 탐욕스럽고 파렴치한 재벌을 사회적 책임기업으로 거듭나게 하는 개혁의제를 높이 세워야 한다. 이 정부조차 제기한 "자본의 책임"과 "공생발전"이란 의제를, 노동의 가치를 존중하면서 상생발전하는 민주적 복지자본주의 새판을 짜는 의제로 진보적으로 전유하는 것이 곧 한진 중공업을 통해, 부산을 통해, 그것을 넘어서는 대한민국 희망버스의 새 길을 열 것이다. 구글에서 프레시안을 더 자주 만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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