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진호, 너무 머뭇거린다?

[프리뷰] '욘사마' 출연 영화 <외출> 관람기

여자는 자신이 몰래 빠져 나온 모텔방에 멍하니 홀로 앉아 있는 남자를 훔쳐보며 눈물짓는다. 여자는 이제 스스로 떠나야 할 때가 됐다고 생각하고 남자 역시 더 이상 둘의 관계가 지속될 수 없음을 깨닫는다. 하지만 그렇다고 한들 두 사람 모두 쉽게 마음을 정리하지 못한다. 둘의 관계가 시작될 때 여자는 이렇게 물었었다. "우리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 건가요?" 남자가 그런 그녀에게 다시 되물었었다. "우리… 어디로 갈까요?"

영화에 대해 무책임하게 단정짓는 몇몇 저널들에 의해 배용준-손예진의 불륜 러브스토리쯤으로 둔갑해 버리고 있지만 허진호 감독이 4년 만에 내놓은 신작 <외출>은 그렇게 단순한 얘기가 아니다.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는 두 남녀. <외출>은 이미 방향을 상실한 현대인들의 아픈 고백서다.

우리는 과연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가. 허진호의 질문은 바로 이 지점에 서 있다. 극단적 로맨티시즘과 비관주의에 빠져 있는 것처럼 보이는 외양과 달리 영화 <외출>은 그래서, 자기부정과 도피의 미학을 통해 지금의 시대와 사회에 대한 무기력증을 표출한다. 어찌 보면 우리 모두는 영화의 두 남녀 주인공처럼 불륜에 빠지는 일 외에는 할 수 있는 일이 없을지도 모른다. 게다가 그나마 그 불륜은 뭔가 이룰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콘서트 무대의 조명감독으로 일하는 인수(배용준)는 어느 날 아내의 교통사고 소식을 듣는다. 아내는 다른 남자와 강원도 삼척으로 불륜의 휴가여행을 떠났다 사고를 당한다. 아내와 상대 남자 둘 모두는 의식불명 상태에 빠진 상태다. 병원 응급실에서 인수는 아내가 사랑에 빠졌던 남자의 아내 서영(손예진)을 만나게 되고, 허탈감과 증오, 고통에 시달리던 두 사람은 급속히 가까워지게 된다. 두 사람은 중환자실에 각각의 아내와 남편을 남겨두고 새로운 불륜의 사랑에 빠져들게 된다.

몇 편의 영화를 만들던 영화작가라면 한결 같은 자신의 작품 모티프를 갖고 있기 마련이다. 허진호 역시 이번 작품에서도 전작인 <8월의 크리스마스>와 <봄날은 간다>에서와 마찬가지로 '남겨진 자'의 고통과 외로움, 방황을 그린다. 허진호의 영화노트는 늘 '혼자가 된다는 것'에서 귀착점을 찾는다.

<8월의 크리스마스>의 주인공 정원(한석규)도 시한부 생명의 마지막 시기를 정리하기 위해 자신에게 다가서는 여인(심은하)을 멀리하고 철저하게 혼자만의 '동굴(사진관)'에만 머무른다. <봄날은 간다>의 주인공 상우(유지태) 역시 변심한 여자(이영애)에게 "어떻게 사랑이 변하냐"고 툴툴대지만 결국 혼자가 되는 일상의 습성(오디오맨으로서 들판에서 자연의 소리를 담아내는 일)을 담담하게 받아들인다.

허진호에게 있어 두 남녀의 사랑은 그것이 완성되는 과정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반대로 두 사람이 헤어지게 되는 과정과 또 그 과정 속에서 역설적으로 이루어지는 두 사람 간의 소통과 이해다. 이번 영화에서도 여자 주인공 서영은 남자의 장인과 모텔방에서 맞닥뜨리게 되는 어색한 상황을 간신히 모면한 후 마음이 아파 아무 말 못하는 남자에게 스스로 먼저 괜찮다고, 자신은 괜찮다며 그를 달랜다. 사랑이 가장 세련될 수 있고, 순수할 수 있으며, 진정으로 이해될 수 있는 시점은 남들이 뭐라 한들, 사회관습이 어떻게 규정한들 바로 그렇게, 상대방에 대한 배려와 자신의 희생이 앞설 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허진호의 세상 접근법은 시간이 갈수록 소극적이고 조심스러우며 지나치게 머뭇거리는 것 같아 사람들로 하여금 조급증을 갖게 한다. 영화가 전편 내내 매우 느린 호흡으로 일관하고 있는 것도 그 때문인 것처럼 보인다.

불륜에 빠진 아내와 남편처럼 자신들 역시 새롭게 불륜에 빠진 남녀라면 더욱 더 조심스러워지게 될까, 아니면 더욱더 격정적이 될까? 2000년 베를린영화제에서 대상인 황금곰상을 받은 프랑스 빠뜨리스 섀로의 <인티머시>의 두 주인공들마냥 이번 <외출>의 두 남녀가 파격적이다 못해 리얼 섹스까지 보여줬다면 우리 사회가 허진호를 용납했을까, 용납하지 않았을까?

허진호는 세상을 돌파해 내기보다는 자신의 껍질을 더욱 더 단단하게 만듦으로써 우리를 짓누르는 현대사회의 억압기제와 그에 따른 불안과 위기에 대해 얘기하려 한다. 문제는 허진호의 불안증후군을 얼마나 이해하느냐다. <외출>의 대중적 평가는 바로 그 지점에서 나뉠 것이다. 구글에서 프레시안을 더 자주 만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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