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맹파'의 대북정책은 실패했다

[한반도 브리핑] 누가 평화를 두려워하는가?

4월 남북 정상회담에 이어 5월 북미 정상회담이 열린다. 한반도 평화의 역사적인 대전환이 시작되는가? 아니면 보수 일각의 우려처럼, '그들은 속이고 우리는 속은' 과거를 되풀이할 '거대한 쇼'가 시작된 것인가?

두 정상회담이 성공하면 평화의 새로운 역사가 열리지만 만약 실패한다면 파국이 예정된 것인가? 북한의 비핵화든 한반도 평화체제든 한미 동맹의 이완이나 약화를 대가로 한다면 수용할 수 없는 것인가?

한반도에서 전쟁은 재앙이다. 제임스 매티스 미 국방장관의 새삼스런 강조다. 북미 정상회담이 실패하면, 북핵 문제의 평화적 해결의 길이 모두 막히고 전쟁만이 남는 것인가? 아니다. 불편하지만 '핵 억지의 평화'로 복귀하면 된다.

1993년 김영삼 대통령이 북핵을 이고 살 수는 없다고 한 지가 25년이 되었다. 1994년 김영삼 대통령은 미국의 영변 폭격 계획에 반대했고, 미국은 북한의 핵 동결을 조건으로 경제지원과 외교관계 정상화 등을 약속했다.

25년 후 북미 수교는 여전히 미완이고 그 사이 북한은 핵보유를 헌법에 명시하고 핵무력 완성을 선언하기에 이르렀다. 과실을 따지자면 쌍방과실이고, 전쟁은 일어나지 않았다.

전 태평양 사령관이자 국가정보국장 블레어가 올해 1월 상원 군사위 청문회에서 증언한 것처럼 북한에게도 핵 억지가 작동하는 것이다. 핵 억지에 의한 '북핵 평화 25년'은 바람직한 평화는 아닐 것이다.

하지만, 이 불안한 혹은 위선적인 평화도 전쟁보다는 낫다. 설령 북미 정상회담이 실패한다고 해도 한미 동맹이 아무리 중요해도, 우리는 북한에 대한 미국의 예방전쟁을 수용할 수 없다. 그리고 키신저나 아미티지 등 미국 외교의 원로들이 강조하듯, 북한은 아직 미국에 대한 실존적인 위협이 아니다.

전쟁은 우리의 옵션이 아니고, 남북과 북미 정상회담이 연이어 열리는 역사적 기회는 처음이며, 임계점 이후의 변화는 맹렬하기 마련이다. 구조적으로 보면 남북, 북미 정상회담은 한반도의 전쟁 위협이 강제한 것이고, 김정은의 병진노선과 트럼프의 미국 우선주의, 문재인의 평화외교의 논리적 귀결이다.

김정은의 입장에서 핵 무력 완성 이후의 수순은 본격적인 경제건설이고 시장화된 북한경제의 발전을 위해서는 국제제재의 타개가 필수적이며, 이는 다시 비핵화 협상을 통한 남북‧북미 관계의 정상화에 달렸다.

핵무력의 완성과 체제의 안정은 비핵화 의제를 수용하고 연례적인 한미 군사훈련의 재개를 인정하는 김정은의 과감한 전략적 결단의 배경이다. 냉전의 종언에 따른 국제적 고립과 김일성과 김정일의 사망 등으로 북한은 그간 새로운 생존모델을 건설하지 못했고, 이와 맞물린 북한 조기 붕괴론은 북핵 협상의 주요한 장애물이었다. 장기적인 권력의 전망을 지닌 김정은의 전략적 결단은 비핵화와 평화의 역사적인 기회를 제공한다.

트럼프의 미국 우선주의 시각에서 북핵 문제는 무엇보다도 미국 본토에 대한 위협의 문제다. 반면 패권의 전통에서 북핵 문제는 지구적 비확산 체제의 문제이자, 지역적으로 북미협상과 미중 협력, 그리고 한국과 일본의 동맹관리의 복합적인 과제이다.

트럼프의 '시청률' 기준으로 보면, 역사상 최초인 북미 정상회담은 절대적으로 아름답고 위대한 성공이다. 패권 엘리트의 시각에서 보면, 북미 정상회담의 실패는 예정되어 있다. 가족과 측근들의 권력 암투와 자신의 섹스 스캔들, 특검 조사 등으로 파란만장한 트럼프의 '막장 백악관 예능'은 패권의 복합적인 과제를 섬세히 다룰 전략적 능력이 전혀 없기 때문이다.

▲ 10일(현지 시각) 펜실베이니아에서 열린 공화당 후보 지원 유세에서 연설에 나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그는 이날 연설에서 북한과 대화가 매우 성공적일 것이라고 말했다. ⓒAP=연합뉴스

하지만 지난 25년간 전임 정부와 전문가들이 북핵 문제 해결의 합리적 대안을 내놓지 못했다는 트럼프의 비판도 일리가 있다. 북한에게도 핵 억지가 통한다는 블레어와 같은 '현실론자'들이나 핵군축, 특히 북한과의 협상 경험을 바탕으로 북미 직접 협상을 주장하는 '협상파'는 소수였다.

대북정책 생태계에서 최대 다수인 '동맹파'는 북한에게 일방적으로 협상 실패의 책임을 전가하고 북한을 핵 억지가 통하지 않는 비합리적인 행위자로 규정하며. 국제제재의 강화와 한미일 미사일 방어망의 구축이나 동북아판 나토(NATO)와 같은 군사적 봉쇄를 주창해왔다.

사드(THAAD‧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 배치 논란이 보여주듯, '북한 예외주의'에 입각한 이와 같은 동맹파의 군사적 옵션은 중국의 협력을 얻는 데도 실패하고 협상의 길도 봉쇄했다. 트럼프의 입장에서는 '최대의 압박'이 작동하지 않자 예방전쟁의 군사적 옵션을 주문하게 된 것이고, 그 결과의 하나로 '코피전략'이 부상하자 '동맹파'는 다시 반발했다. 코피전략이든 그 어떤 예방전쟁이든 한미 동맹과 기존 미국의 패권적 영향력 자체를 폐기시켜버리기 때문이다.

북미 정상회담은 트럼프의 역사 만들기 본능 혹은 과대망상과 '동맹파'의 '북한 예외주의'가 자초한 전략적 자승자박의 합작품이다. 예방전쟁이 현실적 옵션이 아니고 김정은이 비핵화의 용의를 보인 이상, 트럼프의 입장에서는 대선 과정에서 이미 밝힌 역사상 유례가 없는 김정은과의 직접 담판에 나서지 않을 이유가 없는 것이다.

대외정책은 대통령이 주도하는 영역이고, 공화당은 미 상하 양원을 장악하고 있다. 제네바 합의의 발목을 잡은 것은 공화당 의회였다. 또 9/11 테러 이후 공화당 부시 정부가 냉전기 핵 억지의 주요한 기반이었던 탄도탄요격미사일(ABM)조약에서 탈퇴하고 이라크, 이란과 함께 북한을 '악의 축'으로 규정한 것이 소위 제2차 북핵 위기의 배경이었다. 투철한 반공이력을 지닌 닉슨이 미중 화해의 역사적 물꼬를 열 수 있었던 것처럼, 트럼프도 공화당을 통제하며 새로운 북미 관계를 건설할 수도 있다.

트럼프의 미국 우선주의는 안보는 물론 경제와 가치의 측면에서도 미국과 지구적으로 협력한다는 기존의 이명박, 박근혜 보수 정부가 추진했던 한미 전략동맹을 해체했다.

트럼프는 대선 운동 과정에서부터 지속적으로 미국의 가치를 수출하지 않을 것임을 분명히 했고, 취임 이후에는 TPP와 파리기후협정 탈퇴, 한미 FTA 개정 추진, 최근 보호관세 부과 등으로 경제적 민족주의를 시행해오고 있다. 한미 전략동맹의 가치와 경제의 토대가 무너진 것이다. 또한 그의 예방전쟁 수사는 안보의 측면에서도 한미 동맹의 기반을 침식하고 있다.

'조용히' 한미동맹 조정한 문재인 정부

문재인 정부도 '조용히' 한미 동맹의 재조정에 착수했다. 노무현 정부가 좌회전 신호를 켜고 한미 FTA, 이라크 파병, 주한미군 기지 이전 등 우회전을 했다면, 그 때의 남남갈등을 교훈 삼아 문재인 정부는 한미 동맹과 국제제재의 절대선 구두선의 '하이빔'을 켜고 전임 보수 정부의 적폐를 극복해오고 있다.

박근혜 정부는 2015년 말 '위안부 합의'에 이어 2016년 초 북한의 핵과 미사일 실험을 명분으로 개성공단을 폐쇄하고 사드 배치를 추진하며 나진-하산 경협을 중단하였다. 이는 자신의 주요 대외정책 전반, 즉, 대북 신뢰 프로세스, 동북아평화협력구상, 유라시아이니셔티브를 모두 스스로 폐기하는 '삼중살'이자, 남북관계와 지역협력을 포기하고 한미 동맹에 올인하는 '미국 유일주의'였다.

문재인 정부는 한반도에서 전쟁 불가 원칙을 일관되게 밝히며 미국의 '동맹파'가 박근혜 정부에게 강압했던 '위안부 합의'를 폐기했고, 중국과의 '3불'을 통해서 역시 '동맹파'의 주문인 한미일 군사동맹과 미사일 방어망의 구축에 제동을 걸었고, 평창 '평화 올림픽'을 명분으로 한미 군사훈련을 연기하며 실제적으로 한미 군사훈련과 북한의 미사일과 핵실험 중단의 '쌍중단'을 이끌어내었다. 신남방-신북방 정책을 통하여 러시아와의 협력을 복원하기도 했다.

▲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이 8일(현지 시각) 백악관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만나 대북특사단의 방북 결과를 설명하고 있다. ⓒ청와대

이러한 노력의 결과는 한미 동맹을 우선으로 하면서도 그 실제 협력의 내용을 재조정하고 남북 관계를 복원하고 지역적 차원에서 중국이나 러시아와의 협력 또한 추진하는, 한국 외교의 3축의 건설이라 할 것이다.

4월 남북 정상회담은 한국 외교의 3축을 굳건히 건설할 역사적 기회이다. 남북 간의 군사적 긴장을 획기적으로 줄이고 정상 간 핫라인과 정상회담의 정례화 등으로 이를 관리하는 데 합의한다면 남북관계의 비가역적 진전을 제도화할 수 있을 것이고, 이는 북미관계의 부침과 절연된 한반도 '평화의 방화벽'으로 기능할 것이다.

한미 군사동맹을 관리하는 양국의 '동맹파'는 북한이 핵으로 한국을 강압하고 전시 증원 미군을 위협할 것을 우려해왔다. 이러한 북핵의 위협은, 남북의 군사적 긴장 자체가 줄어들고 양측이 그 어떤 무기체계로도 상대를 위협하지 않는다면, 원천적으로 차단될 수 있다. 남북관계의 '평화의 방화벽'이 설치된 이후에 한미‧한일‧한중 정상회담을 거쳐서 5월 북미 정상회담에서 일정한 진전이 이루어진다면, 한반도 평화의 역사적 대전환이 시작될 수도 있다.

한반도 평화의 역사적 대전환은 이미 진행 중인 한미 전략 동맹의 해체와 실제 동맹의 재조정을 가속화할 것이다. 북한의 위협이 감소되면 작년과 같이 항모전단 3개가 한반도 해역에 동원되거나 최신예 전투기 200여 대가 동원되는 대규모 훈련은 축소될 수밖에 없다. 즉, 주한미군의 규모나 성격의 변화는 불가피하다.

남남 갈등을 예방하기 위해 현재와 같이, 동맹에 대한 '정치적 올바름'을 마냥 가져갈 수는 없는 것이다. 평화와 번영이란 대외정책의 절대적 목표와 촛불혁명의 민주주의 원칙으로 한국 외교의 3원칙을 설정하고, 이 틀에서 한미 동맹을 건설적으로 재조정하는 전략 동맹의 대안을 적극적으로 모색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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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혜정

이혜정 교수는 2002년부터 중앙대학교 정치국제학과 교수로 재직하며 미국 외교와 국제정치를 연구‧지도하고 있습니다. 이 교수는 서울대학교 외교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노스웨스턴 대학교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았습니다. 주로 '정치적 현상의 기원'을 중심으로 군부 정치 개입의 기원을 탐구하기 시작해 미국 패권의 기원과 근대 국제관계의 기원으로 연구 지평을 넓혔고, 한미 동맹에 대한 연구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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