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수원, 월성1호기 안전성보고서 공개 안 하는 이유는?

[함께 사는 길] 탈원전 시대, 원전 정보공개의 허와 실

한국수력원자력(이하 한수원)은 지난해 12월 26일 가동 중인 고리2호기와 한울3·4호기의 최종안전성분석보고서를 홈페이지를 통해 공개했다. 공개된 최종안전성분석보고서는 원전사업자가 운영허가 신청 등을 위해 규제기관에 제출하는 대표적인 문서 중 하나다. 한수원은 최종안전성보고서 외에도 방사선환경영향평가서, 핵연료장전계획에관한설명서 등 20여 건의 인허가 문서를 포함해, 2019년 상반기까지 전체 운영원전에 대해서도 순차적으로 공개할 계획임을 밝혔다.

사실 이번 조치는 원자력안전법의 정보공개의무 조항을 소급 적용하는 의미도 있다. 지난 2015년 원자력 관련 시설들의 건설, 운영 허가 시 제출한 서류들을 공개하도록 원자력안전법이 개정되었다. 이제는 최소한 원자력안전위원회의(이하 원안위) 심사과정에 제출된 서류들을 웹사이트를 통해 시민들도 볼 수 있게 되었다.

▲ 월성 원자력발전소. ⓒ함께사는길(이성수)

월성1호기는 왜 공개 안 했나?

하지만 문제는 있다. 이 법 개정 이전에 허가를 받았거나 신청을 한 원전들에 대해서는 정보공개를 소급적용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시민들의 안전을 위한 정보공개라는 점에서 어떤 원전도 예외일 수 없는데 소급적용을 하지 않는 점에 비판도 많았다. 이번에 한국수력원자력이 운영 중인 모든 원전의 최종안전성보고서 등의 공개를 시작한 점은 이런 문제를 해소해 나갈 수 있는 긍정적 변화다.

원전사업자가 정보공개를 하지 않으려는 이유는 뭘까. 한수원은 정보공개 요구가 있을 때마다 영업비밀, 안보 등을 그 대표적인 공개 불가 이유로 말해왔다. 규제기관인 원안위 역시 사업자의 이러한 태도에 소극적으로 대처해왔다.

그러다 보니 발전소 건설허가, 운영허가 등 중요한 심사과정에서 안전성 미검증 논란이 있어도 사실 확인조차 쉽지 않았다. 시민들의 입장에서는 '이상이 없다', '문제가 없다' 등으로만 표현된 '알맹이는 쏙 빠진 결과보고서'만을 보고 답답해할 수밖에 없었다. 왜 그런 결론이 도출됐는지는 확인할 길이 없었다.

월성1호기 수명연장 과정이 대표적인 사례라 할 수 있다. 월성1호기는 수명연장 심사 과정에서 원자로의 격납용기가 최신안전기술기준을 적용하지 않았다는 문제가 원안위의 위원과 여러 전문가들로부터 지적되었다. 하지만 관련 내용을 확인할 수 있는 최종안전성분석보고서(FSAR)가 일반에게 비공개되었고, 원안위 위원에게조차도 제한적으로 공개되었다. 그러나 원안위는 제대로 된 검증 없이 2015년 2월 표결로 수명연장을 허가를 강행했다.

하지만 월성원전 인근 주민들과 시민들은 월성1호기 수명연장 허가 무효 국민소송을 제기했다. 1년 넘게 이어진 소송 끝에 2017년 2월 서울행정법원은 월성1호기 수명연장 허가를 취소하는 판결을 내렸다. 지금은 서울고등법원에 항소심이 진행 중이다.

많은 시간이 흘렀지만, 한수원은 아직도 월성1호기 최종안전성분석보고서를 공개하고 있지 않다. 항소심 재판에서 한수원은 문서 열람을 미루거나 최소화하기 위한 태도로 일관해 비판을 받고 있다. 고리2호기, 한울3·4호기의 최종안전성분석보고서를 공개했음에도, 정작 논란이 있는 월성1호기 문서는 공개하지 않는 것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

다른 나라들은 어떻게 하고 있나?

원전을 많이 운영하는 주요국들의 사례를 살펴봐도 투명한 정보공개는 필수적임을 알 수 있다. 세계에서 가장 많은 원전을 운영 중인 미국은 원자력규제기관인 NRC(원자력규제위원회)가 정보공개 및 문서관리 온라인 시스템인 ADAMS(https://adams.nrc.gov/wba)에 원전 건설, 운영 허가와 관련한 서류들을 일반인들에게 공개하고 있다. 미국 원자력사업자들은 정보공개 의무가 없는 민간사업자이지만, NRC가 보유한 모든 정보는 비공개사유에 해당하지 않는 한 공개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

프랑스 역시 원자력 투명성 및 안보에 관한 법(TSN Act)을 통해 정보제공을 하고 있다. 규제기관인 원자력안전청 ASN은 정보공개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원자력 관련 각종 결정과 보고서, 평가서, 사고, 회의록 등을 공개하고 있다. 특히 원전설비가 있는 지역에 정보와 운영의 투명성 및 주민참여를 위해 법적 기구인 지역정보위원회(Local Information Committees)를 운영하고 있다는 점이다. 지역정보위원회는 지방의회 50퍼센트, 환경단체 10퍼센트, 노동조합 10퍼센트, 전문가 10퍼센트 등으로 구성해야 한다. 지역정보위원회는 원자력 안전과 관련한 질의를 사업자 등에 요청할 수 있으며, 원전사업자는 8일 이내에 정보를 제공해야 할 의무가 있다.

캐나다도 통합안전성평가서를 포함한 환경영향평가서 등 관련 기술 자료를 정보공개법에 따라 공개한다. 규제기관인 캐나다 원자력안전위원회(CNSC)는 정보제공은 물론 원전 관련 심의 과정을 인터넷을 통해 공개하고, 참여 및 의견 발표를 보장한다. 환경단체나 전문가, 시민들이 참여한 공청회 등은 인터넷을 통해 실시간 중계한다. 원전 운영허가 과정 등에서 일반인과 단체는 전문가 자문을 위한 정부 예산도 지원받을 수 있다. 이를 통해 일반인도 기술적인 근거를 갖고 원전 안전을 들여다볼 수 있다.

일본의 경우도 원자력규제위원회가 논의하고 결정한 문서뿐 아니라, 원전 사업자 등이 제출한 문서는 정보공개법에 비공개 정보에 해당하지 않는 이상 인터넷에 자동으로 공개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 일본의 원전 운영사들은 대부분 민간기업이기 때문에 정보공개 의무가 없다. 하지만 각 전력회사들은 원자력 사업자에 의해 운영하는 원자력시설정보사이트 뉴시아(http://www.nucia.jp)를 통해 원자력발전소나 핵연료주기시설 관련 사고 정보를 공개하고 있다. 일본은 법적 구속력은 없지만 사업자와 지방정부 간의 원자력안전협정을 통해 지역 주민과 지방단체의 참여와 권한을 보장하고 있다. 이를 통해 정보전달은 물론 원전 건설, 운영, 재가동 등에 지자체와 사전 협의 및 동의를 구하도록 하고 있다.

정보공개와 주민참여 더 확대해야

얼마 전 확정된 8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 따라 탈원전 에너지 전환 정책이 진행 중이다. 이 계획대로 추진된다면 2080년이 넘어서야 한국은 원전 제로 시점에 도달하게 된다. 앞으로 탈핵의 시점을 어떻게 더 당길 수 있는가 하는 과제는 물론 중요하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놓치지 말아야 할 점은 원전 안전성을 강화하는 것이다. 시점을 앞당긴다고 해도 한동안 우리는 원전의 위험 속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원전 안전을 강화하기 위해 전제 조건은 바로 정보의 투명한 공개다. 앞서 다른 나라들의 사례를 살펴봤듯이 원전 안전과 관련한 정보공개는 더욱 확대되어야 하며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다. 사업자인 한수원이 이제라도 정보공개를 시작한 것은 반가운 일이다. 하지만 월성1호기처럼 안전성 논란이 있는 원전의 정보공개를 늦추는 것은 상식적으로 이해가 가지 않는다. 월성1호기의 경우 '이미 정부가 폐쇄 방침을 밝힌 마당에 급할 것 있나?'라는 생각을 할 수 있다. 하지만 지난 수명연장 허가처럼 부실 심사, 안전성 미검증 등을 바로잡고 같은 일을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시급히 관련 문서를 공개해야 한다.

원안위 역시 앞으로는 사업자 핑계만 댈 것이 아니라 정보공개를 더 확대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원자력안전정보공개센터(nsic.nssc.go.kr) 등의 홈페이지 등도 운영 중이지만, 아직은 활성화되고 있지 못하다. 지역주민과 시민들이 더 관심을 갖고 정보를 공유하고 참여할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한다.

지역과 주민들의 감시 및 참여를 위해 운영 중인 원전민간환경감시기구와 원자력안전협의회 등이 있지만 실질적 권한이나 책임이 없다. 권한과 책임을 부여하는 방향으로 지역과 시민사회의 참여기구들의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 우리는 안전을 위해 탈원전을 선택했다. 그 과정 역시 안전하게 가려면 원전 안전에 대한 관심과 참여를 게을리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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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 <함께 사는 길>은 '지구를 살리는 사람들의 잡지'라는 모토로 1993년 창간했습니다. 사회적 약자와 생태적 약자를 위한 보도, 지구적 지속가능성을 지키기 위한 보도라는 보도중점을 가진 월간 환경잡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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