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시대 최고의 과제, 국민주권주의의 실질화와 정치적 기본권의 구현
헌법이란 추상적 언어로써 일반적 원리와 기본 윤곽을 규정하는 '윤곽법'이다. 이렇듯 국가 법률체계의 토대이자 근간인 헌법의 명문 규정은 국가 운영의 근본 원리 선언으로서 모든 법적, 제도적, 정책적 규정과 조치의 근거로 작동된다.
지금 국회에서 개헌을 논의하면서 권력구조의 재편이 주창되고 있다. 비록 그 목소리는 시끄럽고 크지만, 격화소양(隔靴搔癢), 신발을 신은 채 가려운 곳을 긁는 듯 국민들에게 도무지 와 닿지 않는다.
필자는 오늘 우리 사회 위기의 근원은 바로 국민주권주의의 허구화라고 판단한다. 국민은 국가 운영으로부터 철저하게 배제됐으며, 국민의 정치적 기본권은 사실상 실종됐다. 그리해 국민주권주의의 실질화와 정치적 기본권의 구현이야말로 우리 시대 최고의 과제라고 확신한다.
그간 우리 사회에서 국가의 주인인 국민은 선거 당일 투표하는 행위 이외에 아무런 정치적 권리가 주어지지 않은 채 오직 권력자들과 그 하수인들이 자의적으로 국정을 농단해왔다. '국민의 대표'로 선출된 국회가 '대의할 수 없는 대의기구'로 자리매김 된 것은 이미 오래됐다. 국민들은 권력에 대한 어떠한 통제 수단도 지니지 못했고, 국민주권주의는 철저히 그리고 총체적으로 허구화됐다.
이제 진정 나라다운 나라를 만들기 위해서는 다시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라는 국민주권주의가 엄숙하게 선언돼야 하고, 국가의 주인인 국민이 국가 운영의 주체자임이 당당히 천명돼야 한다. 그리해 국민의 정치적 기본권은 헌법에 구체적이고 명문으로 규정돼야 한다.
국회의원, 검찰, 법관에 대한 국민선출권과 소환권의 실질화
국민주권주의가 실질적으로 적용됨으로써 나라다운 나라가 가능해지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대통령부터 국회의원 그리고 지자체 선출직에 대한 국민 소환권이 실질적으로 작동돼야 한다. 우리 주변에 아직도 직접민주주의에 대한 경계가 적지 않게 존재하지만, 그것은 대부분 기득권을 충실하게 유지, 보존하겠다는 이익에서 비롯된다.
우리는 시민들의 정치적 의사 표현 방식이 얼마나 현명하고 이성적이었는가를 지난 촛불집회의 전 과정에서 여실히 목도할 수 있었다. 집단지성과 다수에 대한 믿음이 곧 민주주의다. 민주공화국에서 정부 형태가 지향하는 최고의 가치란 바로 국민주권주의를 실질화하는 것이다. 이제까지 국민의 통제 밖에 위치해있던 검찰, 법관, 경찰 등 권력기관에 대한 선출권 확대도 이 원칙의 충실한 구현으로서 마땅히 헌법에 규정돼야 한다.
나아가 국가 공무원에 대한 국민 소환권도 원칙적으로 보장돼야 한다. 본래 공무원은 국민에 대한 봉사자로서의 공복(公僕)이지만, 현실에서는 전체적으로 감사시스템의 부재 상황에서 국민을 위한 봉사시스템에 부합되지 않은 채 오히려 국민 위에 상전으로 군림하거나 부패 혹은 무능의 사례가 끊이지 않았다. 이제 이 지점에서도 국민주권주의는 실질적으로 작동돼야 한다.
중요 국가정책의 공론화, '젊은 국민'의 참정권 보장
나아가 지난 번 신고리 원전 5·6기에 대한 공론화위원회는 몇 가지 문제점이 있기는 했지만, 기본적으로 국가의 중요한 정책을 국민 스스로 결정할 기회가 제공됐다는 점에서는 매우 바람직했다. 유럽연합기본권헌장도 '양질(良質)의 행정에 대한 권리'를 보장하고 있다. 국민 생활에 절대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국가 정책은 국민의 공론에 부친다는 조항을 이번에 개정하는 헌법에 규정하는 것이 반드시 필요하다.
현재 '젊은 국민들'의 참정권은 과도하게 제한돼 있다. 선거권 및 피선거권 연령을 비롯해 정치적 기본권 행사의 구체적 규정이 헌법에 명문화돼야 한다. 또한 헌법 제7조 제2항과 제31조 제4항의 '정치적 중립성 조항'은 공무원과 교사의 정치적 기본권을 제한하는 족쇄로 기능하고 있기 때문에 이 조항은 삭제돼야 마땅하다.
안전권, 생명권, 사회권 보장
한편, 우리 모두에게 커다란 충격을 안겨주었던 세월호 참사를 겪고서도 최근 제천 참사에서 알 수 있듯이 우리 사회에서 안전불감증은 전혀 개선되지 못하고 있다. 안전과 생명이 보호되지 못하는 한, 화려한 미사여구로 수식되는 그 어떠한 정책과 제도도 허구일 수밖에 없다. 안전권과 생명권은 우선적으로 헌법에 명문화돼야 한다. 생명이란 모든 인간에게 가장 우선적인 전제이며, 그리해 생명권은 최우선적인 권리이다. 유럽연합의 2004년 기본권헌장 제2조는 "모든 사람은 생명권을 지닌다."라고 규정돼 있다.
가습기 살균제 피해 사례에서 드러나듯 소비자의 권리는 현대 사회에서 매우 중요하다. 소비자의 권리보장 역시 헌법에 명기돼야 하고, 아울러 갈수록 악화되는 삶의 질을 바꿔내기 위한 환경권과 주거권을 비롯해 국민의 알 권리 그리고 개인정보자기결정권도 기본권으로 격상시켜 규정돼야 한다.
국가로부터 인간다운 생활을 보장받을 수 있는 기본적 권리로서의 사회권(droits sociaux) 역시 오늘날 국제적으로 사회권의 기본권성과 규범성을 인정하는데 이론의 여지가 없다. 국가는 극단적인 사회 격차, 즉 국가는 양극화를 해소하기 위해 노력하며, 당연히 소득이나 재산의 격차를 줄이기 위한 재분배 정책을 중시해야 한다. 그리해 경제적으로 소수 기업의 경제적 독점과 담합을 반대하고, 그 대신 중소기업을 적극적으로 육성하며, 사회복지와 정의로운 분배에 정책의 중점을 두는 원칙이 헌법에 명문화돼야 한다.
아무쪼록 새해에는 더 이상 국민들이 그저 탄식만 하는 구경꾼이 아니라 이 나라의 당당한 주인으로서 정립되고, 그리해 이 나라가 진정 민주주의 공화국임을 모두 확인할 수 있는 한 해가 되기를 바란다. 그리고 그것은 개헌에 국민주권주의의 원칙과 내용이 실질적으로 구현되는 것으로 입증된다는 점을 다시 한 번 강조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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