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당연한 것이 아니었다. 대표로 선발된 선수는 대회신기록으로 우승한 임다연이 아닌 다른 선수였다. 그것도 자유형 100m에서 2등도, 3등도, 4등도, 5등도, 6등도, 하다못해 7등도 아닌, 무려 8명의 선수 중 꼴찌로 결승선을 통과한 L선수였다.
규칙도 제멋대로 바꾼다, 대회 끝나고.
임다연 선수 측이 문체부에 항의하자 이런 답변이 돌아왔다. "공고된 선발 기준상의 '각 개인종목별 1위 선수'라는 기준에 대해 수영연맹은 '종목별 예선 및 결승경기에서 가장 기록이 좋은 선수'로 해석하고 대표를 선발한 것으로 확인"됐다면서 "선발기준을 모호하게 공지한 대한수영연맹에 기관 주의 조치하고 책임자에 대하여 경고조치하도록 대한체육회에 촉구"했다는 것이다.
너무나 황당하고도 억울한 일을 당한 임다연 선수는 결국 수영연맹에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다. 그런데 수영연맹은 "'각 개인종목별 1위'라는 표현의 의미는, '예선과 결선경기를 포함하여 가장 우수한 기록을 낸 선수'를 의미한다"라고, 또 "과거에도 예선기록이 좋은 선수를 선발한 사례가 있었다. 즉, 이건 관행이다"라고 주장한다. 이는 상식 밖의 주장이기도 하지만 스포츠계에서 있을 수 없는 궤변이다.
첫째, 수영은 기록경기이기도 하지만 근본적으로는 '등위경기'이다. 대회신기록, 한국신기록 같은 기록은 선수에게 영예로운 것이고 기록해야 할 데이터이긴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부차적'인 것이다. 경기(결과)에서의 핵심은 등수이다. 기록이 등수를 뒤집을 수 없는 것이다.
세상 어느 나라, 어느 스포츠에서 예선 성적을 가지고 대표선수를 선발할까. 올림픽이, 또는 이 대회 출전 선수들이 목표로 했던 유니버시아드대회가 예선과 결선 기록을 포괄해서 메달리스트 등위를 정하는가? 세상에 이런 궤변이 없고 몰상식이 없다. 한 마디로 언어도단이다. 그렇다면 수영연맹은 왜 이런 몰상식한 판단을 했을까.
둘째, 수영연맹은 "과거에도 예선기록이 좋은 선수를 선발한 사례가 있었고 따라서 이건 관행"이라고 주장했다. (설사 있었다 해도 없애야 할 나쁜 관행일 것이지만) 그런데 수영연맹은 관행이라던 그 사례를 아직까지 단 하나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그럼에도 수영연맹은 왜 이러한 몰상식한 횡포를 밀어붙이는 것일까.
셋째, 과거 부상이나 컨디션 난조로 인해 최종선발전 등수 들지 못했던 선수가 올림픽 등 주요 대회에 출전한 사례가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여기에 해당했던 선수들은 황영조 같은 직전 올림픽 금메달리스트급에 한정된다. 이번 사례처럼 국제대회 금메달이나 챔피언 경력도 없고 결승에서 꼴찌를 한 선수를 국가대표로 선발한 경우는 해방 이후는 고사하고 일제 때 조선체육회 창립 이래로 전무후무한 사례이다. 도대체 수영연맹은 왜 이런 몰상식한 주장을 거두지 않는 것일까.
체육계 비리의 금자탑: 스포츠의 근본마저 무너뜨리다
결국 수영연맹은 대회가 끝난 후 자신의 몰상식을 합리화하기 위해 2016년 국가대표 선발요강을 "예선·결선 성적을 모두 포함하여 선발한다"는 것으로 바꿨다. 이는 첫째, 자신의 잘못을 인정한 것으로 볼 수밖에 없기도 하지만 둘째, 자신의 궤변을 꿰어 맞추려다 보니 전지구적, 역사적으로 유래가 없는 황당한 선발요강을 보유한 어처구니없는 경기단체에 등극했음을 만방에 알린 것이다.
원래 규정의 "개인종목별 1위 선수"는 "결승1위 선수"를 뜻할 뿐이다. 그게 아니라면 예선, 준결승, 결승이라는 복잡한 절차를 거쳐 1위를 뽑을 필요가 없다. 각자 나와서 한 번만 뛰고 그 기록으로 등수를 따지면 되는 것이다. 세상에 어느 나라, 어느 스포츠, 어느 협회에서 결승성적을 무시하고 예선 성적으로 국가대표를 선발하는가.
수영연맹은 첫째, 스스로 주장했듯 예선기록이 좋은 선수를 (결승 기록을 무시하고) 국가대표로 선발했던 '관행'의 사례들이 있다면 말하기 바란다. 그리고 둘째, 예선과 결선 성적을 모두 포함해서 국가대표를 선발하는 다른 종목 협회가 있다면 그 사례를 제시하기 바란다. 우리나라 아니어도 되고 지구 밖이어도 괜찮다.
수영연맹은 도대체 왜? 그 뿌리는 어디에?
문제가 되니 문체부는 '모호한 규정'이라고 했고 수영연맹은 자신이 스스로 만든 규정을 '해석'했다고 한다. 규정은 모호할 것도 없고 해석의 영역으로 끌고 들어갈 필요도 없다. 개인종목별 1위는 결승 1위를 말한다. 그럼에도 문체부는 규정이 모호했다고 하고 수영연맹은 해석을 하다 보니 이렇게 됐다는 궤변을 내놓았다. 수영연맹은 도대체 왜 이렇게 몰상식한 궤변을 강변하는 것일까. 너무나 궁금하지 않은가.
꼴찌를 했음에도 국가대표로 선발되어 유니버시아드대회에 출전했으나 역시나 예선탈락 한 L선수의 소속 수영클럽(ACE스위밍) 박상욱 코치는 2016년 뇌물죄로 구속됐다. 국가대표선발전 등에서 자신의 선수들이 선발되게 해달라고 수영연맹 전무이사에게 십여 년에 걸쳐 무려 2억4000만 원의 뇌물을 정기적으로 상납한 것이다. 결승1위 임다연의 탈락과 결승 꼴찌 L선수의 대표팀 발탁은 어째서 벌어진 일일까?
또 하나의 궁금증. 문체부는 원래의 딱 부러지게 명쾌하고 간단명료한 선발기준을 "모호한 선발기준"이라고 표현하면서 "대한수영연맹에 기관주의 조치하고 책임자에 대하여 경고조치하도록 대한체육회에 촉구"했다고 한다. 그렇다면 그것은 문체부의 지시 그대로 이행됐을까?
대한체육회는 지난 4월 스포츠 4대악(승부조작, 성폭력, 입시비리, 조직 사유화) 관련 비리 관련자라 하더라도 구제 받을 수 있게 규정을 개정했다. 그 결과 뇌물 수수, 국가대표 부정선발 등의 이유로 '영구 제명'의 중징계를 받았던 대한수영연맹 임원 5명이 <스포츠공정위원회>로부터 견책 또는 자격정지 5년으로 징계를 대폭 감면 받았고 심지어 26억 원에 달하는 징계부가금까지 면제해줬다. 현 대한체육회장은 과거 수영연맹 회장으로 이들을 오랜 기간 회장의 측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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