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 아침, 그림책 두 권을 가방에 넣고 동해를 가다

[함께 사는 길] <토요일의 기차>, <버스를 타고>

구청이 꽤 많은 예산을 들여 새로 블록을 깔았다는 사무실 근처 보도를 걸었다. 떨어진 활엽수의 마른 잎이 '바스스' 소리를 내며 바람에 끌려 따라왔다. 가을이 깊었고 밤이 빨리 오고 옷깃을 여며야 한기를 겨우 가릴 수 있게 되었다. '불타는 금요일'의 자정으로부터 세 시간도 더 지난 새벽에야 사무실에서 나온 길이다. 사람 없는 길을 고개를 숙이고 걷는 나를 지나쳐 차 한 대가 맹렬하게 달려 나갔다.

어두운 질감으로 가로등 불빛을 되쏘는 그 길은 이내 텅 비어졌고 이따금 새로운 질주음이 들렸다. 그 질주의 목적이 가야 할 곳에 있는 건지, 속도 그 자체에 있는 건지 모르겠다는 생각도 스쳐 지났다. 어느 결에 나는 최대한의 속보로 걷고 있었다. 걸음은 빨라지는데 마음이 점점 느려졌다. 느려지는 마음의 속도가 내 생활 속에 빠진 게 있다는 걸 알려주었다. 그 결여가 뭔지 모른다는 게 나의 문제였다. 여덟 정거장을 걸어 집으로 갔다.

▲ <토요일의 기차>(제르마노쥘로·알베르틴 지음, 문학동네 펴냄) ⓒ문학동네
깊은 잠 속에 든 식구들이 깰까 봐 최대한 소리를 죽여 현관문을 여닫고 뒤꿈치를 들고 거실을 가로질러 전창 아래 소파에 가 앉았다. 잠시 기운 달을 내다보다 시선을 돌리는데 그림책 한 권이 눈에 들어왔다. 생각 없이 손이 나가려다 '눈이 시큰해, 아침에 나가 읽을 자료가 많은데…!' 아마 그런 생각이 들었을 것이다. 잠시 멈칫했다. 기어이 나는 그 책(<토요일의 기차>(제르마노쥘로·알베르틴 지음, 문학동네 펴냄))을 잡아 펼쳤다. 안경을 벗고 베란다에서 들어오는 촉수 낮은 등불의 흐린 빛에 의지해 천천히 한 장씩 읽었다. 두 페이지 가득, 여러 풍경 속을 달리는 기차 위로 단 한 줄의 글이 이어지고 있었다. |

아이는, 작은 소녀는 할머니 집에 기차를 타고 혼자 간다. 어른이 되면 시간이 빨리 갈 거라고 할머니가 말씀하셨고 크는 게 좋지만 소녀는 '삶이 빠르게 흘러가도록 두진 않겠다'고 다짐한다. 소녀의 꿈은 온 세상을 여행하는 것이다. 배경은 다 먹색이지만 기차만 노란 색으로 빛난다. 기차는 세상을 달려 도시에 있는 소녀의 집에서 멀리 떨어진 할머니의 마을까지 간다. 거기가 '소녀의 세계'가 지금 도달할 수 있는 '세상의 끝'이다.

책을 덮고 가만히 가슴에 끌어안았다. '몸이 바쁠수록 마음의 속도가 느려졌던 까닭이 이거였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새로운 풍경, 새로운 사람, 새로운 만남에 호기심을 잃었다. 내 안의 아이는 자라고 이제 늙어서 더 이상 '토요일의 기차'를 타고 싶지 않게 된 것이다. "휘이유." 긴 날숨을 뱉고 나는 어쩐지 약간 후련한 기분이 되어 두 팔을 길게 펴고 소파에 기댔다. 이 순간 '내 세계'가 도달할 수 있는 '세상의 끝'은 어디일까? 그렇게 생각하자 소풍 갈 생각에 들뜬 아이처럼 마음이 부풀었다.

▲ <토요일의 기차> 중.

▲ <토요일의 기차> 중.

▲ <토요일의 기차> 중.

풍선처럼 부풀어 오르는 마음을 달래려고 고개를 뒤로 젖혀 가볍게 스트레칭을 했다. 그림책을 모아놓은 책장이 눈에 들어왔다.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 나는 책장 앞에 서서 이것저것 그림책을 뽑아 표지만 보거나 뒤적거렸다. 그러다 손에 들어온 건 한 소년이 큰 짐을 메고 도로를 걷는 표지의 그림책(<버스를 타고>(아라이 료지 지음. 지크 펴냄))이다. 배경은 사막처럼 보였다.

▲ <버스를 타고>(아라이 료지 지음. 지크 펴냄) ⓒ지크
황량한 사막을 가로지르는 도로, 앵무새로 보이는 새 한 마리가 잎 넓은 나무의 가는 줄기에 앉아있다. 버스정류장이 보인다. 강렬한 청황 색채 대비 때문인지 배경에 비해 작게 그려진 사물들의 존재감은 더욱 돋보인다. 소년은 멀리멀리 가기 위해 버스를 타러 왔다.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며 라디오를 켠 소년은 '룸파룸 룸파룸' 음악을 듣는다. 트럭이 오고 또 가고 말 탄 사람이 오고 또 가고 자전거 탄 사람도 지난다. 버스는 오지 않는다. 많은 이들이 오가고 난 뒤 드디어 버스가 온다. 버스는 만석, 소년은 버스에 타지 못했다. 소년은 절망하지 않는다. '룸룸파룸 룸파룸' 허밍과 함께 걷기 시작한다. 마지막 문장은 이렇다. '타박타박 걸어서 멀리멀리 갈 거예요.' 미소가, 정말 의식할 새도 없이 입꼬리를 들어 올렸다. 소년은 짐을 지고 틀림없이 용기가 필요한 삶의 길을 향해 담담하게 걸어 나가고 있었다.

▲ <버스를 타고> 중.

그림책 두 권을 가방에 넣고 스마트폰으로 동해로 가는 기차 시간을 살펴봤다. 전화기 옆의 메모지를 뜯어 '새벽에 들어왔다가 다시 나가요'라는 메시지를 남기고 일어섰다. 주말 아침 식구들의 단잠은 길 터이고 나는 고양이처럼 발끝으로 걸어 나와 기차를 타러 갔다. 아침 7시 가방에서 그림책을 꺼내 찬찬히 다시 읽어보려 했지만, 기차에 타자 잠이 쏟아졌다. 눈을 뜬 건 충북에서 강원도로 넘어갈 때였다. 기차에서 요기를 했다. 강릉에 도착한 건 낮 1시가 넘어서였다.

그 해변의 산책이 특별히 멋진 경험이었거나 기억할 만한 일이 생겼다거나 한 건 아니다. 생각보다 사람이 많았고 생각만큼 정서적 충일감이 차오르거나 하는 일은 없었다. 나는 소란한 주말의 석호와 거기 딸린 해변에 갔을 뿐이었다. 그래도 내가 시종 미소를 입가에 달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나는 즐거웠던 것이다. 목적 없음의 목적이 내 마음의 속도계에 걸려 있었다. 몇 시간의 산책 후에 다시 기차를 탔다.

▲ <버스를 타고> 중.
바다에서 산으로, 동에서 서로 오는 그 시간 동안 나는 한숨도 자지 않고 그림책 두 권을 되풀이해서 읽거나 어느결에 바람 없는 호수처럼 조요해진 마음을 들어 창밖을 바라봤다. 밤 깊어 돌아온 도시에서 '토요일의 기차'가 여행의 종착역에 다다랐음을 깨달았다. 어른이 된 소녀도, 소년도 혼자 기차를 타거나 타박타박 걸어서 세상의 끝으로 갈 필요가 있다. 어른을 위한 그림책이 가끔 있다. 아니 어쩌면 삶의 어떤 순간, 마음에 들어오는 모든 그림책은 그의 심장 속에 살아있는 어린이의 영혼을 불러와 위안하고, 가르치고, 용기를 주는 친구이겠다.

목적지가 정해진 시계추는 점점 스스로 무거워지다가 어느새 그 진자운동을 멈추게 된다. 목적 없는 산책이 우리에겐 필요하다. 다행히 버스는 만석이 아니었다. 일부러 몇 정거장 앞에서 내려 밤 깊은 보도를 천천히 걸어 집으로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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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 <함께 사는 길>은 '지구를 살리는 사람들의 잡지'라는 모토로 1993년 창간했습니다. 사회적 약자와 생태적 약자를 위한 보도, 지구적 지속가능성을 지키기 위한 보도라는 보도중점을 가진 월간 환경잡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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