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노총, '조끼' 벗고 발랄하게 싸우자

[민주노총을 말하다] 알바청년들과 맞짱 토론하는 위원장을 보고싶다

민주노총이 새 집행부 선출을 위한 임원선거 일정에 돌입했다. 이번 임원선거에는 김명환 전 철도노조 위원장, 이호동 전 발전노조 위원장, 윤해모 전 현대자동차지부장, 조상수 현 공공운수노조 위원장 등 4명의 후보가 민주노총 위원장 선거에 입후보했다.
이번 선거에서는 대부분 후보가 비슷한 공약을 내걸고 있어 딱히 쟁점이라고 할 만한 게 없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나마 언론에서 관심을 두는 것은 문재인 정부에서 요구하는 노사정위원회의 복귀 여부다.

하지만 내부를 들여다보면 노사정위 복귀 여부를 비롯해, 각기 사안에 대해 서로 다른 입장과 선명성을 드러내고 있는 게 사실이다. <프레시안>에서는 민주노총 선거 관련, 쟁점이 무엇인지, 그리고 차기 집행부에서는 무엇에 집중해야 하는지 등을 살펴보고자 한다. <프레시안>은 민주노총의 미래와 관련해 다양한 견해가 제시되고 논쟁이 활발히 이뤄지길 바라며 지면을 열어 놓을 예정이다. (기고 보낼 곳 : kakiru@pressian.com)

내 지갑 속에는 민주노총 한상균 위원장의 명함이 있다. 그는 기억하지 못하겠지만, 서울시청 인근에서 점심을 같이 먹었다. 어떤 기자회견을 마치고 여러 사람이 같이 간 식당이었다. 그리고 며칠 후 그가 조계사로 들어갔다는 소식을 신문 기사를 보고 알았다. 나는 자주 그의 명함을 꺼내 본다. 점점 닳아가고 있다.

몇 해 전에 나는 사회단체 활동가들이 모인 자리에서 민주노총 간부들의 조끼패션에 대해서 불평을 하다가 타박을 받은 적이 있다. '조합원들 임금 위해서 싸우고 권리 지켜주는 게 노동조합인데, 이미지가 무어가 중요하냐'는 취지의 반박을 들었던 것 같다,

맞는 말이긴 하다. 겉모습이 뭐가 중한가, 내면의 올곧음이 있으면 사람들이 알아보고 존경하는 마음을 갖는다. 내가 문제 삼고 싶었던 것은 조끼패션의 문화적 배경과 노동운동의 구조적인 경직성 같은 거였는데, 타박을 들은 후에는 내 사고가 참 지엽적이구나, 노동조합의 본질적 사명에 대해서 더 관심을 가져야겠다고 반성을 하면서 그래도 조끼가 싫은 건 어쩔 수 없다고 속으로만 생각했다.

ⓒ프레시안(최형락)

조금 더 발랄한 싸움걸기 기술의 연마

그러니까 이런 거다. 대학입시를 거부하는 학생들의 퍼포먼스 장면을 신문에서 보았는데 표정들이 힘이 없었다. '행복을 미루지 말자'고 쓴 피켓을 들었다고 해서 계속 함박웃음을 짓고 있을 수는 없겠지만, 조금 더 씩씩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조금 더 발랄한 싸움걸기의 기술을 연마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연대해야 하고 함께 살아야 하는데 계속 비장하기만 하면 상대가 피곤하다. 노동조합 간부들의 조끼는 우울을 뿜어내는 민주노총의 성명서를 연상시킨다. 업계의 전문용어들을 여과 없이 사용하여 쉽게 읽히지 않으며, 호통치고 비난하는 언어들 말이다.

청와대로 대통령을 만나러 가는 자리에 민주노총이 아무리 빈정 상해도 갔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초대받은 간부들 모두 깨끗한 정장을 착장하고 대통령과 사진을 박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 다음에 정색하고, 노동자들의 억울하고 힘든 사연을 위엄 있게 전달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민주노총 지도부는 왜, 나한테 묻지도 않고, 누구 맘대로 청와대에 안 갔나.

이렇게 말하는 나는, 이번 민주노총 위원장 선거에서 투표권이 있다. 희망연대노조 더불어지부 조합원이다. 지난 임원선거도 노조사무실에 가서 했다.

민주노총 지도부가 비싼 옷, 좋은 옷을 입기를 바라는 것이 아니라, 시대에 뒤떨어지는 옷만은 안 입기를 바라왔다. 세종로 정부청사 앞을 지나는데 전교조 지도부가 찬 바닥에 앉아 농성을 하고 있었다. 새 정부가 전교조 합법화 조치를 조속히 이행하라는 요구였다. 너무나 합당한 요구인데 바라보는 마음에 쌩 찬바람이 인다. 수능이 끝난 후 다시 총력투쟁을 시작한다고 한다. 제주도의 생수 공장에서 죽은 고3아이는 어떻게 할 건가, 지난해에도 죽었고, 전전해에도 죽었다. 애도 성명서 내고 실습중단 요구 입장문도 냈으니까 할 일을 한 것인가.

성명서로 하는 운동, 기자회견으로 하는 투쟁은 그만 했으면 한다. 플래카드 앞에 죽 서서 기자회견문 흰 종이만 바라보며 읽어 내리고는 총총 흩어지는 스산한 퍼포먼스는 그만 했으면 좋겠다. 20분짜리 기자회견이라고 품은 적게 드는가, 그것도 아니다.

자신을 브랜드화 하는 미용노동자, 그런데 민주노총 간부는?

최근 인천공항 노동자들 사이에서 토론회장에서 일어났다는, 비정규직과 정규직의 갈등에 대한 기사들을 보면 보수언론이 여야 정당들의 정치공방 중계하는 모양과 흡사하여 한 번 놀랐고, 포털 댓글들을 보니 생각보다 정규직편(?)이 많아서 두 번 놀랐다.

정규직이 그나마 민주노총 소속이 아니라서 다행이구나 라는 철없는 생각을 안 한 것도 아니지만, 이내 비정규직 철폐 투쟁이며 비정규직 조직화 기금이며 십 수 년간 민주노총이 대정부 투쟁과 대국민 선전전을 했다는 그 효과는 영(0)이었던 것인가 싶어 찜찜함을 떨칠 수 없다. '연대하자', '같이 살자'고 했던 구호들은 그야말로 허공을 향한 주먹질일 뿐이었는가.

얼마 전에 만난 미용노동자, 3년차 헤어디자이너는 유행하는 헤어스타일을 추천하기 위해, 진상 손님들과의 기 싸움에서 지지 않기 위해 스피치 학원을 다녔노라 했다.

민주노총의 새 지도부는 적어도 이 헤어디자이너보다 덜 노력하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미용실에 소속돼 일하지만, 노동자 대접 못 받고 개인사업자인 이들은 한 사람 한사람이 브랜드가 돼야 단골이 생긴다고 한다. 자신이 매력 있는 사람이 되어야 손님도 머리를 맡기고 싶어 한다고 한다.

민주노총의 새 지도부는 광화문에서 시청 앞에서 거리 토론회를 열었으면 좋겠다. 10대 20대 알바청년들과 17대 1로 토론을 할 수 있으면 좋겠고, 그들의 '리스펙트'를 받을 수 있으면 좋겠다. 훈계하지도 않고, '동지'라는 업계 용어를 쓰지도 않고 일상의 언어로 말할 줄 알았으면 좋겠다.

민주노총 위원장이 시대의 지체, 문화의 지체를 겪고 있는 기득권 세대로 보이지 않았으면 좋겠다. 이 알바 저 알바, 이 업체 저 업체, 최저시급 따져가며 알바천국에 서식하는 미래의 비정규직, 파견 노동자들이 그 이름을 알아볼 만큼만 동시대성이 있었으면 좋겠다.

내가 민주노총 위원장 투표권이 있다고 했을 때 '니 이름 적어내고 와'라고 놀렸던 자에게 자랑할 수 있는 위원장이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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