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금 내기 싫으면 법을 바꿔버린다?
"10년 동안 야인으로 있으면서 소득은 없는데 종부세만 냈다"며 종부세에 대해 악감정을 가지고 있던 강만수 전 기획재정부 장관 같은 이명박정부 부자 각료들에 의해 발동이 걸린 후 9명 중 8명이 종부세 대상자였던 헌법재판관들에 의해 헌법불합치 판결을 받은 종부세는 결국 시체가 됐다. 원래 조세저항이 있을 것을 예상하고 '헌법만큼 고치기 어렵게 만든 정책'이었지만 부자들이 정치권력까지 잡으니 이렇게 간단히 무력화됐다.
그 결과 당시 고위 공직자 105명 중 무려 75명이 그 혜택을 받았다. 어떤 혜택? 그들이 냈던 종부세 원금에 더해 이자까지 받아낸 것이다. 이렇듯 우리나라의 보수 정치 세력은 자기들이 내는 세금이 많아 불만이면 아예 법을 바꿔버린다. 그리고 환불까지 받아버린다.
외국에서는 부자들이 앞장서 세금을 가진 자가 세금을 더 내야 한다고 주장한다. 워렌 버핏이나 빌 게이츠가 그런 인물들이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이상하게 부자일수록 세금을 안 낸다. 황당하게도 이들 사이에선 탈세가 자연스럽게(?) 여겨지는 분위기다. 그리고 때로 정치권력과 결탁해 법망을 피해가기도 하고 아예 법을 바꿔버리기도 한다.
야당이 홍종학을 용납할 수 없는 이유
청와대가 홍종학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을 임명하자 자유한국당을 위시한 야당들은 격렬하게 반발하고 있다. "내로남불," "오기 인사"라 맹비난하고 "협치 중단"으로 협박한다. 그러면 자유한국당과 바른정당이 과거 집권여당인 새누리당에 함께 있었을 때의 행태는 어땠나.
이명박, 박근혜 정부가 내놓았던 총리와 장관 후보자들은 부패와 비리 일색의 인물들이었다. 위장전입은 기본이고 부동산 투기, 탈세, 전관 예우, 공금 유용, 부당 공제 등 탈법과 비리 투성이었다. 이명박 정부 때 환경부장관 후보자는 자신의 땅투기 논란에 대한 변명으로 "땅을 너무 사랑해서"라는 어처구니없으면서도 대한민국 현대사에 길이 남을 명언(?)을 내놓기도 했다.
박근혜 정부에선 청문회 과정에서 낙마한 후보자만 9명, 청문보고서가 채택되지 못한 후보자가 8명, 야당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보고서가 채택된 후보자가 11명이었다고 한다. 결국 박근혜 정부의 고위공직자 62명 가운데 무려 45%(28명)가 부적격이거나 임명강행이었던 것이다. 정홍원 전 총리는 사퇴를 발표해놓고도 안대희, 문창극 등 후보자들이 연이어 낙마해 무려 10개월을 퇴임도 못하고 유임한 끝에 물러날 수 있었다.
사실 문재인 정부의 장관들도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대통령이 후보 시절 세상 사람들도 자신과 같은 수준의 도덕적 삶을 영위할 것이라 생각하며 다소 순진한 발상에서 내놓은 '5대 비리' 불용 원칙 때문에 이미 몇몇 장관의 임명이 논란이 되기도 했고 '내로남불'이라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그런데 이번에 임명된 홍종학 장관은 이 5대 인사 기준을 저촉하지도 않는다. 사실 국회의원(출신) 장관 청문회는 요식행위라는 비판이 있을 정도로 '대충' 해왔다. 그런데 야당들은 19대 국회의원으로 함께 일했던 홍종학에 유난히 알레르기 반응을 보이며 임명이 끝났는데도 공격하고 있다. 왜 그들은 홍종학을 그토록 싫어할까.
보수가 용서할 수 없는 불퇴전의 납세 의지
대통령이 내걸었던 5대 인사 기준에도 부합되는 인물인 홍종학의 죄가 있다면 그것은 세금을 너무 많이 낸 것이다. 우리나라 보수의 치부를 건드린 것이다. 이재용 삼성 부회장이 5조 원 상속 받으면서 고작 16억 원의 세금(0.0003%)을 냈는데 홍종학은 34억 원 상 부동산을 받으면서 무려 10억 원의 세금(29%)을 낸 것이다.
야당들은 홍 장관의 장모가 딸과 사위 그리고 손녀에게 분할 증여를 한 결과 증여세를 적게 낸 것이 마치 비리인 듯 주장한다. 그러나 첫째, 조부모가 손주의 학비 등 미래를 위해 부동산을 증여하거나 상속하는 것은 일반적인 일이고 둘째, 절세는 국민의 성실 납세를 촉진하기 위해 국세청도 권하는 것이다.
절세는 납세의 의무만큼이나 국민의 권리
우선 세 명이 쪼개어 증여받음으로 해서 증여세를 2억 원 가량 덜 냈다는, 즉 절세했다는 점과 관련하여 한 세무사는 "통상적으로 활용되는 적법한 절세방법"이라고 설명한다. 소득세에서도 이와 비슷한 절세를 찾을 수 있다고 한다. 예를 들어, 맞벌이하는 부부의 경우 남편의 소득이 아내보다 높은 경우 아내가 남편 명의의 신용카드를 사용하여 남편의 과세표준(총 소득금액)을 낮추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적법한 방법으로 절세하는 것도 납세가 국민의 의무인 것만큼이나 국민의 권리이다.
두 번째 쟁점은 홍 장관 딸에게 주어진 부동산의 증여세 대납과 여기에서 발생한 금전소비대차계약서 문제였다. 딸은 어머니와 2억2000만 원에 대한 금전소비대차계약서를 작성했고 이에 따라 딸은 증여받은 상가에서 나오는 월 400만 원의 월세로 어머니에게 이자와 원금을 변제하고 있다. 때문에 어머니가 딸에게 2억2000만 원을 증여한 것으로 볼 여지가 없고, 따라서 애당초 탈세의 문제도 발생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강만수와 홍종학의 차이
홍종학 장관의 사례와 종부세 당시 강만수 전 장관의 경우를 대비시켜 보자. 고위직 관료이고 재산가인 두 사람은 자신의 부동산으로 인해 고액의 세금을 내야했다. 그런데 강만수는 이에 불만을 가지고 있다가 권력을 갖게 되자마자 그 법을 없애버렸다. 반면 홍종학은 부모 자식 간 금전소비대차계약서를 만들면서까지 세금을 완납했다.
사실 강만수나 홍종학이 겪은 이러한 고액 세금 문제는 우리나라 고액 부동산 재산가들에겐 흔히 있는 일이다. 그렇지만 부동산이란 게 현금이 아닌 '묶여있는 재산'이라 부동산으로 인한 세금을 낼 현금을 마련하는 것은 이들에게 고역일 수 있다. 문제는 이를 대하는 자세이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이 사회를 이끌어갈 사회지도층으로서의 자격이 있는지 없는지 가로지르는 기준이 된다.
홍종학의 경우는 당장 세금을 낼 현금이 없으면 방법을 찾아서라도 납세를 하겠다는, 가히 '집념의 납세,' '불퇴전의 납세 의지'라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이것이 '가진 자'가 지녀야 할 품격이다.
(참고로 장관 이후 대통령 경제특보, 산업은행장 등을 지낸 'MB노믹스의 상징' 강만수는 지금 감옥에 있다. 지난 17일 서울고법은 배임, 직권남용, 정치자금법 위반 등의 혐의로 강만수에게 징역 5년2월을 선고했다. 판사는 사적 이익을 위해 자신의 강력한 권한을 남용해 경제·사회 전반에 커다란 악영향을 끼치는 등 범행으로 인한 피해가 막심함에도 자신의 책임을 부인하고 정당한 직무 행사였다고 변명하는 등 반성의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며 1심에서 징역 4년이었던 강만수의 형량을 2심에서 오히려 5년2월로 늘여버렸다.)
자유한국당 등 야당이 홍종학을 그토록 못마땅해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실력이 있으면서도 부자인 데다가 도덕성마저 겸비한 진보의 등장이 바로 그것이다. 그들이 문재인 정부를 두려움 속에 지켜보는 이유가 그것이다. 그들은 실력과 재력과 도덕성을 완비한 세력이 등장해 이명박근혜 정부에서 증명됐듯 무능하고 부패하고 몰상식한 보수를, 즉 자기들을 대체할 것을 염려하고 있는 것이다.
그들은 무엇이 두려운가
간단하다. 그들이 홍종학을 미워하는 이유는 그가 부자이면서 부자를 변호하지 않고 오히려 재벌 개혁을 주장하는 부자이기 때문이다. 그들이 홍종학을 용납할 수 없는 이유는 그가 부자이면서 부의 대물림을 비판하고 오히려 부자 증세를 주장하기 때문이다. 그들이 홍종학을 공격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세금이 아무리 많아도 가족끼리 계약서를 쓰는 번거로운 방식을 통해서라도 기어이 내야 할 세금을 다 내기 때문이다.
홍종학이 그랬다. 부자가 존경 받는 세상이 되기 위해서 부자가 세금을 더 많이 내야 된다고. 이제까지 우리의 보수는 어땠는가. 부자이면서 세금 내기를 죽기보다 싫어했다. 차라리 부패했다. 당연히 그들은 존경을 받는 것도 바라지 않았다. 오직 권력을 잡는 것만 바랬다.
이런 기득권은 교체의 대상이다. 문재인 정부 때 이루어야 할 것이 있다면 한국사회 지배집단의 교체, 부패한 보수의 청산이고 동시에 국민에게 모범이 되는 보수, 멋지고 실력 있는 보수의 등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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