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미혼모는 4등급"…차별을 노래하다

[인터뷰] 미혼모들이 만든 뮤지컬 준비하는 최형숙 인트리 대표

나경원 자유한국당 의원이 2008년 "1등 신부감은 예쁜 여자 선생님이고, 2등 신부감은 못생긴 여자 선생님이고, 3등 신부감은 이혼한 여자 선생님이고, 4등 신부감을 애 딸린 여자 선생님"이라는 막말을 해 논란이 일었다.

정치인으로서 해서는 안될 망언이었지만, 우리 사회의 뿌리 깊은 차별 의식을 보여주는 발언이기도 하다. '저출산'이 문제라며 정부가 별도의 위원회까지 만들어 대책을 고민하지만, 이들이 아이를 낳겠다고 하면 모두가 뜯어말린다. '결혼을 하지 않은 엄마들' 이야기다.

"우리 사회에서 엄마는 다 똑같은 엄마가 아니죠. 남편이 있으면 1등급 엄마고, 남편이 죽으면 2등급, 이혼하면 3등급, 미혼모는 4등급입니다. 이게 우리 사회 현실이죠."

미혼모들이 만들고 출연하는 뮤지컬, '소녀 노래하다'


미혼모들이 만들고 직접 출연하는 뮤지컬을 준비하고 있는 최형숙 인트리(人-tree) 대표의 말이다. 이 뮤지컬 제목은 '소녀, 노래하다'. 오는 12월 2일과 3일 국립극장에서 공연된다. 인트리는 미혼모 당사자 단체로 미혼모들의 자존감 회복과 경제적 자립 등을 위한 교육, 문화 사업을 하고 있다.


공연을 채 한달도 안 남겨 놓고 만난 최형숙 대표는 꽤 상기된 표정이었다. 최 대표를 포함한 미혼모 9명이 배우로 출연한다. 최 대표의 아이도 출연한다. 또 한부모 가족과 학생 등 뜻을 나누는 일반인들도 공연을 함께 준비하고 있다. 지난 2월부터 시작해 공연까지 10개월을 준비했다.


"뮤지컬을 제작하는 극단에서 공연을 하자고 먼저 연락이 왔어요. 틀에 박힌 캠페인 말고 다른 식의 접근을 해보고 싶었는데 너무 기뻤죠. 그런데 극단에서도 사실 미혼모의 현실에 대한 이해가 없었죠. 원래 극단에서는 애 아빠가 아이를 입양 보내려고 데려갔다가 애를 보고 사랑에 빠진다는 내용을 구상하고 있었는데, 저희가 '현실에는 그런 아빠는 없다. 그럴 사람이었으면 애초에 버리지도 않았다'고 극 전개를 바꿨습니다."

우리 사회의 미혼모와 그 자녀에 대한 편견과 차별을 다룬 이 뮤지컬에 등장하는 사연들은 '실화'다. 참여하는 엄마들이 직접 겪은 일들이다.

딸의 임신 사실을 알게 된 아버지는 "내 딸은 창녀처럼 몸을 함부로 굴리지 않는다"며 인연을 끊자고 한다. 한국에서 낙태는 불법이기 때문에 낙태를 못하고 있다가 가족들이 뒤늦게 임신 사실을 알고 임신 8개월째 억지로 낙태 수술을 시켰는데, 살아서 나온 아이는 의사 손에 죽는다. 뒤늦게 이 사실을 알게 된 이 여성은 죄책감에 시달리다 결국 미쳐버리고 만다. 아이 낳는 것을 반대하던 가족들은 몰래 병원에서 아이를 빼돌려 입양을 보내려고 한다. 이 뮤지컬에 등장하는 사건들에 대해 최 대표는 "우리 얘기 중 하나"라고 말한다. 극 중에 등장하는 노래 가사도 미혼모들이 직접 썼다고 한다. 앞에서 얘기한 "미혼모는 4등급"이라는 말도 이들이 직접 만든 노래 가사다.

이제 막바지에 접어든 공연 연습 상황에 대해 묻자 최 대표는 "너무 힘들었다"는 말을 먼저 꺼냈다.

"공연 연습할 때 너무 힘들었죠. 우리는 엄마가 9명이면, 애들도 9명이 오는데, 아이들도 20개월부터 13살까지 연령대가 다양합니다. 극단도 아이들 돌보는 문제에 대해선 예상하지 못했으니까, 연습하면서 아이들도 돌보고, 너무 힘들었어요. 우리 단체는 돈도 없으니까 공연 연습에 들어가는 비용도 다 엄마들이 냈어요.

아이를 봐줄 수 있는 사람들이 없어서 평소에도 혼자 아이를 돌보느라 힘들텐데, 주말에 자기 돈 써가며 아이들 데리고 연습을 하러 오는 엄마들을 보며, 힘들어도 시작하기 잘했다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뮤지컬을 준비하는 과정 자체가 엄마들에겐 일종의 치유의 과정이더라구요. 사람들에게 내 얘기를 하면서 스스로 단단해지고 성장하는 게 눈에 보여요. 이 과정을 통해 엄마들의 자존감을 높일 수 있다면, 저는 이것만으로도 큰 성공이라고 생각합니다."

최 대표는 지난 2005년 아이를 낳았다. 그 당시 미혼모가 아이를 낳으면 무조건 입양을 보내는 것 밖에 선택이 없는 것처럼 여겨졌지만, 지금은 미혼모의 양육 비율이 30%가 넘어설 정도로 미혼모 당사자들의 인식은 바뀌었다. 하지만 미혼모와 그 자녀들에 대한 사회적 편견과 차별은 크게 변하지 않았다. 최 대표는 우리 사회가 미혼모 문제를 '양육비 지원 문제'로만 인식하고 있는 게 문제라고 지적했다.

▲ 최형숙 인트리 대표. ⓒ프레시안(전홍기혜)

"미혼모 양육비 지원이 과거 월 5만 원에서 지금은 12만 원으로 올랐다. 조만간 15만 원을 준다고 한다. 양육비 지원, 물론 중요하다. 지금도 턱없이 부족하다. 하지만 돈으로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다. 그리고 솔직히 우리 사회가 미혼모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을 모를까? 알고 있습니다.

10대 미혼모 학습권 문제를 예를 들어 얘기하자면, 가장 큰 문제가 뭐냐? 교사들의 편견입니다. 요즘 젊은 교사들은 어느 정도 이해를 하는데 교감, 교장 선생님이 의식을 못 바꾸는 경우가 많습니다. 학교에서 아이를 내치지 말고, 공부할 수 있는 상황이 되도록 기다려주고, 기회를 주면 됩니다. 초등학교 6학년도 임신을 하는 세상입니다. 어릴수록 터부시하고 숨겨야 하니까 출산을 원하지 않는 경우에도 출산을 하는 상황이 생기기도 합니다. 지원을 늘리는 것 못지 않게 인식을 바꾸는 게 필요합니다."

우리 사회에서 미혼모로 살아간다는 것은 매 순간 '폭력'에 노출될 위험을 안고 사는 것이다. 최 대표는 "미혼모를 복지의 대상으로만 바라볼 것이 아니라 우리 사회가 그들에게 얼마나 많은 폭력을 행사했는지 알아야 한다"고 말한다.

"누구도 미혼모들이 살면서 어떤 일을 겪어야 하는지 살펴보지 않습니다. 취업의 문제, 주거의 문제, 아이들과 관계의 문제 등. 10대 미혼모들은 아이를 데리고 먹고 살려고 아둥바둥하다가 정말 생계를 유지할 방법이 없어 성매매로 빠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요즘처럼 먹을 게 넘치는 세상에 돈이 없어서 굶는 엄마들도 있습니다. 월세방을 전전하다가 PC방, 찜질방 등에서 노숙을 하기도 합니다. 엄마의 정서가 불안정하다보니 아이들에게도 영향을 미치기도 합니다. 이런 아이들이 학교에서 문제를 일으키기도 합니다. 그러면 대번 '미혼모의 자녀라서 그렇다'고 손가락질 받기 십상입니다.

우리 단체도 보면 아이가 어릴 때는 당장 도움이 필요하고, 서로 의지가 되니까 열심히 활동하던 엄마들이 어느날부터 나오지 않아요. 왜? 숨어야 하니까. 어떻게든 그 사회적 낙인에서 벗어나고 싶으니까."


▲ 최 대표와 인터뷰는 미혼모들이 운영하는 카페 '인트리'에서 진행했다. ⓒ프레시안(전홍기혜)

소위 '정상가족(결혼한 부부와 그 자녀)'이라는 범주에서 벗어난 이들을 향한 사회적 폭력의 희생양은 미혼모들만이 아니다. 결혼율이 하락하고 이혼율이 증가하면서 그 대상자들은 늘어나고 있다. 그 변화 속도를 사회적 인식과 국가의 정책이 따라가지 못하고 있는 게 오히려 문제를 키우는 셈이다.

"10대 미혼모들을 탓하지 마십시오. 10대 미혼모들은 '내 결정권이 나한테 있다'고 생각하고 그렇게 선택합니다. '내가 낳았고, 이렇게 예쁜데 잘 키워야지'. 누구나 살면서 경험할 수 있는 출산을 남들보다 조금 일찍 겪었다고 생각하면 됩니다. 학교와 가족들이 내치지 않고 조금만 도와주면 누구보다 더 아이를 잘 키울 수 있습니다."

여느 뮤지컬과 달리 '꿈과 환상'이 아닌, '치열한 현실'을 담은 이 뮤지컬의 끝을 스포일러라는 비난을 받더라도 꼭 소개하고 싶다.

여주인공이 아이를 빼돌려 입양을 보내는 남자친구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고 판사가 판결을 내린다. 법에 따른 판결을 내린 뒤 판사는 남자에게 "너는 네 아이에게 사과를 하라. 네 아이는 미안하다는 말을 들을 권리가 있다"고 명령한다. 판사 역할은 최 대표의 아들이 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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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홍기혜

프레시안 편집·발행인. 2001년 공채 1기로 입사한 뒤 편집국장, 워싱턴 특파원 등을 역임했습니다. <삼성왕국의 게릴라들>, <한국의 워킹푸어>, <안철수를 생각한다>, <아이들 파는 나라>, <아노크라시> 등 책을 썼습니다. 국제엠네스티 언론상(2017년), 인권보도상(2018년), 대통령표창(2018년) 등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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