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한산성>, 굴욕의 역사가 그려낸 인간 군상의 삶

[김경욱의 데자뷔] 배우들 열연 감상하면 흥미로운 영화

* 이글에는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지금까지 등장한 천만관객 한국영화 15편 가운데, 역사적 사건과 인물을 소재로 한 영화는 모두 9편이다. 여기서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한 영화는 <왕의 남자>(2005), <광해, 왕이 된 남자>(2012), <명량>(2014) 등, 3편이다.

특히 <왕의 남자>의 흥행성공은 사극이 대중에게 어필하는 장르로서 재발견 되는 원동력이 되었다. 이후 다양한 소재의 사극이 제작되면서, 수양대군, 연산군, 광해, 영조와 사도세자, 임진왜란과 이순신 등, 조선시대의 가장 극적인 사건과 인물들이 차례로 소환되었다.

그리고 이번 추석연휴에는 ‘병자호란’을 소재로 한 황동혁 감독의 <남한산성>이 개봉을 했다. 작가 김훈의 베스트셀러 소설을 각색한 이 영화는 원작을 고스란히 영상으로 옮기는데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원작을 충실하게 각색하기보다 변형을 많이 하는 한국영화의 풍토에서는 드문 사례이다. 그러므로 이 영화는 원작과 따로 떼어놓고 설명하기 어렵다.

▲ 영화 <남한산성>.

1636년의 병자호란은 한국사에서 가장 치욕적인 장면의 하나로서, 대부분의 한국인들이 대충이라도 알고 있는 사건이다. 김훈은 그 사건을 재현하고 복기하고 해석하고 평가하는 데는 관심이 없다. 그것은 역사학자나 사회학자 등의 몫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대신 그는 풍전등화의 위기 앞에서 각자 살길을 찾아 다양한 양상으로 대처하는 인간 군상들을 제시하고, 거기서 인간의 삶이란 무엇인지 질문을 던진다. 따라서 소설은 거두절미하고 청나라 병사가 파죽지세로 쳐들어오자 인조가 서울을 버리고 피신하는 대목에서 시작한다. 임금은 강화도로 가려했지만 적병에 의해 길이 막히자 남한산성으로 가게 된다. 청병은 산성을 에워싸고, 결국 가장 추운 한 겨울에 왕과 신하들과 병사들은 독안의 쥐처럼 갇혀버린다.

이 때 예조판서 김상헌(김윤석)은 척화파로서, 명나라에 대한 의리, 명분과 대의를 내세우며 죽음을 불사하고 결사항전을 외친다. 이조판서 최명길(이병헌)은 주화파로서, 일단 화친을 통해 급한 불을 끄고 내실을 도모하면서 훗날을 기약하자고 주장한다. 그는 어떤 치욕이나 고통을 겪는다 해도 생존이 더 중요하며, 어떤 대의명분 보다 삶이 더 중요하다고 말한다. 여기에 자신의 안위만을 도모하는 영의정과 무관으로서 임무에 최선을 다하는 수어사 이시백 같은 인물이 또 다른 대조를 이룬다. 인조는 첨예하게 대립하는 두 주장 사이에서 갈팡질팡 한다. 그는 무능해보이지만, 한편으로는 뱃사공의 어린 딸 나루(영화에서는 손녀로 각색)를 따뜻하게 대우하는 등, 인간적인 면모를 보이는 대목이 여러 번 첨가된다.

역사적 맥락에서 인조는 반정으로 왕좌에 오른 인물이다. 명나라와 청나라 사이에서 중립외교를 펼쳤던 광해군(<광해, 왕이 된 남자>에서 가장 강조된 대목이기도 하다)을 몰아냈기 때문에, 그가 명나라를 버리고 청나라를 따르기는 명분상 쉽지 않았을 것이다. 역사에 만약은 없지만, 광해군이 쫓겨나지 않았다면 병자호란을 피할 수 있었을까? 인조는 왕조와 나라 전체를 위기에 빠트린 장본인이라는 점에서 부정적인 평가를 하고 싶은데, 김훈은 그가 어떻게든 살 길을 도모하는 하나의 인간이라는 점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지식인들이 말로써 척화와 화친을 논할 때, 다른 한편에는 오로지 짐승 같은 감각으로 생존을 모색해 가는 백성들이 있다. 대장장이 날쇠(고수)는 추상적인 지식은 없지만 삶을 영위하는 가운데 많은 것을 습득한 가장 지혜로운 인물로 설정된다. 그는 살기 위해 깨친 능력을 대의를 위해 사용한다. 반면, 날쇠처럼 노비출신인 정명수는 살 길을 찾아 분투하다 여진말을 배워 청나라 장수 용골대의 통역관이 된다. 자신에게 아무 것도 주지 않았던 조국에 대해 적개심이 가득한 그는 청나라에 충성을 맹세한다.

남한산성에 고립된 왕과 신하들은 위기를 극복하려고 악전고투 하지만, 청나라의 압박이 점점 더 심해지자 결국 인조는 항복을 선언하고 청나라의 칸 앞에 무릎을 꿇는다. 이 역사적인 치욕의 장면까지 재현할 필요가 있는가 싶기도 하다. 그런데 인조가 창덕궁으로 귀환하고 최명길이 하늘을 바라보는 장면을 보면, 왕이 견딜 수 없는 치욕을 감내해야 했지만 그럼에도 삶이 더 낫다는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서인 것 같다. 작가의 말을 빌리면, “견딜 수 없는 것을 견디어야 하는 것이 삶의 길이라면, 견딜 수 없는 것은 없는 것인가.” 이 씬은 인정전의 문이 굳게 닫히는 장면으로 끝난다. 이어지는 영화의 장면에서, 날쇠는 대장간에서 다시 일을 시작하고 나루는 아이들과 뛰어논다. 국가의 지배자들이 궁궐의 문 안에서 또 다시 고립된 것처럼 묘사하면서, 노동을 통해 생존을 모색하는 백성들의 삶에 가치를 부여한다.

그러므로 <남한산성>을 가장 흥미롭게 보는 방법은 병자호란에 대해 알고 있는 지식과 굴욕적인 패전에서 파생되는 불쾌한 감정을 최대한 배제하고, 생존의 길을 찾는 다양한 인간 군상을 음미하는 것이다. 배우들의 열연을 감상하면서 그들의 입장과 주장을 생각해보면 더욱 흥미로울 것이다.

여기서 아쉬운 점은 영화가 원작을 충실하게 각색하기는 했지만, 글과 영상의 차이를 좀 더 고민했다면 훨씬 수작이 되었을 것 같다. 아울러 원작과 다른 두 부분을 지적하고 싶다. 하나는 김상헌의 운명이다. 원작에서 그는 인조가 항복을 결정하자 자결을 시도하는데 미수에 그친다. 나중에 그는 죽지 않기를 잘했다고 생각한다. 실재로 김상헌이 그 때 죽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이러한 묘사는 작가가 삶의 길에 더 무게를 두었기 때문인 것 같다. 반면, 영화에서 그는 칼로 자결하는데, 극적인 장면이 되기는 했으나 작가의 의도는 반감되었다.

다른 하나는 완전히 허구의 인물인 나루의 존재이다. 나루는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 유일하게 순수하고 밝은 존재로서 기능을 한다. 원작의 마지막 장에서, 10살 쯤 되는 나루가 초경을 시작하자 날쇠는 자신의 아들과 혼인 시킬 생각을 하며 웃는다. 영화에서 나루는 7살로 어려졌다. 따라서 나루는 여전히 원작에서의 기능을 하지만, 인간의 삶이 계속 이어진다는 메시지는 전달하지 못했다. 각색이 필요했다면 원작의 메시지를 담을 수 있는 아이디어가 있어야 했다.

P.S. : 원작에서 ‘못다 한 말’이라는 장이 인상 깊었다. 그 가운데 작가가 KTX에서 김대중 전 대통령을 우연히 만나 [남한산성]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 일화가 있다. 그 때 김 전 대통령은 ‘패자의 치욕을 감당하면서 나라의 생존을 도모해나간, 현실의 땅위를 걸어간 최명길을 조선시대의 가장 훌륭한 정치가의 한 사람’으로 평가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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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욱

연세대에서 사회학을 전공하고, 동국대와 중앙대에서 영화이론 석사와 박사 학위를 받았다. 영화사에서 기획과 시나리오 컨설팅을 했고, 영화제에서 프로그래머로 활동했다. 영화평론가로 글을 쓰면서 대학에서 영화 관련 강의를 하고 있다. 저서로는 <블록버스터의 환상, 한국영화의 나르시시즘>(2002), <YU HYUN-MOK>(2008), <나쁜 세상의 영화사회학>(2012), <한국영화는 무엇을 보는가>(2016)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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