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에 4번 귀가한 응급실 의사, 어떻게 됐을까?

[서리풀 논평] '착취'로 지탱하는 사회

긴 연휴를 앞두고 이런 기사를 읽는 기분이란. 더구나 휴일 동안 아수라장이 된다는 응급실 이야기다.

"- 이번 연휴에도 집에 못 들어가나요?"
"이번 금요일부터 어마어마하게 환자들이 몰려들 거예요. 연휴가 제일 무서워요."
"- 서른여섯 시간씩 밤새워서 근무를 하면 집엔 언제 가세요?"
"같이 일하는 OOO 선생은 1년에 네 번밖에 집에 못 간 적도 있어요."
"- 이런 식으로 얼마나 버티시겠어요? 건강도 사생활도 희생해 가면서."
"안 돼요. 안 된다니까. 그걸 알지만 가망이 없어요. 고쳐질 수도 없고 제가 고칠 수도 없어요."

(☞관련 기사 : 이국종 교수 "기대도 희망도 없지만, 원칙 버리진 않겠다")

한 해에(한 주가 아니고 한 달도 아니다!) 딱 네 번 집에 들어갔다는 응급실 의사는 도대체 어떻게 살아남았을까? 삶의 질은 그만두고라도 응급실 의사 노릇은 제대로 할 수 있었을까 궁금하다.

공교롭게 같은 날 같은 신문에 실린 기사가 겹쳐 보인다. 사람과 문제, 그리고 영역과 차원이 모두 다르지만 뭔가 통하는 것이 있다. 보통 '부실하다' '형식만 갖췄다' '엉망이다' 식으로 표현되는 것. 그리고 그 원인.

"2015년 보건복지부가 정신요양원 59곳에 대해 정리한 '정신요양원 장기 입원자 현황'에 따르면 가족 등 보호의무자에 의한 입원이 6476명(59.1%), 시·군·구청장에 의한 입소가 3351명(30.5%)에 이르렀다. 타인에 의한 강제입소 비율이 90%나 되는 셈이다. (…) 전체 장애인요양시설 이용자의 77%가 발달장애인이고, 90%는 기초생활수급자. (…) 사회적 취약계층 중에서도 제일 약자이며, 어려움에 처한 사람들이 장애인요양시설로 입소하고 있다."(☞관련 기사 : "가족 연락하고 싶은데 아무도 안 도와줘요" 어느 정신요양원의 추석)

정신요양원 장기 입원자가 어떤 삶을 사는지는 같은 기사에 잘 나와 있다. 이들에게 인권이니 정신건강이니 하는 것은 사치인 것처럼 보인다. 문제는 지역사회도 가족도 이들을 맞을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는 점이다. 지금도 겨우 건사하는 삶에 곁을 내줄 형편이 아니다.

원인이 무엇이든 우리 앞에 드러난 현실은 위태위태하다. 다 드러나지 않을 뿐, 응급실은 얼마나 위험할 것이며 정신요양원은 또 얼마나 정신건강을 훼손할 것인가? 말과 겉보기만 응급이고 요양이지 내용은 공허하고 곧 실상을 드러낼 것만 같다.

둘을 관통하는 원인이자 중간 결과는 구성원과 참여자에 대한 '착취'다. 돈, 사람, 물자가 턱없이 모자라는 가운데 그나마 형식적인 목표(응급 진료와 정신 건강)에 체면치레라도 하려면, 그 누군가의 시간, 정성, 감정, 건강, 복지를 빼앗아야 한다. 콘크리트의 철근처럼, 때로는 근본조차 남아나지 못한다.

착취 없이 작동하지 않는 것이 어디 이곳뿐이랴. 단 한 군데라도 예외가 있을까? 한창 시끄러운 파리바게뜨 불법파견 논란도 노동자를 착취해 먹고 사는 구조를 빼고는 설명하기 어렵다.


"회사는 인건비와 관리 부담을 줄이고 싶어 직접고용이 아닌 도급계약을 맺었는데 사실 제빵기사의 숙련도와 솜씨에 따라 파리바게뜨와 가맹점의 매출이 결정되기 때문에 직접 관리를 통해 효율성과 이익을 극대화해 왔던 것이다. (…) 파리바게뜨는 제빵기사들에게 연장근로수당도 주지 않아 110억 원을 지급해야 한다고 하니 '임금 도둑질'까지 한 것이다." (☞관련 기사 : 파리바게뜨, 제빵기사 직접 고용해야 하나)


착취는 주로 시장에서 벌어지지만, 그것은 가정과 가족에게 고스란히 이전, 전가된다. 시장 경계를 벗어나는 순간 규범과 문화를 비롯해 사회 전체가 착취를 뒷받침한다. 며칠 앞으로 다가온 추석도 이에 무관하지 않다.

"한국의 낮은 맞벌이 부모 비중은 남성의 장시간 노동, 낮은 가사분담률(무급노동시간 비중)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한국 남성의 가사분담률은 16.5%로 OECD 국가 중 일본(17.1%)을 제치고 최하위를 기록했다. 특히 하루 평균 가사노동 시간은 45분에 불과했다. 반면 주 50시간 이상 일하는 장시간 노동자 비율은 전체 노동자의 23.1%로 OECD 평균(13.0%) 보다 10.1% 포인트 높았다." (☞관련 기사 : 한국 맞벌이 비중 OECD 평균의 절반 수준···남성 장시간 노동과 가사분담 저조가 원인)

"차례를 지내는 경우 여전히 대부분의 노동을 여성이 담당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차례를 지낼 때 남녀의 가사 분담 비중은 남성 22.1%, 여성 77.9%로 평가됐다. 2011년(남성 22%, 여성 78%), 2013년(남성 22.7%, 여성 77.3%) 결과와 큰 차이가 없었다." (☞관련 기사 : "추석, 명절 아닌 휴일…가사노동은 여전히 여성 몫")


응급실, 정신요양원, 비정규 노동자, 가사노동이 이 모양이 될 때는, 조직이든 정부든 또는 가족이든 책임자가 있을 것이다. 법이나 제도 같은 작은 시스템이 잘못되어 있을지도 모른다. 금방 고칠 수 있는 사소한 잘못이 이런 엄청난 결과를 초래했을 수도 있다.

그런 문제 몇 가지를 손보면 착취의 강도가 약해지고 때로 해결될 수도 있다. 행정과 관료, 법과 제도, 재정과 자원 배분을 고치면 좋아지는 것도 있을 것이다. 사람의 마음과 자세 또한 왜 보탬이 되지 않겠는가.

매일 비슷하게 일어나는 일상의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 즉 '일상적 변화의 정치(politics-as-usual)'에 희망을 거는 것이다(<건강정책의 이해>(길 월트 지음, 김창엽 옮김, 한울 펴냄), 114쪽). 앞에서 인용한 기사의 주인공, 응급실 의사 이국종의 희망도 이에 닿아 있다.


"제대로 하는 모범을 한두 개 만들고 점차 그걸 세포분열 하듯 늘려가야 되는데, 외상외과의 기초도 모르는 사람들로 외상센터를 구성하니까 배가 산으로 가버렸어요. (…) 기준요건을 충족하지 못하면 지정 취소하고 지원금 환수하도록, 법에는 나와 있어요. 근데 그걸 누가 하겠냐고요? 관료주의에 요령주의가 겹겹이 얽혀 있는데."

그렇게 될 수 있을까? 냉정하게 보면 비관하는 쪽이 더 설득력이 있다. 착취는 한국 사회에 가득 차 있으면서 모든 것을 지탱하는 본질이자 구조인 것처럼 보인다. 구조인 만큼 착취는 종으로 횡으로 맞물려 영역을 넘나들고, 가해자와 피해자를 나눌 수 없는 '제 꼬리를 무는 뱀'이기도 하다.

복잡하고 어렵다. 장시간 노동으로 퇴근이 늦은 여성 노동자가 돌봄 노동자나 어린이집 교사를 닦달해야 하는 웃지 못할 착취의 고리! 자영업과 중소기업이 망한다고 최저 임금을 올리면 안 된다는 주장도 마찬가지다.

이 착취 구조의 정점을 찾아봐야 당장 뾰족한 수가 있을까 싶은 것도 비관과 냉소의 결과일 것이다. 조선업의 임금체불은 분명 착취 구조의 산물이고(관련 기사 : 조선업계 체불임금 막막), 그 정점에는 세계 수준의 거대 구조 그리고 수직 계열로 된 하청 구조가 자리한다. 그것을 이해한다고 해서 추석 명절이 조금 더 행복해지는 데 무슨 큰 소용이 있을까?


그래도 한 가지 낙관과 희망의 원천이 있다면, 착취 '관계'를 인식하는 데서, 그것도 실재하는 심층 '구조'를 이해하는 데서 변화가 시작될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의 삶이 거대하고 끈질긴 착취 구조에 기반을 두고 있다는 것, 누구도 거기서 예외가 아니라는 점을 밝히는 과학적 지식이야말로 변화의 마중물인지도 모른다.

사회적 착취에 대한 스튜아트 홀의 인식은 그런 실마리의 하나다.

"국가는 비록 모순된 세력이긴 하지만, 사회에서 수많은 세력과 힘의 노선들을 한데 모아서 특정한 '지배 체계'로 농축하려는 경향이 국가 체제에는 존재한다. (…) 국가는 폭넓은 사회적 측면에서 자본 축적의 공간을 계속해서 조직화하고 조정하며, 어떤 특정한 착취적 사회 질서를 지속시킨다."(<대처리즘의 문화정치>(임영호 옮김, 한나래 펴냄), 439~44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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