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독재, 페북 독재를 경계하라

[인터뷰] <한국인만 몰랐던 더 큰 대한민국> 저자 이만열 ②

2016년을 거쳐 2017년, 한국 사회는 큰 전기를 맞았다.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으로 분노한 국민들이 전국 각지에서 '박근혜 퇴진'을 외치며 촛불집회를 열었고, '1000만 촛불'의 힘으로 박근혜 대통령 탄핵과 조기 대선을 이끌어냈다. 그 결과 정권이 교체돼 문재인 정권이 들어섰다. 민주적이고 평화적인 시위로 이끌어낸 정권교체에 대해 전 세계가 주목했고, 우리 국민들은 큰 자부심을 얻었다.

하지만 촛불집회의 효용이 정권교체로 '끝'이어서는 안 된다. 대한민국의 '적폐 청산'은 문재인 대통령 혼자의 힘으로는 불가능한 과제다. <한국인만 몰랐던 더 큰 대한민국>(레드우드 펴냄)의 저자 이만열(임마누엘 페스트라이쉬) 경희대 교수는 프레시안과 인터뷰에서 촛불시민들이 "장기적이고 구체적으로 나라를 어떻게 운영할지 토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투표로 사회의 문제를 한 번에 해결해 줄 '초인(超人)'을 뽑으려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이런 초인은 어떤 경우에도 나타나지 않는다. 대신 우리가 뽑은 정치인이 어떤 활동을 하는지 감시하고 관찰해야 한다. 그러면 삶에 작은 변화가 생길 것이다."

지난겨울 칼바람에도 지치지 않고 촛불을 들었던 것처럼, "'습관적 정치'가 필요하다"고 이 교수는 강조한다. 특히 현재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사회가 또 다른 '독재'는 아닌지 소비문화에 대해 성찰하는 태도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페이스북 사용에 자기 선택권이 있나? 사용자인 우리는 페이스북 운영자들에게 아이디어를 제공할 수도, 어떤 사안에 대해 찬반 투표를 할 수도 없다. 페이스북에 공유된 게시물에 댓글을 달고 '좋아요'를 누르는 것으로 소통하고 투표했다며 '민주주의를 실현했다'고 자축한다. 하지만 이것이 정말 민주주의일까? 독재 아닐까? (...) 일상생활에 선택지란 없다. 기업의 결정에 따라 움직인다. 이 역시 독재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런 문제를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 박정희 체제만 독재였던 것은 아니다. 우리의 일상 또한 자유가 없는 '새로운 독재'의 모습이다."

그런 점에서 "변화의 첫걸음은 절제"라며 한국의 젊은이들에게 "차분하게 준비하라(Don't get mad; organize!)"고 당부했다. 다음은 이 교수와 인터뷰 2편이다.

(☞ 이만열 교수 인터뷰 ① : 사드배치=MD편입, 한반도는 이제 '전장'이 됐다)

▲ 이만열(임마누엘 페스트라이쉬)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는 10년째 한국에서 살고 있다. ⓒ프레시안(최형락)

"확산되는 데카당스, 공동체의 미래를 얘기하지 않는다"


프레시안 : <한국인만 몰랐던 더 큰 대한민국>에서 "오늘날 한국을 위협하는 가장 큰 요소는 북한도, 경기 침체도, 특정 정치인의 행태도 아"닌 "문화적 데카당스(Decadence, 퇴락)의 확산"이라고 지적했다. 압축적 근대화로 개인화를 경험하지 못한 한국 사회가 지금에서야 '개인에 대한 발견'을 하고 있기 때문은 아닐까? 문제는 이런 욕구가 퇴락으로 이어진다는 것이지만.

이만열 : 공동체의 미래에는 관심을 두지 않은 채 음식과 술, 성적 쾌락, 휴식과 스포츠 등에 탐닉하며 단기적인 만족을 인생의 목표로 삼는 것이 데카당스다. 이를 '개인주의'라고 부를 수도 있겠지만, 그보다는 '데카당스'가 적절한 표현이라고 본다. 이는 단지 한국인만의 문제는 아니다. 당장 우리 가족만 해도 기후변화나 빈부격차 등 공동체의 미래에 관심이 없다.(웃음)

프레시안 : '데카당스'와 '개인주의'의 차이를 '사회에 대한 책임감이 있느냐, 없느냐'로 보는 것인가? 그리고 현재 한국 사회는 그런 기본적인 책임감도 없다고 생각하는 건가?

이만열 : 많은 경우에 그렇다고 생각한다. 정부와 기업이 주관하는 세미나에 참석해 자문하곤 했다. 그런데 한 시간이고 두 시간이고 대부분 예산, 즉 돈에 대한 이야기만 했다. '한국 사회를, 우리 공동체를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에 대한 논의는 없다. 아무도 공동체의 미래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는다.

SNS와 스마트폰, 과연 민주주의의 산물일까?

프레시안 : SNS는 공동체의 미래를 이야기하고 토론하기에 좋은 공간이다. 그런데 이 공간조차 기업과 자본이 지배하고 있다. 그리고 스마트폰은 "그저 단발성 쾌락을 얻기 위해 남용"되고 있다.

이만열 : 사람들은 SNS, 특히 페이스북에서 열심히 토론하며 공동체의 미래를 논의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페이스북 검열 문제는 하루 이틀 일이 아니다. 또 수많은 토론과 아이디어가 2~3일이면 지워진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기업 페이스북에 불만을 토로하지 않는다.

한국의 대표 수출품인 스마트폰 역시 비디오게임과 의미 없는 채팅으로 하루하루 낭비되고 있다. 기업이 스마트폰을 만드는 목적은 돈벌이가 아니라 건전한 사회 조성이어야 한다. 스마트폰과 같은 첨단 기술은 필요하다. 하지만 사회적 논의를 거쳐 스마트폰 사용을 제약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프레시안 : 첨단 기술과 민주주의의 결합이라는 게 참 쉽지 않다. 기술의 개발과 발전을 이끄는 게 기업과 자본이라는 점에서 더 어려운 문제다.

이만열 : 페이스북 사용에 자기 선택권이 있나? 사용자인 우리는 페이스북 운영자들에게 아이디어를 제공할 수도, 어떤 사안에 대해 찬반 투표를 할 수도 없다. 페이스북에 공유된 게시물에 댓글을 달고 '좋아요'를 누르는 것으로 소통하고 투표했다며 '민주주의를 실현했다'고 자축한다. 하지만 이것이 정말 민주주의일까? 독재 아닐까?(웃음)

일상생활에 선택지란 없다. 기업의 결정에 따라 움직인다. 이 역시 독재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런 문제를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 박정희 체제만 독재였던 것은 아니다. 우리의 일상 또한 자유가 없는 '새로운 독재'의 모습이다.

이 같은 내용이 미국의 정치사상가인 셀던 월린(Sheldon S. Wolin)(전 프린스턴대학 교수)의 책 'Democracy Incorporated: Managed Democracy and the Specter of Inverted Totalitarianism'(국내 번역본 출간 안 됨)에 재미있게 기술되어 있다.

ⓒ프레시안(최형락)

1000만 촛불에도 '민주화'는 없었다

프레시안 : 지난겨울 촛불 집회는 한국 민주주의 역사를 새로 썼다는 평가를 받는다. 책 역시 '촛불시민에게 전하는 메시지'로 시작한다. 그런데 "정치인에게 많은 것을 기대해선 안 된다"고 했다. 어떤 의미인가.

이만열 : 한국의 문제점 중 하나는 스스로 만족하는 결과가 나왔을 때 '민주주의'라면서 '민주주의 국가여서 성공했다'고 자평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민주화(民主化)'가 어디 있나? 나는 촛불 정국에서도 민주화를 보지 못했다.(웃음)

촛불 시민들이 박근혜 정권을 탄핵한 것은 맞다. 하지만 '박근혜 나쁘다'라고만 했지, 장기적이고 구체적으로 나라를 어떻게 운영할지에 대해 토론하지 않았다. 탄핵 촛불 이후 집과 마을에서, 자신이 속한 조직에서 토론하지 않았다. 각종 연구소와 싱크탱크 등 세미나와 토론회를 열었지만, 참석한 시민들이 거의 없었다.

프레시안 : 당시에는 박근혜 정권을 중도 하차시키는 게 가장 큰 목표였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박근혜 탄핵과 조기 대선을 치른 뒤, '이제 됐다'는 생각으로 일상으로 돌아갔다.

이만열 : 정권을 누가 잡느냐는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정치인은 자신의 권력 유지에 이득이 될 때만 발 벗고 나선다. 정치인에게 큰 기대를 하지 말라. 정치인은 항상 때려야 한다.(웃음)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투표로 사회의 문제를 한 번에 해결해 줄 '초인(超人)'을 뽑으려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이런 초인은 어떤 경우에도 나타나지 않는다. 대신 우리가 뽑은 정치인이 어떤 활동을 하는지 감시하고 관찰해야 한다. 그러면 삶에 작은 변화가 생길 것이다. 스스로 변화의 주인공이 되어야 한다.변화는 어디에서 어떻게 시작될지 모른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스스로 먼저 변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본인도 자신의 변화가 가져올 희망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 개인적으로는 사람들이 이 기사를 보고 자극받았으면 좋겠다.(웃음)

"투표만 잘하면 민주주의가 실현된다는 생각은 문제의 핵심에서 완전히 벗어나는 것이다. 정당은 가장 낮은 단계의 정치 문화에 부응하며 발전한다. (중략) 시민들이 하지 않는 일을 정당이 대신해 줄 거라는 기대는 어리석다."(36쪽)

"상업화된 언론, 비판의식을 잃어가고 있다"

프레시안 : <조선일보>조차 촛불시민은 위대하다고 했다. 그런데 책에서 "'촛불시민은 위대하다'고 부추기는 언론의 감언이설을 경계해야 한다"고 충고했다.

이만열 : 그래서 의심스럽고, 믿을 수도 없다.(웃음) 시민은 언론으로부터 정확한 정보를 받을 권리가 있다. 그런데 나날이 언론은 살아남기 위한 선정성 경쟁에 몰입돼 비판의식을 잃어가고 있다. 더는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말하지 않는다. 한국 사회의 심층을 들여다보는 분석 기사 역시 찾기 힘들다.

▲ 이만열 교수의 1월 15일 자 '다른백년 주간논평'에 실린 이미지. 이만열 교수와 김기도 작가가 공동 작업했다.

프레시안 : 한국 언론의 가장 큰 문제는 정치 권력과의 결탁이다. 일종의 거래를 하는 건데, 이런 언론이 다수다. <프레시안> 같은 작은 매체가 목소리를 높여도 잘 전파되지 않는다.(웃음) 미국 언론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 같은데….

이만열 : 어찌 보면 한국보다 미국 언론이 더 심할지도 모른다. 미국은 한국에 비해 평균 교육 수준이 낮을 뿐 아니라, 지역신문이나 독립언론이 거의 남아있지 않다. 세상을 잘 이해하기 위해서는 기본적인 교육과 정확한 정보가 필요하다. 교육의 목적은 윤리 의식과 사회에 대한 이해를 갖추게 해 옮고 그름을 판단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그리고 언론의 역할은 제대로 된 정보를 제공하고 문제점을 지적해 사고를 확장시키는 것이다.

그런데 지금 언론은 '정치인 누가 누구를 만났다', '정치인 누가 SNS에 이렇게 말했다'라는 것만 보도한다. 국회에 어떤 법안이 상정되어 있고, 이 법안의 문제가 무엇인지 알 수 없다. 기업이 새로 출시한 물건을 홍보만 하지, 그 기업의 문제점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는다. 신문을 구독하고 있지만, 볼 게 없다.(웃음)

미국의 언론학자인 로버트 맥체스니(일리노이드대학 교수)는 책 'Rich Media, Poor Democracy: Communication Politics in Dubious Times'(국내 번역본 출간 안 됨)에서 '정부가 언론을 지원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교육과 마찬가지로, 언론이 상업화에 물들어 선정성 경쟁에만 몰입하면 안 된다고 보는 것이다. 시장경제에 내몰린 언론은 정보 제공과 감시 기능을 제대로 수행하기 어렵다는 얘기다. 물론 정부가 지원한다고 해도 여러 단계를 거쳐 예산이 투명하게 집행되어야 하지만.

"한국을 바꿀 DNA, 역사 속에 살아있다"

▲ <한국인만 몰랐던 더 큰 대한민국>(이만열(임마누엘 페스트라이쉬) 지음, 레드우드 펴냄) ⓒ레드우드
프레시안 : 책에서 효(孝)를 비롯한 유교(儒敎) 사상의 회복을 주문했다. 하지만 현재 한국 사회의 유교는 정치 철학이나 윤리관이 아닌 가족 간의 위계 질서 정도만 남아있다. 그래서 유
를 하나의 대안으로 제시하기란, 조금 공허한 것 같다.


이만열 : 유교에 대한 한국인의 일반적인 생각과 개인적인 생각은 다를 수 있다. 유교는 농업을 중심으로 한 환경적 사고와 절약을 바탕으로 한 반(反)자본주의 성격을 띠었다. 또 선비들은 도덕과 윤리를 공부하면서 공동체에 대한 책임감을 가지고 행정과 정치를 하는 구조였다. 지금 사람들은 그냥 옛날 선비를 좋아한다고 생각할 수 있다.(웃음)

프레시안 : 조선이 망하면서 일본의 식민지가 됐다. 이후 일제 치하에서는 자본주의가, 미군정 시대에서는 민주주의가 이식됐다. 조선시대는 불과 100년 전 일이지만, 오늘날 한국인들은 몇 세기가 지난 일이라고 여기는 실정이다.

이만열 : 한국인들이 한국의 전통문화를 경시하며 문화적 장점을 살리려는 노력이 부족하다고 본다. 한국을 바꿀 DNA가 역사 속에 고스란히 살아있는데 말이다.

중국과 무역 및 문화적 교류가 활발하던 통일신라시대 최치원, 장기적 관점으로 조선의 정치 철학을 구축한 정도전, 안보 중시 사회에 필요한 용맹함과 리더십을 보여준 이순신, 무분별한 물질주의에 대처하는 청렴(淸廉)의 롤 모델이자 정조의 정책을 통해 조선의 변화를 끌어낸 정약용 등 선조들에게서 한국인만의 잠재력을 찾아보는 것은 어떨까.

숫자로 변환하고 순위 매기는 사회

프레시안 : 10년 동안 한국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며 마주한 문제점을 조목조목 짚었다. 학생은 '왜?'라고 질문하지 않으며, 교육의 주체들은 교육을 '돈으로 구매할 수 있는 서비스'로 생각한다고 비판했다.

이만열 : 한국의 유치원과 초등학교는 수준이 높다. 하지만 올라갈수록 교육 수준과 경쟁력이 떨어진다. 이유가 뭘까?(웃음)

한국 학생들은 시험문제를 풀기 위해 어린 시절부터 학습을 시작한다. 이들에게는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한 발자국 떨어져 생각해 볼 기회가 거의 없다. 스스로 생각하고 대처하는 훈련도, 과학적인 방법으로 견해를 조율해 나가는 훈련도 거의 받지 않는다. 그래서인지 한국 학생들은 엄청난 내용을 알고 있는 듯하지만, 독립적인 사고를 못 한다.

프레시안 : 한국 교육의 가장 큰 문제는 지나친 경쟁이다. 학교폭력 문제 또한 경쟁 교육이 낳은 부작용이다. 프랑스 일간지 <르몽드>는 2013년 9월 '교육 강박증에 걸린 한국인'이란 기사에서 '한국 학생들은 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학생일지 모르지만 가장 불행한 학생이기도 하다'고 평가했다.

이만열 : 한국 교육이 미국의 일반적인 교육보다 낫다고 하지만, 그렇다고 미국의 가난한 젊은이들이 한국처럼 불행해 하지도 자살하지도 않는다. 공동 목표를 향한 호기심과 협력에 의해 결론을 도출하는 자유 토론, 책 읽기와 글쓰기 등의 교육을 하지 않는다면 한국 학생들의 배움은 제자리일 수밖에 없다.


ⓒ프레시안(최형락)
프레시안 : 한국은 매년 대학의 순위를 매긴다. 그리고 학생들은 SKY(서울대/고려대/연세대) 출신이냐, 지잡대(지방의 잡다한 대학) 출신이냐에 따라 신분이 나뉜다.

이만열 : 다른 나라도 서열을 매기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한국처럼 어느 대학을 나왔느냐를 문제 삼지 않는다. 취업할 때도 영어는 몇 점을 받았는지, 자격증은 몇 개인지 등 숫자가 중요하다. 교수들 또한 좁은 범위의 학술지에 논문 몇 편을 게재했느냐로 평가된다. 숫자로 변환하고 순위를 매긴 다음에야 가치를 인정받는 식이다.

프레시안 : 한국의 젊은이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이만열 : 첫 번째, 사람에게 기대하지 말라. 특히 정치인에게 기대하지 말라. 두 번째, 차분하게 준비하라(Don't get mad ; organized!). 세 번째, 소비문화에서 벗어나라.

젊은이들은 존재 자체가 희망이다. 따라서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는 힘이 있다. 친구 두세 명과 함께 진지하게 토론하고 조직화해 장기적인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 필요 없는 것은 먹거나 쓰지 않아야 한다. 변화의 첫걸음은 어떤 의미에서 절제다. 정치인이 아닌, 우리가 먼저 시작해야 한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습관적 정치'다. 문화는 정책을 통해 바뀌기보다 각 개인이 습관을 바꿈으로써 서서히 변화한다. 일단 위기를 넘기고 법안만 통과시키면 된다는 단기적 사고에 머물기보다, 사회 문제가 각 개인의 일상적 행위에서 비롯한다는 사실을 직시해야 한다."(4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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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홍기혜

프레시안 편집·발행인. 2001년 공채 1기로 입사한 뒤 편집국장, 워싱턴 특파원 등을 역임했습니다. <삼성왕국의 게릴라들>, <한국의 워킹푸어>, <안철수를 생각한다>, <아이들 파는 나라>, <아노크라시> 등 책을 썼습니다. 국제엠네스티 언론상(2017년), 인권보도상(2018년), 대통령표창(2018년) 등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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