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려하지 않으면 약탈자가 되고, 그건 짐승이라는 뜻"

[함께 사는 길] 새들에게서 얻는 지혜

요즘 나의 강연 주제는 '공유(公有)'입니다. '공존(共存)'은 공유함으로써 가능하다는 것을 이야기하기 위해서입니다. 사람들은 공존은 인정하면서도 공유에는 인색합니다. 함께 살기 위해서는 공유해야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공유는 인류의 공통된 화두입니다.

우리는 논과 밭도 자연과 공유합니다. 농번기에는 인간이 쓰고 농한기에는 야생동물이 씁니다. 요즘은 앞마당에서 혼자 즐기던 화분을 밖에 내놓는 걸 볼 수 있는데, 이 역시 공유입니다. 아들딸이 시집·장가들면 사돈끼리 아들딸을 공유하게 되고, 아들을 군대에 보내면 국가와 공유하게 됩니다. 뼈 빠지게 자식을 키워 세상으로 내보내는 것도 실은 나를 위해서가 아니라 세상을 위해서입니다. 심지어 은행에 저금한 재화도 공유합니다. 다른 사람이 빌려 쓰고 있으니까요. 우리는 알게 모르게 많은 것을 공유하고 삽니다.

▲ 새들 먹으라고 벚꽃나무 가지에 모이 바구니를 묶어놓았더니 다람쥐도 와서 먹는다. ⓒ도연

제 거처인 토굴의 이름은 도연암입니다. 예전에 스승께 암자의 이름을 부탁드리자 "네가 사는 곳이니 네 이름으로 하라"고 하셨던지라, 그렇게 이름 지은 터입니다. 사찰이지만, 공유하기 위해 도연암에 자연학교(산새학교)를 만들었습니다. 사찰은 대개 숲에 있어서 지극히 생태적인 듯 보이지만, 딱히 그렇지는 않습니다. 사실 종교도 인문학이나 다름이 없습니다. 인문학이란 사람이 어떻게 살면 서로 공유하고 배려하며 행복하게 살까를 연구하는 학문입니다. 인문학은 자연생태에서 출발합니다. 그러니까 잠자리 한 마리, 작은 새 한 마리, 풀 한 포기를 이해하지 못하고는 사람, 즉 인간생태계를 이해할 수 없다는 얘기입니다. 자연생태계를 이해하고 인간생태계를 이해하면, 우울증으로 고생하는 사람이나 자살하는 사람도 줄어든다고 생각합니다.

도연암 자연학교의 주인공은 산새입니다. 새(조류)는 모든 생태계의 정점에 있습니다. 조류를 공부하기 위해서는 식물도 알아야 하고, 곤충도 알아야 하고, 수서생물도 알아야 합니다. 자연생태계를 이해하지 못하면, 인간은 정복자 또는 약탈자에 불과합니다. 사실 인간은 세상의 약탈자입니다. 더 많은 소비를 하기 위해서 자연을 마구 훼손합니다. 앞마당에 풀을 뽑으면서 문득 인간은 지구별에서 어떤 존재일까 생각해봅니다. 소비를 일삼고 자연을 멋대로 훼손하는 인간은 혹시 지구별에서 가장 쓸모없는 존재는 아닐까요.

배려하는 삶을 생각합니다. 우리는 어릴 때부터 놀이터에서 시소 타기로 배려와 협동과 균형을 배웁니다. 시소를 즐겁게 타기 위해서는 무거운 사람이 뒤로 앉아 균형을 맞추어야 합니다. 시소가 서양 것이라면 한국에는 전통놀이 널뛰기가 있습니다. 널뛰기 역시 무게 균형을 맞추어야 즐겁습니다. 내가 높이 뛰어오르려면, 상대방을 높이 띄워야 합니다. 서양의 시소보다는 한국의 널뛰기가 훨씬 과학적입니다.

이렇게 우리는 배려와 협동과 균형을 배웠으면서도 성장하면서 무한경쟁 사회로 진입합니다. 잘 먹고 잘 살기 위해서입니다. 잘 먹고 잘 살기 위한 배후에는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는 생존전략이 프로그래밍 되어 있는 유전자(DNA)가 있습니다. 모든 생명체는 영원한 삶을 추구합니다. 흔히 자손으로 일컬어지는 씨앗으로 끊임없는 삶을 이어가는 것이죠.

▲ 뻐꾸기 암컷이 딱새둥지에 탁란하려고 기회를 보고 있다. ⓒ도연

새들은 수컷이 아름답고 번식기가 되면 저마다 목소리를 뽐내며 웁니다. 멋지고 건강한 암컷을 차지하여 삶을 이어가기 위해서입니다. 인간도 마찬가지입니다. 안경을 고를 때 거울을 봅니다. 편하고 잘 보이면 되는데 남을 의식하는 거죠. 옷을 고를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심지어는 거울에 뒷모습을 비춰봅니다. 화장품도 좋은 것을 고릅니다. 이런 행위들 역시 유전자의 음모입니다. 남보다 더 아름답고 건강하게 보여야 좋은 짝을 만날 가능성이 높아지니까요.

힘이 센 아이가 약한 아이를 못살게 굽니다. 이런 아이들에게 내가 이릅니다.

"네가 약한 아이를 괴롭히는 것은 당연한 거야. 너는 잘못이 없어. 너의 유전자가 시키는 거니까. 인간은 만물의 영장이라는 말을 아니? 인간은 배려할 줄 아는 동물이라는 뜻이야. 강한 사람이 약한 사람을 돕고 배려하는 걸 인간답다고 해. 배려하지 않으면 약탈자가 되고 그건 곧 짐승이라는 뜻이야."

아이는 금세 알아듣습니다. 인간이 유전자를 컨트롤하지 못할 때 나쁜 일들이 일어납니다. 분노조절장애 같은 것들도 결국은 유전자를 컨트롤하지 못할 때 일어납니다. 우리가 어릴 때부터 자연을 공부하고 이해하고 사랑하는 법을 배웠다면, 나쁜 일은 훨씬 줄어들었을 것입니다.

▲ 새집을 달아주면 새만 와서 살지 않는다. 하늘다람쥐가 이 집의 주인이다. ⓒ도연

창문 밖에서 참새들이 소란스럽습니다. 마치 전폭기가 지상을 공격할 때처럼 참새들이 땅을 향해 파상공격을 감행합니다. 짐작대로 살모사 한 마리가 있었습니다. 뱀이 나타나면 새들은 종을 가리지 않고 협동하여 뱀을 쫓아냅니다. 매가 나타나면 직박구리와 까치들이 모여들어 협동으로 물리칩니다. 뻐꾸기는 남의 둥지에 탁란을 합니다. 뻐꾸기가 나타나면 직박구리, 꾀꼬리, 까치 등이 맹렬히 쫓아냅니다. 어떤 녀석은 산 너머 멀리까지 따라가 혼쭐을 냅니다. 새들도 뻐꾸기가 남의 둥지에 알을 낳고 제 새끼를 남에게 기르게 하는 얌체족인 것을 아는 까닭이죠.

새에게서 얻는 지혜를 생각합니다. 새는 손대신 날개를 선택한 존재입니다. 날개를 선택한 것은 소유를 포기하고 대(大)자유를 얻기 위해서입니다. 어디에도 걸림 없는 자유는 소유와 명예를 포기할 때만이 가능합니다. 새들이 손을 선택하고 소유를 선택했다면, 저 아름다운 숲을 누리는 행복은 없었을 것입니다. 꾀꼬리 어미가 다 자란 새끼들을 데리고 계곡을 가로질러 날아갑니다. 사람은 땀을 뻘뻘 흘리며 건너야 할 계곡을 새는 단숨에 건너갑니다. 사람들이 자동차를 몰고 매연을 내뿜으며 좌충우돌 오갈 때 새들은 공중에 직선을 그으며 날아갑니다. 높은 하늘에서 새들이 인간을 보고 뭐라고 할까요. 인간들 참 미련하다고 하지 않을까요?

새들 먹이로 땅콩이나 해바라기 씨를 놓아주면 열심히 물어다 감춥니다. 한 아이가 "스님, 쟤들 감춘 거 다 찾아 먹나요?" 하고 묻습니다. 새들은 먹이를 감출 때 다 같이 감춥니다. 그리고 다 같이 찾아 먹습니다. 새들은 공존을 위해 일찌감치 공유를 터득한 것입니다.

▲ 되지빠귀 한 마리가 전선에 앉아 생각에 잠겼다. ⓒ도연

앞마당 느티나무에 걸린 인공둥지에서 흰눈썹황금새가 새끼를 키우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미가 먹이를 물어오지 않고 둥지 근처에서 계속 울기만 합니다. 둥지를 내려 살펴봤더니 새끼들이 모두 사라졌습니다. 뱀의 소행으로 짐작됩니다. 어미는 보름 넘게 울다가 어디론가 사라졌습니다. 한 아이가 소리칩니다.

"스님! 산초나무에서 호랑나비가 태어났어요!"

▲ 뱀에게 둥지를 털려 새끼를 잃은 흰눈썹황금새 내외는 일주일을 저 자리에서 울다 사라졌다. ⓒ도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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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사는 길

월간 <함께 사는 길>은 '지구를 살리는 사람들의 잡지'라는 모토로 1993년 창간했습니다. 사회적 약자와 생태적 약자를 위한 보도, 지구적 지속가능성을 지키기 위한 보도라는 보도중점을 가진 월간 환경잡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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