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대선에서 외교안보, 특히 북한의 핵문제, 남북한 사이의 대립과 갈등이라는 한반도 문제의 해결책을 둘러싸고 당시 문재인 후보와 다른 후보들(홍준표, 안철수, 유승민) 사이에는 중요한 시각 차이가 있었다.
좀 거칠게 정리하면, 문 후보는 한반도 문제 해결에 있어 접근과 대화를 통한 해결과 함께 한국 정부가 더 적극적인 행위자로 나서야 한다는 것을 강조했다. 반면, 다른 후보들은 제재와 압박을 통한 문제 해결 및 한미동맹, 국제 공조에 더 큰 방점을 찍었다. 무엇보다 국제사회가 북한 핵에 대한 제재 국면에 있다는 것이 가장 큰 이유였다. 대선에서 공식화된 문재인 대통령의 한반도 문제 해결 비전은 상황을 계속 악화시켜 온 지난 이명박-박근혜 정부의 기조와는 궤를 달리하는 전환적인 것이었다. 문재인 대통령이 당선된 데에는 이러한 외교안보의 변화된 비전도 일정한 역할을 했을 것이다.
그러나 최근 심상치 않은 한반도 상황에 대처하는 문재인 정부의 태도는 변화를 기대했던 사람들을 실망스럽게 한다.
미국과 북한, 그리고 주변국들이 쏟아 놓는 말 폭탄들은 아슬아슬하게 임계점을 넘나들고 있다. 외교적 언어는 점점 약해지고, 전쟁의 언어들이 점점 더 크게 들린다. 말 뿐만이 아니다. 북한의 핵과 미사일, 미국의 전략 폭격기가 한반도 상공을 오가고, 중국과 일본 역시 덩달아 군사적 긴장을 강화한다.
문재인 대통령의 대선 공약대로라면, 능동적 당사자로서 한국정부는 이런 열전을 주도적으로 자제시키고 대화와 협상의 활로를 열기위해 노력해야 한다. 그러나 한국 정부의 모습은 잘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문재인 정부는 전격적으로 사드 추가 배치를 결정했다. 한미 동맹과 국제 공조에 따른 대북 제제에 편승하고, 심지어 카드가 있을 것 같지 않은 독자적 대북 제재 추진을 말하고 있다. 연이어 강경한 입장이 꼬리를 문다.
물론, 정부는 북한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발사 등 추가 도발에 따른 정세 변화와 이에 따른 국제적 제재 국면이라는 불가피한 상황론을 제기한다. 그러나 이런 설명은 대선에서 동일한 논리로 제재와 압박을 통한 문제해결을 주장했던 '다른 후보들이 옳았다'라는 고백처럼 들린다. 또한 상황론, 동맹론에 기대 제재와 압박만으로 귀중한 시간을 흘려버린 지난 이명박-박근혜 정부 기조와도 다를 게 별로 없어 보인다.
전환적 정책이란 예견된 위기 때문에, 예견된 실패를 피하기 위해 구상된 것이다. 따라서 전환적 정책은 위기에서, 혹은 위기에도 불구하고 작동되고 빛을 발하는 것이지, 모든 조건이 다 좋다면 할 수도 있는 그런 종류의 정책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문재인 대통령은 집권 직후 베를린에서 '새정부의 한반도 평화구상과 정책기조'를 천명한 바 있다. 문재인 대통령에 앞서 과거 두 명의 대통령이 대외정책, 특히 남북관계의 중요한 정책기조를 독일에서 발표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과 박근혜 전 대통령이다. 대통령들의 대북정책 발표에 독일이 선호되는 것은 통일이라는 상징성을 갖는 공간적 이점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같은 공간에서 발표된 두 대통령의 비전은 우리가 익히 알다시피 그 결과가 완전히 판이했다.
김대중 대통령은 여러 가지 조건에도 불구하고, 문제를 실제로 다뤘고, 변화를 일구어 냈다. 반면 "통일 대박"을 말한 박근혜 대통령은 여러 가지 조건을 이유로, 문제를 대면하지 않았고, 상황을 더 악화시켰다. 두 대통령의 길을 가른 것은 선언 이후 문제 해결을 위해 실체적으로 대면하고 씨름했는지 아닌지에 달려 있었다. 선언 이후 주어진 조건에 달려 있었던 것은 아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어느 대통령의 길을 따라 갈까. 아마 다수 국민은 문재인 대통령의 선의를 의심하지 않을 것이다. 그의 선의는 평화로운 한반도를 가리키고 있다. 그러나 그의 선의는 목표를 향해 가는 경로에 가로 놓인 늪지대와 진흙탕, 사막에 대해서, 또 이것을 그가 어떻게 넘어 설 수 있는지, 가지고 있는 수단이 무엇인지 말해줄 수 없다. 그래서 정치지도자의 선의는 언제나 불완전하고, 불확실하다.
정치의 단단함이란 선의와 실체를 결합할 수 있는 지도자의 능력이다. 주어진 조건에 적응하려 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대가를 치르던 간에 완강한 자세로 목표를 향해가는 집요함이다. 진짜와 가짜는 여기서 갈린다.
8월 위기론으로 표현되는 현 한반도 위기는 문재인 대통령의 남북관계 정책 비전이 공허한 것인지 아니면 작동될 수 있는 것인지를 판별하는 가장 먼저 부딪친 난관이랄 수 있다.
한반도 문제는 대체로 세 가지의 객관적 제약이 존재한다. 무엇보다도 한반도 문제는 '전쟁'이란 정치적 수단은 불가하다는 것이다. 두 번째는 핵을 가진 북한의 객관적 실제이다. 이것은 우리가 인정하든 하지 않든 자명한 현실이다. 세 번째는 한반도에는 각기 상이한 국가이익을 갖는 두 개의 나라가 있다는 것이다. 이것 역시 우리의 소망이나 의지 너머에 존재하는 실체이다. 이 모든 것을 꿰는 하나의 비전은 평화일 수밖에 없고, 외교는 이것을 풀 수 있는 유일한 정치적 방법이다.
한반도 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추구했던 과거 민주파 정부의 지도자들은 외교적 설득을 위해 "this man"이라는 모멸적 말을 들어가면서도 설득을 멈추지 않았고, '미국에 할 말은 하겠다'며 동맹관계를 긴장시키기도 했다. 모두 성공적인 것은 아니었지만, 외교적 설득을 위해 할 일을 하겠다는 분명한 입장만큼은 평가되어야 한다.
열전을 평화로 바꾸는 데 미국을 설득하는 것이 필요하다면, 그 가장 큰 책임은 적대국인 북한이 아니라 동맹인 한국 정부의 역할이 더 유효해야 하며, 북한을 설득하는 데는 한반도 문제의 가장 중요한 당사자인 한국 정부가 역할을 해야 한다. 우리는 한반도 문제의 운전대를 잡겠다는 문제인 정부의 '선언'은 들었지만, 실제로 그가 그 자리에 앉고자 하는지에 대해서는 아직 듣지도 보지도 못했다. 한반도 문제를 미국과 북한의 아슬아슬한 말의 난투극에 맡겨두어서는 안 된다.
다수의 통치자를 경험해 온 시민들은 정책의 진위를 판별하는데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그리고 무엇보다 한반도 위기의 그림자가 너무 짖다. 이것은 문재인 정부가 스스로의 단단함을 증명할 시간이 그리 많이 남아있지 않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가 수단을 갖고 있을까? 우리는 절실하지만 안타깝게도 아직 확신하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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