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정욱의 축제여행 에세이] 화천 사내면 사람들이 만든 ‘화천 토마토 축제’를 가다

세계 유일 분단국가….최전방 분단 마을에 ‘토마토 전쟁’이 시작된다

2017년 8월 4일. 8월의 첫 금요일 오후. 7월의 장맛비가 지나간 손바닥만한 태백산맥 접경마을은 온통 토마토 향이 코끝을 진하게 비볐다.

전방 군부대가 주둔한 접경지 마을. 강원도 화천군 사내면 사창리가 토마토 축제를 시작한지 벌써 몇 해가 지났다.

▲4일 개막된 강원도 화천군 사내면에서 개막된 화천토마토축제에서 황금반지를 찾아 기뻐하는 한 소녀의 모습. ⓒ프레시안(서정욱)

내가 축제장에 들어섰을 땐 군부대 장병 면회객들이 아니면 찾지 않던 이 작은 마을은 토마토 축제로 들썩였다.

나는 7년 만에 카메라를 들고 이 곳을 다시 찾았다. 해가 지나도 전방부대가 주둔한 면소재지들이 대부분 그렇듯 부대를 낀 마을에는 시대가 변해도 늘 변함없이 먹는 자장면의 인기 탓에 중국집과 치킨집 간판이 그대로 있다.

그리고 그 때 그 피자집도 그대로이고, 갓 구어 낸 빵을 진열한 빵가게와 자장면 집사이로 외박병사들을 수없이 재웠을 모텔이 변함없이 나를 반겼다.

1개면에 두 개의 사단병력이 주둔한 접경마을. 차를 타고 가는 내내 뉴스는 핵문제로 8월의 태양보다 더뜨겁다.


▲4일 화천토마토축제가 열리는 강원도 화천군 사내면 의 8월의 풍경. ⓒ프레시안(서정욱)

그러나 마을은 한가로운 평화가 푸른 계곡에 토마토를 실은 거대한 트럭으로 진홍빛 토마토 색깔을 입었다.

아침 일찍 서울을 떠나느라 아침을 거른 나는 중국집에서 여름 콩국수 한 그릇으로 점심을 먹었다.

그리고 오후 3시. 토마토 축제가 열리는 축제장으로 가기 위해 숲 속 양 사이로 흐르는 지천을 따라 걸었다.

장맛비를 듬쁙 먹은 8월의 풀들이 우거진 밭둑은 밀레의 저녁으로 가는 오후를 연상시켰다. 여름 방학으로 텅빈 초등학교와 마을을 가로 지르는 작은 강을 지나 토마토 축제장으로 들어갔다.


▲4일 개막된 화천토마토축제장 임시 분수장을 뛰어 다니며 즐거워 하는 한 어린이. ⓒ프레시안(서정욱)

가로수처럼 옆 광장에 만든 분수 물줄기 속으로 토마토축제를 즐기려는 어린 관광객이 폴짝 뛰어든다.

방학을 맞은 아이들과 함께 온 가족들이 많다. 이동식 간이 샤워장 박스 앞에 수 천명은 될 듯한 토마토 관광객이 토마토를 실은 거대한 트럭을 기다리며 원을 그리며 서있다.

▲토마토 축제장으로 쏟아지는 토마토들.ⓒ프레시안(서정욱)

8월의 금요일이 분홍빛 토마토로 물들기를 기다리는 사람들 사이. 나는 그들과 함께 접경지 마을에서 분홍빛 토마토 전쟁을 숨죽이며 기다렸다.

손목시계를 보았다. 작은 시침이 3시를 알렸다. 시계 초침은 접경지 마을이 안고 사는 과거 한국 전쟁의 화약 냄새 대신 토마토 냄새를 뿌렸다.

7년 만에 맡은 한 트럭의 토마토 냄새. 나는 관갱객들과 함께 사내면 사람들이 만든 토마토 축제를 함께 즐겼다. 분홍빛 토마토를 닮은 8월의 태양을 향해 하늘높이 토마토를 던지고, 터트리며 하루 스트레스를 다 풀어버리는 사람들.


▲4일 개막된 화천토마토축제장에서 토마토를 하늘로 날리며 즐거워 하는 관광객들. ⓒ프레시안(서정욱)

잡초와 옥수수 대궁이 무성한 8월의 분단 마을에서 나는 스페인 발렌시아 지방의 부뇰마을의 토마토 축제를 떠올렸다.

1932년 투우축제가 금지되면서 더 이상 축제를 즐길수 없었던 부뇰마을 사람들에게 활기를 되찾아 준 건 ‘토마토전쟁’ 이었다.

부뇰 마을의 토마토 축제는 토마토가격 폭락때문에 마을사람들이 시의원들에게 토마토를 던지며 시작되었다는 유래가 있다. 그런가 하면 1945년 마을 광장의 고적대 가장행렬에 끼어든 행인과 가장행렬 집단 간의 충돌 때 누군가 마을 거리 상가에 진열된 토마토를 서로 던지면서 토마토 전쟁이 시작되었다는 또다른 유래설이 있다.

하지만 스페인 토마토 축제가 시작된 건 마을청년들이 토마토 장례식을 거행하면서라고 한다.


▲4일 열린 토마토축제장에서 토마토를 야구선수 처럼 멋지게 던지는 한 소녀. ⓒ프레시안(서정욱)

나는 트럭에서 쏟아지는 토마토를 보며 생각했다. 사내 마을의 토마토 축제는 어떻게 시작되었을까? 궁금했다.

7년 전에도 나는 똑같은 생각을 했다. 세계 유일의 분단국가. 그 분단의 국경선이 가장 가까운 마을에서 핵폭탄의 위협을 받는 사내면 마을사람들. 그들은 아마도 핵폭탄 대신 토마토를 던지며 평화를 즐기고 싶을지도 모른다. 그런 생각을 하는 사이 토마토 차량이 토마토를 쏟아내자 탄성이 절로 퍼진다.

토마토 차량이 부어 놓고 간 자리. 사람들이 축제를 즐기기 시작했다. 스페인 부뇰마을처럼 마을의 거리 건물들이 비닐을 치고, 토마토 전쟁을 준비하지는 않았지만 수많은 관광객들이 토마토를 재배하는 사내면 사람들과 한마음이 되고 있었다.

쏟아진 토마토와 함께 울려 퍼지는 사람들의 탄성. 토마토가 사람사이로 날라 다닌다.

그리고 흰옷을 입은 아이와 관광객들 얼굴과 온 몸에 토마토가 펑!펑! 터진다. 그 한켠. 물보라가 사방에서 소낙비처럼 쏟아진다다. 토마토와 물이 범벅이된 사람들은 언젠가 내가 읽은 동화 속 토마토 수영장 같다.

‘토마토 전쟁’ 즐기는 어린이들과 관광객들.


콩나물시루처럼 꽉 찬 토마토 위로 질주하는 수많은 사람들. 발가락 사이로 ‘툭툭’ 터지는 토마토 소리들과 비명들. 그 사이로 황금 반지를 찾아 기쁨을 감추지 못하는 한 소녀가 ‘브이’ 자를 그리며 나온다.

그 소녀 뒤 켠에는 아직도 주홍빛 토마토가 새처럼 날아간다. 눈싸움처럼 토마토를 던지는 사람들 사이. 미끄러지며 즐거워하는 아이들.


▲4일 열린 화천토마토 축제장에서 토마토를 던지며 '토마토전쟁'을 치른 아이들과 관광객들이 샤워를 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프레시안(서정욱)

토마토 전쟁은 토마토 샤워 속에 그칠 줄 모른다.

8월의 더위가 다 날라 가는 축제장. 누구는 먹을 걸 갖고 저런 장난으로 소비해도 되느냐고 할 수 도 있다. 그러나 이 역시 문화의 변화이다.

그리고 이들이 부뇰축제를 모방 했든 아니든 축제는 축제다.

짧은 시간이지만. 어린이 어른 할 거 없이 행복해 하는 사람들에게 8월이 시작되었다. 매년 8월 마지막 주 수요일에만 열린다는 스페인 부뇰마을과 달리 금요일부터 4일간 분단의 핵을 날려버릴 만큼 평화로운 토마토 축제라는 생각을 한다. 그래서 더 의미 있는 축제.


▲4일 열린 화천토마토축제장을 찾은 아이들이 샤워지 앞에서 8월의 무더위를 날려보내며 즐거워 하고 있다. ⓒ프레시안(서정욱)

좀 더 바란다면.... 스페인의 축제에 비해 손색없는 산촌마을을 둘러싼 산과 숲 속. 그리고 마을을 가로지는 숲속의 운하 같은 예쁜 강의 풍경을 가진 마을 축제가 중국집 있고 치킨집이 있는 마을 시가지에서 토마토가 펑펑 터지는 풍경을 본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이 다시 아쉽게 남는다.

그 가능성의 공간적 여건을 갖춘 사내마을. 여기에다 분단국가의 최전방 분단 마을이라는 아픈 역사가 흐르는 이 마을은 상징성이 있다.

오늘 나와 함께 축제를 즐긴 건 사내면 마을 사람들보다는 관광객들이다. 그들은 스페인 부뇰사람들이 즐기는 토마토 전쟁처럼 열정적으로 즐겼다. 미식축구팀들처럼 슬라이딩을 하며 토마토 속으로 빠져든 그들은 토마토를 사랑하는 분단 한국 속의 또다른 토마토 요정들이었다.


▲4일 강원도 화천군 사내면에서 개막된 화천토마토 축제장을 찾은 관광객들이 이곳 주민들과 함게 어루러져 행복한 축제를 보내고 있다. ⓒ프레시안(서정욱)

토마토가 없었다면 이 축제는 상상할 수없다.

동화 같은 상상이라 할지 모른다. 그러나 이 마을의 토마토 축제의 미래를 상상해 보고 싶다. 마을 고적대의 트럼펫 소리 북소리가 분단 전선에 울려 퍼지고...토마토 요정 옷을 입은 동화 같은 가장행렬을 사내면 마을 사람들이 진심으로 꾸미고, 마을 거리마다 비닐이 쳐진 건물들 위로 토마토와 빵, 토마토 스파게티가 하얀 가운을 입은 주방장들의 후라이팬에서 날아가는 주홍빛 토마토 선물을 관광객들에게 주면 좋겠다는 생각을 또 곱씹는다.

그런 생각을 하는 사이. 어느덧 사내면 마을에 오후가 저물어가고 있다.. 토마토 전쟁이 끝난 마을 옥수수 밭 숲을 걸어 나와 차에 올랐다.


▲4일 개막한 화천토마토축제장을 찾아 관광객들이 8월의 더위와 스트레스를 날려보내며 즐거워하고 있다. ⓒ프레시안(서정욱)

집으로 돌아가는 차안에서 오늘 내가 찍은 몇 장의 토마토 축제 풍경 사진을 검색하며 생각했다. 북한 핵 문제로 얼어붙은 분단 마을의 소원처럼 남북한 사람들이 다음 토마토 축제에서는 핵 대신 서로 토마토를 던지며 즐기는 토마토 전쟁을 하기를 바라며 마을을 빠져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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