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세현 "ICBM 쏜 북한에 무슨 대화냐고? 한 수만 앞을 보자"

[정세현의 정세토크] "북한 文대통령 제안 거부 명분 없을 것"

문재인 대통령의 쾨르버 선언에 북한이 어떤 답을 내놓을지 주목되는 가운데,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은 문 대통령이 6.15와 10.4 정상선언을 전제로 북한에 제안했기 때문에 북한이 이를 거부할 명분을 찾기가 어려울 것으로 내다봤다.

문재인 대통령은 6일(현지시간) 베를린에서 진행한 '쾨르버재단 초청 연설'에서 △정상회담을 포함한 남북 대화 재개 △10.4선언 및 추석 계기 이산가족 상봉 △평창 동계올림픽 참가 △군사분계선 상호 적대행위 중단 등을 제안했다.

이에 대해 정 전 장관은 7일 <프레시안>과 전화 인터뷰에서 "문 대통령이 6.15와 10.4 선언을 존중한다고 맨 처음에 언급했는데, 이는 북한이 남한의 제안을 거부할 수 있는 퇴로를 차단한 것으로 보인다"고 진단했다.

그는 "북한은 그동안 이명박-박근혜 정부가 6.15와 10.4선언에 대한 존중 의사가 없다고 비판해왔다. 따라서 문재인 정부가 이 선언을 존중하겠다고 이야기한 것은 그동안 지속적으로 북한이 요구해왔던 것을 들어준 셈"이라며 "북한이 거부할 명분을 찾기 어려울 것"이라고 내다봤다. 다음은 인터뷰 주요 내용이다.

▲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 ⓒ프레시안(최형락)

프레시안 : 문재인 대통령이 6일(현지 시각) 쾨르버 재단 초청 연설에서 북한에 △정상회담을 포함한 남북 대화 재개 △10.4선언 및 추석계기 이산가족 상봉 △평창 동계올림픽 참가 △군사분계선 상호 적대행위 중단 등을 제안했습니다.

그런데 북한이 지난 4일 대륙간 탄도 미사일(ICBM)까지 쏘면서 사실상 핵과 미사일 개발을 지속하겠다는 의사를 밝혔고, 문재인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민간교류 및 인도적 지원도 거부한 바 있습니다. 북한이 문 대통령의 제안에 호응할까요?

정세현 : 문 대통령이 연설에서 6.15와 10.4 남북 정상 선언을 존중하겠다고 밝혔습니다. 그 뒤에 구체적인 제안을 했습니다. 이로써 북한이 남한의 제안을 거부할 수 있는 퇴로를 차단시켰다고 봅니다.

북한은 그동안 이명박-박근혜 정부가 6.15와 10.4선언에 대한 존중 의사가 없다고 비판해왔습니다. 따라서 이 선언을 존중하겠다고 문재인 정부가 이야기한 것은 그동안 지속적으로 북한이 요구해왔던 것을 들어준 셈이 됐습니다. 그 토대 위에서 나온 대북 제안을 북한이 거부할 명분을 찾기가 어렵습니다.

문 대통령의 제안은 6.15와 10.4 선언 정신에 입각해서 남북 간 사업들을 재개하자는 것입니다. 6.15와 10.4 선언의 길을 다시 가자는 이야기입니다. 따라서 논리적으로 보면 북한은 이 제안을 거부할 수 없습니다. 만약 북한이 거부한다면 궁색한 변명거리를 찾아야 하는데 그거 쉽지 않을 겁니다. 진정성의 문제도 있고요.

프레시안 : 그렇지만 북한은 이미 평창 동계올림픽과 관련한 문재인 정부의 제안을 거부한 바 있습니다. 북한 장웅 IOC 위원은 체육 위에 정치가 있다면서 남북 간 군사나 안보를 비롯한 정치적 문제가 풀리지 않는다면 체육과 같은 사회문화적인 교류를 하기 어렵다는 뜻을 내비쳤는데요.

정세현 : 북한이 말하는 정치가 무엇인지에 대해서도 생각해봐야 합니다. 그게 꼭 군사나 안보뿐만 아니라, 기존 남북 양측 정상이 합의한 내용을 존중하고 지키라는 의미도 있습니다. 즉, 6.15와 10.4 선언의 존중 및 이행이 북한이 말하는 '정치'라는 부문에 포함돼 있는 것이죠.

프레시안 : 대통령이 공개적으로 제안한 만큼 정부는 이제 후속 조치를 진행해야 합니다. 벌써부터 대북 확성기 문제를 다룰 군사회담, 이산가족 상봉을 다룰 적십자 회담 등이 오르내리고 있는데요. 정부가 향후에 어떤 식으로 이러한 문제들을 다뤄가야 할까요?

정세현 : 이산가족 상봉부터 진행하는 것이 성사 가능성은 높아 보입니다. 문 대통령이 10.4선언 10주년과 추석, 이산가족 상봉을 모두 묶어버렸기 때문에 북한도 쉽게 거부하기 어려울 겁니다.

물론 북한이 아무런 대가 없이 이산가족 상봉을 순순히 받아들이지는 않을 겁니다. 정부가 이산가족 상봉을 10월 초에 하고 싶다면 금강산 관광 재개 문제에 대한 복안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이미 금강산에 이산가족 면회소가 있기 때문에 상봉을 한다면 금강산에서 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입니다.

북한은 그동안 이산가족 상봉을 계기로 금강산 관광을 재개하고 싶어했습니다. 따라서 금강산 관광 재개 협의를 시작하면서 상봉을 할 것인지, 아니면 상봉이 끝나고 논의할 것인지 등 정부가 나름의 전략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프레시안 : 문 대통령은 평창 동계올림픽에 북한 선수들의 참가를 이야기했고, 군사분계선에서의 적대 행위를 상호 중단하자고 했습니다. 이 부분은 북한과 어떻게 풀어나가야 할까요?

정세현 : 평창 올림픽에서 남북이 단일팀을 구성하기는 현실적으로 어려워 보입니다. 북한 선수단이 출전권을 따지 못했기 때문에 참가에 어려움이 있죠. 물론 특정 종목에서 후보 선수로 북한 선수들을 참가시킬 수는 있습니다. 선수단의 일원으로 부분적으로 함께 해서 공동 입장하거나 공동응원을 하는 정도만 해도 나름 성과를 낸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군사분계선에서의 상호 적대 행위 문제는 대북 확성기를 이야기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북한은 남한의 대북 확성기를 대단히 민감해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부분에 대해 정부가 확성기를 당장 중단할지, 아니면 방송 시간과 내용 등을 조정할지를 결정하고 군사회담을 열어야 합니다. 물론 이런 준비를 하면서 판문점 연락 채널을 복원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 문재인 대통령이 6일(현지 시각) 베를린에서 쾨르버 재단 주최로 초청 연설을 하고 있다. ⓒ청와대

프레시안 : 일부에서는 북한이 ICBM까지 쏜 마당에 북한에 이런 제안을 해도 되느냐는 지적도 있습니다. 북한은 핵 무기를 들고 있는데, 우리는 너무 북한과 대화에 아등바등 매달리고 있는 것 아니냐는 비판입니다.

정세현 : 한 수만 더 앞을 내다보고 평가하는게 필요해 보입니다. 물론 북한이 ICBM을 쏘는데 무슨 대화 제의냐고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오히려 북한이 이렇게 나오기 때문에 상황은 바뀔 수 있습니다.

북한에 대한 제재와 국제적 공조가 진행될 수도 있지만, 역사적으로 봤을 때 북한이 이렇게 '벼랑 끝 전술'을 쓰면 오히려 미북 협상이나 접촉이 진행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협상 국면으로 진입하는 것이죠.

한 번만 더 생각하면 협상 국면으로 넘어갈 수 있다는 점을 고려했을 때 문 대통령이 베를린에서 비핵화와 평화체제를 비롯해 북한과 구체적인 사업까지 제안한 것은 적절했다고 봅니다. 물론 국민들이, 여론이 이를 어떻게 이해할 것이냐는 별개의 문제입니다. 이건 정부가 적절한 설명이 필요한 부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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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호

외교부·통일부를 출입하면서 주로 남북관계를 취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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