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만, 당뇨 등의 문제로 전문가들은 설탕 섭취를 줄일 것을 권고하고 있고, 소비자들이 설탕에 대해 갖는 거부감은 날로 커지는 추세다. 뿐만 아니다. 탄산음료처럼 당류가 많이 함유된 식품에 '설탕세'를 도입하는 나라들도 하나둘 늘고 있다.
세계 곳곳에서 설탕세 도입
용량 500밀리리터의 탄산음료 한 병에는 보통 3그램짜리 각설탕 18개의 당이 들어간다. 탄산음료 한 병으로 섭취하는 54그램은 세계보건기구(WHO)의 가공식품을 통한 1일 권고 당류 섭취량인 50그램을 이미 넘어선다. 코카콜라 1캔(330㎖)에 들어 있는 설탕 함유량은 35그램이다.
설탕세는 이처럼 당류가 다량 함유된 식품에 일정한 세금을 부과해서라도 소비를 줄이겠다는 의도다. 설탕세를 부과하는 구체적인 기준과 방법은 나라마다 다르지만 당 함유량이 많을수록 부과되는 세금의 양은 커진다는 공통점이 있다. 설탕세가 도입되면 음료 제조업체는 세금을 피하기 위해 자발적으로 설탕을 줄이는 노력을 할 것이고, 만약 세금만큼 음료 가격이 올라간다면 소비 감소를 유도할 수 있으리란 판단에서다.
설탕세는 2011년 핀란드에서 처음 도입됐으며 2013년 멕시코와 2015년 미국 캘리포니아 주 버클리 시 등이 잇따라 도입했다. 영국은 오는 2018년 4월부터 설탕세를 부과하기로 했으며 아시아권에서는 태국이 최초로 연내 도입을 추진 중이다. 현재 약 20개국에서 설탕이 들어간 음료에 설탕세를 도입했거나 도입할 예정이다.
2014년 기준 전 세계에서 약 5억 명의 성인이 비만인 것으로 나타났다. 1980년 이후 2배 이상 증가한 결과다. 한편 WHO는 2015년 실시된 조사를 토대로 전 세계 5세 이하 어린이 가운데 약 4200만 명이 과체중이거나 비만이라고 밝혔다.
WHO는 비만·당뇨 문제를 줄이기 위해 당류가 함유된 음료에 설탕세 도입을 공식적으로 권고한 바 있다. WHO가 2016년 내놓은 보고서 '식품 섭취 및 비전염성 질병 예방을 위한 재정 정책'에 따르면, 설탕 함유 음료는 20퍼센트 혹은 그 이상의 가격 상승이 있어야 소비 감소 효과가 있으며 인플레이션이 늘 고려되어야 한다. 즉 설탕이 포함된 음료에 설탕세를 20퍼센트 이상 부과하면 소비 감소 효과가 있을 것이며 이로써 질병이 줄고 삶의 질이 증진될 것이라 밝힌 것이다.
설탕세 도입이 잇따르면서 탄산음료 판매는 실제 급감하고 있다. 영국 <가디언>에 따르면, 미국에서 설탕세를 처음 도입한 캘리포니아 주 버클리 시의 경우 세금 부과 1년 만에 관련 음료 판매량이 9.6퍼센트 감소했다. 멕시코도 2013년 10월 설탕세를 도입해 당이 함유된 음료의 소비가 12퍼센트 감소했다.
비만 예방 기대
무엇보다 매출 감소의 직격탄을 맞은 코카콜라는 설탕세가 탄산음료 소비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방증일 수 있다. 코카콜라는 창립 131년 만에 최대 위기를 맞았다. 전 세계 탄산음료 시장의 대명사, 코카콜라는 2012년부터 2016년까지 4년 사이 매출이 13퍼센트 급락했다. 북미는 물론 유럽·남미 시장에서도 매출이 감소한 것. 설탕세가 일명 '콜라세'라고 불리는 이유다.
지난 4월 26일 코카콜라는 미국 본사에서 1200명의 인력을 감축하겠다는 구조조정 계획을 발표했다. 이는 본사 직원 20퍼센트에 해당하는 수치다. 본사 및 해외지점을 합쳐 총 10만 명 정도인 코카콜라의 직원 수도 5년 전에 비하면 30퍼센트 넘게 줄어든 것이다.
물론 코카콜라의 사정이 이렇게 된 데에는 자체적인 이유도 있다. 경쟁사인 펩시가 매출의 20퍼센트만 탄산음료인 반면, 코카콜라의 매출은 70퍼센트가 탄산음료여서 피해가 커진 것. 게다가 펩시는 설탕이 환영받지 못하리라는 것을 전망하고 일찌감치 음료 상품군을 다각화하는 노력을 기울여 왔다.
지난해 12월 영국 정부는 설탕세 초안을 공개하며 2018년 4월부터 도입한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이에 따르면 음료 100밀리리터당 설탕 5그램 이상을 함유한 청량음료에는 1리터당 0.18파운드(약 262.54원)를 과세하고, 100밀리리터당 설탕이 8그램 이상 들어간 음료에는 1리터당 0.24파운드(약 350.05원)를 과세한다. 설탕 함유량 5그램 이하 음료는 설탕세가 면제된다. 이를 통해 영국 정부는 설탕세 시범 첫해 5억2000만 파운드(약 7583억5240만 원) 규모의 세수를 확보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영국은 설탕세 도입으로 영국 어린이 비만율이 줄어들 것을 기대하고 있다. 영국은 초등학교를 졸업하는 어린이 다섯 명 중 한 명이 비만이며 설탕 음료는 영국 어린이들의 가장 큰 설탕 제공원으로 알려져 있다. 이와 관련 영국비만협회(Obesity Health Alliance)는 설탕세에 대해 "아동 설탕 소비 문제에 긍정적이고도 매우 필수적인 움직임"이라고 환영했다.
의료계와 건강 관련 단체들 또한 비만과 당뇨 예방에 도움을 줄 것이라며 설탕세 도입을 환영했다. 영국암연구소(Cancer Research UK)와 영국보건포럼(UK Health Forum)이 2016년 2월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가격상승 효과가) 20퍼센트 이상인 설탕세는 2025년까지 370만 명을 비만으로부터 구할 수 있다. 이는 5퍼센트의 비만 예방 효과를 거두는 것으로 만약 현 상태가 그대로 유지될 경우, 비만률은 2015년 기준 29퍼센트에서 2025년 34퍼센트까지 증가하게 된다. 한편 국민보건서비스(NHS)는 설탕세 도입으로 건강관리 비용 1000만 파운드(약 146억270만 원)를 절약하는 효과를 거둘 것으로 예상했다.
설탕세 확산
설탕세 도입 초반에는 업계의 우려와 반발도 만만치 않았다. 설탕세가 도입된다 해도 당류 섭취는 줄어들지 않을 것이며 비만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되지 않으리라는 것이다. 또 탄산음료에만 설탕세를 부과하는 것이 형평성에 어긋난다는 시각도 있었다. 설탕세 도입으로 가격이 인상되면 결국 피해는 서민들이 보게 된다는 비판도 있었다.
하지만 설탕세는 이 모든 우려를 덮고 탄산음료 소비 감소라는 효과를 거두며 세계적인 확산 추세에 있다. 아프리카 남아프리카공화국과 아시아 태국도 설탕세 도입을 검토 중이다. 건강에 유익한 명분을 가진 설탕세가 이제는 굳히기 작업에 들어간 시점이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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