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SOC 얻을 거 다 얻었으니 올림픽 반납하면 안 되나?"
듣는 순간 피가 거꾸로 솟는 듯했다. 결국 온 국민이 성원하고 엄청난 국고가 투입된 평창올림픽의 실체가 이것이었나. 우리가 무엇 때문에 올림픽을 유치했던 것인가.
개최준비도 힘든데 올림픽 유산까지 개발해야하나
개최를 코앞에 둔 지금 평창올림픽은 총체적 난국에 처해있다. 박근혜와 최순실의 국정농단사태의 파장으로 국민들의 올림픽에 대한 관심이 식었을 뿐 아니라 특히 평창올림픽이 최순실의 먹잇감이었다는 사실은 올림픽에 매우 어두운 이미지를 안겼다. 게다가 차범근이 "대통령 인기가 높아 국민들이 축구를 보지 않는다"고 하소연 했듯 새 정부의 출범과 맞물리면서 올림픽 분위기는 실종된 상황이다.
개최를 1년 앞둔 올해 초 많은 토론회와 심포지엄이 열렸다. 그때 발표자들이 연이어 떠들어댄 게 첫째, 강원도를 스토리텔링화 하자는 것과 둘째, 올림픽 레거시(유산)를 남겨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없던 스토리텔링이 갑자기 만들어질 리 만무하다. 많은 교수들이 강원도의 특성을 고려했다면서 약초 및 의료와 관광을 접목한 힐링산업, 컨벤션 등 MICE산업, 유기농식품 재배 및 해외 수출 등을 제안했다. 그러나 얼토당토 않는, 전문성은 물론 현실성도 없는 제안을 막 던지는 수준이었다.
또 조직위는 작년부터 올림픽 레거시, 즉 올림픽 유산이라는 생경한 개념을 갑자기 떠들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는 폐막 후 쓸모없는 경기장과 개최지 주민들에게 떠안겨지는 엄청난 재정적자로 인한 비난을 모면하기 위해 IOC가 만들어낸 실체 없는 개념일 뿐이다. IOC가 고안해 낸 사기성 짙은 기만술임에도 많은 이들이 이를 앵무새처럼 되풀이했다. 그럼에도 실적이 없자 조직위는 급기야 올림픽 유산을 '개발'해야 한다며 나섰다. 개최준비도 힘들어 죽겠는데 이제는 유산까지 개발해야 하는가.
작년 개최된 리우올림픽 경기장들이 오물과 쓰레기 가득한 폐허로 변했음이 기사화 돼 세계인을 놀라게 한 바 있다. 그럴수록 IOC는 더욱 열심히 "올림픽 레거시가 중요하다," "올림픽 레거시를 남겨야 한다"며 평창조직위에 강요하듯 외쳤다. 그런데 도대체 그게 무엇인지 알 수가 없다. 당연하지. IOC도 모르는데 우리가 어떻게 아나?
'올림픽 레거시'가 얼린 오징어?
한 번 보자. 조직위는 대회 폐막 후 크로스컨트리·바이애슬론 경기장은 골프장으로, 알펜시아 스키점프센터는 축구장으로, 피겨·쇼트트랙의 강릉아이스아레나는 실내수영장으로, 아이스하키가 열리는 관동대 아이스하키 경기장은 실내체육관으로, 그리고 인구 4000명 뿐인 횡계리에 지어지는 4만 명 규모를 자랑하는 올림픽 개·폐회식장은 차후 공연장으로 전환할 계획이라고 한다. 동계올림픽의 유산이 왜 골프장, 축구장인가. 도대체 올림픽 레거시는 어디에 있나.
가장 웃긴 건 (정말 웃기다) 스피드스케이팅장이다. 폐막 후 도무지 활용할 방법이 없는 이 경기장의 용도로 요즘 고려중인 것이 냉동창고라고 한다. 올림픽경기장에 냉동 해산물을 보관한다? 그렇다면 평창올림픽의 유산이 냉동 해산물, 얼린 오징어란 말인가?
2014년 소치올림픽과 2016년 리우올림픽 등 최근 치르는 올림픽마다 '역대 최악'이라는 평을 듣고 있다. 과연 평창올림픽은 소치와 리우에 이어 '역대 최악의 올림픽'을 대물림하고 그 대가로 빚더미와 냉동 해산물을 유산으로 간직할 것인가.
제대로 된 전문가의 진단이 급선무
조직위와 강원도는 많은 토론회와 심포지엄을 열었다. 문제는 거기에 불려나간 교수나 기자 등 이른바 전문가들이 사실은 비전문가라는 점이다. 무엇보다 이들은 개최지가 올림픽 폐막 이후를 어떻게 대비해야 하는가에 대해선 완전무결한 비전문가들이다. 올림픽 관련해서 가장 많은 의견을 냈던 필자조차 '올림픽 폐막 후 지역문제'와 관련해서는, 유럽의 오래된 인기 겨울 리조트를 제외하면 모두 폭망하더라는 자료만 있을 뿐이다.
그들은 스포츠메가이벤트와 맞물린 도시디자인과 리모델링 분야에서 철저한 문외한들이다. (사실은 비전문가이기 때문에 강원도가 대외 홍보용 스피커로 이들을 이용하는 듯하다.) 올림픽 개최란 워낙 거대하면서도 드물고 황당무계한 사업이기 때문에 이 분야의 전문가는 해외에서도 찾기 힘들다. 굳이 국내에서 찾는다면 건축이나 도시계획이나 도시재생 분야에서 찾아야 한다. 국내엔 없다면 외국의 컨설팅 업체라도 물색하는 것이 제대로 된 준비이다.
올림픽 개최는 강원도에겐 엄청난 기회이다. 그러나 동시에 올림픽은 끔찍한 덫이 될 수도 있다. 폐막 후라도 절대 서두르지 말고 장기적으로 새로운 청사진을 그려야 한다. 그 성공과 실패의 갈림길이 너무나 명백하기 때문이다. 섣부른 계획이나 투자는 실패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서구의 경우 1970년대 이후 많은 도시들이 리스크를 마다하지 않는 기업적 도시주의(entrepreneurial urbanism)를 채택하면서 많은 도시들이 변화에 성공하기도, 침체에 빠지기도 했는데 데이비드 하비는 이 중 성공한 도시와 실패한 도시를 구별한 바 있다. 연방 및 주정부에 의존하는 방식에서 민간과의 파트너십으로 전환해 도시를 혁신시킨 보스턴, 도심 항만을 재정비해 디즈니랜드보다 더 많은 방문객을 끌어 모으는 볼티모어, 그리고 이들 도시의 성공을 벤치마킹해 도시를 리모델링하면서 정원축제와 테이트 갤러리와 멋진 워터프론트를 갖게 된 리버풀에 주목했다. 반면 버지니아 노포크의 도시 리모델링은 실패했고 텍사스의 쇼핑몰 프로젝트와 아틀란타의 호텔 건설은 지역 금융기관들의 부도로 이어졌음을 경고했다.
평창동계올림픽 성공의 열쇠
올림픽이 국민들에게 이렇게까지 외면당할 줄 몰랐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의 난국은 조직위(그 이전엔 유치위)가 자초한 것이다. 재수, 삼수에 도전하면서 "강원도민 여러분 세금은 단 한 푼도 들어가지 않는다"는 새빨간 거짓말을 뻔뻔스럽게 했고, 정확하게 십 년 전인 2007년 올림픽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필자의 칼럼 "평창동계올림픽, 일단 정지!" 이후 수많은 전문가, 시민단체, 기자들이 경고했음에도 조직위는 이를 철저하게 무시하지 않았나.
몇 가지 변수가 충족된다면 성공 가능성도 있다. 첫째, 문재인 대통령은 성공적 개최를 위한 지원을 약속했고, 또 그가 당선된 덕에 성공 개최의 최대 관건인 북한 선수단 출전의 가능성이 열렸다. 성공적 대회가 되기 위해서는 둘째, 사고 없는 대회가 되는 것이 중요하다. 올림픽이라는 게 원래 큰 사고만 없으면 대충 성공적 대회라는 평가로 이어진다. 셋째, 매끄러운 대회운영이다. 운영 스태프와 자원봉사자 교육도 제대로 시키지 않아 '총체적 망신'을 자초한 인천아시안게임의 우를 절대 반복해서는 안 될 것이다.
넷째,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로 인해 올림픽이 큰 차질을 빚게 됐지만 역설적으로 이 사건은 평창올림픽의 성공을 더욱 빛나게 해줄 것이다. 상처 받은 국민들의 자존심을 다시 일으켜 세울 기회가 당분간 올림픽 말고 뭐가 있을까. 패 갈려 싸우다가도 한국사회를 하나로 뭉치게 하는 건 올림픽, 월드컵 같은 스포츠 아니던가.
결국 다섯째, 최문순 지사는 올림픽 홍보한다고 외국을 다닐 게 아니라 국내 홍보에 힘을 쏟아야 한다. 올림픽 개최를 과신했던 점, 솔직하지 못했던 점을 인정하고 대한민국이 힘들었던 것만큼 힘들었던 개최준비를 설명하면서 개최 준비에 동참할 것을 부탁하는 것이다. 감성적으로 접근해야 한다. 몇 달 전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또 그 말도 안 되는 경제효과 수치를 언급하며 올림픽 뻥튀기에 나서던데 그만 좀 했으면 한다. 이젠 국민들도 안 속는다.
여섯째, 이제까지 무시했던 시민단체의 의견을 경청해야 한다. 이를 '비판적 의견'이라고 하던데 아니다. '전문가 의견'이다. 조직위가 내세웠던 어떤 교수보다 그들이 훨씬 더 전문가적 식견을 가지고 있다. 마지막으로, 그 과정에서 절대 피해야 할 것이 있다. 바로 경기장 사후 관리를 개막 전 중앙정부에 떠넘기려 시도하는 것이다. 이미 염동열 자유한국당 의원이 발의한 법안이 국회에 계류 중이다. 강원도 측은 이를 대회 개막 전 통과시키려 호시탐탐 노릴 것이겠으나 많은 전문가, 시민단체, 기자들이 지켜보고 있다. 이를 시도하는 순간 역풍도 만만치 않을 것이고 국민 여론은 더욱 멀리 떨어져 나갈 것이다.
강원도를 위한 '포스트-올림픽 디자인'은 무엇인가
물론 거대한 시설들을 강원도가 전적으로 부담하는 것은 부담이 클 것이다. 그래서 성공적 개최가 중요한 것이다. 성공적으로 개최하고 나면 자연스럽게 중앙정부와의 협상력이 높아진다. 평창올림픽이 국민들에게 자부심을 되돌려 준다면 국민적 동의도 당연히 뒤따를 것이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평창동계올림픽에 큰 타격을 입히기도 했지만 반면 나라꼴이 처참해서인지 올림픽 보이코트운동의 조짐도 사라졌다. 이제는 하는 만큼 얻는 정직한 게임이 됐다. 올림픽은 국민의 상처 난 자존심을 다스리고 뿌듯한 자부심을 선사할 유일한 기회다. 올림픽 개최의 단점은 피해갈 수 없다. 그러나 그 단점마저 감안하고 강원도를 위한 '포스트-올림픽 디자인'을 마련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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