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대통령, 트럼프 도와서 北과 대화 물꼬 터라

트럼프·시진핑·김정은…누구 하나 쉽지 않다

지난해 10월 말 벌어진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이후 약 7개월 동안 한국은 사실상 국정공백 상태였다. 이후 새로 출범하게 될 문재인 정부는 준비기간도 없이 당장 많은 과제들을 해결해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 남북관계와 대외문제 역시 마찬가지다.

우선 남북관계는 지난해 1월 북한의 4차 핵실험 이후 개성공단이 문을 닫고 양측을 연결하던 통신까지 가동을 멈추면서, 양측 간 접촉이 사실상 전혀 없었던 지난 1972년 7.4 공동성명 이전으로 되돌아갔다.

지난 3월 소위 '알박기'로 들여온 사드(THAAD‧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 배치가 불러온 중국과 갈등도 새 정부가 해결해야 할 주요 외교 과제 중 하나다. 무너진 한중 관계를 복원하는 외교적 차원의 문제뿐만 아니라, 중국의 이른바 '사드 보복'을 어떻게 막아낼지가 향후 한국의 경제 상황과도 맞물려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한미 관계 역시 '예측할 수 없는' 트럼프 대통령을 상대해야 한다. 이전 미국 정부를 구성했던 인사들과는 기반 자체부터 다른 트럼프 정부를 상대로 쉽지 않은 게임을 벌여야 하는 상황이다.

문제는 전임 정부가 새 정부에게 유산을 물려주기는커녕, 남북, 한중, 한미, 한일 관계 등에서 사실상 '짐'만 떠밀었다는 데 있다. 한동대학교 김준형 교수는 새 정부의 한미관계에서 가장 우려되는 지점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한국이 미국과 관계에서 지렛대로 사용할 만한 무기가 없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라고 답했다.

여기에 미국 내 북한에 대한 반감이 상당한 상황에서, 북한 핵 문제를 외교적 협상을 통해 해결하겠다는 문재인 대통령에 대한 선호도 역시 높지 않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또 미국 정치권이 문 대통령을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과 비슷하다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향후 대미 관계를 풀어나가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이와 관련 김 교수는 "문재인 대통령에 대한 미국의 시각을 바로잡기 위해서 '노무현 대통령과는 다르다'라는 식으로 자꾸 미국에 설명을 하려고만 한다면 미국에 끌려가는 방식의 외교를 하게 되는 측면이 있다. 오히려 트럼프 대통령이 문 대통령을 좀 불편하게 생각한다고는 인식을 갖는 것이 나쁘지 않은 측면도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노무현 대통령은 임기 중에 '나 반미(反美) 아니야'라는 식으로 미국에 설명하다가 끌려가게 되는 측면이 있었는데, 이와 같이 미국 정치권을 안심시키는 전략만 쓴다면 한미 관계는 종속적으로 갈 수밖에 없는 것"이라고 내다봤다.

김 교수는 미국 정치권에 퍼져있는 이러한 인식을 통해 오히려 문 대통령이 주도적으로 상대를 끌고 나가는 외교를 펼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그는 "고(故) 김대중 전 대통령처럼 미국을 설득하는 것이 필요하다. 안 그래도 지금 한국은 미국과 협상할 때 별다른 레버리지가 없다"고 설명했다.

그는 "오히려 이런 인식을 이용해 한미관계를 재정립할 필요가 있다. 실제 사드 배치에 10억 달러를 부담하는 문제에서도 우리가 먼저 미국의 신의를 져 버린 문제는 아니지 않나. 우리가 동맹국으로서 신의에 해를 끼치지 않았다"며 "지금이 위기일 수도 있지만, 한미 관계를 종속적이지 않은, 정말 말 그대로 '동맹'이라는 관계를 확고히 다져나갈 수 있는 좋은 기회일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그런 측면에서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 주석의 외교를 참고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그는 "시 주석은 북핵 및 동북아 문제에 거의 지식이 없는 트럼프에 본인의 이야기를 잘 주입시킨 것으로 보인다. 반면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는 트럼프 대통령 당선 직후 만나자고 안달을 했지만 지금 보면 시 주석에 밀린 모양새다. 어느 쪽을 벤치마킹 해야겠나"라고 반문했다.

▲ 지난 4월 7일(현지 시각) 미중 정상회담이 열린 플로리다 주 마라리고 리조트에서 도널드 트럼프(왼쪽) 미국 대통령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악수를 나누고 있다. ⓒAP=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이 시 주석처럼 정상회담을 통해 트럼프 대통령과 원활한 관계를 만들어내는데 성공한다고 해도 양국 사이에는 쉽지 않은 현안들이 놓여 있다. 당장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4월 27일(현지 시각) <로이터>통신과 인터뷰에서 사드 배치 비용은 한국이 내는 것이 좋겠다면서 적잖은 파장을 일으켰다.

이에 대해 김 교수는 "트럼프 대통령은 한국이 방위비 분담금보다는 국방비 자체를 분담하길 바라는 것 같다. 그러니까 미국의 안보 부담을 한국도 같이 짊어져야 한다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물론 방위비 분담금 자체를 올리려고 할 수도 있다. 트럼프 대통령 입장에서는 한국은 100%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을 내고 있고, 이것은 미국의 예산을 절약하려는 자신의 성과라고 미국 국민들에게 선전할 수 있기 때문"이라며 "우리 입장에서는 방위비 분담금 인상과 사드 배치 또는 미국의 안보 분담 요구 축소 등을 교환하는 식으로, 즉 방위비 분담금 인상 자체를 하나의 '협상 카드'로 활용할 수도 있다"고 내다봤다.

그러면서 김 교수는 트럼프 정부가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한 대화를 언급하고 있기 때문에, 새 정부가 북한이 미국과 대화할 수 있도록 역할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새 정부가 트럼프 정부를 도와주는 셈이 되는데, 이는 실제 북핵 문제 해결과 외교적 측면 모두에서 성과를 거둘 수 있다는 것이 김 교수의 판단이다.

그는 "여전히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 문제를 단순한 '투자처' 라기 보다는 '짜증' 나게 하는 요인이라고 생각하고 있다"며 "하지만 어쨌든 버락 오바마 전임 대통령과는 다르게 하겠다는 원칙은 세워 놓은 상태인데, 그러려면 대화의 가능성을 열어놓는 방법밖에 없다"고 진단했다.

김 교수는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과 대화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적절한 환경'이 필요하다고 밝혔는데, 어느 정도 수준에서 북한의 항복을 받아낼 것인지, 또는 아예 북한의 항복을 받아내지 않고 시작할 것인지 등등이 아직 정해지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며 "미국의 상·하원과 트럼프 대통령 모두 북한에 대해 저자세로 나설 가능성이 거의 없기 때문에, 바로 이 부분에서 한국이 나서서 북한과 미국의 대화 통로를 뚫어줘야 한다"고 덧붙였다.

중국, 한국과 관계 개선 원하고 있어

문재인 정부는 사드 배치로 인해 틀어진 중국과 관계를 회복해야 한다는 어려운 과제에도 직면해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지난 2015년 9월 중국 베이징(北京)에서 열린 전승절에 참석하면서 양국관계의 정점을 찍었지만, 이후 북한의 핵실험과 사드 배치 등이 맞물리면서 양국은 경제적 교류에서도 마찰을 빚고 있다.

하지만 중국이 한국과 관계 개선을 위해 새 정부를 기다렸다는 관측이 나오면서 양국 관계는 의외로 쉽게 풀릴 수도 있다는 전망이 제기됐다. 상하이 동화대학교 우수근 교수는 "중국은 사드 국면을 빨리 끝내길 바란다"며 현지 분위기를 전했다.

우 교수는 "우리가 한중관계를 개선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처럼 중국 역시 마찬가지다. 중국은 그동안 정권이 바뀌면 자연스럽게 문제를 풀어갈 수 있다는 입장을 보여왔다"면서 "중국의 상황을 잘 이해하면서도 자연스러운 외교를 해 나갈 수 있는 전략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진단했다.

▲ 지난 4월 26일 새벽 사드 장비를 실은 트레일러가 성주골프장 안으로 들어가고 있다. ⓒ연합뉴스

그는 이를 위해 문재인 정부가 중국과 관계를 해결할 수 있는 적절한 특사를 보내야 한다고 조언했다. 우 교수는 "중국 측은 그동안 중국을 잘 알고 있고 최근에도 중국과 교류를 지속했던 인물이 특사로 왔으면 좋겠다는 의사를 내비쳤다. 또 향후 한중관계라든가 외교 쪽에 관심이 있는, 차기 정부에 영향력이 있는 실세 정치인과 관계를 맺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꾸준히 밝혀 왔다"고 말했다.

그는 "이는 한국의 새 정부에 함께할 인사들 중에서 한중 관계에 관심을 가져왔던 인물과 사드 문제를 비롯한 현안을 풀 수 있다는 의지를 보여온 것"이라며 "이런 측면을 감안해 특사를 통해 일단 진지하게 중국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고 조언했다.

우 교수는 "박근혜 정부는 지금까지 사드는 방어 무기고 중국을 탐지하는데 아무런 영향이 없다는, 일방적으로 한국의 입장만 이야기하지 않았나"라며 "이런 입장에서 벗어나 일단은 중국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그 다음에 우리 이야기를 해야 한다. 여기서 실마리가 잡힌다면 사드 문제를 둘러싼 한중 간 불편한 관계는 생각보다 매우 빠르게 풀려나갈 수 있다"고 내다봤다.

그는 "중국은 한중관계에서 유일한 장애물은 사드라고 생각하고 있다. 아직도 '유일한'이라는 단어를 쓰고 있다"며 "이는 사드 문제만 풀린다면 양국 간 관계는 문제가 없다는 것을 의미하고, 그렇기 때문에 이 문제를 풀기가 더 수월하다는 의미이기도 하다"고 덧붙였다.

우 교수는 "중국이 한국을 놓지 않으려고 하기 때문에 우리는 중국으로부터 어쩌면 더 많은 것을 얻을 수도 있다. 이는 북핵 문제 해결에서도 마찬가지"라고 전망했다.

실제 중국은 북한을 강하게 압박해 대화 테이블로 나오게 해야 한다는 미국의 요구에 일정부분 호응하고 있다. 이에 대해 우 교수는 "중국은 일단 소나기가 오면 피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트럼프가 저렇게까지 나오니까 지금은 한발 물러서서 트럼프를 파악해보자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그는 "그런데 가장 중요한 것은 국내적인 요인"이라며 "올해 가을 열리는 공산당 당 대표자 대회에서 시 주석이 성공적인 2기 집권을 이뤄내기 위해서는 안정적으로 마무리하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며 "시 주석은 당 대회 전까지는 트럼프를 온화하게 만들고 북한을 눌러 놓으면서 대외적인 문제를 만들지 않으려는 경향을 보일 것"이라고 예측했다.

완전히 끊어진 남북관계, 무엇부터 시작해야 하나

박근혜 정부는 지난해 북한의 4차 핵실험 이후 개성공단 가동을 중단시켰다. 여기에 최후의 보루인 남북 당국 간 통신망도 가동되지 않으면서 박근혜 정부는 남북관계를 사실상 단절시켰다.

이에 새 정부에서 남북관계를 어떻게 복구할지도 대외 부문의 핵심 과제로 거론되고 있다. 김연철 인제대학교 교수는 "일단 남북을 둘러싼 환경을 바꾸는 것이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새 정부는 북한하고 풀어야 하는 문제도 있고, 미국을 비롯한 국제사회와의 협력도 고려해야 하며 국내 여론도 살펴야 한다. 이 세 부분의 공통분모를 찾는 것이 제일 좋다"며 "이를 통해 순서와 절차를 따져서 실행해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뭘 하나 하더라도 지속성을 가지려면 이 세 요인이 어느 정도 어울려야 한다"고 설명했다.

김 교수는 "그런데 현재 한반도를 둘러싼 상황이 복잡하다. 이럴 경우에는 선택할 수 있는 여지를 넓혀 놓는 것이 좋다"며 "어느 것을 먼저 할 것이냐는 순서를 따지기 보다는 다방면의 접촉을 동시에 하는 것이 좋다"고 조언했다.

그는 "정부의 운신 폭을 넓히려면 민간 교류를 해야 한다. 예를 들면 개성공단의 경우도 당장 가동이 아니더라도 기업인들이 시설 점검 차원에서 방북한다고 신청할 경우 허가해주고, 인적 교류의 경우에도 남북교류협력법 하에서 허용하고 이산가족 상봉과 같이 당장 추진해야 하는 사안들은 곧바로 시작해야 한다"며 "초기에 이런 식으로 환경을 조성하고 그 상황에서 정부가 움직일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하는 것이 순서"라고 주장했다.

▲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 4월 15일 평양에서 김일성 주석의 생일인 태양절을 맞아 열린 열병식에 참석해 손을 흔들고 있다. ⓒ조선중앙통신=연합뉴스

하지만 남북 간 관계 회복을 서두를 필요는 없다는 것이 김 교수의 판단이다. 그는 "정부 초기에는 속도를 좀 조절할 필요가 있다. 중요한 것은 지속가능성이기 때문"이라며 "예를 들어 개성공단의 경우 당장 문을 여는 것이 아니라 정상적으로 재가동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따라서 입주 기업을 비롯한 이해 당사자들과 논의를 해가면서 신중하게 풀어나가야 한다"고 설명했다.

남북관계 개선 속도는 결국 북한의 핵과 결부되는 문제다. 이에 대해 김 교수는 핵 문제는 국제적인 틀로 다룰 수밖에 없다면서 6자회담과 2005년 체결된 9.19 공동성명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6자회담이라는 좋은 틀이 있는데, 이걸 버리려고 해서는 안 된다. 9.19 공동선언을 이끌어 내는데 몇 년이 걸렸다. 이걸 무력화시킬 이유가 있나?"라며 "북한이 무력화시키고 싶어 한다고 해도 우리를 포함해 미국, 중국 등이 이를 막아야 한다. 9.19 공동성명부터 다시 시작하는 것이 문제를 해결하는 가장 쉽고 적절한 방법"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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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호

외교부·통일부를 출입하면서 주로 남북관계를 취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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