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진 시장은 왜 단식 농성을 했을까?

[차기 정부 에너지·기후 정책 제언] <3> 이제 '에너지 분권화'다

지난 여름 광화문 광장, 불볕 더위 속에서 김홍장 당진시장이 주민들과 함께 1주일간 단식 농성을 했다. 가동 중이거나 완공을 앞두고 있는 석탄발전소 10기에 더해서 새로이 2기의 석탄발전소의 건설을 반대하기 위한 것이었다. 당진은 이미 세계 1위의 석탄발전 밀집 지역이며, 미세먼지를 비롯한 대기 오염과 빼곡한 초고압 송전선로로 고통을 받고 있었다. 당진시장 등의 저항으로 한발 물러났던 산업부가 최근 당진에코파워의 실시계획을 승인하고 고시하는 절차만 남겨 두었다. 전국이 미세먼지로 고통을 겪고 있는 마당에 석탄발전소를 추가 건설하는 계획을 승인한 것을 두고, 사회 여론이 시끄럽고 여러 국회의원들이 집단적으로 반발하면서 후폭풍이 심각하다. 대선을 앞두고 산업부와 SK가 다급하게 '알박기'에 나선 탓이다.

그러나 이번 대선에서 검토해야 할 에너지정책의 개혁 과제를 보자면, 정부/SK의 알박기 형태보다는 당진시장의 단식 농성이 더 중요하다. 한 지역의 주민을 대변하는 지자체장이 그 지역에 지대한 영향을 주는 중앙정부의 의사결정에 반대하기 위해서 오죽했으면 단식농성에 들어갔을까. 지자체가 합법적인 절차를 통해서 의견을 반영시킬 적절한 제도가 부족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여러 전문가들이 지적하고 있는 것처럼, 당진시장을 비롯한 지자체장들은 정부의 '전원개발촉진법'을 가장 큰 문제로 꼽고 있다. 이 법에 따르면 전원개발사업자는 실시계획을 수립하여 산업부 장관의 승인만 받는다면 '국토의 계획 및 이용에 관한 법률' 등의 19개의 다른 법령에 의해서 받아야 하는 인허가 절차를 전부 생략할 수 있도록 했다. 당연히 지방자치단체나 주민의 의견을 반영하지 않고도 일방적으로 사업을 진행할 수 있는 것이다. 이 법률은 밀양에서 송전탑을 막아내려는 주민들이 가장 악법으로 꼽고 있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번 대선에서 에너지정책 개혁 과제로서 '전원개발촉진법' 폐지가 분명히 자리 잡아야하지만, 아쉽게도 대선 후보들이나 개혁 과제를 제시하는 시민/환경단체들이 이 문제를 부각시키고 있지 못한 실정이다. 그런데 이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기도 하다. 현재 대선 국면에서 진행되고 있는 에너지정책과 관련된 토론은 중앙정부의 정책 방향과 세부 정책의 변화, 그리고 관련 부처 사이의 권한과 역할 조정 등에 초점을 맞추고 있을 뿐이다. 지역/지자체로 에너지정책 권한을 분산시키는 문제는 의제화되고 있지 않다. 현재 여러 대선후보 캠프의 발표와 발언을 보면, 핵발전과 석탄발전은 줄이고 재생에너지를 확대하겠다는 '탈핵 탈석탄 에너지전환' 담론이 정책공약 속에서 상당히 담겨져 있다. 이는 큰 진전이고 환영할 만한 일이다. 구체적인 쟁점에 대해서는 좀더 따져봐야 할 일이고 무엇보다도 이 공약을 강제할 방안을 찾아야 하는 과제는 남아 있다. 그러나 탈핵/탈석탄 에너지전환에서 가장 중요한 전략 중에 하나인 '에너지 분권' 의제가 빠져 있는 것은 대단히 우려스럽다.

초입에 당진시장의 단식 농성을 상기시켰지만, 에너지정책에서의 지자체와 지역사회의 권한 부족과 제약을 보여주는 사례는 너무나 많다. 삼척 주민들이 핵발전소 유치 신청을 취소할 것을 요구하는 주민투표를 자체적으로 진행했을 때다. 삼척시장은 지역 선관위에게 주민투표 관리를 요청했지만 이를 거부했다. 이유는 핵발전소 유치 신청을 하는 것은 지자제의 권한이지만 이를 취소하는 것은 지자체의 권한이 아니라는 행자부의 궤변에 가까운 해석 때문이었다. 신청할 당시에 주민들의 찬성 의견이라며 내놓은 서명록이 위조되었다는 여러 증거가 드러나 있는 상황 속에서, 중앙정부가 객관적이고 공정하게 치러진 주민투표 결과를 마지못해서라도 인정해야 할 일이었다. 그러나 이를 계속 무시하고 있는 것은 지방자치와 민주주의에 역행하는 에너지정책의 현주소를 똑똑히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삼척에 이어 영덕과 기장 지역에서 각각 핵발전소와 해수담수화 시설 유치 문제에 대해서, 주민들이 자체적으로 조직한 주민투표가 성공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현행 법제도와 정책의 미비와 잘못을 지역주민들과 지자체가 실질적으로 넘어서 버린 것이다. 에너지정책이 왜 분권화되어야 하는지를 명확히 보여주는 사례들이다.

이미 중앙정부의 손 안에 모든 것을 담기가 어렵게 되어 버렸다. 서울시의 '원전 하나 줄이기' 사업은 국제적으로 주목받는 혁신적인 (광역)지자체의 에너지전환 정책으로 발전하고 있다. 중앙정부가 오랫동안 추진해왔던―그러나 다분히 생색내기용에 가까웠던―에너지 절약 및 효율화 정책과 재생에너지 확대 정책을 지자체가 성공적으로 추진하면서 성과를 내고 있다. 중앙정부가 댈 핑계거리가 많지 않다. 박원순 시장의 첫 번째 임기가 끝나기 6개월 전에 이미 에너지 효율화 및 재생에너지 확대 목표를 달성했으며, 2단계에서는 2020년까지 전력자급율을 20%로 늘리고 신재생에너지 이용 비중을 10%까지 증가시켰다는 목표를 세워 추진하고 있다. 현행 4%에 불과한 서울시의 전력자급율을 20%까지 늘리겠다는 것은 중앙정부가 2029년까지 분산전원을 12.5%로 확대하겠다는 목표와 대비된다. 또한 정부가 '4차 신생 에너지 계획'에서 2035년까지 신재생에너지를 11%로 확대하겠다는 것과 비교해서도 서울시의 목표는 크게 앞서 있다.

서울시의 선도적인 에너지정책은 경기도, 충청남도 그리고 제주도와 함께 '지역 에너지 전환 선언'(2015년)을 천명하면서 다른 광역지자체들의 노력과 연결되었다. 경기도는 2015년 '에너지 비전 2030'를 통해서 2030년까지 전력자급율을 70%로 확대하며, 에너지 효율을 20% 향상하고 신재생에너지 이용 비중을 20%까지 올린다는 목표를 설정하였다. 또한 충청남도도 2015년에 '지역 에너지 종합계획'을 발표하면서, 석탄화력발전을 줄이고 신재생에너지 생산량을 높이겠다는 정책을 제시하였다. 제주도 역시 '카본프리 아일랜드 2030'을 선언하면서, 2030년까지 전력사용량 100%를 신재생에너지로 대체하겠다는 목표를 설정했다. 이러한 목표 설정은 중앙정부가 '제2차 국가에너지기본계획'과 '제7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서 핵발전소와 석탄화력발전소를 계속 확대하겠다는 정책 방향과 정반대다. 지자체들은 자신들의 정책들로 각기 2020년까지 원전 2기(서울시), 2030년까지 노후 원전 7기(경기도), 2020년까지 석탄화력발전소 3.3기(충청남도)를 대체하는 효과를 얻을 것으로 추산하고 있기 때문이다.

2016년 말, 당진시를 비롯하여 안산시, 노원구(서울), 강동구(서울), 전주시 등 전국의 30여개 지자체가 '에너지정책 전환을 위한 지방정부 협의회'를 구성하였다. 중앙정부에 의해서 일방적으로 추진되는 발전소 건설 계획 등의 에너지정책을 바로잡고 지지자체의 지역주민들의 의견을 반영할 수 있도록 법제도를 개혁하는 것을 목표로 한 기구다. 한편 이들 기초지자체들은 자체적으로 지역에너지계획을 수립하면서, 에너지효율과 절약 그리고 재생에너지를 확대하기 위한 목표를 세우고 지역주민들이 함께 참여하는 지역에너지전환 정책을 앞장서서 추진하고 있다. 그러나 에너지정책에 관한 권한, 예산과 인력에서 큰 제약을 받고 있다. 심지어 이는 서울시 등의 광역지자체도 마찬가지다. 예컨대 서울시는 보다 능동적인 정책 수립과 집행을 위해서 에너지정책 전담부처를 설립할 수 있도록 정부조직법을 개정할 것을 요청하고 있다. 또한 에너지관리지도와 에너지손실요인 개선명령 권한의 일부를 지자체로 이양하고 에너지다소비 사업자 적용기준을 변경하여 지자체가 관할할 수 있는 범위를 확대하기 위한 에너지이용 합리화법 개정 필요성을 제기하고 있다. 중앙정부가 모든 것을 움켜쥐고 있는 상태에서, 지자체는 권한과 자원 부족 속에서 어렵게 혁신을 추진하면서 발견해낸 법제도 개선 필요 사항들이다. 4개 광역 지자체가 '지역에너지 전환 선언'에서 중앙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함께 논의할 수 있는 협의기구 구성을 제안한 이유이기도 하다. 대선 후보들이 에너지정책 공약에서 꼭 챙겨야할 것이 바로 중앙정부와 지자체 사이의 '에너지정책협의체'다.

새롭게 대통령이 지자체와 지역주민들의 의견을 받아 들여 에너지정책협의체를 구성한다면, 그 안에서 논의해야 할 중요한 의제들이 이미 많이 정리되어 있다. 그 중에 몇 가지만 살펴보자.

우선, 전력산업기반기금의 일정액을 지역별로 일정한 기준에 따라서 배분하고 지역 여건에 부합하는 에너지사업에 활용한다는 제안이다. 이는 지역에너지전환을 추진하는데 필요한 지자체의 여력을 확대해주는데 도움을 줄 뿐만 아니라, 그 기금이 핵발전 시스템을 확대․유지하는데 쓰이지 않도록 막는 효과가 있을 것이다. 둘째, 지역 차등 전기요금제에 대한 제안이다. 발전 및 송전 설비에 따른 피해를 겪는 지역과 전력 소비를 통해서 편익을 얻는 지역 주민이 동일한 요금을 지불하는 것이 타당한 것인가에 대한 문제로부터 시작된다. 이 제도는 전력 생산과 소비 사이의 사회적 형평성을 높일 수 있는 제도일 뿐만 아니라, 지역별 전력자립율을 높이는 노력을 촉진시킬 것이다. 이상의 제안은 충청남도가 이번 대선을 맞아서 제안하고 있는 것들이다. 한국 석탄발전소의 절반을 가지면서 미세먼지 등 온갖 피해를 감당하고 있는 충청남도의 제안은 중요하게 다뤄질 필요가 있다.

서울시의 제안에 대해서도 심각하게 검토할 필요가 있다. 서울시는 원전 하나 줄이기사업을 진행하면서 개선이 필요한 중앙정부의 법제도에 대해서 의견을 제시하고 있다. 2017년의 건의 사항 중에 하나를 보면, "한국전력공사의 전력공급 계통망을 타전기판매업자에게 공유할 수 있도록" 전기사업법을 개정해줄 것을 요청하고 있다. 이런 요청은 서울시에너지공사의 유정민 책임연구원이 토론하고 있는 "한전 중심의 독점적 판매 시장을 재편해야 한다는 요구"이자 "공공성에 기반한 지역에너지공사의 필요성"에 대한 강조와 연결된다. 이런 제안과 토론은 두가지 쟁점과 연결되어 있다. 우선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배전/판매 부문의 개방 정책은 '우회적인 민영화'로 비판받고 있다. 현재 대선후보들이나 시민/환경단체들은 전력산업 구조개편이라는 중요하지만 복잡한 쟁점에 대해서는 언급하고 있지만, 지역에너지전환에서도 중요한 쟁점이기 때문에 생략할 수 없다. 둘째, 제주도와 서울시는 최근에 지역에너지공사를 설립했으며, 경기도는 에너지센터를 설치․운영하고 있다. 지역에너지전환 정책을 체계적으로 실행하기 위해서 필요한 기관들이다. 이들 기구들은 국가적 차원의 에너지정책에서 어떤 의미가 있으며 무슨 역할을 해야 하는지에 관해서 토론할 필요가 있다.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는 서울시가 제안한 쟁점과 관련하여 (지역)에너지전환과 에너지분권화를 위해서 전력산업 구조개편의 '지역화/공유화' 방안을 제시하고 있다. 한전의 배전/판매 부문을 개방하되 서울에너지공사와 같은 지역에너지공사가 지배적인 사업자가 되어 공공성을 유지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한전의 전력시장 독점의 해체는 핵발전과 석탄발전 기술시스템에 고착되면서 에너지전환을 저항하며 중앙집권적 에너지시스템을 유지하려는 관성을 깨기 위해서 필요하다. 그러나 몇몇 대기업들에게 전력시장의 주도권을 넘어가면서 많은 이들이 우려는 '에너지 민영화'의 부정적 효과―무분별한 전기요금의 인상, 안정적인 공급의 실패, 기 투자된 석탄발전과 핵발전에 대한 고집, 재생에너지에 대한 투자 회피 등, 이미 독일 전력시장에서 나타난 문제들―가 나타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분권화되어 있지만 공공성을 유지할 수 지역에너지공사가 중심적인 역할을 하도록 전력산업 구조를 개편해야 한다. 이는 현재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전력산업의 '우회적 민영화'를 피하면서도, 개발주의 시대의 전력공급 안정성과 전력설비 확대에 고착된 한전 체제를 넘어서기 필요한 접근이다. 궁극적으로 이 제안은 중앙집권적인 전력 시스템에서 벗어나 에너지분권적 전력 시스템을 구축하기 위해서 필수적인 토론거리가 될 것이다.

▲농성하는 시민들과 김홍장 당진 시장(왼쪽 4번째).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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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재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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