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에서 '불평등' 이슈가 사라진 이유

[서리풀 논평] '관료맞춤형 공약'만 난무한 대선

토마 피케티를 기억하시는지? 그가 쓴 <21세기 자본>이 한국 사회를 흔들었던 것이 2년도 채 지나지 않았다. 2014년 9월 피케티가 한국에 온 때가 정점이었을 것이다. 자칭 타칭 '진보'와 '보수'를 가릴 것 없이 언론과 사람들은 <21세기 자본>에 열광했다(예를 들어 당시 한 '유력' 경제신문이 보도한 것을 보라. (☞관련 기사 : "피케티 문제제기 한국서도 의미" vs "이론의 가정과 해결책 비현실적")


피케티와 <21세기 자본>이 시대의 아이콘이 된 것은 '시대정신' 불평등을 말했기 때문이다. 적어도 한국 사회와 사람들은 그것을 불평등이라 읽었다. 날로 심해지는 경제적 고통, 예를 들어 청년실업, 양극화, 부익부 빈익빈, 비정규직, 노인 빈곤 등을 압축하여 표현하는 말로 불평등만한 것이 있었을까.

'1대 99 사회'가 유행한 시기도 크게 다르지 않다. '1대 9'라고 하든 '5대 95'라고 하든 무슨 상관인가. 극소수 부자와 특권층이 경제적, 정치적 권력을 독점하는 것, 그리고 그 격차가 줄어들기는커녕 점점 더 커지는 것을 가리킨다.

'흙수저-금수저' 논란은 아직도 기억이 생생하다. 2015년 중반부터 인터넷과 언론을 후끈 달구었다(☞관련 기사 : <빅데이터 돋보기> 청년의 상실감이 만들어낸 유행어 '헬조선'). 여기다 원천이 같은 '헬조선'까지 보태면 분노와 체념의 시대정신이 한껏 드러난다.


이런 '사회적 언어'는 한 시대의 정조나 한때의 유행이라 할 수 없다. 엄연히 실재하는 경제, 사회적 구조가 드러나고 개인의 삶에 미친 결과다. 역사적으로 말하면, 오래 쌓인 적폐, 유산, 후유증이 삶으로, 그리고 말로 드러난 것이다. 불평등은 부인할 수 없는 시대적 징후라 해야 한다.

불평등이 심하고 점점 더 나빠진다는 근거는 차고 넘친다. 지난 주말 OECD는 한국의 소득 불평등이 심각하다고 지적했다(☞관련 기사 : OECD "한국 노동시간 최고…소득양극화 심각"). 두어 달 전 <노동리뷰>에 실린 '2015년까지의 최상위 소득 비중'에서 드러난 현실은 더 심각하다(바로 가기).


"- 2015년 최상위 10% 집단의 소득 비중은 48.5%임. 2006년 이후 큰 변화는 없지만 2015년 수치는 역대 최고 수준임.
- 최상위 1% 집단의 소득 비중은 2009년 12.2%에서 2015년 14.2%로 조금씩 증가하는 추세임 ()

- 2010년대 최상위 10% 소득비중은 미국 50%, 일본 42%, 영국 39.1%, 프랑스 30.5%, 스웨덴 30.7%로 한국이 미국 다음으로 매우 높은 수준임."

소득 불평등만 문제일까. 흙수저와 헬조선, 1대 99, <21세기 자본>이 이 시대의 화두가 된 데에는 다른 불평등, 예를 들어 교육, 주거, 건강, 지역, 젠더 등 숱한 다른 불평등도 기여했다. 오해하지 말자. 이들 불평등은 따로 떨어져 독립적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서로 물고 물리며, 얽히고설켜, 종합적이고 복합적이다.

모든 불평등이 함께 드러나는, 몸이 말하는 증거라는 점에서 건강 불평등을 특히 강조하고자 한다.

"소득이 낮은 집단일수록 식사가 불규칙하고 라면과 같은 인스턴트 음식을 많이 섭취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나트륨 섭취량이 고소득층에 비해 더 많았다. 과도한 나트륨 섭취는 고혈압과 당뇨 등의 만성질환을 초래할 가능성이 높다.

저소득층은 만성질환이 있었도 의료비 부담 때문에 의료이용을 자제한다. 그러다 보니 병을 더 키우게 된다. 결국 질병으로 인해 노동력을 상실하게 되고, 소득이 줄어 더 가난해지는 악순환의 고리에 빠지게 된다." (☞관련 기사 : 체납된 건보료도, 건강불평등도 대물림…가난은 감염병이다)


통계와 숫자로 표시되는 소득 불평등(지니계수, 집중도 등), 교육 불평등(학력, 진학률 등), 노동조건(노동시간, 비정규노동 등)은 죽음과 질병의 건강 불평등으로 드러난다. 같은 임금을 받아도 비정규 노동자의 건강이 더 나쁘다고 할 때(건강 불평등), 몸은 노동의 불평등을 증언한다 할 수밖에.

불평등을 둘러싼 사정이 이런 만큼, 2017년 대통령 선거는 불평등을 빼고는 말이 안 되는 것이 맞다. 진작부터 여론이 그랬고 전문가도 그렇게 예측했다(☞관련 기사 : [보수-진보 대토론] 소득 불평등 개선 시급 vs 노동시장 개혁이 먼저). 이보다 더 중요한 사회적, 경제적 과제가 한국 땅에 또 있는가?


지금까지 경과는 실망스럽다. 유력 후보가 아닌 몇몇 사람만, 그것도 여러 이슈의 하나로 (스쳐 지나듯) 불평등을 말할 뿐이다. 불평등은 '주류화'되지 못했다! 금방이라도 세금, 노동, 재벌, 교육, 복지, 보건, 지방자치제를 바꿀 것처럼 말하던 그 많은 사람은 다 어디로 갔는가?

이해할 수 있는 대목도 있다. 불평등은 한두 가지 정책만 가지고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소득 불평등 대책만 하더라도 고용과 노동, 경제성장, 대기업과 재벌, 조세, 교육 등 여러 정책이 '패키지'로 포함되어야 한다. 당연히 어렵고 오래 걸린다.

건강과 의료 불평등도 마찬가지다. 응급의료나 분만의 불평등을 줄이려면 당장 병원과 의사, 그리고 환자 운송이 문제지만, 한 걸음만 들어가면 정부 예산, 국민건강보험의 재정, 지방정부의 능력, 지역 경제, 인구, 의사의 노동시장 등 숱한 문제가 걸려 있다. 몇 가지 단편적인 정책이나 사업으로는 어느 것 한 가지도 손대기 어렵다.

이런 정책은 흔히 비현실적이고 반(反)현실적이다. 무슨 인기투표처럼 진행하는 대통령 선거라면 이해당사자를 특정할 수 없는 이런 종합 정책은 '경쟁력'이 떨어진다. 무슨 부처가 없어지니 커지니, 어떤 지역이 유리하니 불리하니, 어떤 직종은 이런 것을 요구한다는데.

공동체, 정의와 윤리, 사회연대에다, 현재를 넘어 미래 구상까지 보태야 하는 불평등 이슈는 설 자리를 찾기 힘들다. 정치권력, 경제권력, 그리고 이에 기댄 언론은 불평등이 중심으로 올까 봐 싫어하고 겁낸다.

게다가 약속과 정책은 정부 조직과 전문가, 이익단체들이 나눈 '영역'에 따라 경쟁하는 듯 보인다. 선거에서 이기기 위해 표를 얻어야 하니, 이해관계와 욕망이 힘을 발휘하는 것을 어찌하랴. 눈에 보이고 빨리 성과가 나타나야 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 모두를 '관료주의적' 공약이라 부를 때, 우리는 결국 현실에 굴복할 수밖에 없는 것처럼 보인다.

다만 아직 끝났다고 포기하기는 이르다. 촛불집회를 통해 띄엄띄엄 드러났지만, 사회경제적 변화에 대한 대중의 열망은 들끓고 있다. 불평등의 실재가 엄존하는 한 그 누구도 변화의 에너지를 완전히 막을 수는 없다.

대통령 선거는 일차적 이해관계와 욕망을 충실하게 반영하는 각축장이지만, 미래를 선취하는 반걸음 '향도'이기도 해야 한다. 그래서 다시 묻는다. 그냥 둬도 괜찮지 않다면, 공동체의 지속 가능성과 미래가 걸려 있다면, 불평등 아젠다를 살려내야 하지 않을까.

대통령 선거에 직접, 간접으로 간여하는 모든 당사자에게 부탁한다. 지연과 학연 등 모든 인연, 정당과 정파, 전문 영역을 넘어, '국가처럼 보기'로 하고 불평등 문제를 검토해 주기 바란다. 국가처럼 본다는 표현은 제임스 C. 스콧의 책 이름에서 따왔지만, 의미하는 바는 전혀 다르다. 국가주의도 아니고 정부주의나 관료주의는 더더구나 아니다. 국가, 정부, 관료제, 내 영역을 넘어, 전체 '정치 공동체(폴리티)'가 번영하기 위해 불평등을 어떻게 할 것인지 비전을 내주기 바란다.

그냥 한 가지 정책이 아니라는 점을 다시 강조한다. '불평등 정책'은 종합 정책이자 비전으로, '불평등 줄이기'는 공약일 뿐 아니라 국정 원리, 목표, 과제가 되어야 마땅하다. 대통령 아젠다가 아니고는 방법이 없다. 이에 부합하는 조직과 운영도 뒤따라야 한다.

혹시 싶어서 사족을 보탠다. 무슨 무슨 위원회 같은 것으로 될 것이라고 생각하면, 또는 모종의 로드맵으로 끝낼 것이면, 맨날 공무원의 무사안일과 부처간 협조를 핑계 삼으려면, 차라리 아무 것도 하지 말라. 저출산 대책이 좋은 반면교사가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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