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그룹 총수 일가의 경영권 분쟁은 진행형이다. 지난 2015년 시작된 분쟁은, 신격호 롯데그룹 총괄회장의 차남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이 일본 롯데홀딩스 주주 가운데 다수의 지지를 받으면서 일단락되는 듯했다. 하지만 그 뒤로도, 롯데그룹은 격랑에 휘말렸다. 이는 다시 경영권 분쟁의 불씨가 될 수 있다.
신 총괄회장의 장남 신동주 전 일본 롯데홀딩스 부회장이 반격을 시작했다. 신격호 총괄회장의 롯데제과, 롯데칠성음료 주식 지분에 대해 압류에 나섰다. 성공하면, 신 전 부회장의 지분이 늘어난다.
검찰, 롯데 면세점 사업권 인허가 과정 수사
어떤 불씨가 있나. 우선 신 회장과 롯데 그룹 수뇌부가 지난해 받았던 검찰 수사가 있다. 이 과정에서 고(故) 이인원 롯데그룹 부회장이 모든 책임을 신 총괄회장에게 넘기는 내용의 유서를 남기고 자살했다. 결국 수사는 큰 성과 없이 마무리됐다.
이렇게 꺼진듯했던 불씨가 다시 타오른다. 박근혜 전 대통령 파면 이후, 검찰은 SK와 롯데에 대해 칼을 겨누기로 했다. 박근혜 정부로부터 면세점 사업권을 따내는 과정에서 부당거래가 있었다는 논란 때문이다. 이는 박 전 대통령 및 최순실 씨가 재벌로부터 뇌물을 받고 대가를 제공했다는 혐의와도 맞물려 있다.
신 회장의 법적 책임이 확인되면, 경영권 분쟁은 새 국면을 맞을 수 있다. 일본 롯데홀딩스 주주 가운데 일부가 돌아설 수 있다.
중국의 사드 보복
더 큰 불씨가 중국에서 피어난다.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의 한국 내 배치에 따른, 중국의 보복이다. 롯데는 경상북도 성주 지역에 갖고 있던 골프장을 사드 배치 부지로 제공했다. 그 결과, 중국에선 롯데 불매운동이 확 달아올랐다. 중국 내 롯데마트 57곳이 영업 정지를 당했다. 중국 내 롯데 매장의 절반 규모다.
주목할 대목은, 신동빈 회장과 신동주 전 부회장의 경영권 다툼이 신동빈 회장의 중국 투자와 관련이 있다는 점이다.
당초 신격호 총괄회장은 장남인 신동주 전 부회장에게 일본 롯데를, 차남인 신동빈 회장에게 한국 롯데를 맡겼었다. 금융에 밝은 신동빈 회장은 활발한 인수합병(M&A)를 통해 한국 롯데의 규모를 대폭 키웠다. 이명박 정부 시기가 절정이었다. 하이마트, 두산주류 등 우리에게 익숙한 대기업이 롯데그룹에 흡수된 것도 이 무렵이다. 그 결과, 롯데는 한국 재계 서열 5위로 성장했다. 한국과 일본 롯데그룹 전체를 지배하는 일본 롯데홀딩스 주주 가운데 다수가 신 회장을 지지한 배경이기도 하다.
인수합병을 통한 성공은, 한국이 일본보다 더 역동적인 경제권이라는 점과도 관계가 있다. 한국 롯데를 맡았던 게 신 회장에겐 기회였던 셈이다. 이후 신 회장은 중국에서 옛 한국의 모습을 봤다. 역시 역동적인 시장이었다. 중국에 파격적인 투자를 했다.
신동빈 회장 주도 중국 투자, 진짜 손실 규모는?
신 전 부회장, 그리고 신 총괄회장 등은 이 대목에서 신 회장을 공격했다. 신 회장이 중국 사업에서 천문학적인 손실을 봤으며, 분식 회계로 그걸 감췄다는 게다. 지금까지는 한쪽의 주장일 뿐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달라졌다. 사드 배치 부지 제공에 대한 중국의 보복은 예상 수위를 훌쩍 넘어선다. 중국 측은 안전 및 위생 시설 미흡 등을 이유로 중국 내 롯데 매장에 대해 영업 정지 조치를 했다. 최근에는 롯데제과, 롯데칠성 등도 보복 대상이 됐다. 식품 내 성분 관련 규제를 종전보다 엄격하게 한다. 일부 제품의 판매 및 생산이 중단됐다. 중국 내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는 롯데에 대한 비난 내용이 넘쳐난다. 게다가 15일은 중국 '소비자의 날'이다. 중국 언론이 이날을 계기로 롯데에 대해 더욱 날선 보도를 하리라는 예상이 나온다.
롯데의 중국 사업 실패는 주장이 아닌 사실로 굳어질 수 있다. 중국 사업을 주도했던 신동빈 회장에겐 위기다. 반대로, 신동주 전 부회장에겐 기회다.
세금 대신 내준 뒤, 아버지 지분으로 돌려받아
신동주 전 부회장 측이 움직이고 있다. 15일 롯데그룹에 따르면, 신격호 총괄회장은 최근 증권사 등 금융업체들로부터 신동주 전 부회장이 신격호 총괄회장의 롯데제과 지분(6.8%)과 롯데칠성 지분(1.3%)을 압류할 예정이라는 통보를 받았다. 이 지분의 가치는 총 2100억 원에 이른다.
이는 신격호 총괄회장이 지난달 말 자신의 재산을 신동주 전 부회장이 강제 집행할 수 있다는 내용의 계약을 신동주 전 부회장과 맺었기 때문이다.
강제 집행하는 명목은 뭔가. 지난해 검찰 수사 결과에 따라 신격호 총괄회장은 2126억 원의 증여세를 내야 한다. 신동주 전 부회장이 이 돈을 신격호 총괄회장에게 빌려준 뒤, 신격호 총괄회장이 보유한 지분으로 돌려받겠다는 뜻이다. 지난해 검찰 수사 결과를 신동주 전 부회장의 지분 확대에 활용한 셈이다.
신동빈 회장 측은 불쾌한 기색이 역력하다. 롯데그룹 측은 "신격호 총괄회장은 지난 1심과 2심에서 모두 정신적 문제가 인정돼 '한정후견인(법정대리인)' 대상이라는 판결까지 받았다"며 "조만간 최종심을 통해 신격호 총괄회장에 대한 '한정후견인' 지정이 확정되기 전에 (신동주 전 부회장 측이) 총괄회장의 지분을 변칙적으로 확보하려는 전략이 아닌가 의심된다"고 밝혔다. 아울러 롯데그룹 측은 "법적 조치를 강구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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