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대개조' 공약? 세월호 거짓 약속의 '박근혜표' 말

[기고] 우리의 기억은 너무 쉽게 망각된다

우리의 기억은 너무 쉽게 망각된다

대선 정국에서 유력 후보들이 앞을 다투어 '적폐 청산'과 '국가대개조' 공약을 내놓고 있다. 그런데 2014년 4월, 세월호 참사 13일 만에 박근혜는 처음으로 대국민 사과를 하면서 '적폐 청산'과 '국가개조'를 약속한 적이 있었다.

당시 박근혜는 "과거로부터 겹겹이 쌓여온 잘못된 적폐를 바로잡지 못하고 (…) 국가 개조를 한다는 자세로 철저하게 임해야 한다"고 강변했다.

세월호의 거짓 약속, '적폐'와 '국가 개조'는 '박근혜표' 용어다. 모두가 박근혜의 주술에 걸린 것일까? 채 3년도 안된 세월인데…. 우리의 기억은 너무 쉽게 망각된다.

'개조'? '민족개조론'의 유산이며 권위주의적 용어

'국가대개조'라는 용어는 자연스럽게 일제 강점기시기 이광수의 '민족개조론'을 떠올리게 한다. 이광수는 이 '민족개조론'을 통해 우리 민족이 열등하고 미개해 나라를 잃고 일본의 식민 통치를 받게 되었다고 주장함으로써 결국 일본 제국주의의 조선 식민지 강점을 합리화하고 친일 사관을 대변해 주는 역할을 했다.

이어서 이명박은 이른바 '국토개조론'을 주장하면서 무려 22조 원이라는 단군 이래 최대 규모의 '4대강 사업'을 강행했다. 그런데 이 '국토개조론'이라는 용어는 사실 일본 다나카 총리가 1969년에 제창했던 '열도개조론(列島改造論)'을 그대로 베껴온 것이었다.

일본 정신이 충실히 투영되어 있는 이 '개조'라는 이 용어는 기본적으로 '물건'이나 '시설' 등에 사용하는 용어로서 인간이나 인간이 구성하는 사회를 대상으로 사용하는 것은 부적합하다. 백번 양보해 인간을 대상으로 '개조' 용어를 사용할 경우에는 '민족 개조'라든가 '인간 개조' 등의 사례에서 알 수 있듯이, 우월적인 위상을 지닌 사람 혹은 집단이 '불건전한 대상'을 '일방적으로' 변모시키겠다는 의미가 강하다.

따라서 '개조'라는 용어는 사회 구성원을 주체적인 존재가 아니라 비주체적이고 피동적인 대상으로 전락시키는 일종의 노예적 용어라 할 수 있다. 이렇듯 권위주의적인 '개조' 용어는 폐기되어야 하며, 그것은 시민과 함께 실천해나가는 '개혁'으로 대체되어야 바람직하다.

"대통령 말씀 자료", 이런 말은 사라져야한다

언론, TV 뉴스에서 "대통령 말씀 자료"라는 말이 많이 튀어나온다. 처음에는 또 듣기 싫은 북한 뉴스를 하는구나 생각했다. 그러나 알고 보니 우리나라 얘기다. 섬뜩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대통령 말씀 자료"는 대통령이 공식 석상에서 할 말을 비서실에서 미리 준비한 자료를 지칭한다. 이런 용어가 박정희 시대부터 존재한 것인지는 분명히 확인되지 않지만, 정치적 소양이 부족한 군인 출신이 통치한 군사정부에서 비롯된 것은 분명하다. 문헌상으로 보면, 전두환 정권 때부터 출현한 것으로 추정된다.

그런데 본래 "말씀 자료"란 "예수 말씀 자료"처럼 신격화된 종교 차원에서 사용된 용어로서 "대통령 말씀 자료"는 신격화의 차원까지 아부를 끌어올린 '아첨의 극치'를 보여준다.

도대체 지금이 어느 세상인데, 이러한 류의 용어들이 사용되는 것인가? 이러한 상황이니 제왕적 대통령이 존재하게 되는 것이고, 비선이 활개치고 국정이 농단되는 것이다. 이런 봉건적이고 섬뜩한 용어, 정말이지 차기 정권에서는 두 번 다시 듣지 않게 되기를 바란다.

덕후, 코스프레, 츤데레? 시대정신에 부합되지 않는다

또 방송이나 신문기사에서 '덕후'라는 말을 많이 듣게 된다. '덕후'란 일본어인 '오타쿠(御宅)'를 한국식으로 발음한 용어로서 국적 불명의 조어(造語)다. 이러한 용어를 특히 TV 방송에서 유명 MC들이 아무런 설명이나 해석도 없이 무비판적으로 마구 사용하는 것은 대단히 유감스러운 일이다.

또 최근에 들어 '코스프레'라는 용어도 너나 할 것 없이 많이 사용하고 있다. 이 용어는 참으로 괴이하게 조어된 일본말이다. 원래 '의상이나 분장이 중요한 요소가 되는 연극이나 영화 혹은 발레 등'을 지칭하는 영어 '코스튬 플레이(costume play)'를 일본에서 '코스프레(コスチュ-プレ-)'라고 일본 식으로 바꾼 말이다.

그런가 하면 아예 일본어인 '츤데레(ツンデレ)'라는 말도 아주 자연스럽게 사용되고 있다.

우리는 과연 일본을 넘어설 수 있을 것인가? 민족 문화란 모름지기 말, 즉 언어를 바탕으로 해 이뤄지는 것이며, 말이 제대로 정립되지 않고서는 민족 문화와 민족정신이 제대로 설 수 없다. 말과 글을 일본 제국주의에 강제로 빼앗긴 역사를 가진 민족으로서 말과 글의 소중함을 이처럼 쉽게 망각해서는 안 된다.

일제 잔재는 우리가 청산해야 할 구체제에서 적지 않은 부분을 점하고 있다. 더구나 지금도 위안부 합의나 한일군사정보협정 문제 그리고 독도 문제를 둘러싸고 우리에게 '일본 문제'는 넘어야 할 커다란 벽이다.

그리해 일제 잔재 청산은 해방 70년을 넘긴 지금도 여전히 중요한 시대정신에 속한다. 일제 잔재를 청산해나가야 할 지금 그리고 일본 군국주의 부활의 움직임이 갈수록 노골화되고 있는 지금, 계속해 일본식 말을 무비판적으로 사용하고 있는 것은 오늘의 시대정신과 전혀 부합할 수 없다.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 3,000원
  • 5,000원
  • 10,000원
  • 30,000원
  • 50,000원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국민은행 : 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소준섭

1970년대말부터 90년대 중반까지 학생운동과 민주화 운동에 몸담았으며, 1998년 중국 상하이 푸단(復旦)대학으로 유학을 떠나 2004년 국제관계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국회도서관 조사관으로 일했다. <변이 국회의원의 탄생>(2019), <광주백서>(2018), <대한민국 민주주의처방전>(2015) , <사마천 사기 56>(2016), <논어>(2018), <도덕경>(2019) 등 다수의 저서가 있다.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