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느님'을 살처분했다

[함께 사는 길] 정유년, 닭과 우리에게 어둠이 걷히길…

어릴 적 나에게도 '얄리'란 작은 친구가 있었다. 어느 봄날, 학교 앞에서 500원에 팔리고 있던 '얄리'와 그의 친구들은 하나같이 노란 솜뭉치처럼 생겼더랬다. 까맣고 동그란 눈을 껌뻑이며 삐약삐약 울어댔는데 혹시나 무서워 그러나 싶어 두 손으로 감싸 안으면 조금 진정이 되는 듯했다. 자길 예뻐하는 걸 아는지 아니면 밥을 챙겨주는 사람이라 그런지 나를 졸졸 따라다녔다. 내 '얄리'도 노래 속 '얄리'처럼 짧디짧은 생을 살았다. 무엇을 좋아하는지, 어떤 모습으로 자랄지 채 알기도 전에 갑자기 떠나버렸다. 작은 상자에 그 녀석을 넣어 묻은 날, 서러움에 지쳐 목이 쉬었다. 그것이 음식이 아닌 '닭'이란 동물과의 첫 만남이었다. 여전히 나는 떠난 그 녀석에 대해 아는 것보다 모르는 것이 더 많다.

열 번째 신(神)

"닭이 세 번 울기 전에는 집으로 돌아가지 마라."

ⓒ함께사는길
영화 <곡성>(나홍진 감독, 2016)에서 마을 수호신 무명은 귀신에 씐 딸과 아내를 구하러 가는 종구를 붙잡는다. 종구가 무명의 말을 들었다면 어땠을까? 닭은 예부터 영험한 존재였다. 울음소리로 새벽을 알리고 그 소리에 산에서 내려왔던 맹수들이 되돌아가고 심지어 잡귀들까지 모습을 감추는 존재라 믿었다. 가장 먼저 일어나는 동물이 아니라 어둠을 걷어내고 새롭게 밝은 날을 맞이하는 영적 존재, 그게 닭이었다.

이런 믿음은 조선시대 열두 달 행사와 그 풍속을 기록한 <동국세시기>에도 전해진다. 새해 첫날 질병이나 재난 등의 불행을 사전에 예방하고 한 해 동안 행운이 깃들기를 기원하며 대문에 세화란 그림을 붙였는데 그 그림에 등장하는 주인공이 호랑이, 용과 함께 닭이었다. 그 셋은 같은 급의 동물인 것이다. 대보름날 꼭두새벽에 첫 번째 우는 닭의 울음소리 횟수를 세어 점을 치기도 했다. 열 번 이상 닭 울음소리가 나면 그해에 풍년이 든다고 동국세시기는 기록한다.

괴력난신(怪力亂神)을 믿지 않는 유학에서도 닭은 다섯 가지 덕을 갖춘 동물로 사랑받았다. 닭 볏은 관을 쓴 머리를 상징한다 하여 문(文), 날카롭게 뻗친 발톱은 무(武), 적을 봐도 물러서지 않고 싸우는 성격은 용(勇), 먹을 것을 함께 나누는 행동은 인(仁), 때를 맞추는 습관은 신(信)이라며 칭송했다.

가히 다른 날개 달린 동물들을 죄 제치고 십이지신의 열 번째를 차지할 만한 날짐승이지 않은가!

멍청하다고?

오늘날 열 번째 신들의 후손들 처지가 딱하다. 영험한 존재는커녕 멍청한 아둔한 패기의 상징이 됐다. '닭대가리'란 말이 어디서 나왔는지 모르지만 몇 가지 설이 있다. 몸에 비해 머리가 작다, 모래와 먹이도 구분 못 하고 먹는다, 기억력이 없다 등. 과연 그럴까. 영국 브리스톨대학에서 동물복지를 가르치는 그리스틴 니콜 교수는 20년간 이 주제로 연구를 해왔다. 그의 결론. '닭이 멍청하다고 생각하는 건 잘못됐다!' 닭은 생후 4년 정도가 된 아이가 갖는 산술능력, 공감능력과 자기통제능력을 갖고 있단다.

그리스틴 니콜 교수뿐만 아니라, '닭대가리'를 깨는 연구 결과들이 적지 않다. 몇 가지를 소개하면, 조류 뇌 구조는 인간 뇌와 유사할 정도로 복잡하며 고유의 지능을 갖고 있는데 닭도 마찬가지다. 닭 울음소리는 24가지로 나뉘며, 각각의 소리엔 다른 메시지가 담겨 있다. 갓 태어난 병아리는 시야에서 물체가 없어져도 그 물체가 아직 존재하는 것을 이해했다. 인간의 경우에는 이를 인식하기까지 태어난 후 1년의 시간이 걸린다고 한다. 또 다른 실험에서 닭은 더 많은 보상을 얻기 위해 스스로를 조절하며 눈앞의 이익보다 더 긴 시간을 기다리는 것을 선택할 줄 알았다. 닭들도 미래를 생각하고, 기대에 못 미치면 좌절하는 감정을 느낄 수 있는 존재라고 연구결과를 설명한다.

사실 인간들 기준으로 닭의 지능을 측정한다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다. 연구결과가 아니라, 그들의 생태를 관심 갖고 관찰하기만 해도 우리 인식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를테면 자연환경에서 닭은 잠들기 전까지 가만히 있지 않는다. 무언가를 쪼거나 땅을 긁으며 온 사방을 돌아다닌다. 이는 먹이를 찾기 위한 행위란다. 닭도 목욕한다. 물이 아닌 모래로 몸에 묻은 이물질이나 기생충을 없애고, 깃털을 좋은 상태로 만든다. 때로 모래나 사기조각 같은 것을 그대로 삼키기도 하는데 배가 고파서가 아니다. 이빨이 없는 닭은 대신 뱃속에 소화를 위한 튼튼한 주머니가 있다. 모래 등을 이곳에 두고 먹이를 분쇄하는 등 소화를 돕는 것이다. 우리가 흔히 '똥집'이라 부르는 모래주머니다. 닭은 밤이 되면 나무나 횃대에 오르는데 밤에 포식자나 적으로부터 피하기 위해 높은 곳에 올라가던 습성 때문이다. 자기를 돌보는 이런 능력만 보아도 '닭대가리' 따위 모욕적인 언사는 접어두는 게 옳다.

불편한 진실

우리는 여전히 닭을 멍청한 동물, 지능이 없는 동물로 매도하는 사회에 산다. 사회심리학자이자 <우리는 왜 개는 사랑하고 돼지는 먹고 소는 신을까>(노순옥 옮김, 모멘토 펴냄)의 저자, 멜라니 조이는 육식주의자들이 만든 음모론을 제기한다. 그들은 동물을 이분법으로 나누는데 영리하거나 멍청하거나, 귀엽게 생겼거나 못생겼거나 하는 식의 분류법이다. 멍청하고 못생긴 건 먹어도 거리낌이 없어지는 효과를 노린 것이다. 이분법의 진짜 효력은 식용에 대한 자책을 넘어선다. 함부로 대할 수 있는 존재라는 낙인효과가 뒤따라오는 것이다.

'치느님'이니 '1인1닭'이란 말이 나올 정도로 닭고기 소비는 굉장하다. 우리나라 1인당 닭 소비량은 1990년 4.0킬로그램(㎏)에서 2014년 12.8㎏으로 3배 이상 늘었다. 1인당 달걀 소비량은 254개다. 산란계와 육계의 수는 1억4627만 마리가 넘는다. 대한민국 국민 수보다 더 많은 닭들이 이 땅에 살고 있다. 이마저도 부족해 2015년 한해 약 10만 톤(t)의 닭고기를 수입했다.

자연 상태에서 닭은 최대 30년까지 살지만, 육계는 생후 35일 만에 도축된다. 닭 사육 환경을 본다면 짧은 생을 차라리 행운이라 불러야 할 것이다.

닭이 삶에 필요한 기본행동을 할 때 필요면적은 평균 0.0475~0.187제곱미터(㎡)라 한다. 날개를 퍼덕이기 위해서는 최대 0.26㎡가 필요하다. 하지만 대부분의 닭에게 허락된 면적은 마리당 0.05㎡, A4용지보다도 적어서 간신히 서 있을 정도의 넓이다. 법이 정한 적정사육면적이란 게 그렇다. 횃대도 없고 모래목욕은 언감생심이다. 대부분의 산란계 사육 방식은 배터리케이지(Battery cage) 시스템이다. 가로 0.5미터(m), 세로 0.5m 크기 철창에 암탉 6마리 정도 들어가는데 닭들은 겨우 머리만 철장 밖으로 내놓고 먹이를 먹을 수 있다. 활동 에너지를 줄이고 사료 섭취량을 줄여 생산성을 극대화하는 것에만 초점을 맞춘 이 공장 안에서 암탉은 날개 한 번 펴보지 못하고 알 낳는 기계로 살다 죽어서야 철창 밖으로 나온다.

살처분 2000만 마리 넘어

공장식 밀집사육방식은 단순히 사육동물의 고통만 부르는 게 아니다. 대량 발생하는 축산분뇨로 환경오염을 부르고, 열악한 서식환경 때문에 면역력이 떨어져 항생제를 남용할 수밖에 없어 이로 인한 식품의 2차 오염도 문제고, 특히 인수공통전염병 발생 시 순식간에 피해 규모는 국가화, 국제화된다. AI가 대표적인 예다.

지난해 11월 16일 전남 해남, 충북 음성에서 발생한 AI는 12월 21일 현재까지도 잡히지 않고 확산되고 있다.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12월 21일 자정 현재 AI 발생으로 살처분된 가금류는 2021만9000수를 기록했다. 이외에 24개 농가 209만7000마리가 살처분될 예정이다. 2003년 이후 최대 살처분 수다.

AI는 매년 되풀이되고 있지만, 정부의 진단과 대책은 한결같다. 철새들 때문에 발생했고, 대책은 살처분뿐이다. 그때마다 전문가와 동물단체, 환경단체는 원인부터 틀렸다고 지적했다. 야생조류국제기구 의 발표를 인용해 '저병원성 AI바이러스는 야생조류와 가금류에서 자연적으로 발생되는 것'이므로, '국내에 저병원성 AI바이러스는 365일 상존하고 있다'는 것이 이들의 주장이다. 실제로 2013년 농림축산검역본부의 사육 가금류 검사에서도 450건의 저병원성 AI바이러스가 확인된 바 있다. 때문에 동물단체에서는 AI도 구제역과 같이 주요 항원에 대한 예방 '백신' 제도를 시행해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하지만 정부는 이를 듣지 않았다.

최악의 AI가 발생한 것은 인재라는 목소리도 나온다. 충분히 설득력이 있는 진단인 것이 지금 일본에도 AI가 발생했다. 그러나 살처분은 90만 마리에 불과하다. 사회안전소통센터 소장인 안종주 박사는 "조류인플루엔자 위기에 대응하는 자세나 방식은 박근혜 정부 들어 벌어진 다른 위기 때와 너무나 닮았다. 세월호 참사와 메르스 대유행 때의 청와대와 정부 대응 모습이 시민들의 뇌리를 불안하게 스쳐 지나간다"며 정부의 늑장 대응을 질타했다.

전문가와 시민사회는 AI의 근본 원인은 공장식 밀집사육이라고 목소리를 높인다. 공장식 밀집사육은 동물의 면역체계를 악화시켜, 저병원성 바이러스가 고병원성 AI의 발생 원인을 제공한다는 것이다. 때문에 공장식 밀집사육환경을 개선하지 않는 이상 지금의 사태를 해결할 수 없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함께사는길

그들과 우리의 새날


다산 정약용 선생은 해남의 귀양지에서 아들이 생계를 돕기 위해 닭을 치겠다는 편지를 받자 양계에 대해 구체적인 양계법을 일러주며 말미에 이렇게 써 보냈다.

"더러 빛깔 종류를 구별해 길러도 보고 또는 닭의 보금자리와 홰를 다르게 하여 살찌고 잘 번식할 수 있도록 길러야 한다. 또 때로는 가끔 닭의 정경을 시로 지어보면서 그 생태를 파악해보아야 한다. 만일 이익만 보고 의를 보지 못하면 못난 사람들의 양계인 것이다."

병신년이 가고 정유년이 밝았다. 닭은 어둠 속에서 새벽을 깨울 것이다. 어둠이 걷히고 새날이 오길 기대한다. 닭에게도 또 우리에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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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 <함께 사는 길>은 '지구를 살리는 사람들의 잡지'라는 모토로 1993년 창간했습니다. 사회적 약자와 생태적 약자를 위한 보도, 지구적 지속가능성을 지키기 위한 보도라는 보도중점을 가진 월간 환경잡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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