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만 촛불에서 되돌아 본 어느 시골 소년의 꿈

[장현근의 중국 사상 오디세이] 혁명으로 새 세상을 연 손문

촛불의 이미지는 조용함이며 타오름이며 빛이요 희망이다. 천만의 촛불, 그 고요한 함성의 궁극적 지향은 세상을 바꾸는 것이다. <주역>의 마흔아홉 번째 혁(革)괘는 불 위에 물이 놓인 형상이다. 백성의 요구에 부응하여 천명이 바뀌는 것이어서 혁명이다. 혁명은 조건이 성숙되는 때와 맞아야 성공한다. 정치학에서 말하는 혁명(Revolution)은 단순한 정권교체가 아니라 사회와 제도를 근본적으로 바꾸는 일이다.

사람들은 갑자기 바뀌는 것을 싫어한다. 그래서 역사적으로 개량이나 개혁은 간혹 있었으나 진정한 의미의 혁명은 거의 없었다. 때와 조건이 무르익은 어느 순간 혁명은 꿈처럼 새 세상을 열어줄 것인가. 천만 촛불 집단지성의 기운이 우리에게 혁명의 새 시대를 기대하게 한 것과 달리 백여 년 전 중국에선 한 사람의 힘으로 혁명의 때와 조건을 성숙시켰다. 손문(孫文)의 삶은 경이로웠고 생각은 깊었으며 2천 년간 황제가 지배하던 중국의 정치를 공화국으로 바꾸었다.

혁명은 아직 성공하지 못했다


손문은 혁명을 완전히 성공시키지 못했다. 1866년생인 그는 평생 혁명을 꿈꾸고 외치고 실천하다가 1925년 간암으로 죽으면서 국사와 가사에 관해 이런 유촉(遺囑)을 남겼다.

"나는 40년 간 국민혁명에 온 힘을 다 쏟았으며 그 목적은 중국의 자유와 평등을 구하는 데 있었다. 반드시 민중을 일깨워 세계가 평등하게 우리 민족을 대하도록 다함께 분투해야 한다. 혁명은 아직 성공하지 못했으니 동지들은 내가 쓴 <건국대강>과 <삼민주의> 등에 입각해서 계속 노력해 달라."

중국 4대 도시의 하나인 광동성 광저우(廣州)는 근대 중국의 상징이자 혁명의 도시였다. 옛 국민정부가 출발한 곳에 중산기념관이 있다. 중산(中山)은 손문이 일본에 있을 때 썼던 성인데 중국 사람들은 이를 호로 삼아 손중산이라 부르길 좋아한다. 거대한 원형 회의실을 중앙에 두고 2층의 회랑을 돌다보면 손문의 일생과 혁명의 꿈을 잘 읽어낼 수 있다. 기념관을 돌아 뒤로 연결되는 위에슈(越秀) 공원엔 곳곳이 손문의 흔적이다. 꼭대기에 우뚝 서 있는 손문기념탑 하단에는 <총리 유촉>이 선명하게 새겨져 있다.

▲ 광저우에 있는 중산기념관. ⓒ장현근


광주 근처 가난한 농촌(오늘날 中山市)에서 태어나 열세 살에 어머니를 따라 하와이 호놀룰루에서 4년간 체류하면서 소년의 생각은 한 번 바뀌었고, 귀국 후 형의 도움으로 홍콩에서 의대를 다닐 때는 이미 혁명가가 되어 있었다. 한 사람의 병을 고치기보다 한 나라의 병을 고치겠노라는 열정에 불탄 것이다. 지식인으로서 개혁을 건의하기도 했으나 스물여덟에 "오랑캐를 몰아내고 중화를 회복하여 공화정부를 수립하겠다"고 맹서했다. 호놀룰루는 단향목이 많이 나서 중국인 이민자들이 단향산(檀香山)이라 부른다. 여기서 조직한 흥중회(興中會)는 1895년 광저우를 필두로 봉기를 시작했다.

무려 열 한 차례의 봉기 끝에 1911년 10월 10일 마침내 마지막 황제를 자금성에 유폐시킴으로써 2천년 전제정치의 문을 닫았다. 손문은 중화민국 임시 대총통이 되었고 이듬해 1월 1일 중화민국 임시정부를 수립하고 이어 <중화민국 임시약법>을 공포했다. 중국 최초의 헌법이다.

시골 소년의 꿈이 어떻게 3백년 청 왕조를 뒤집어엎겠다는 정치혁명이었을까? 수많은 좌절과 도피와 수난 속에서도 꿋꿋이 혁명의 의지를 지켜내고 마침내 혁명의 조건을 성숙시킨 그 현명함은 어디서 온 것일까?

알기는 어려우나 실천은 쉽다

손문은 중국 대륙과 대만 모두에게서 존경받는 국부이다. 베이징의 샹산(香山) 공원, 광저우의 황푸(黃浦) 군관학교, 난징의 중산릉 등 기념시설이 전국에 널려 있다. 손문의 유적을 보면서 사람들은 그의 놀라운 삶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된다. 그런데 더욱 놀라운 건 그의 저작이다. 나는 동양과 서양의 사상을 융합하여 새로운 미래를 열 창조적인 아이디어를 한국이 내놓아야 한다고 늘 주장하고 다니는데, 이런 생각을 처음 한 것은 손문의 <삼민주의>를 보고나서였다. 민족주의, 민권주의, 민생주의는 중국의 전통적 가치와 서양의 근대적 성과를 잘 융합시켜 만들어낸 뛰어난 사상이다.

<건국방략>은 손문의 사상을 집대성한 대작이다. 새로운 국가 건설에 대한 구상이자 계획이다. 1부는 중국인의 심리 건설이다. 그는 일생을 혁명에 몸 바친 사람답게 지난행이(知難行易), 즉 알기는 어려우나 실천은 쉽다고 말한다. 지행합일을 추구한 전통적 인식론을 뛰어넘어 혁명의 실천을 높은 인식에 도달하는 수단으로 여긴 것이다. 두 번째 부분은 실업 계획이다. 거친 혁명의 길을 바쁘게 걸으면서도 거대한 중국의 영토를 머릿속에 면밀하게, 그리고 도로와 철도를 건설할 구체적 노선까지 생각한 경제적 차원의 물질 건설이다. 마지막은 사회건설 로 민권초보(民權初步)라고 부른다. 어떻게 정부를 조직할 것이며 어떻게 민주주의 정치를 구현할 것인지에 대한 구체적인 설계이다. 백년을 내다 본 그의 국가 건설에 대한 구상은 가히 택선고집(擇善固執)이라 할 수 있으며 전통과 현대가 잘 조화되어 있다.

먼 앞날을 내다보며 남한과 북한을 양손에 거머쥐고 통일된 국가 계획을 얘기하는 정치지도자는 왜 우리에게 없는 것일까. 중국정치사상 연구의 비조인 소공권(蕭公權) 선생은 손문의 사상을 중국 정치사상의 완성이라고 칭송한 적이 있다. 동서를 융통하고 신구를 조화하여 집대성한 위대한 창조능력을 지닌 분이라고 극찬한다. 손문은 그의 <자전>에서 이렇게 얘기한 적이 있다.

"중국 고유의 사상을 인습한 부분도 있고 유럽의 학설과 사적을 더듬은 부분도 있으며 내 스스로의 독창적 견해로 얻어진 부분도 있다." 치열한 전통 공부와 각고의 현장경험이 어우러져 천하위공(天下爲公)의 새로운 세상을 열 수 있었던 것이다. 레닌은 손문을 "숭고한 정신과 영웅적 기개로 충만한 혁명적 민주주의자"라고 평가한 적이 있다. 공부가 된 혁명가였다는 말이다.

▲ 손문과 송경령의 결혼서약서. ⓒ장현근


뭇 여인은 타오르는 혁명의 열정을 사모하는가. 영국으로 미국으로 일본으로 떠돌던 손문과 함께한 여성 가운데 저장(浙江) 갑부의 딸 송경령(宋慶齡)은 진실한 혁명의 동지이자 후계였다. 중산기념관에는 마흔아홉 손문과 스물둘 송경령이 일본에서 한 결혼서약서의 진품이 있다. 혁명의 영속을 위해서는 사람이 중요하다. 손문과 장개석(蔣介石)의 만남은 운명이었다. 이들은 모두 우리나라 독립운동과 깊은 관련이 있다. 손문이 세우고 장개석이 교장을 한 황푸 군관학교는 바람이 시원한 주강(珠江) 앞바다를 내려다보고 있다. 많은 남북한의 젊은 청년들이 이곳 군관학교를 졸업했다. 손문이 만든 중산대학에도 많은 한국인이 졸업을 했다.


이 대학을 나온 장지락(張志樂)은 님 웨일즈의 글 <아리랑>의 주인공으로도 유명하다. 그러나 한 둘을 빼놓고는 모두 외롭게 외국에서 살거나 또는 남북한으로 돌아가 쓸쓸하게 죽었다. 이 학교 출신들이 대만과 중국에서 정치적으로 크게 성공한 것과는 너무나 대조적이다. 이유는 무엇일까?

장개석은 참된 혁명의 후계자였을까? 손문이 만들고 그가 장악한 중국국민당이 군벌을 물리치고 전국을 통일함으로써 새로운 세상이 열린 듯 했으나 결국은 대만해협을 사이에 두고 중국을 분열시키고 말았다. 손문이 꿈꾼 혁명은 아직 이뤄지지 않았다. 그가 그려본 미래는 어쩌면 우리의 천만 촛불이 꿈꾸는 미래와 같은 것이었을지도 모른다. 소수의 기득권자들이 만들어낸 경쟁지상주의를 극복하고 모든 사람이 서로 돕고 평화롭게 살아가는 전통과 현대가 어울리는 화합의 세상이 아니었을까. 나는 손문의 이 말을 특히 좋아한다.

"인류 진화의 원칙과 생물 진화의 원칙은 다르다. 생물은 경쟁을 원칙으로 하지만 인류는 상부상조를 원칙으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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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현근

용인대학교 중국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중국 길림 대학교 문학원 및 한단 대학교 등의 겸임교수이다. 중국문화대학에서 '상군서' 연구로 석사 학위를, '순자'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유가 사상의 현대화, 자유-자본-민주에 대한 동양 사상적 대안 찾기에 몰두하고 있다. <중국 사상의 뿌리>, <맹자 : 이익에 반대한 경세가>, <순자 : 예의로 세상을 바로잡는다>, <성왕 : 동양 리더십의 원형>, <중국의 정치 사상 : 관념의 변천사> 외 다수의 저서와 역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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