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려진 자전거에 숨결을 불어넣다

[작은것이 아름답다] 가치 살려 오래 쓰는 '착한 소비'

쓰레기는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넘쳐나는 것들이 벼랑에 떨어지듯 맥락이 끊겨버린 존재이다. 손 때 묻은 소소한 이야기가 담기기도 전에 멈춰버린 시간에 다시 말을 건다. 이야기를 잇는다. 되돌리고 되살린다. 구석진 거리에 버려져 멈춘 자전거를 일으켜 새로운 쓸모로 이어 달리는 두 곳을 찾았다.

연결되고 연결 짓는 세컨드비

'다시 태어난다'는 말이 마음을 잡아챈다. 버려진 것, 숨 잃은 것에 '두 번째 숨결을 불어넣는' 것은 말 그대로 두근거리는 설렘이거나 놀라운 창조 행위에 닿아있다. 서울시 강동구 고덕동 리싸이클아트센터에 업사이클링 기업 '세컨드비(2nd B)'가 있다. 세컨드비를 이끄는 정지은(29세) 님은 쓰임을 다해 버려진 자전거 소모품에 숨결을 불어넣어 새로운 물건으로 다시 서 있는 모습을 보면서 자신도 위로받고 힘을 얻는다고 한다. "동질감을 느낄 때가 있어요. 연민을 느끼죠. 나를 일으키듯 더 늠름하고 멋있고 아름답게, 하나뿐인 물건으로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돼요." 오래전 사고로 한쪽 손이 불편했는데, 조금씩 회복해서 천천히 제 속도대로 일하고 있다. 더는 기능을 못해 버려지거나 방치된 것들이 '다시 태어나는' 과정이 남다르게 다가오는 이유이다.

처음에는 소재가 주는 질감이나 형태에 매력을 느꼈다. 실제 디자인하고 만들다 보니 하는 일이 업사이클링 디자인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환경에 이로울 뿐 아니라,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일이라는 것도 깨달았다. 처음에는 자동차 소모품에 관심이 있었는데, 정작 폐 부속품끼리 조합이 쉽지 않아 다른 소재를 찾다 자전거를 만났다. "버려지고 방치된 것도 많을 뿐 아니라 바퀴, 튜브, 안장 같은 것이나 녹슨 휠, 마모된 기어나 체인 같이 소모품으로 교체되는 것들도 많더라고요. 부품을 구하기도 쉽고 용접이나 다른 장치 없이도 조립하는 것이 가능했어요." 여러 부품 가운데 소모품에 집중하는 이유다.

▲ '세컨드비'에서 만든 전등. ⓒ작은것이아름답다(김기돈)

정지은 님은 소재 선택에도 나름의 설득력 있는 이유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자기만족을 위한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자전거 프레임은 소재로 쓰지 않고 대부분 다시 도색해 재사용한다. "일단 금속이라 튼튼해요. 모양도 다양하고요. 재질도 티타늄에서, 철, 알루미늄까지 회사마다 다르고 자전거마다 달라요. 그런데 분해해서 조합해보면 신기하게도 다 조립이 가능해요. 재미있는 지점이죠." 마모된 정도도 다르고 재질에 따라 녹슨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이 있다. 녹을 그대로 살려 만들기도 하는데, 오히려 사람들이 더 관심을 보인다고 한다.

세컨드비가 주로 만드는 제품은 자전거 기어로 만든 전등, 체인으로 만든 팔지, 튜브로 만든 필통이다. 전등은 자전거 기어와 바퀴살을 용접이나 다른 연결재료 없이 조립해서 완성한다. 어릴 때 좋아했던 '레고' 하듯 늘어놓고 조립해 형태를 만들어가는 일이 늘 새롭다. 체인 조각이 가진 굴곡진 형태감과 금속 질감을 그대로 살려 끈으로 연결해 팔찌를 만든다. 튜브로 필통을 만드는 과정은 서초구 자활센터와 협업한다. 소재를 세척하고 마름질한 뒤 본을 뜨고 재단해서 제품을 만드는 과정을 일일이 교육하면서 만들고 있다.

▲ '세컨드비' 정지은 작가. ⓒ작은것이아름답다(김기돈)

보통 상품은 포장에 신경을 많이 쓰는데, 업사이클링 제품은 저마다 갖고 있는 자전거와 관계된 기억과 이야기를 연결시킨다. "자전거 처음 탈 때 아버지가 뒤에서 잡아주셨던 기억이라든가, 친구와 시골길을 달릴 때 들렸던 차르륵 거리는 체인 소리를 기억한다든가, 이야기가 제품에 담기는 거죠." 정지은 님은 업사이클링 제품을 샀을 때가 아니라 가치를 살려 오랫동안 쓰는 것이 '착한 소비'라고 말한다. 조금 쓰고 버리면 이 또한 쓰레기를 만드는 소비에 불과하니 말이다. 유행을 타지 않고 오래 쓸 수 있어야 하고, 소유하는 것에 자부심을 가지는 물건이어야 한다. "오랫동안 쓰고 헤져도 세컨드비가 가지고 있던 정신이 깃들어 그걸 기억하고 함께 나이 들어가는 제품이었으면 좋겠어요."

업사이클링이 또 하나의 소모성 활동이 되지 않도록 더 가치 있고 깊이 있게 접근하려고 한다. 요즘 너무 쉽게 생각하며 접근하는 것 같아 걱정한다. "가령 페트병은 물질 재활용이 가능하잖아요. 여기에 무언가 덕지덕지 붙여 재활용도 할 수 없게 하는, 뒤를 생각하지 않는 물건은 진정한 업사이클링이 아니라고 봐요." 그이는 '장인' 같은 존재가 되고 싶다. 손해 보거나 몸이 좀 힘들더라도 현실과 덜 타협하고 고집 있게 작업하고 싶다. 천천히 멀리 가기 위해 세컨드비를 통해 '다시 태어나는' 물건들과 만난다. 세컨드비가 다루는 소재들은 대부분 '두바퀴희망자전거'에서 구한다. "연결되어 있다는 것이 얼마나 힘이 되는지 몰라요. 좋은 선배 기업이고, 도움을 많이 받죠. 자전거 소모품들을 세척해서 필요한 만큼 보내줘요. 혼자였다면 할 수 없었을 거예요."

▲ '세컨드비'에서 만든 튜브 필통. ⓒ작은것이아름답다(김기돈)

두 바퀴로 구르며 변화를 만드는 자전거

한해 수도권에 버려지는 자전거가 20만 대에 이른다. 대부분 도시 거리에 오랫동안 방치돼 있다. 자전거 유행이 낳은 그늘진 단면이다. 과잉은 늘 문제를 만든다. 이 자전거들과 인연을 맺은 '두 바퀴희망자전거 사회적협동조합'이 서울시 용산구 후암동 철도 부지에 자리를 잡은 지 10년 가깝다. 사업단형태로 시작해 2010년 예비사회적기업을 거쳐 2013년 사회적기업 인증을 받았고, 올해 기업형태를 협동조합으로 전환했다. 직원들이 조합원으로 참여해 함께 결정하고 고민하며 꾸려가고 있다. 노숙인 자활과 자립을 돕는 역할을 바탕에 두고, 다양한 자전거 재생사업을 꾸리고 있다. 지금도 조합원 대부분이 노숙을 경험했거나 노숙 생활을 했던 분들이다. 서울역을 벗어나 자립해서 살아가는 구조를 만드는 것이 문 닫을 때까지 품고 있는 목표다. "조합원이 13명이고, 일반 직원은 15명입니다. 조합원이든 아니든 함께 동일하게 일을 분담하고 있어요."

두바퀴희망자전거 협동조합 이사장을 맡은 김연설(45세) 님은 자전거는 조합원들 전환점이자 늘 '희망'이었다고 말한다. 자전거는 실제 많은 것을 바꿨다. "버려졌던 수많은 자전거가 두 바퀴로 도로를 달렸고, 다채로운 물건으로 재탄생했어요. 조합원들 삶의 방식도 변화됐죠. 지난 3년 노숙인 120여 명이 자활에 성공했고, 출근율도 90퍼센트를 넘어섰어요. '두 바퀴'가 하는 일이 다양한 방식으로 세상을 조금씩 바꾸고 있다고 생각해요." 자전거를 통해 새로운 관계를 끊임없이 만들고 있다. 협력해서 일을 만들어 가는 폭이 넓어지고 있다. 2009년 뒤로 계속해온 공공자전거와 거치대 관리, 방치된 자전거 수거일을 하며 자전거 정비교육도 이어가고 있다. 수년 전부터는 업사이클링 분야를 확대하고 있다. "지난해 매출규모를 보니까. 자전거 리사이클 영역이 30퍼센트, 업사이클 영역이 30퍼센트, 조형물이 40퍼센트 정도예요. 관공서나 행사에 조형물 세우는 일을 많이 하고 있어요. 상징성이 커서 자전거 휠로 되살림 이야기를 조형하는 거죠." 조형물을 하려면 많은 재료가 필요한 탓에 휠을 비롯해 조형을 위한 부품을 모아놓고 있다. 자전거를 통해 우리 삶을 되돌아보는 계기가 되도록 계속 새로운 작품을 구상한다.

▲ '두바퀴희망자전거 협동조합' 김연설 이사장. ⓒ작은것이아름답다(김기돈)

형체가 비틀어져 제 기능을 못하는 것부터 기능은 그대로인데 녹슨 것, 다양한 상태로 폐자전거가 '두 바퀴'에 들어오면 완전히 해체해서 부품으로만 쓸 것과 자전거로 되살릴 것으로 나눈다. 자전거는 눈에 보이는 부품보다 보이지 않는 부품이 훨씬 많다. 보이지 않는 부품들이 오랫동안 달리지 않아 녹슬고 문제가 생겼다고 기능도 사라진 것은 아니다. 필요하지 않은 부품도 없고, 쓸모없는 부품도 없다. 자전거를 구성하는 부품을 해체하고 다시 재구성하는 과정에서 전혀 새로운 것들이 만들어진다. 해를 거듭하면서 용접, 페인팅, 목공 기술이 많이 올라온 상태다. 페인팅 기술을 위해 조합원을 대전에 있는 교육기관에 파견해 높은 기술력을 갖추게 했다.

청년 기업들과 협업도 진행하고 있다. 디자인 부분과 제품 제작에 있어 아이디어를 공유하고 도움도 받는다. '두 바퀴'에는 다양한 자재들이 있고, 공간도 있기 때문에 필요에 따라 활용하도록 열어뒀다. 자전거 부품으로 업사이클링 제품을 만드는 세컨드비를 비롯해서 여러 회사들에게 부품을 제공한다. 가령 휠, 기어, 체인이 필요하면 분해해서 필요한 양만큼 보내준다. "자유롭게 자재도 활용하고 제품도 만들어보고 연구할 수 있도록 공간을 개방했어요. 어떤 학생은 졸업작품을 업사이클링 주제로 하겠다고 찾아왔어요. 기특해 다 내주고 마음껏 해보라고 했어요. 기술 상담이나 실제 경험도 알려줬고요."

▲ '두바퀴희망자전거 협동조합' 업사이클링 제품들. ⓒ작은것이아름답다(김기돈)
▲ '두바퀴희망자전거 협동조합' 조형물. ⓒ작은것이아름답다(김기돈)

요즘은 업사이클링 제품 연구를 많이 한다. 다채로운 형태 전등, 스탠드, 책상, 옷걸이, 책꽂이, 행거, 필통 같은 제품을 만든다. 직원들도 부품들을 조합해 형태를 만들어보고 아이디어를 낸다. 단순하면서 조형미가 있고 같은 방식의 조립이 지속가능한 모양이 나오면 그것을 제품으로 만들 수 있을지 추가 연구를 거쳐 제품으로 생산한다. "자전거가 다양해 엄밀하게 똑같은 제품은 없어요. 구조는 비슷하지만 크기나 높이가 조금씩 다르죠. 나올 수 있는 형태가 어느 정도 범주화되어 있어요."

조합원들은 자전거의 다양한 변주에 참여하면서 사물을 보는 눈이 풍부해졌다. 하나하나 무엇이든 될 수 있는 가능성이며 생명 있는 자원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다. 부품들이 엮여 새로운 작동을 하고 새로운 물건이 되는 과정을 통해 물건 순환을 몸으로 경험한다. "활용할수록 누군가에게 이로운 일이고, 되살려 만드는 만큼 변화가 일어나고 다양한 관계망이 움직이고 있어요. 서로 연결되어 살리는 작은 생태계가 만들진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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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것이 아름답다

월간 <작은것이 아름답다>는 1996년 창간된 우리나라 최초 생태 환경 문화 월간지입니다.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삶을 위한 이야기와 정보를 전합니다. 생태 감성을 깨우는 녹색 생활 문화 운동과 지구의 원시림을 지키는 재생 종이 운동을 일굽니다. 달마다 '작아의 날'을 정해 즐거운 변화를 만드는 환경 운동을 펼칩니다. 자연의 흐름을 담은 우리말 달이름과 우리말을 살려 쓰려 노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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