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기 오바마 행정부 때, 미중 관계는 남중국해, 사드, 북핵 문제 등을 둘러싸고 갈등 양상을 보여왔다. 그런데 트럼프는 대선 유세 때 중국과의 무역 전쟁을 예고한 데 이어, 44년 동안 미중 관계의 성역처럼 간주되어 왔던 '하나의 중국' 정책에 의문을 표하고 있다.
트럼프는 12월 2일 차이잉원(蔡英文) 대만 총통과 단교 37년 만에 미국 대통령 당선자로서는 처음으로 전화통화를 했다. 파문이 일자, '축하 전화를 받은 걸 가지고 왜 호들갑이냐'는 반응으로 무마하려고 했다. 그런데 11일 폭스뉴스와 인터뷰에선 한술 더 떴다.
"'하나의 중국' 정책이 뭔지 이해하고 있지만, 무역을 포함한 여러 가지와 관련해서 중국과 협상하지 않는다면 '하나의 중국' 정책에 우리가 왜 얽매여야 하는지 모르겠다"며 미중 관계의 금기를 건드린 것이다. 트럼프가 '하나의 중국' 정책에 대한 재검토를 시사한 속셈은 다음 발언에서 확인할 수 있다.
"우리는 중국의 통화 평가절하로 심각한 피해를 입었다. 우리는 관세를 부과하지 않는데 중국은 우리에게 무거운 관세를 부과한다. 남중국해에서는 거대한 요새를 쌓았다. 솔직히 중국은 북한 문제에서 우리를 돕지 않는다."
즉, 중국이 가장 민감하게 여기는 대만 문제를 무역 불균형, 남중국해, 북핵 문제 등에서 중국의 양보를 이끌어내는 지렛대로 삼겠다는 의지를 밝힌 것이다.
주목할 점은 이들 사안이 한반도 문제와도 밀접히 연관되어 있다는 것이다. 미중 관계가 악화될수록 북한은 일종의 이이제이(以夷制夷) 전술로 자신의 생존 공간을 넓히려는 시도를 할 것이다. 한국에 입장에선 미국이냐, 중국이냐는 양자택일의 심리적 압박감이 커질 수 있다.
특히 트럼프가 취임 이후에도 '하나의 중국' 정책에 대한 재검토를 계속 시사한다면, 상황은 더욱 복잡하고 불안해질 공산이 크다. 미국이 대만 문제를 지렛대로 삼아 북핵 문제에 대한 중국의 강경한 태도를 요구한다면, 중국은 북한에 대한 전략적 가치를 더 높게 볼 것이다. 북한이라는 완충지대가 약화되거나 상실되면 '하나의 중국' 원칙을 유지하기가 더 어려워질 것이라고 여길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발등의 불'이라고 할 수 있는 사드(THAAD‧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의 민감성도 더욱 커지게 된다. 1996년 대만에서 독립 열기가 높아지자, 중국은 탄도미사일을 동원해 무력 시위를 벌인 바 있다. 그러자 미국은 항공모함 전단을 대만 해협에 파견해 대만 방어 의지를 과시했다.
대만 해협 위기를 겪은 이후 중국이 공들여 만들어온 것이 바로 '항공모함 킬러'로 불리는 '둥펑-21D' 탄도미사일이다. 대만 해협 등 동북아 지역 분쟁 발생 시 미국 항모 전단의 접근을 억제하겠다는 의도에서 개발·배치된 것이다.
그런데 한국에 미국 사드가 배치되면, '둥펑-21D'의 대미 억제 효과가 반감될 수 있다. '둥펑-21D'는 주로 백두산 뒤쪽에 배치되어 있고, 사드 포대에 포함된 X-밴드 레이더는 유사시 이 미사일의 발사를 조기에 탐지·추적해 미국 항모를 호위하는 이지스함에 전달할 수 있다. 그리고 이지스함은 SPY-1D 레이더로 추가 추적해 SM-3을 발사할 수 있는 능력을 보유하고 있다.
이는 곧 중국이 한국 내 사드 배치를 더더욱 반대할 것이고, 사드 배치 강행시 한국에 대한 경제적·외교적·군사적 보복의 수위도 높아질 수 있다는 점을 예고해준다. 그런데 오히려 황교안 권한대행 체제는 사드 배치 속도를 높이려고 한다. 이는 한국을 '지정학의 감옥'으로 인도하고 '지경학적 기회'마저 집어삼킬 것이라는 점에서 대단히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미중 관계의 미래와 관련해 확실한 것은 '불확실성' 그 자체이다. 미국은 한국의 유일한 동맹국이고 중국은 최대 교역국이다. 그래서 한국은 미중 관계의 향방에 상당한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지는 신세가 될지, 양쪽에서 러브콜을 받는 위상을 구축할 수 있을지, 더 나아가 두 고래를 춤추게 하는 영리한 돌고래가 될지는 상당 부분 우리가 하기 여하에 달렸다.
남북관계 개선과 한반도 평화 진전은 그 기본에 해당된다. 남북관계가 악화되고 한반도 정세가 불안해질수록 한국의 미국과 중국에 대한 배타적인 의존도 심화된다. 반면 관계와 정세가 호전되면 그 자체가 미중 갈등의 중요한 원인이 완화된다는 것을 의미하고 한국의 주도적 위치도 강해진다.
그리고 박근혜 탄핵안 가결로 기회의 창은 조금이나마 열렸다. 협치의 필요성이 절박해진 만큼, 황교안 권한 대행 체제와 국회는 국민과 국제사회에 명확한 메시지를 보내야 한다. 사드 배치 문제는 차기 정부로 넘기고 8년째 중단된 6자회담 재개를 위해 노력하겠다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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