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바 쇼크, 박근혜가 기상청 앱만 안 죽였어도…

[초록發光] 기후 재난, 태풍 차바가 남긴 것

18호 태풍 차바로 인한 피해 복구 작업이 한창인 가운데 이 같은 인재가 재발하지 않길 바라는 마음에서 차바가 우리에게 던진 숙제들을 정리해본다.

태풍 차바, 현실 속 기후 변화

큰 자연 재난을 겪고 나면 천재다, 인재다 말이 많은데, 이번 태풍 피해의 원인은 천재이자 인재이다. 그리고 근본 원인은 기후 변화다.

차바는 동중국해 및 제주도 남쪽 바다의 수온이 평년 대비 1~2도 높았기 때문에 강한 세력을 유지한 채 북상하였는데, 수온이 높게 유지된 것은 올 여름 기후 변화에 따른 동아시아 지역의 고온 현상과 연관되기 때문이다. 결국 기후 변화가 예상하지 못한 엄청난 태풍 피해, 특히 폭우를 가져왔다고 할 수 있다.

올 여름 한국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친 태풍은 다행히 차바가 유일하지만, 지난 8월말 울릉도와 북한 두만강 일대를 쑥대밭으로 만든 것은 남하와 유턴이라는 이상 행보를 보인 태풍 라이언락의 영향이었다.

지난 9월 13~14일 대만(타이완)에는 중심 기압 895헥토파스칼에 순간 최대 풍속 초속 61미터에 달하는 (준) 슈퍼 태풍이 닥쳤다. 올 여름 일본에는 무려 10개의 태풍이 직간접적인 영향을 끼쳤다. 올여름 슈퍼 태풍에 준하는 강도와 이상 경로는 점점 심해지는 기후 변화와 분리해서 생각할 수 없다.

재난 예보에 소극적인 기상청?

태풍 이동에 따른 피해 발생 상황을 살펴보자. 9월말 대만과 중국 남부에 큰 피해를 입히고 소멸한 17호 태풍 메기가 남긴 비구름이 개천절 연휴 때 중부 지방에 큰 비를 내린다는 예보가 있었다.

연휴를 맞아 여행과 나들이 계획이 있던 시민들은 기상청의 폭우 예보에 귀를 기울였지만, 중부 지방에는 20~30밀리미터의 비만 내렸고, 10월 3일 새벽 경기 북부 연천, 포천 일부 지역에만 200밀리미터 내외의 폭우가 내렸다.

서울 중심의 언론은 연천, 포천 지방의 비 피해는 전혀 보도하지 않고, 기상청의 오보를 비판했다. 이를 의식했는지, 기상청은 10월 3일에 18호 태풍의 진로와 강도를 비교적 정확히 예측하고도, 재난을 예보하는 데는 소극적이었다.

10월 5일 자정부터 새벽까지 제주도를 강타한 차바는 최대 순간 풍속 초속 56.5미터에 달하는 강풍과 함께 한라산에 500밀리미터가 넘는 폭우를 뿌린 뒤 아침에 남해상으로 진출하기 시작했다. 태풍 중심에서 북쪽 50킬로미터 지역에 만들어진 좁은 집중 호우대는 태풍의 이동 경로에 따라 경상남도 고성(9시~10시)→북창원(9시 30분~10시 30분)→양산(10시~11시)을 따라 대략 30분 정도의 시차를 두며 시간당 100밀리미터 이상의 폭우를 뿌려대며 울산으로 향하고 있었다. 반시계 방향으로 회전하며 경상남도 남해안을 따라 북동진하던 태풍이 울산 서쪽 영남 알프스 고산 지대를 만나면서 집중 호우대가 더욱 발달하여 오전 11시를 넘으면서 울산 지역에 끔찍한 폭우를 쏟아 붓기 시작했다.

기상청은 태풍에 따른 폭우를 비교적 정확히 예상하고도, 왜 재난 예보에는 소극적이었을까? 10월 3일 오후 16시 기상청 보도 자료 및 날씨 해설을 보면, 제주 산간에는 400밀리미터 이상, 경상 해안에는 최고 250밀리미터 이상의 폭우가 내릴 것으로 예상하고 있었는데도 말이다.

울산의 홍수와 침수는 막을 수 없었나

폭우가 내려도 너무 많이 내렸다. 영남 알프스라 불리는 울산 서쪽의 산악 지대를 비롯하여 울산 지역에 내린 빗물이 모두 태화강으로 모여드는 지형 특성상, 이번처럼 기록적인 폭우가 내려 순식간에 태화강물이 늘어나면 울산은 피해를 입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침수는 막을 수 없었지만, 시민의 희생은 막을 수 있었다.

울산 북구 대곡 관측소 기준, 10시 30분부터 11시 30분까지 1시간 강우량이 139밀리미터에 달하는 등 울산 중구, 북구, 울주군에는 불과 3시간 만에 300밀리미터의 폭우가 내렸다. 집중 호우대의 이동 경로에 따른 짧은 시간(9시~12시)이 울산이 재난에 대비할 유일한 시간이었다.

하지만 최고의 산업 도시 울산은 그에 걸맞은 최고의 재난 안전 시스템을 갖추고 있지는 못했다. 울산 중구 도심 언덕 지역의 난개발은 골목을 거대한 수로로 만들어 큰 재산 피해를 만들어 냈다. 1명의 사망 사고가 난 언양읍 현대아파트는 얕은 태화강 범람을 고려하지 않은 듯, 강둑과 아파트가 바로 붙어 있었다. 태화강변과 저지대 주민들에게 재난 경보는 미리 전달되지 못했고, 강물이 불어날 무렵 늦은 경보는 오히려 주민들의 희생을 부르고 말았다.

이번 폭우를 계기로 산업 도시 울산의 근본적인 변화가 필요하다. 태화강과 동천강등 도심 하천 정비와 배수관 확장에 그친다면, 앞으로 비슷한 집중 호우에 똑같은 피해를 입을 수 있다. 최고의 산업 도시 울산은 최고의 재난 안전 도시가 되어야 한다.

기상청 앱은 어디에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의 재난 대응 체계와 신속한 기상 정보가 부족하다 보니 시민들은 재난 시에 기상청 홈페이지로 몰리게 된다. 그럴 때마다 기상청 홈페이지는 다운되고, 시민들은 불안에 떤다. 기상청은 예보 정확성으로 욕을 먹고, 늦은 통보로 또 한 번 더 욕을 먹지만, 이런 재난 앞에서 기상청을 무조건 비판하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다.

일기예보의 문제는 예보의 정확성보다는 다른 문제가 더 크다. 강수대가 지났는데 강수량만 보고 발효되는 면피성 기상 특보, 부실한 날씨 정보 제공, 언론들의 재난 중계 방송 보도 행태는 당장이라도 개선할 수 있다.

시민들에게 재난 정보와 대응책이 신속하고 정확하게 전달되어야 하지만, 박근혜 정부는 기상 정보가 돈이 되어야 한다며, 기상청 앱을 중단했다. 사실상 유일한 기상 정보 업체인 K사에 특혜를 준 것이다. 기상청 앱 하나가 대단한 효과가 있지는 않겠지만, 안전보다 돈을 중시하는 박근혜 정부의 성격을 보여주는 것이다. 지진 안내 문자든, 기상 재난 정보든 기상청 앱을 통해서 해결해보자.

침대는 과학, 예보는 정치

일기 예보는 과학의 영역으로 생각하기 쉽지만, 일기 예보는 정치의 영역이 되어야 한다. 좁은 의미의 정치를 이야기하는 게 아니다. 시민 의식과 참여가 더 나은 정치를 만들 듯, 시민의식이 더 나은 일기 예보를 유도한다. 안전을 강조하는 사회, 사전 예방을 중요시하는 사회에서 일기 예보는 안전을 강조하게 되지만, 날씨에 따른 손실만 따지고 기업의 이윤이 최고의 가치인 사회에서 일기 예보는 사전 예방의 원칙을 반영하기 힘들게 된다. 사전 예방의 원칙에 의해 다소 과도하게 예보된 일기 예보는 기업들에게 단기 이익이 줄어드는 착각을 일으킬 수 있기 때문이다.

일기 예보가 정확한 사회가 안전한 사회일까? 일기 예보 정확도가 99%쯤 되면 안전한 사회일까? 모두가 믿는 일기 예보가 한 번 틀리면 더 큰 재앙이 올 수 있지 않을까? 정확성만 믿기 보다는 일기 예보와 날씨의 불확실성에 대해서 인정하고, 다양한 재난 안전 장치를 마련해 놓는 게 더 안전할 수 있다. 이를테면 기상 특보 시 자동으로 휴교, 휴일이 지정되는 재난 안전 휴교령과 재난 안전 휴일제는 이제는 상식이 되어야 한다. 침수된 길을 뚫고, 강풍을 피해 등교와 출근을 하는 사회는 얼마나 위험한 사회인가?

폭우 피해를 입은 분들에게는 죄송한 말이지만, 집중 호우대가 울주군 온양읍과 기장군 일대를 피해가서 최악은 피했다고 생각한다. 현대차 출고장이 아니라 고리 핵발전소가 침수됐으면, 더 끔찍한 사태가 벌어졌을지도 모를 일이다.

기후 변화로 인한 기상 재난은 늘어나고, 피해 규모는 커질 것이다. 이제는 단기간에 기후 변화를 막을 수도 없다. 일단 기후 변화를 늦출 수 있는 파리 협정에 동의하고, 경제 성장보다 안전을 최우선으로 하는 정치 세력을 응원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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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는 노동자, 농민 등 사회적 약자와 가난한 나라를 보호하는 에너지 정의, 기후 정의의 원칙에 입각해 기후 변화와 에너지 위기에 대응하는 '정의로운 전환'을 추구하는 독립 싱크탱크입니다. '초록發光'은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와 <프레시안>이 공동으로 기획한 연재로, 한국 사회의 현재를 '녹색의 시선'으로 읽으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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