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진핑은 왜 전임자를 높이나?

[양갑용의 중국 정치 속살 읽기] 문선의 학습과 ‘계승’ 정치의 지속

중국이 오랜 기간 흔들리지 않고 하나의 체제를 유지하는 데는 여러 요인이 있다. 그 가운데 '계승과 발전'을 '변화와 발전'보다 먼저 고려하는 정치 문화는 중요한 요소 가운데 하나다. 정권이 바뀌면 전임 정권과 다른 길, 즉 변화를 먼저 강조하는 우리의 정치 문화와 달리 중국은 전임 정권의 계승을 먼저 이야기하고 나중에 자신의 색을 입히는 변화를 모색한다. 단절보다는 계승을 강조하는 문화가 우리와 다른 점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계승의 관점에서 보면 전임 권력에 대한 평가는 바로 현 권력에 대한 미래 평가의 시금석이 된다고 볼 수 있다. 즉, 현재의 권력이 미래의 후임 권력에 계승된다는 점을 정치적으로 잘 알고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전임 권력에 대한 평가는 바로 현재의 권력에 대한 평가이기도 하다. 그래서 '전임 권력에 대한 평가'를 조심스럽게 접근하면서 미래를 위해 회피하지는 않는다.

전임 권력을 평가하는 여러 수단 중에는 전직 지도자의 발언과 강연, 발표문 등을 묶어 단행본 형태의 책자를 발간하는 일이 자주 활용된다. 중국에서는 이를 '선집(選集)', '문선(文選)'이라 부른다. 물론 집단 지도 체제를 근간으로 하는 중국에서 주요 지도자 개인의 발언이나 강연, 연설이 한 개인의 견해만을 담아낸다고 단정할 수 는 없다. 하지만 어찌되었든 최고 지도자 개인의 집권 시기의 발언 등을 정리하여 미래 권력의 귀감이나 참고 자료로 삼는다는 점은 '계승'을 중시하는 중국의 정치 전통과 맥을 같이 한다. '선집'과 '문선' 또한 이런 맥락에서 추진된다.

'선집' 혹은 '문선'은 중국공산당 내 최고 규격을 대표하는 지도자의 저작을 말한다. '최고 규격'이란 문선 편집을 중앙문헌편집위원회가 책임지고 인민출판사에서 출판한다는 의미다. 예컨대, <마오쩌둥 선집(毛澤東選集)>, <저우언라이 선집(周恩來選集)>, <류샤오치 선집(劉少奇選集)>, <주더 선집(朱德選集)>, <런비스 선집(任弼時選集)>, <덩샤오핑 문선(鄧小平文選)>, <예젠잉 선집(葉劍英選集)>, <장쩌민 문선(江澤民文選)>, <후야오방 문선(胡耀邦文選)>, <후진타오 문선(胡錦濤文選)> 등이 이에 해당한다.

2016년 9월 말에 발간된 <후진타오 문선>은 2006년 발간된 <장쩌민 문선>과 이후 9년 만인 2015년에 발간된 <후야오방 문선> 이후 다시 10개월 여 만에 발간된 전직 최고 지도자의 저작이다. 이는 분명 계승을 변화보다 우선시 하는 중국 정치의 '입언(立言)'의 전통이 반영된 결과물로 볼 수 있다.

2016년 9월 발행된 <후진타오 문선>은 덩샤오핑 이후 지도자들의 발언록을 '선집'에서 '문선'으로 바꾼 이후 네 번째 발행이다. 또 <후진타오 문선>은 2006년 8월 출판된 <장쩌민 문선> 이후 두 번째로 생존하는 전직 최고 지도자의 문선이라는 점에서 <후야오방 문선>과는 그 의미가 다르다.

죽은 최고 지도자의 '문선'은 평가의 의미가 담겨 있지만 살아있는 전직 지도자의 문선은 평가와 함께 학습의 요구가 담겨있다. 예를 들어, <후야오방 문선>은 그의 죽음이 천안문 사건의 도화선이 되었기 때문에 일정 기간 그에 대한 언급이나 평가가 금기시되었지만 그의 문선의 발행을 계기로 후야오방에 대한 중국공산당 중앙의 공식적인 평가가 내려졌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보면 <자오즈양 문선(趙紫陽文選)>의 출간이 늦어지는 이유는 중국공산당 내부에서 아직까지 자오즈양에 대한 평가가 금기시되거나 내부 합의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이에 비해 <장쩌민 문선>과 <후진타오 문선>의 발행은 현재 진행형인 중국공산당의 국가 건설에 대한 학습의 효과를 기대하는 측면이 더욱 강하다고 본다. 전직 최고 지도자에 대한 예우 차원의 전통을 '입언'의 학습을 통해서 정당화하고 합리화하기 위한 고도의 정치적 동기가 작동한 것이다. 왜냐하면 현직 지도자의 리더십을 전직 최고 지도자의 '문선' 학습을 통해 강화하려는 노림수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퇴직한 전직 최고 지도자를 '역사'의 판단이 아니라 '현재'의 필요에 의해 재구성하고 이를 현직 최고 지도자의 리더십 정통성을 '계승'이라는 프레임을 통해 구현해내려는 정치적 의도가 내재되어 있기 때문이다.

또 전직 최고 지도자에 대한 예우는 현직 최고 지도자의 미래 '관행의 정치'를 착근시키는데 좋은 귀감이 된다. 따라서 살아있는 권력이 전직 권력에 대한 평가를 하는데 있어서 일종의 '학습' 프레임을 활용하는 것이다. 이는 당연히 '문선'에 대한 학습 열기로 이어질 것이고, 이 학습 열기는 현 최고 지도자의 권위를 강화시키는데 일조하게 된다.

▲ 서점에 배치된 후진타오의 문선. ⓒwikimedia.org

시진핑 주석은 <후진타오 문선>의 발행에 즈음하여 개최된 학습 보고회에 직접 참가하여 발언할 정도로 <후진타오 문선> 학습 보고회는 당 중앙의 매우 중요한 과업이었다. 시진핑은 학습 보고회에서 <마오쩌둥 선집>, <덩샤오핑 문선>, <장쩌민 문선>과 마찬가지로 <후진타오 문선>이 '당이 인민을 영도한 위대한 실천이자 성공적인 경험'이라고 평가할 정도로 전직 최고 지도자들과 비견되는 평가를 내렸다. '입언'의 정치에 의하면 시진핑의 이러한 평가는 바로 중국공산당 중앙의 평가이며 모든 중국공산당 당원들이 체득해야 하는 학습의 지침이기도 하다.

시진핑은 <후진타오 문선>이 내용이 풍부하고 사상의 깊이가 있기 때문에 학습을 통해 당의 사상 정치 건설과 당원, 간부의 이론 학습과 훈련에 있어서 중요한 위치에 두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의 언급은 바로 당의 학습 지침이기도 하다. 물론 이러한 평가는 시진핑 주석 은퇴 이후 <시진핑 문선>이 발행되었을 때 똑같은 맥락에서 평가되어야 한다는 일종의 '관행의 룰'을 선점하는 효과를 염두에 두었을 것이다.

그러나 평가가 빠지고 학습이 강조되는 경향을 보이는 최근의 문선은 개인 리더십을 강화하는 도구로 활용될 수 있다는 부정적인 측면도 존재한다. 최고 지도자 평가에서 마오쩌둥은 당의 초기 영수로서 그리고 중화인민공화국의 첫 국부로서 늘 예외이다. 사회적 합의 또한 매우 두텁다. 마오쩌둥 개인의 공과는 이미 '역사 문제에 관한 결의'에서 평가가 내려졌다.

덩샤오핑 또한 스스로 제2세대라는 자신의 평가를 역사의 평가로 수렴시켜버렸다. 개혁 개방은 덩사오핑에 대한 평가를 논쟁의 영역에서 사유의 영역으로 공고히 해버렸다. 사실상 덩샤오핑에 대한 평가는 역사적으로 정리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천안문 사건에 대한 평가에서 해석의 여지는 남아 있겠지만 기존 '평가'를 뒤집을 만한 정치 환경의 변화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자오즈양 문선>이 나오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러나 덩샤오핑 이후 중국의 지도 체제는 개인 중심의 위계적 시스템에서 이른바 집단 지도 체제로 변했다. 개인의 리더십이 중시되는 것이 아니라 집단의 지혜와 집단의 결정이 개인의 판단보다 우선시되는 기조를 형성한 것이다. 그 과정에서 분명한 차이는 장쩌민은 늘 '핵심'이었다는 점이다.

시진핑 주석도 <후진타오 문선> 학습 보고회 연설에서 '장쩌민 동지를 핵심으로 하는 제3세대 중앙 영도 집단'이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이러한 언급에서 보듯 <장쩌민 문선>의 학습은 장쩌민이 이미 핵심이었기 때문에 굳이 광범위하게 확대할 필요는 없었다. 물론 <장쩌민 문선> 발행 당시에도 다양한 형태의 선전 활동이 있었지만 <후진타오 문선>이 발행된 2016년 10월의 분위기는 사뭇 다르다. 후진타오는 '핵심'이라기보다는 '총서기'라는 공식 직함으로 불렸다. 리더십에서는 비교적 약한 위치에 놓여 있었다. 시진핑 주석도 <후진타오 문선> 학습 보고회에서 '후진타오 동지를 총서기로 하는 당 중앙'이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시진핑 역시 현재 '시진핑 동지를 총서기로 하는 당 중앙'이라는 표현으로 불린다. 이는 앞서 말한 대로 '계승의 정치'를 잘 보여주는 대목이다. 의도야 어떻든 시진핑은 '핵심'이라는 표현보다는 '당 중앙의 총서기'라는 공식 직함으로 불린다. 이러한 호명은 리더십 강화 측면에서 보면 아직 '핵심'으로 부상하지 못하고 '계승' 차원에서 전임 권력의 지도 체제 패턴을 충실히 따르는 것으로 보인다. 적어도 지도 체제 관련해서는 아직 '변화'보다는 '계승'의 정치가 작동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후진타오 문선> 학습 열기는 역설적이게도 '평가'의 영역이 아니라 '학습'의 영역으로 중시되고 강조되는 '핵심' 이후의 정치 변화가 아직 미미함을 잘 보여준다. 그런 측면에서 "과학적 발전관과 18기 5중전회에서 제시한 혁신(創新), 협조(協調), 녹색(綠色), 개방(開放), 공향(共享)의 5대 발전 이념은 일맥상통한다"는 시진핑의 언술은 여전히 '계승'의 정치 전통을 보여주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현재 중국에서 <후진타오 문선>에 대한 학습의 강조는 '변화'보다는 '계승'의 정치 문화를 당분간 지속해 나가겠다는 '정중동(靜中動)'의 의도가 행간에 깔려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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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갑용

성균관대학교 성균중국연구소 연구실장. 중국의 정치 엘리트 및 간부 제도와 중국공산당 집권 내구성에 관심을 두고 연구하고 있다. 중국 상하이 푸단 대학교 국제관계학원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국민대학교 중국인문사회연구소 HK연구교수, 한국외국어대학교 중국연구소 연구원을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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