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한반도 사태 대비 전력 확대한 까닭은?

[김태호의 중국 군사세계] 전쟁의 교훈③ 한국전쟁 개입으로 중국이 얻은 교훈

중국이 한반도의 전쟁(1950-53년)에 군사적으로 개입함으로써 발생한 결과와 얻은 교훈은 무수히 많다. 대표적으로 미국과의 적대 관계가 공고화되었는데, 이는 1972년 닉슨 대통령이 중국을 방문할 때까지 20년이나 지속되었다. 또한, '대만 해방'이라는 목표가 좌절되었는데 이는 현재까지도 해결되지 않고 있다. 냉전이 진행되고 있는 국제 환경으로 인해 중국은 1950년대 소련에 경사(一邊倒)될 수밖에 없었으나, 전쟁 중 물자 지원 등을 둘러싼 마오쩌둥과 스탈린의 갈등은 훗날 중소 분쟁(中蘇紛爭)의 불씨를 남기게 된다.

위에서 지적한 결과와 교훈은 대체로 안보 전략적 차원에서 바라본 것이다. 한국전쟁은 중국이 건국한 지 불과 1년 만에 국외 전쟁에 참여한 사례이고, 미국을 비롯한 서방의 입장에서도 공산주의 이념의 확산 방지와 미국의 전후 아태 질서 형성에 큰 영향을 미친 사건이다. 같은 이유로 한국에서 뿐만 아니라 미국 및 중국에서도 시기별 차이는 있으나 한국전쟁에 대한 매우 다양한 분석이 이뤄지고 있다.

한국전쟁에 대한 연구 결과가 방대하고 자료에 따라 다른 시각을 보이기 때문에 이를 종합적으로 분석한다는 것은 짧은 지면에서는 불가능한 일이다. 여기에서는 최근 출간된 분석 자료를 중심으로 중국군이 얻은 작전상의 교훈을 적시하려고 한다. 한국전쟁에 대한 국내 연구의 2차 자료 '상호 베끼기' 관행을 자제했으면 하는 바람에서 소개하는 것이다.

▲ 중국인민지원군의 한국전 참전을 기념하는 우표. ⓒwikimedia.org


중국군의 작전상의 교훈

중국은 타국을 침범하지 않고 항상 평화를 사랑하며 '방어적' 국방 정책만을 유지한다는 전략문화를 정당화하기 위해 한국전쟁을 '항미원조전쟁(抗美援朝戰爭)'이라 부른다. 한국전쟁에 동원된 병력 또한 중국군 정규 부대였음에도 불구하고 '중국인민지원군(中國人民志願軍, CPV)'이라고 명명한 것도 동일한 이유에서다.


전쟁 중 중국군이 당면한 최대의 과제, 즉 작전상 교훈은 군수지원의 문제였다. 총 5회의 전역(campaign) 중 비교적 중국과 북한에 유리했던 1, 2차 전역 후 전선이 교착되자 장기간 진지전(陣地戰)에 돌입하게 되었는데, 이는 전선을 확대할 수도 없고 퇴각할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병참 문제에 대해서는 다양한 자료와 증언이 있는데, 한 자료에 따르면 UN군의 공중 우위로 인해 1951년 4월 8일 하루에 열차 차량 84개 동(棟)이 불에 타는 바람에 식량 1,500톤, 피복 406,000벌, 군화 190,000 켤레가 소실되었다고 적고 있다. 특히, 당시 한반도의 겨울은 지옥과 같은 전장 환경이었는데, 영하 30도의 추위에 얇은 피복만을 입고, 탄약과 식량 보급이 끊어진 상태에서 "돌, 주먹, 그리고 이빨"만으로 산악, 숲, 혹은 동굴에서 지내야했다고 술회하고 있다. 군수 지원 문제는 공식 문서, 회고록, 증언 등에 나타나는 제1의 교훈이다.

▲ 장진호 전역에서 미국 해병대에 투항한 중국인민지원군의 모습. ⓒwikimedia.org


두 번째 작전상 교훈은 지휘·통제의 문제이다. 지원군 총사령관은 베테랑 장군인 펑더화이(彭德懷)였으나 전략의 결정뿐만 아니라 작전상 지시도 마오쩌둥에 의해 이뤄졌다. 이는 국민당과의 내전 시기(1946-49년)와 비교해 봐도 야전 지휘관의 권한이 축소되었음을 의미하며, 마오쩌둥의 개인적 위상 유지뿐만 아니라 중국 체제의 속성인 "당이 군을 지휘한다"는 원칙을 보여준 사례이다. 이외에도 중국군은 사령관과 정치위원이 명목상 같은 권한을 갖고 있는데 외국에서의 전투 상황은 정치위원의 역할을 크게 축소시키게 되었다. 중국 지원군과 북한군 간의 지휘권 문제 또한 잘 알려져 있다.

작전상 교훈의 세 번째는 한국전쟁 후 중국군은 현대화와 전문화를 추진했다는 점이다. 비록 중국군은 "(전력이) 우세한 적과 싸워 이기는 것"을 '우량 전통'으로 삼고 있으나 현실적으로 '느린 다리, 짧은 팔(slow legs, short arms)'로는 군사적·정치적 목표를 이루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상당한 인적·물적 피해를 감수해야 했다. 1953-59년 기간 중 실시된 중국군 현대화는 소련의 지원을 기반으로 추진되었으나, 1959년 펑더화이의 숙청으로 중단되었고, 이후 국내 정국의 혼란(예, 문화대혁명, 마오의 사망과 파벌 투쟁)이 종료된 1980년대 중반에야 재개되었다. 동 기간 중 중국군의 무기와 장비가 상대적으로 노후화·구형화 상태에 머물렀음은 자명한 사실이다.

다른 작전상 교훈도 적지 않다. 부대 단위 간 소통의 문제, 병력 공격보다 영역 확보에 중점을 둔 점, 무리한 공세(전역) 추구 등이 있다. 역으로 UN군의 작전도 많은 취약점을 노출했다. 한국전 당시 중국 인민지원군의 5회에 걸친 전역에 대해서는 국방대학교 박창희 교수의 <현대 중국 전략의 기원>(플래닛 미디어, 2011, pp. 237-395)를 참고하길 바란다. 이외에 1949년 이후 중국 국경지역의 격전지를 찾아 조사한 도쿄대 이시이 아키라(石井明) 명예교수의 저서가 한국어로 출간되었는데 연구의 귀감이 된다. 이시이 아키라의 <중국 국경, 격전의 흔적을 걷다>(이용빈 옮김, 한울, 2016)를 읽어보길 권한다.

역사적 교훈과 미래의 예측

역사를 올바로 이해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이는 자명하기 때문에 공리(公理)에 가깝다. 문제는 '지나친 단순화'와 '차별성의 부족'이다. 즉, 사용자의 필요에 의해 단순 정리되고, 맥락과 상황이 다름에도 유사한 것으로 정의된다. 이는 전쟁의 교훈 시리즈도 마찬가지인데, 과거 중국의 한반도 침략사를 감안하여 미래를 예측한다던가 아니면 '개혁·개방기 중국'의 안정적 대외 환경 필요성만을 강조하는 경우가 이에 속한다.

중국은 한국전쟁 이후에도 수차례에 걸쳐 국경 지역을 대상으로 무력을 사용했으나, 병력 동원, 군수 지원, 당-군 관계 측면에서 한국전쟁 수준의 교훈을 얻지 못한 것으로 판단된다. 이후 1953-59년까지 짧은 기간 군 현대화를 실시했으나 긴 공백 기간을 맞이했고, 1985년부터 현재까지 본격적인 군 현대화를 실시하고 있다. 요약하면, 현재의 중국군은 1950년대의 중국군이 아니다. 군사 분야의 모든 측면에서 중국군은 탈바꿈하고 있다.

한반도, 특히 북한의 유사 사태 발생시 중국군의 역할과 행동에 대해서는 공개적으로 많은 논의가 있어 왔다. 한국과 같은 전면적인 군사 개입은 상정하기 어렵다. 적어도 경제·외교·군사적 피해를 감안할 때, 현명한 방법은 아니다. 다른 방안은 적지 않다. UN군에 중국이 참여하는 방법, 역외 작전과 같이 국경 방어와 난민 보호를 실시하는 방법, 그리고 내부적으로 비(非)전쟁 군사작전을 실시할 수도 있다.

군사적 옵션은 항상 최후의 수단이 되겠으나 적어도 중국군의 동향에 대해서는 열린 자세로 그러나 면밀히 조사할 필요가 있다. 최근 중국군은 과거 7대 대군구 체제에서 5개 전구 체제로 전환한 바 있다. 이는 소규모 전구급(戰區級)에서 보다 대규모인 전역급(戰役級) 전투를 대비함을 의미한다. 또한, 한반도의 사태를 대비하는 북부전구의 경우 관할 지역이 크게 확대되었는데, 과거 선양(瀋陽) 군구의 3개 집단군(39군, 16군, 40군)뿐만 아니라 지난(濟南)군구의 26군이 포함되었다. 산둥(山東) 반도의 26군은 한반도만을 대비한 전력이라고 볼 수 있다.

특히, 한국의 사드(THAAD) 배치 결정 이후 한·중 간에는 군사적·강압적 수단을 포함한 논의가 있었는데, 그 간의 한·중관계로 미루어볼 때 바람직하지 않은 행동이다. 상대방을 적으로 가정하면 궁극적으로 적이 된다는 것은 자유주의의 오랜 명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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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호

한림국제대학원대학교 현대중국연구소장 겸 한림대만연구소장을 맡고 있고, 국방부와 해군의 자문위원이다. SSCI 등재지 The Korean Journal of Defense Analysis의 편집장을 역임했다. 주요 연구 분야는 중국의 3事(人事, 外事, 軍事)이다. "Sino-ROK Relations at a Crossroads" "China's Anti-Access Strategy and Regional Contingencies" 등 150여 편의 논문이 있고,<동아시아 주요 해양 분쟁과 중국의 군사력> 등 다수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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