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레시안 기자가 쿠바에 가보니, 달랐다!

[프레시안 books] <너는 쿠바에 갔다>

낯설음의 두려움을 이기기란 쉽지 않다. 우리는 본능적으로 안전을 추구한다. 그래서 지난 수천 년간 우리는 삶을 보장할 다양한 안전장치를 가꾸는데 골몰했다. 기어이 이 장치들은 켜켜이 쌓여, 우리를 짓누르기 시작했다.

시스템이 그렇다. 우리는 태어나자마자 등록된다. 개인 정보가 고스란히 담긴 식별 부호를 건네받지 않는 한, 우리는 이 체제의 구성원으로 인정받지 못한다. 시스템은 우리 삶의 모든 것을 통제한다. 우리는 강제되어 공부하고, 강제되어 밥을 먹는다. 돈을 벌면 세금을 반드시 내야 한다. 우리의 모든 행동 강령은 법전에 기록된 대로 따르도록 조작된다.

행동 윤리 역시 자연스럽게 시스템적으로 합의된다. 한국에서라면, 나이든 이 앞에 맞담배를 피우는 건 예의에 어긋난다. 상사가 퇴근하지 않는 한, 내가 자리를 털고 일어서기란 어렵다. 이 모든 강령과 준칙과 윤리는 우리의 평안한 삶을 위해 오랜 시간 쌓인 퇴적물이다. 그러나 때론 나 개인이, 정말 가끔은 사회 전체가 시스템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탈출을 꿈꾼다.

ⓒ박세열

<너는 쿠바에 갔다>(박세열 지음, 숨쉬는책공장 펴냄)는 탈출을 꿈꾸는 이를 위한 책이다. 혹은, 시스템의 안온함을 의심하지 않는 이를 겨냥한 책이다. 이미 아르헨티나에서부터 쿠바까지, 체 게바라의 모터사이클 다이어리를 따라 움직여 본 저자는 두 번째로 찾은 쿠바에서 한 달을 머물며 다른 체제의 삶을 노래했다. '노래'라는 표현이 과하지 않을 만큼, 이 책은 보통의 여행기와 구별되는 독특한 필체와, 은유로 채워졌다. 기자의 책이지만, 기자의 글에서 기대할 법한 직관은 부드러운 문장 틈에서, 노래 뒤에서, 사진 너머에서야 찾게 된다.

저자의 의도는 에필로그에서 선명히 드러난다. 여기서 저자는 돌아온 삶의 터전 한국을 '또 다른 외계'로 명명한다. 우리에게 한국은 외계가 아니다. 우리 삶을 온전히 쏟아 붓는 터전이다. 우리에게는 쿠바야 말로 외계다. 쿠바는 완전히 다른 정치 체제, 완전히 다른 경제 체제의 국가다. 우리에게 쿠바란 공산의 전위이자, 못 사는 나라이자, 게으른 이들의 섬 정도일 뿐이다. 우리의 몸과 영혼은 첨단의 시스템을 더 날카로이 벼리는 삶에 익숙하다. 찬성하든, 그렇지 않든 말이다. 이 시스템 아래에서 숨쉬는 우리에게 쿠바는 외계다.

그러나 저자는 우리의 삶 역시 외계로 바라본다. 저자는 여행이 줄 수 있는 낯설음을 우리 삶에서 느껴야 함을 강조한다. 저자는 그 깨달음의 장소이자 시간으로 쿠바의 한 달을 택했다. 그래서 저자는 쿠바를 '지구의 국경'으로 명명한다.

"애초 이 여행에서 네가 유념했던 질문은 '다른 삶에 대한 사유가 가능할까' 하는 것이었다. (…) 낯선 반투명의 습자지를 대고 서울에서의 삶, 우리가 몸담은 자본 중심의 삶을 더듬더듬 그려 나가 보는 것이 이 글의 목표였다. (…) 지금 여기의 낯섦에 대한 깨달음 없이, 우리는 한 발자국도 앞으로 나갈 수 없다. 날마다 마주하는 식탁의 풍경, 날마다 마주하는 시장의 풍경, 그리고 국가 시스템의 민낯에 대해 단 한 번도 의심하지 않겠다고 한다면, 그냥 의심하지 말라. 그리고 시스템이 주는 편안함에 의지하자. 시스템이 당신을 좌절시키더라도 ‘알겠습니다’ 하고 고개를 숙이자."

▲ <너는 쿠바에 갔다>(박세열 지음, 숨쉬는책공장 펴냄). ⓒ숨쉬는책공장
이 주제를 독자에게 온전히 전달하기 위해, 저자는 '나'를 '너'로 대체했다. 이 책은 '나'의 관점에서 쓰여졌지만, 그렇기에 책에는 '나'가 등장하지 않는다. 책의 제목이 '너는 쿠바에 갔다'는 이유이기도 하다.

선명한 문제의식을 담아 이 책은 쿠바 아바나의 곳곳을 누비고, 여러 사람의 자취를 담고, 일상의 풍경을 기록한다. 저자가 직접 찍은 사진은 쿠바의 태양처럼 찬연히 빛나고, 쿠바 사람들의 일상에 우리의 삶을 투영해, 우리 삶을 조금 비틀어 설명하는 책 곳곳의 대목에서 저자의 의도가 느껴진다.

그렇기에 책은 부드럽게 넘실대다, 불현듯 날카롭게 우리의 일상을 찌른다. 쿠바 해변에 널린 담배꽁초에서 저자는 담배와 쿠바에 관한 이야기를 차분히 설명한 후, 금연에 목 맨 한국이 왜 자동차 배기가스에는 관대한가 의문을 제기한다.

이어 배기가스가 담배맛을 떨어뜨린다는, 쿠바에서나 가능할 법한 비판을 당차게 전개한다. 이 글 대부분이 쿠바 현지에서 기록되었기에 가능하리라 여겨지는 상상력이다. 차분한 쿠바 여행기지만, 그렇기에 기껏해야 관광 명소를 기재하고 숙박 정보를 전달하고 말뿐인 다른 여행서와 크게 구별된다. 이 책은 인문 서적이며, 동시에 사회 서적이다.

물론 이 책을 읽기 가장 좋을 때는 여행을 준비할 즈음일 것이다. 그러나, 어쩌면 이 책은 일상의 무게에 짓눌린 이가 읽기에 가장 적합할지 모르겠다. 충동적으로 비행기표를 구매해버릴 위험이 있지만, 나를 돌아보게 하는 힘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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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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