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 마음은 채우고 배는 비우세요!

[김형찬의 동네 한의학] 명절 음식, 이제 바꿔보는 건 어떨까요?

"일주일 전부터 갑자기 혀 안쪽에서 단맛이 나요. 뭘 먹지 않아도 단맛이 느껴지는데, 왜 그럴까요?"

어깨가 아파서 치료 받으러 오신 분이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물으십니다. 나이가 젊고 다른 불편한 증상도 별로 없을뿐더러, 최근의 건강 검진에서도 별 이상이 없었답니다. 양치질도 꼼꼼히 하고, 치아나 잇몸에도 문제가 없다고 하고요. 몸 상태를 체크하면서 체형이 예전과 달라졌기에 물어보니, 요즘 살이 쪄서 걱정이라고 합니다. 업무가 늘어 운동도 못하고 스트레스를 많이 받다 보니, 군것질이 늘었답니다. 육류나 기름진 음식을 즐겨 먹고, 음주횟수도 늘었다고 하네요.

맥을 짚어 보니, 비장의 맥이 과하게 항진되어 있습니다. 최근 들어 배가 더부룩하고 가스가 잘 차지 않느냐고 물어 보니 역시 그렇다고 합니다. 긴장과 신체 활동 부족으로 인해 소화기능은 떨어졌는데, 처리할 음식물은 넘칩니다. 그것이 정체되어 비장 기능에 문제가 생겼고, 이로 인해 미각이 변한 것으로 판단되었습니다. 그래서 짬나는 대로 자주 걷고, 채식 위주로 담백한 음식을 약간 부족한 듯 드시라고 했습니다. 그래도 변화가 없으면 혈액과 소변 검사를 다시 해봐야 한다고 했습니다. 환자는 '이게 다 내가 먹은 음식 때문이라고요?'라는 표정을 짓더니, 이제 곧 추석인데 걱정이라며 돌아갔지요.

음식의 절대적인 섭취량이 부족해서 문제가 되었던 과거와는 달리, 최근에는 병든 음식 섭취나 과식, 영양 불균형 때문에 생기는 문제가 늘었습니다. 특히 과거보다 신체 활동량은 줄어들었는데, 상대적으로 많이 먹느라 음식을 처리하다 장부의 기능들이 저하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우리가 대사증후군(대사이상증후군이란 표현이 더 적합하겠지만)이라 부르는 증상이 대표적이지요.

▲ 우리의 명절 음식 중에는 고량후미한 음식이 많습니다. ⓒ연합뉴스

많은 음식 중에서도 특히 고량후미(膏粱厚味)라 부르는 것들이 경계 대상입니다. 우리가 고기를 먹고 배에 기름칠을 좀 했다고 표현하는 것에도 알 수 있는 것처럼, 고(膏)는 기름(지방)이란 뜻으로 육고기를 의미합니다. 량(粱)은 기장이란 곡식을 지칭하는 한자인데, 여기서는 슳은 곡식을 말합니다. '슳다'라는 말은 곡식을 찧어서 껍질을 벗기고 깨끗이 한다는 의미로, 요즘 말로 하면 도정을 거쳐 거친 부분을 깎아낸 곡물을 말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후미(厚味)는 진한 맛을 말하는데, 시고, 쓰고, 달고, 맵고, 짠 것과 같은 다섯 가지 맛(五味)이 강한 음식을 말합니다. 즉, 한 쪽으로 편향된 자극적인 맛을 가진 음식이라고 할 수 있지요.

옛 의서는 이러한 음식을 즐겨 먹으면 노폐물이 몸 안에 쌓여 기혈의 순환을 막고 열을 일으키며, 이로 인해 장부 기능에 이상이 와서 병이 발생한다고 경고합니다. 그리고 주로 부유한 자들에게 이런 병이 많다고 말합니다. 상대적으로 몸을 적게 움직이고 고량후미를 즐겨 먹었기 때문이겠지요.

하지만 요새는 부유한 사람보다는 시간에 쫓겨 만든 음식을 빠르게 먹고, 운동은 할 시간이 없어서 못하고, 스트레스를 풀자고 자극적인 맛을 탐닉하는 사람에게 이런 병이 더 많습니다. 과거에는 부자나 걸리는 병에 걸렸다고 위안하기에는 씁쓸한 시대상이지요.

여하튼, 우리 생활에서 고량후미가 넘치는 시즌이 있는데 바로 명절입니다. 특히 설과 추석은 전통적으로 농경사회에서 출발과 마무리라는 의미가 있으므로 가장 큰 축제입니다. 가족들이 모여 서로의 안녕을 확인하고 자신의 근본을 되새기고 평소 자주 먹지 못했던 풍성한 음식으로 몸과 마음을 채우지요.

하지만 지금은 어떤가요? 여행객으로 넘치는 공항의 모습은 차치하고라도, 장시간 이동으로 인한 피로와 명절이라는 책임이 주는 스트레스가 상당합니다. 명절의 의미도, 우리 삶의 모습도 과거와 달라졌지요. 그런데 음식은 별로 변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다 보니 가득찬 독에 물을 붓는 것처럼 명절 음식으로 인해 넘쳐서 건강에 문제가 생기기 쉽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명절 음식은 좀 더 가볍고 차리기 쉬운 형태의 것, 지치고 예민해진 우리 몸이 쉬도록 돕는 담박한 음식으로 바꾸는 게 좋다고 생각합니다. 차례상을 그리 차릴 수는 없다고 할 수도 있지만, '부모는 오직 자식이 병 들까 걱정'이라는 공자의 말처럼 아프지 않고 건강한 게 선대에 대한 더 깊은 예의일 거라고 생각합니다.

명절 증후군이란 말이 생길 정도로 언제부터인가 명절은 많은 사람들에게 부담스러운 무엇이 된 듯합니다. 고량진미를 준비하느라 지치고, 그것을 과식해 속이 부대끼기보다는 쉽고 담박한 음식으로 배를 가볍게 하고 일상의 긴장을 늦추는 기회로 삼으면 어떨까요? 과거의 명절이 채움에서 의미를 찾았다면 이제는 비움에서 그 의미를 찾는 것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마음을 함포고복 할 수 있는 건강하고 따뜻한 추석 보내시길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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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찬

생각과 삶이 바뀌면 건강도 변화한다는 신념으로 진료실을 찾아온 사람들을 만나고 있다. <텃밭 속에 숨은 약초>, <내 몸과 친해지는 생활 한의학>, <50 60 70 한의학> 등의 책을 세상에 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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