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초기와 호미, 직접 만들어 볼까?

[귀농통문] 패자재로 농기구 만들기

1. 귀농, 그리고 적정기술 농기구

충남 예산으로 귀농한 게 1997년이니까 이제 만 19년이 되었다. 첫 농사로 사과를 재배하면서 농약 무서운 줄 모르고, 우비와 마스크도 없이 뿌려대다 농약 중독에 걸린 후로 냄새만 맡아도 몸이 경기를 일으키는 터라 어쩔 수 없이(?) 유기농의 길로 접어들었다.

그렇게 10년, 태생이 게을러 풀 농사만 지었는데, 그래도 농사라는 게 만만치 않았던지 몸이 덜컥 무너져 내렸다. 그것도 디스크, 녹내장 말기, 폐결핵, 1타 3피로.

다시 삶을 고민했다. 몸에 좋은 먹을거리, 환경을 생각하는 먹을거리를 생산하면서 왜 정작 내 몸은 무너지는가! 나뿐만 아니라 주변을 돌아봐도 농촌은 온통 환자들 천지다. 무언가 대안이 필요했다. 우연히 배운 '몸살림운동'을 통해 스스로 몸을 치료하고, 주변 분들의 몸을 돌봐주면서도 새로운 농사 방식에 대한 고민이 늘 따라다녔다.

그래서 시작한 것이 소농을 위한 적정기술 농기구의 개발이다. 마을의 농부들, 지역의 지인들과 함께 협동조합을 만들고 적정기술 농기구에 대한 연구를 시작했다. 사실, 처음엔 너무도 막막했다. 적정기술 농기구와 관련해서 우리나라는 거의 황무지와 다름없으니….

우리는 세계적으로 그 유례를 찾아보기 어려울 만큼 매우 급격한 산업화 과정을 겪었다. 농업 역시 빠르게 전통 농업에서 기계화 농업으로 이전됐다. 그 과정에서 중간단계의 적정기술은 설 자리를 잃었다. 수요가 없으니 누구도 생산에 신경을 쓰지 않게 된 것이다.

다행스럽게 해외에서는 다양한 사례들을 접할 수 있었다. 미국과 유럽에서는 전통적 가드닝 농업과 도시 농업을 바탕으로 세련되고 다양한 방식의 입식 적정기술 농기구가 생산되고 있고, 아직 기계화가 덜 된 러시아·중국·인도·동남아에서는 다소 조잡하지만 실용성이 큰 농기구가 실제 농사 현장에서 폭넓게 이용되고 있다.

최근 들어 귀농·귀촌 인구의 증가와 도시 농업의 확산으로, 적정기술 농기구의 수요는 전보다 늘어난 느낌이다. 귀농·귀촌 가구 수가 이미 5만을 넘었고, 도시농업 인구는 150만 명에 달한다. 이들의 대부분이 1000제곱미터(㎡) 이하의 땅을 경작한다. 비전문적 소농인 이들에게 전통적 농기구는 힘에도 부치고, 효율성도 떨어진다. 그렇다고 값비싼 농기계는 경제성도 없고 유지하기도 어렵다. 이들에게는 적정기술 농기구가 가장 절실하다.

화석연료에 의존하는 에너지 시대는 이제 저물고 있다. 우리는 이미 농업에 있어서 OECD 국가 평균의 37배를 사용하는 고(高) 에너지 농업 국가다. 농업이 지속가능하려면, 농법과 아울러 생산 도구에 대한 새로운 인식 전환이 필요하다. 그리고 적정기술 농기구가 그 대안의 한 축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간단한 도구와 폐자재를 활용해 누구나 쉽게 만들 수 있는 입식 제초기 2종의 제작법을 소개한다. 곁들인 사진과 설명을 보면서 따라 하면 별다른 기술 없이도 나만의 농기구를 쉽게 만들 수 있을 것이다.

▲ 왼쪽이 입식 제초기, 오른쪽이 입식 호미. ⓒ이승석

2. 폐자재를 활용한 나만의 농기구

농가에 흔하게 굴러다니는 폐자재들을 잘 활용하면 훌륭한 농기구의 소재가 된다. 녹슨 원형 톱날, 수명을 다한 예취기(刈取機) 날, 모종 비닐하우스 활대, 하우스 파이프 등은 대부분 농가에서 쉽게 찾을 수 있다. 혹 없다면, 근처의 고물상에서도 쉽게 구할 수 있는 재료다.

이런 자재는 가격의 저렴함뿐 아니라, 재질면에서 탄성과 경도가 뛰어난 특수강이다. 또 가벼운 무게와 가공까지 쉬워 자작용 농기구 재료로는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한 소재다. 이러한 특수강들은 대부분 제철소에서 대량 주문생산 되기 때문에 일반인들로서는 구하기가 쉽지 않고 폐자재를 활용하는 것이 현명하다. 그 외 부자재들, 자루와 볼트, 너트는 인근의 철물점에서, 피아노 강선과 고무 손잡이는 인터넷에서 쉽게 구할 수 있다. 너트는 고무패킹이 있는 것으로 구해야 작업 중 쉽게 풀리지 않는다. 자루는 폐 청소기 자루를 이용하는 것도 방법이다. 그립감(손으로 잡는 느낌) 좋고, 튼튼하고, 길이의 조정도 가능하고, 탈부착이 쉽다.

1) 피아노 선을 활용한 초간단 입식 제초기

① 용도와 특징
러시아에서 개발되어 미국과 유럽에서 상품화된 제초기다. 서서 두둑 위의 어린 풀을 제초하는 데 사용한다. 피아노 강선이 땅속의 2센티미터 정도를 파고들면서 풀의 생장점 아래를 잘라준다. 무게가 호미보다도 가볍고, 날의 저항이 적어 어르신이나 아이들도 쉽게 작업이 가능하다. 반면 지나치게 돌이 많거나 딱딱한 밭에서는 줄이 끊어질 수 있으므로 주의해야 한다.

② 기본재료
모종용 하우스 활대, 피아노 강선(혹은 기타 1번 줄), 자루와 고무 손잡이

③ 필요한 공구
핸드그라인더, 아크용접기, 산소용접기(또는 가스 토치)

④ 만드는 방법과 순서
a. 모종형 하우스 활대를 400밀리미터(㎜) 길이로 자른다. 이 재료는 탄성이 강한 합금강으로 만들어져 피아노 강선을 팽팽하게 당겨 고정하는 역할을 한다.

b. 산소용접기를 이용해 중간 부분을 벌겋게 달군다(가스 토치를 이용할 수도 있다).

c. 나무 봉을 고정한 상태에서 막대의 끝 40㎜ 지점에 달군 활대를 두 바퀴 감아준다. 이때 활대의 각도를 바깥쪽으로 약 70도로 기울어지게 감는다.

d. 피아노 강선을 걸어주기 위해 활대의 양 끝 8㎜ 지점에 핸드그라인더로 약 1㎜의 홈을 낸다.

e. 기타 줄의 양 끝에 풀리지 않는 매듭을 한 후, 활대를 손으로 오므려 홈 부분에 건다. 풀리지 않는 매듭법은 인터넷에서 검색하면 확인할 수 있다.

f. 나무 봉의 끝에 고무 손잡이를 끼운다. 인터넷에서 검색하면 1000원 내외의 비용이면 구입 가능하다.

ⓒ이승석

2) 녹슨 원형 톱날을 이용한 입식 호미

① 용도와 특징
원형의 녹슨 폐톱날을 재활용한 타원형의 입식 호미다. 자신의 용도에 막게 여러 형태로 제작할 수 있고 사이즈도 변형이 가능하다. 원형 톱날의 재질은 합금강으로 가벼우면서도 잘 마모되지 않고 절삭력이 탁월하다. 두둑과 고랑의 풀을 제초하거나 북주기용으로도 사용한다. 타원형 호미 날의 넓은 부분은 고랑의 풀을, 좁은 부분은 세워서 작물과 작물 사이의 풀을 매는 데 사용한다.

② 기본재료
원형 폐톱날, 하우스 파이프, 볼트와 너트, 자루와 고무 손잡이

③ 필요한 공구
핸드그라인더, 아크용접기, 전동드릴

④ 만드는 방법과 순서
a. 지름 250㎜의 원형 톱날에 석필과 곡자를 이용해 아래와 같은 재단선을 그린다.

b. 핸드그라인더를 이용해 재단선대로 재단한다.

c. 재단한 부분을 부드럽게 마감한다.

d. 표면의 녹을 제거한다.

ⓒ이승석

e. 지름 25㎜, 길이 100㎜의 쇠파이프를 한쪽이 45도 경사지게 절단한다. 그리고 파이프의 중앙에 볼트가 들어갈 구멍을 뚫는다.

f. 날의 구멍에 맞춰 파이프를 용접한다.

g. 파이프의 길이에 맞춰 나무 봉에 같은 크기의 구멍을 뚫는다.

h. 페인트를 칠한 후 호미 날과 나무 봉의 구멍에 볼트와 너트를 채우고 호미 날의 끝부분을 샌딩해준다(사포질해준다).

ⓒ이승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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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농통문

귀농통문은 1996년부터 발행되어 2017년 10월 현재 83호까지 발행된 전국귀농운동본부의 계간지입니다. 귀농과 생태적 삶을 위한 시대적 고민이 담긴 글, 귀농을 준비하고 이루어나가는 과정을 솔직하게 보여주는 귀농일기, 농사∙적정기술∙집짓기 등 농촌생활을 위해 익혀야 할 기술 등 귀농본부의 가치와 지향점이 고스란히 담긴 따뜻한 글모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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