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은 어떤 점이 잘났을까?

[장현근의 중국 사상 오디세이] 중국인의 내면을 읽자!

대한민국과 중화인민공화국은 1992년 8월에 정식으로 수교했다. 이제 어른스럽게 만날 나이다. 수교는 사귀자는 것이지 싸우자는 것이 아니다. <논어> '공야장' 편에서 공자는 제나라 사람 안영이 사람을 참 잘 사귀었다고 평가하면서 "상대를 오래도록 공경했다"고 말한다. '경(敬)'은 예의를 갖춘 엄숙함이다. 예의를 갖추고 친구의 잘남을 공경하면 오래 잘 사귈 수 있을 것이다. 중국이 한국의 장점을 공경하고 한국이 중국의 장점을 공경하는 것이 어른스런 사귐이 아닐까. 중국은 어떤 점이 잘났는가?

우리나라와 '중국'이 교류한 지는 매우 오래되었다. 수많은 사람이 왕래하고 여러 물품이 오갔다. 그런데 그 때는 지금처럼 국경을 맞대고 있지 않았다. 대륙의 왕조와 한반도 왕조 사이에 만리장성 북쪽의 넓은 땅과 거기에 사는 여러 민족이 있었다. 그 사이 힘으로 우리 민족이 대륙 민족과 겨룬 적이 있고 대륙의 군대가 한반도로 밀고 온 적도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시간은 활발한 문명의 교류와 문화의 융합을 이루는 긴 사귐의 세월이었다. 여진(만주)족이 청을 세워 중국이 되고 중화민국과 중화인민공화국이 잇따라 만들어짐으로써 한(韓)민족의 나라와 한(漢)민족의 나라가 '처음으로' 직접 국경을 맞대고 살게 되었다. 이제 한반도와 중국 사이에는 중간의 완충지대 없이 직접 부딪히며 살게 된 것이다.

서로 다투지 말고 공동의 번영을 추구하자는 뜻에서 수교를 하였고 실제로 지난 20여 년 동안 두 나라는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과학기술 등 모든 영역에서 괄목할 만한 성장을 함으로써 친하게 지내는 것이 얼마나 좋은 일인지 증명하였다. 대사관의 작년 통계를 보면 한국과 중국은 미국과 일본을 합한 것보다 더 많은 액수를 거래하고, 1년에 600만 명 이상의 중국인이 한국을 찾고, 한국 내 중국 유학생은 5만 명(중국 내 한국 유학생은 6만3000여 명)이 넘는다. 공동 번영을 위한 기초가 잘 쌓이고 있다. 수천 년을 사귀어 오다가 냉전 기간 동안 단절되었던 한중 관계가 '다시' 제대로 연결된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인류의 미래 문명이 유럽과 미국을 넘어 이제 동아시아에서 꽃을 활짝 피우리라는 장밋빛 전망을 하기도 한다. 한-중-일이 함께 손을 잡고 인류의 미래를 이끌어가기 위한 공동의 노력이 필요한 시점이다. 그래서 더욱 상대를 깊게 이해하는 성숙한 자세가 필요하다. 우리가 공경해야할 중국의 잘난 점은 무엇일까.

▲ 중국공산당 창당 95주년 기념식을 위해 베이징 인민대회당에 모인 중국공산당 지도부. ⓒ연합뉴스

중국은 어떤 점이 잘났을까

나는 이 연재를 통해 중국인의 사상을 소개하고자 한다. 중국에서도 한국의 잘남을 소개하는 사람이 있기를 바란다. 잘남은 말을 통해 확인이 되고 말은 생각의 산물이다. 중국의 잘남은 큰 땅과 많은 인구가 아닌 풍부한 역사적 경험에서 우러나온다. 중국 민족은 7000년을 같은 땅에서 살며 5000년을 같은 언어를 쓰고 3000년을 같은 문자를 쓴 세계 유일의 나라다. 나는 그들의 오랜 문명의 언어를 통해 중국인들 내면에 존재하는 깊은 생각과 경험을 읽어내고자 한다.

그리하여 이 글을 읽는 사람들이 참된 사귐과 참된 문명이 무엇인지 생각해볼 수 있도록 써보려고 한다. 경제적 계산만이 유일한 가치가 되어버린 기막힌 세상에서 사람들로 하여금 지성의 가치가 얼마나 중요한지, 참된 삶이 무엇인지 생각해보게 만드는 작은 씨알이 되었으면 좋겠다.

나만 이런 생각을 한 건 아니다. 과거 우리 조상들 가운데 많은 분들이 이렇게 중국을 이해하려고 노력했으며 마침내 우리 정신의 중요한 일부를 만들어냈다. 오늘날에도 중국을 공부하는 많은 분들이 중국의 잘남을 그들의 사상 문화 속에서 찾고 인류의 미래를 위한 진지한 지적 대화를 시도하고 있다. 중국 사상을 이해하고 동서 문명의 융합을 통해 미래의 대안을 찾으려는 일은 사실 우리의 잘남을 드러내는 일이기도 하다.

동서로 5200킬로미터, 남북으로 5500킬로미터에 이르는 광대한 영토를 다 '중국'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오늘날이 처음이지만, 모든 영역을 중앙 정부에서 통제하며 지배하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이다. 북단 막하(漠河)가 영하 40도일 때 남쪽 삼아(三亞)는 영상 18도이다. 중국의 서북 투루판 분지엔 비가 연간 6밀리미터도 안 오지만 대만 동북부는 6000밀리미터 이상의 비가 온다. 이 넓고 다채로운 땅이 북경 중심의 하나의 시간표만을 사용한다. 흑룡강성 하얼빈은 오전 4시면 훤해지나 운남성 곤명은 아직 어두운 8시에 출근길이 만원이다. 모두 중국인이다.

중국인의 내면을 여행하다

이런 땅을 나는 폭넓게 돌아보았고 거기 사는 사람들과 대화를 했다. 중국인의 내면을 이해하기 위해서였다. 흑룡강 검은 물에 손을 담그고 건너편 러시아를 보면서 은행 업무나 공장 설립 등 모든 '근대'의 사무를 소련 사람으로부터 무시당해가면서 배우던 중국 지식인들의 아픔을 생각하였다. 천하제일 백사장이라는 북해(北海)의 은탄(銀灘)을 거닐며 베트남의 왕 조타(趙佗)를 겁박하던 한나라 초 사상가 육가(陸賈)의 언행을 회고해보았다. 해발 3500미터의 샹그릴라 백탑을 돌면서 자본의 힘에 힘겹게 대항하며 사는 티베트 민족의 슬픈 뒷모습에 가슴이 저렸다. 산해관 노룡두(老龍頭) 앞 발해에 발을 담근 채 바위에 누우니 천군만마의 발굽소리가 진동하였다. 여러 민족이 뒤엉킨 땅에서 연암 박지원의 걸음걸이를 흉내내어 보았다.

중국은 우리나라의 광역자치단체에 해당하는 성(省)급 행정 구역이 대만(타이완)을 포함할 경우 34개가 된다. 나는 거의 모든 곳의 중심지를 가보았다. 대강 남북을 걸으며, 만원 시내버스를 타며, 완행열차 안에서 중국인들과 무릎을 맞대고 앉아 밤을 지새우며 나는 무수한 중국인과 대화하고 함께 호흡하였다. 그들의 말 속에 숨어있는 뿌리 깊은 전통을 온 몸으로 느꼈다. 각지의 대학과 연구 기관을 방문하고 사상가들이 태어난 곳과 무덤을 둘러보았다. 백발이 성성한 노학자와의 깊은 대화, 쓴 커피를 들이키는 중국 대학생과 환담하면서 그들의 언어 위를 스쳐가는 역사의 자취를 깊이 읽어내려고 노력했다. 수백 명의 중국 청중을 두고 많은 강연을 하였다. 맹자의 고향에선 맹자 얘기를, 순자가 죽은 곳에선 순자 얘기를 하였다. 중국 문화와 한국 문화를 비교하기도 했다. 인류의 미래는 돈이 아닌 사람, 힘이 아닌 사랑이어야 한다고 역설하였다. 중국의 지적 전통 안에서 가야할 길을 스스로 찾으라고 주문하였다.

나는 '중국 사상 오디세이'를 통해 중국의 역사상 지성들을 소개하려고 한다. 그들이 살았던 시대와 장소로 안내하고 내 목소리를 통해 그들의 고민을 풀어놓고자 한다. 30권의 책과 70편의 논문을 쓰면서 간접적으로 만난 사람들을 직접 만난 듯이 쓰려고 한다. 그들이 걸었던 길을 걸으며 그들의 잘남에 대해 생각했지만 오늘의 시각에서 비판적으로 보려고 한다. 공자처럼 누구나 아는 옛 사상가도 소개하고 이대조(李大釗)처럼 잘 알려지지 않은 근대 사상가도 소개할 예정이나 틀을 짜놓고 정해진 순서대로 쓰지는 않겠다.

고금을 넘나들고 민족을 넘나들며 각 사상가의 내면을 들여다보고자 한다. 많은 한국인들이 중국의 명승을 보고 문화유적을 보는 데 더하여 그 지역의 사상가를 알아보는 재미를 느꼈으면 좋겠다. 이를 통해 중국인의 내면을 들여다보고 '우리에게 중국은 무엇인가?'를 살펴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이 땅의 반지성주의를 깨는 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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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현근

용인대학교 중국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중국 길림 대학교 문학원 및 한단 대학교 등의 겸임교수이다. 중국문화대학에서 '상군서' 연구로 석사 학위를, '순자'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유가 사상의 현대화, 자유-자본-민주에 대한 동양 사상적 대안 찾기에 몰두하고 있다. <중국 사상의 뿌리>, <맹자 : 이익에 반대한 경세가>, <순자 : 예의로 세상을 바로잡는다>, <성왕 : 동양 리더십의 원형>, <중국의 정치 사상 : 관념의 변천사> 외 다수의 저서와 역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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