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극의 시작은 한국수출입은행의 돈이었다

[아시아 생각] 필리핀 할라우 강에서 온 선주민의 호소

필리핀 파나이 섬에 사는 선주민 투만독(Tumandok)과 일롱고(llongo)는 한국 정부의 대외협력기금(EDCF)으로 지원되는 '필리핀 할라우 강 다목적 사업(2단계)'(할라우 댐 프로젝트)로 인해 고통을 겪고 있다.

한국수출입은행과 필리핀 정부가 차관 계약을 맺은 할라우 댐 프로젝트는 베니그노 아키노 3세 필리핀 대통령 임기가 끝나기 전인 2016년 종료될 예정이었다. 그러나 대형 댐 건설에 대한 국내외 반대로 종료 마지막 해인 2016년 3분기가 다되도록 할라우 댐 공사는 시작조차 하지 못했다.

정부는 댐이 건설되면 쌀농사를 위한 관개에 사용될 뿐 아니라 도심과 인근 마을에 깨끗한 물을 제공할 수 있고, 지역에 전기 공급에도 큰 도움이 된다는 등 프로젝트의 긍정적인 면에 대해서 과장해왔다. 그러나 사실 할라우 댐 프로젝트는 강제 이주, 위협과 협박, 환경 파괴, 인명 손실과 같은 여러 쟁점들이 산적해있는 것이 현실이다.

할라우 댐 건설 반대하는 투만독 사람들


할라우 댐 프로젝트의 가장 직접적인 영향을 받는 사람들은 부키드논(Bukidnon)으로도 알려진 투만독 사람들이다. 이들은 할라우와 파나이 강가에 조상 대대로 거주해왔으며, 선주민 그룹 중 가장 큰 그룹으로 일로일로(Iloilo) 주와 카피즈(Capiz) 주에 9만4000명의 투만독이 흩어져 살고 있다.

지난 2000년, 세계댐위원회(World Commission on Dams)는 최종 권고안을 발표하며 "대형 댐들은 선주민과 부족민의 삶, 생계, 문화, 그리고 영적인 부분까지 심각한 영향을 끼쳐왔다"고 밝혔다.

2011년 10월, 투만독 사람들은 제 8회 총회를 개최하며 할라우 댐 반대 운동을 시작했다. 다양한 고지대 마을들과 일로일로 주, 카피즈 주 소도시에 거주하고 있는 투만독 1000여 명이 모였다. 그들은 이 대형 댐이 투만독 공동체와 그들의 생계수단, 환경을 파괴하여 결국은 투만독에 대한 문화적 말살(cultural ethnocide)까지 이르게 할 수 있다는 이유로 할라우 댐을 반대하는 결의안을 통과시켰다.

할라우 댐은 직·간접적으로 칼리녹 주의 16개 고지대 마을에 영향을 끼친다. 댐이 건설되면 이 중 가랑안(Garangan), 마사로이(Masaroy), 악칼라가(Agcalag) 3개 마을은 완전히 침수될 것이다. 최근 정부는 댐 건설로 1만7000명의 선주민들이 영향을 받을 거라고 밝혔다.

"우리의 농지는 침수될 거예요. 우리의 생계수단과 집 역시 파괴될 겁니다. 우리에게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걸까요?" (로메오 카스토르(Romeo Castor))


▲ 할라우 댐 사업 지역에 거주하는 선주민. ⓒJRPM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는 인권 침해


할라우 댐 프로젝트는 3개의 댐 건설을 포함하고 있는데 이 중 할라우 메인 저수지와 방수정은 대부분 카스트로 가족이 소유하고 있는 조상 토지(ancestral domain)에 건설될 예정이다. 로메오의 형제인 네스토르(Nestor)는 메인 저수지 공사를 위한 도로 건설로 1헥타르에 이르는 땅을 빼앗겼다. 그러나 커피 농장과 과실 나무에 대한 보상으로 고작 1800페소(38달러) 밖에 받지 못했으나 필리핀 관개청(NIA: National Irrigation Administration) 은 토지 수용으로 18만 페소(3832달러) 보상금을 지급했다는 자료를 법원에 제출했다.

투만독은 각 지방 정부 기관과 할라우 댐 프로젝트를 찬성하는 사람들로부터 여러 차례 괴롭힘 당하거나 위협, 협박의 위험에 처해있다. 프로젝트에 찬성하는 문서에 서명하지 않으면, 댐 반대 활동과 토지 수용 건으로 재판에 회부될 것이라는 식으로 이야기하며 뇌물을 받을 수밖에 없게 하거나 이 지역에 배치된 정부군과 경찰은 투만독이 사람들을 조직하여 캠페인 교육을 진행하는 것을 억압하고 있다. 투만독 사람들의 삶이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

필리핀 신인민군(New People’s Army) 역시 할라우 댐 프로젝트, 정부군과 경찰의 존재를 부정하고 있다. 댐 주변 지역을 지키기 위해 주둔하고 있는 정부군을 향해 신인민군이 두 차례 저격하여 정부군에서는 사상자가 발생하기도 했다.

현지법과 국제법을 위반한 할라우 강 프로젝트

한국 공적개발원조(ODA)를 받는 할라우 댐과 같은 대형 프로젝트는 필리핀 현지 법과 국제법을 준수해야함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법들을 어기고 있다. 선주민 인권 보호를 위해 2007년 유엔은 'UN 선주민 인권 선언'을 채택하였고, 그에 앞선 1997년 필리핀 정부는 선주민권리법(IPRA : Indigenous Peoples Rights Act, 1997년)을 제정하여 선주민의 권리를 보호해왔다. 그러나 필리핀 관개청과 선주민청(NCIP : National Commission of Indigenous Peoples)은 이 두 법에서 명시하고 있는 '자유 의사에 따른 사전 인지 동의(FPIC : Free Prior Informed Consent)' 과정을 고의적으로 위반했다.

2011년 11월, 필리핀 관개청은 '할라우 강 다목적 사업 프로젝트(2단계)'에 대한 타당성 조사 보고서를 한국수출입은행에 제출했다. 그러나 타당성 조사 시 진행되었어야 할 FPIC 절차는 타당서 조사 보고서 제출 이후인 2012년 1월부터 5월까지 진행되었다.

FPIC 절차 위반의 문제 뿐 아니라,'사전 인지 동의' 과정은 할라우 댐 프로젝트를 지지하는 사람들에 의해 조작되었다는 사실을 몇 가지 사실을 통해 알 수 있다.

첫째, '자유로운' 동의는 없었다. 관개청은 프로젝트에 반대하거나 찬성하기 주저하는 주민들에게 일자리를 주는 등 인센티브를 제공하여 이 과정에 관여하였다.

둘째, '사전' 협의 역시 없었다. FPIC 절차가 시작되기도 전 이미 타당성 조사 보고서는 제출되었다. 관개청은 프로젝트의 장점만 부각하여 알리고 웨스트파나이(West Panay) 단층의 존재나 지역 사회 침수와 같은 위험 요소, 부정적 영향에 대해서는 그 어떤 정보도 알리지 않았다. 이러한 이유로 선주민이 "잘 알고" 동의를 했다고도 볼 수 없다.

관개청은 웨스트파나이 활단층의 존재에 대해 타당성 조사 보고서에서조차 거짓말 했다. "이 단층들은 휴면 상태에 있으며 움직임에 대한 흔적을 찾을 수 없다"고 단정했다. 그러나 그들의 주장은 1948년 파나이 섬 최악의 지진 중 하나였던 레이디케이케이(Lady Caycay) 지진에 반한다. 이 지진은 웨스트파나이 활단층에 의해 발생했을 뿐 아니라 55개 이르는 파나이 교회가 파괴되는 등 광범위한 피해를 끼친 지진이었다.

할라우 강 하류 지역에 거주하고 있는 사람들과 지방자치단체 역시 이 프로젝트와 관련된 협의를 진행한 적이 없다. 2014년 8월, 한국의 공익인권법재단 공감은 이 프로젝트의 실행 과정을 조사하기 위해 이 지역에 처음 방문했다. 당시 주요 인터뷰 대상자였던 일로일로 주 두에냐스(Dueñas) 시장은 할라우 댐 프로젝트와 관련하여 주정부와 지방자치단체들이 협의한 적이 없으며 2014년 8월에서야 주정부 사람들이 프로젝트 발표를 위해 지방자치단체 대표들을 만났다고 밝혔다.

선조 묘지와 신성 장소에 대한 모독을 멈춰야

필리핀 대학교 졸업생인 마르 안토니 발라니(Mar Anthony Balani)와 주드 마길로그(Jude Mangilog)는 할라우 댐 프로젝트로 인해 투만독의 조상 묘지와 신성한 장소들이 훼손될 것이라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절멸의 정치 : 파나이 섬의 투만독 선조 묘지와 할라우강 다목적 사업(2단계)>라는 제목의 논문을 통해 5개의 투만독 묘지들과 칼리녹주, 일로일로주에 위치한 하나의 성지가 할라우 대형 댐과 접근 도로의 건설로 인해 파괴될 거라고 주장했다.


미국 식민지 시절, 투만독은 위생적인 이유로 묘지 쓰는 것을 저지 받았다. 그 이후 그들은 조상들에 대한 존경심과 이곳에 그들의 혼령들이 살고 있다는 믿음으로 이 지역을 방문하고 의식을 행해 왔다.

"우리의 묘지를 파괴하는 것은 우리의 문화적 관행(Cultural Practices)을 침해하는 것입니다. 선조 묘지는 우리 가문의 번창과 전통을 상징합니다. 이 묘지들은 우리의 돌아가신 가족들과 조상에 대한 존경을 기억하고 추모하는 것입니다." (익명의 투만독)


"우리는 우리 조상을 존경합니다. 우리 조상들이 이곳을 훼손하고 댐 건설에 동의 한 사실을 안다면 분명 분노할 것입니다. 이미 돌아가신 분들이 다시 한 번 댐에 의해 익사한다고 생각해보세요. 얼마나 슬픈 일입니까? 우리 조상들이 존중 받지 못한다는 사실에 투만독 사람들은 너무 고통스럽습니다." (익명의 투만독)


▲ 피해 지역을 설명하고 있는 피해 지역 선주민. ⓒJPRM

아직 끝나지 않은 싸움과 도전들


할라우 강을 위한 민중 행동(JRPM)은 투만독과 하류에 거주하는 지역주민들의 할라우 댐 프로젝트 반대 운동을 위해 2013년 3월 발족했다. JRPM은 당사자들을 위한 연대와 지지를 강화하기 위해 국내 뿐 아니라 국제 단체들과의 연대하는 연결 고리 역할을 하고 있다.

2011년부터 지속되어온 싸움은 댐 건설을 지연시키는 성과를 남기기도 했다. 이 성과는 국내 지역 단체와 국제 연대의 노력의 결과다. 특히 공감, 국제민주연대, 기업과 인권 네트워크, 녹색 ODA센터, 참여연대 등 한국 단체의 연대가 없었다면 우리의 반대 운동이 한국수출입은행이나 한국 사람에게 알려지지 않았을 것이다. 이러한 성과는 우리 모두의 성과라고 볼 수 있다.

우리는 할라우 댐이 우리에게 가져올 경제적, 사회적, 환경적 위협이 심각하여 이 프로젝트를 반대한다는 것을 다시 한 번 강조하고 싶다. 대형 댐이 있는 마닐라 도심 지역 대부분의 지역 사회가 경험한 것과 같이 만약 할라우 댐이 수문을 열어 물을 방출 할 경우 할라우 강 하류 지역에 거주하고 있는 100만 명이 넘는 일롱고 사람들은 모두 침수 당할 것이다.

필리핀 사람들은 할라우 댐 프로젝트를 위해 필리핀 정부가 한국수출입은행에서 빌린 차관으로 부채에 시달릴 것이다. 원금 89억2000만 페소(약 2억 달러)와 원금에 대한 이자 5억 페소(약1100만 달러)까지. 이 프로젝트로 이익을 얻는 사람은 오로지 공사를 시행하는 한국 기업뿐이다. 댐이 건설되기 시작하면 선주민에 대한 인권 침해 역시 계속 증가하게 될 것이다.

우리는 지난 7월16일에서 18일까지 약 3일 동안 국제 연대 미션(International Solidarity Mission)을 진행했다. 이 캠페인을 통해 프로젝트 반대를 위한 우리의 결의를 강화하고 지역적, 국가적, 그리고 국제적으로 개인들과 단체로부터 지원과 지지를 확대했다. 우리는 참가자들과 함께 우리의 요구와 권고를 확정했다.

우리의 요구

1. 우리는 필리핀 정부와 관련 기관, 정부군이 투만독의 조상 토지(Ancestral domain)에 대한 권리와 의사 결정 과정을 존중하기를 요구한다. 투만독 사람들은 정부, 관련 기관, 군의 강요나 뇌물, 약속 등 그 어떤 구애 없이 자유롭게 결정을 내릴 수 있도록 보장받아야 한다.'진짜' 자유 의사에 따른 사전 인지 동의 과정이 실행되어야 한다.

2. 우리는 교외 지역 군사화 중단과 필리핀 정부군, 경찰과 특수부대, 선주민 지역에 있는 무장 단체(paramilitary groups)를 포함한 경계 부대 철수를 요구한다. 또한 할라우 댐 프로젝트에 대한 동의를 얻기 위해 선주민에게 행해진 인권 침해 현황을 철저히 조사할 것을 요구한다.

3. 우리는 필리핀 정부가 할라우 댐 프로젝트 실행 과정에서 발생한 선주민과 피해자들의 재산피해에 대한 즉각적인 보상을 요구한다.

4. 우리는 두테르테(Duterte) 정부가 투만독의 조상 토지(Ancestral domain)에서 행해지고 있는 대형 댐과 조림 프로젝트 등 모든 개발 프로젝트를 재검토 할 것을 요구한다. 또한 투만독 사람들의 문화적 정체성을 파괴하고 인권을 침해하는 프로젝트를 중단할 것을 요구한다.


5. 마지막으로 우리는 할라우 댐 프로젝트에 차관을 제공하는 한국 정부가 선주민 공동체와 당사자들이 제기하는 문제점 등을 충분히 고려하여 제기된 문제들이 해소되지 않을 경우 기금을 철회하는 등 문제 해결을 위해 필요한 조치를 취할 것을 요구한다.

우리의 권고

1. 우리는 독립적인 타당성 조사를 시행할 것을 권고한다. 타당성 조사에는 댐의 구조 건전성, 생태계에 끼치는 영향, 하류 지역을 포함한 댐에 의해 직·간접적 영향 받는 선주민 공동체들의 사회, 경제적 영향 평가까지 포함해야 한다.


2. 우리는 대형 댐을 대체 할 수 있는 옵션과 대안에 대한 철저하고 포괄적인 평가를 시행하기를 권고한다. 특히 위험이 덜하고 농경 지역에 물을 제공할 수 있는 소형 댐의 가능성에 대해 특별히 고려되어야 한다. 이미 존재하는 관개 시설의 복구 또한 하나의 선택이 될 수 있을 것이다.

3. 우리는 할라우 강과 파나이강 댐 프로젝트가 세계댐위원회의의 권고안, 사전 인지 동의 등과 같은 국제 기준과 한국수출입은행의 세이프가드(Safeguards) 가이드라인을 준수할 것을 권고한다.

마지막으로 우리는 한국 사람들이 필리핀에서 일어나고 있는 대형 댐 프로젝트로 영향을 받고 있는 피해자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한국 정부와 한국수출입은행에 선주민들의 고통을 알리고 지원 중단 요청 등 도움을 줄 것을 호소한다. 한국 국민의 세금은 투만독과 일롱고, 필리핀 사람들 전체의 삶과 미래를 위협하는 대형 댐 건설이 아닌 다른 프로젝트에 더 유용하게 쓰여야만 한다.

한국은 아시아에 속합니다. 따라서 한국의 이슈는 곧 아시아의 이슈이고 아시아의 이슈는 곧 한국의 이슈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인들에게 아시아는 아직도 멀게 느껴집니다. 매년 수많은 한국 사람들이 아시아를 여행하지만 아시아의 정치·경제·문화적 상황에 대한 이해는 아직도 낯설기만 합니다.

아시아를 적극적으로 알고 재인식하는 과정은 우리들의 사고방식의 전환을 필요로 하는 일입니다. 또한 아시아를 넘어서 국제 사회에서 아시아에 속한 한 국가로서 한국은 어떤 역할을 해야 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해나가야 합니다. 이와 같은 문제의식에 기반을 두고 참여연대 국제연대위원회는 2007년부터 <프레시안>과 함께 '아시아 생각' 칼럼을 연재해오고 있습니다. 다양한 분야의 필자들이 아시아 국가들의 정치, 문화, 경제, 사회뿐만 아니라, 국제 사회에서 논의되고 있는 인권, 민주주의, 개발과 관련된 대안적 시각을 제시하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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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여연대 국제연대위원회는 지난 2000년 국경을 넘어 아시아 국가들의 인권과 민주주의 정착을 위한 연대활동, 빈곤과 개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활동을 위해 세워졌습니다. 위원회는 △아시아 인권, 민주주의 연대 △공적개발원조(ODA) 정책 감시 △국제 인권 메커니즘을 통한 국내 인권 및 민주주의 개선 △참여연대 활동 해외 소개 등을 주 활동 영역으로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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