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성을 거세하고, 노예로 만들어라?

[프레시안 books] <목마른 여자들>

1970년 10월 2일, 페미니스트 혁명이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성공한다. 혁명을 이끈 유럽 페미니스트당(P.F.E.)의 잉리트 페르마르스와 베아트릭스 훈은 같은 달 12일, 여성 제국을 선포한다. 잉리트는 제국의 초대 '목자'에 즉위한다.

제국은 1971년 헤이그에서 브뤼셀로 이어진 여성 30만 명의 대행진을 계기로 네덜란드와 벨기에, 룩셈부르크를 아우르는 거대 페미니즘 국가가 되었다. 어머니 잉리트를 이은 유디트는 1995년 모든 외교 관계를 단절하고 제국을 폐쇄 국가의 길로 이끈다. 그로부터 20여 년, 프랑스의 언론인과 페미니스트당원 등으로 구성된 여섯 여행객이 그간 누구도 가보지 못한 여성 제국을 방문한다.

<목마른 여자들>(베르나르 키리니 지음, 백선희 옮김, 문학동네 펴냄)은 아이디어만으로 반골적 흥미를 자극하고, 논란을 예고하는 소설이다. 벨기에의 문학평론가이자 소설가 베르나르 키리니의 첫 장편 소설인 이 작품은, 옮긴이의 설명대로 <이갈리아의 딸들>(게르드 브란튼베르그 지음, 히스테리아 옮김, 황금가지 펴냄)과 <1984>(조지 오웰 지음)를 곧바로 떠오르게 하는 장치와 은유로 가득하다.

소설은 마치 <1984>에 바치는 헌사처럼 읽힌다. 베일에 가려진 제국은 결코 천국이 아니었다. 국가는 (마치 <1984>처럼) 스피커를 통해 모든 신민을 감시한다. 사람들은 이동을 제한받고, 정해진 업무에 종사한다. 경제 사정은 끔찍하다. 그럼에도 신민은 끊임없이 이어지는 세뇌 교육의 영향으로 '목자님'을 향한 맹목적 충성심을 고양하고, 지금도 제국 바깥에서 남성에게 무참히 희생당하는 여성을 기리며 온 지구에 페미니즘의 승리를 퍼뜨리고자 열망한다.

이는 특히 한국에서는 북한에 관한 풍자로 읽힌다. 할아버지, 아들, 손자로 이어지는 북한의 삼대 세습은 소설의 어머니와 딸로 이어진 세습과 연결된다. '국무위원장 동지'를 향한 북한 사람의 주입된 맹목적 열정은 목자님의 발에 키스할 영광을 얻는다면, 구두를 핥을지도 모르겠다며 감격하는 여성 제국 신민의 모습과 겹친다. 책은 공산주의는 허공으로 사라지고, 그 껍데기만 남아 인민을 억압한 공산 독재 국가의 모습을 우스꽝스럽게 풍자한다.

여행자들은 여성 제국의 온전한 모습을 보기 힘들다. 제국은 이들의 모든 움직임을 통제하고, 고심 끝에 가려 선택한 모습만 선보인다. 이 한심하고 답답한 일주일 동안 방문자들은 상황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를 두고 각자 갈등한다. 누군가는 제국의 치적을 맹목적으로 찬양하고, 다른 이는 점차 제국의 논리에 빠져든다. 그리고 또 다른 누군가가 제국의 민낯을 의심한다. 그들은 장님 코끼리 만지듯 이어지는 여정으로 각자 자기가 출발 전부터 그린, 제국의 보고 싶은 모습만을 바라본다.

▲ 여성주의는 연대로 힘을 키운다. 소설의 여성 제국은 그렇지 않다. ⓒyoutube.com

때문에 이 체제를 내부에서 고발하는 아스트리트의 역할이 중요하다. 그녀는 서서히 깨달아 가는 제국의 허상을 독자에게 소개한다. 덕분에 독재 정권의 본모습을 관찰하는 그녀의 일기는 이 책의 중요한 주제의식과 맞닿는다. 끝없이 외부의 (가상의) 적을 만들어 내부를 뭉치게 한다는 전략은 이미 제3제국, 북한 등의 사례를 통해 우리에게도 익숙하다. 책에서 여성 제국은 한때 페미니즘 국가 건설의 주춧돌이었으나, 훗날 테러리스트로 변한 베아트릭스를 적으로 상정해 신민을 압박하고, 뭉치도록 하는 데 활용한다. 책은 이 전략의 자기 파괴적 본질이자, 모든 압제의 결말을 아스트리트의 일기를 통해 독자에게 전달한다.

6월 11일. 디안이 말했다. "제국의 국경 안에 이제 적은 없어. 베아트릭스와 그 졸개들이 있지만, 베아트릭스가 아직 살아 있는지 확실치 않고 그 졸개들의 수도 확실치 않아. (...) 어제까지만 해도 적은 반페미니스트였어. 그런데 이제 페미니스트밖에 남지 않자, 충분히 페미니스트가 아닌 사람들을 적으로 삼고 있지. (...) 절대적으로 순수한 자기만 빼고 모든 여자들을 제거해야 그 과정이 끝날 거야. 그러면 제국은 완벽해지겠지. 자신의 이미지와 완벽하게 들어맞을 테니까." (320쪽)
이미 익숙한 조지 오웰식 디스토피아를 걷어내면, 2016년 한국에서 <목마른 여자들>은 더 도발적 존재가 된다. '페미니즘 독재 체제'를 상정함으로써, 현재 한국 사회에서 가장 뜨거운 논쟁 무대의 한가운데로 뛰어들기 때문이다.

여성 제국에서 남성은 혐오의 대상이다. 남성은 생존마저 위협받는 존재다. 제국은 남성을 완전히 제거하기 위해 유전학을 끊임없이 연구한다. 남성은 학대받는다. 가장 비천한 존재다. 제국의 바깥에서 남성이 여성을 위협하는 것처럼, 제국의 여성은 남성에게 무자비한 폭력을 가한다.

이 설정은 남성이 지배하는 현대 사회에 관한 도발적 상상으로 이해할 수 있다. 성 역할을 뒤바꿔 남성으로 하여금 여성의 현실을 간접 경험하도록 돕는 본 장치는 이 책이 <이갈리아의 딸들>과 비교되는 이유다. 예컨대 남성에게 거세를 강요하는 문화는 여성에게 할례를 강요하는 악습과 비교된다. 남성이 하인으로서 집안일에 종사하고, 집단 거주지에서 잡일을 처리하는 데 그칠 정도로 사회적 힘을 잃은 모습 역시 현대 사회에서 주변부에 머무르고 마는 여성의 노동 현실을 생각해보게끔 한다.

그러나 이 설정은 여성 제국의 처참한 민낯과 얽혀, 부정적 효과를 낳는 장치로 전락한다. 여성 제국이 아름다운 공동체가 아닌, 무자비한 폭력을 낳는 은폐된 독재 국가이기 때문이다. 성 인권 의식이 부족한 (남성) 독자 대부분은 작가의 이와 같은 설정에서 오히려 여성 혐오 의식을 더 강화할 근거를 얻는다.

저자가 여성 혐오적 소설을 만들고자 한 건 아니리라. 여성 제국은 유럽에 대두하는 극단주의의 상징으로 보인다. 저자는 책 곳곳에 극단적 맹신을 비웃는 풍자 장치를 흩뿌려, 집단의 광기가 유럽을 병든 사회로 이끈다는 경고를 보낸다. 즉, 이슬람국가(IS)의 무자비한 테러, 유럽 전역에서 창궐하는 분리 움직임과 극우주의가 여성 제국으로 대변된다.

그럼에도, 저자는 두 가지 대립되는 설정, 즉 폭력적 남성성이 극대화된 형태의 독재 시스템과 페미니즘을 무리해 결합함으로써, 페미니즘을 '극단으로 치닫는 국수주의와 IS의 광기'와 다를 것 없는 이념으로 비유해버렸다. 여성 제국 군대의 총지휘관을 강인한 근육질 남성처럼 묘사한 부분은 저자의 의도를 드러낸다.

▲ <목마른 여자들>(베르나르 키리니 지음, 백선희 옮김, 문학동네 펴냄). ⓒ문학동네
페미니즘은 연대를 끌어온다. 연대는 구성원 간 평등을 수호한다. 남성 지배적 독재 체제는 수직적 지배 체제를 부추긴다. 소설에서 묘사된 여성 제국(이름부터가 연대와 거리가 멀다)은 반 페미니즘적 집단임에도, 페미니즘의 이상향으로 오해된다. 작가는 이 오해되는 설정이 단순히 소설을 위한 은유였다는 설명 장치를 글에 넣지 않았다. 작가가 페미니즘을 혐오한 사람이라고 이해하기 쉽다.

여성 제국의 수호자인 귀족 집단의 퇴폐적 행태는 더 직접적으로 모순 관계를 보여준다. 이들은 금지된 모든 것을 욕망한다. 신민에게 금지했음에도, 자신들은 삽입 성교를 욕망하고 자기 파괴적으로 탐닉에 빠지는 지배자의 이중적 모습은 남성이 페미니즘에 갖는 왜곡된 시선을 자꾸만 떠오르게 한다. 이 때문에 독자는 은연중에 페미니즘을 (적잖은 남성 누리꾼이 동조할법한) 이른바 '꼴페미사상'으로 치환할 심리적 근거를 얻는다.

여성 제국을 관찰하는 이 중 가장 비판적인 존재가 남성이라는 점, 북한의 독재 체제와 우상화를 미화하는 (덜떨어진) 주체사상가와 (여성인) 페미니스트 정당원을 비슷하게 묘사한다는 점 등도 문제적으로 읽힌다. 이 때문에, 저자가 페미니즘에 심리적 거부감을 가진 존재 아니냐는 의구심을 떨치기 어렵다.

책의 흡인력은 매우 좋다. 프랑스인들은 마치 걸리버처럼 미지의 제국을 우스꽝스럽게 여행하고, 이들과 교차되는 아스트리트의 여정은 이야기에 긴박감을 더한다. 이야기의 전개는 책 후반부에 이르러서야 가속도를 내지만, 이전까지 서서히 피치를 올리는 여행객들의 여정 묘사는 결말의 폭발을 준비하기에 모자람 없는 장치다. 그러나 찝찝함을 남기는 이 책의 설정은 자꾸만 저자의 의도를 곱씹게 만든다. 특히 여성을 향한 사회적 공격이 첨예한 오늘의 한국에서 이 책이 더 아쉬운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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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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