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너지 신산업은 전기차, 친환경 에너지 타운, 제로 에너지 빌딩, 에너지 저장 시스템(ESS), 에너지 자립 섬, 수요 자원 거래 시장, 태양광 대여 사업, 발전수 온배수열 활용 사업 등을 말한다. 최근 이들 에너지 신산업에 대한 갖가지 기술 육성 방안과 규제 완화 정책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지난해(2015년) 11월 파리 기후변화협약 당사국 총회를 앞두고 정부는 '2030 에너지 신산업 확산 전략'을 발표하였는데, 여기에는 프로슈머(prosumer), 분산형 청정 에너지, ICT 융합, 온실 가스(온실 기체) 감축 등을 핵심 과제로 제시되었다. 올 4월에는 이를 조금 더 구체화한 '에너지 신산업 전략 로드맵'을 발표하였고, 지난 7월 5일에는 '에너지 신산업 성과 확산 및 규제 개혁 종합 대책'을 발표하였다.
이들 계획의 주요 내용을 살펴보면 태양광, ESS, 전기차와 같은 분산형 전원의 확산, 이를 위한 민간의 시장 개방, 그리고 재생 가능 에너지 의무 공급 비율(RPS)의 확대와 1메가와트 이하의 신재생 에너지에 대한 계통 접속 무제한 허용 등이다. 특히, 정부가 추진하는 분산형 전원의 확대를 위해서 판매 시장 개방을 통한 민간 참여 활성화가 전력 부문 규제 완화의 핵심 방안으로 제시되고 있다. 지난 6월에는 재정경제부가 발표한 '공공 기관 기능 조정 방안'에는 전력 판매의 소매 분야에 민간 개방을 확대하는 방안이 포함되기도 했다.
이와 같은 정부의 에너지 신산업 정책은 석탄과 원자력 발전과 같은 대규모 중앙 집중식 발전소의 환경, 사회적 문제점을 완화하고 보다 안전하고 효율적인 전력원의 보급을 확대하고자 한다는 측면에서 큰 의미가 있다. 특히 재생 가능 에너지 의무 도입을 높인다든지 계통 접속을 확대하는 정책은 상당히 진일보한 정책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미국의 '녹색 가격 제도(Green Pricing)'처럼 상업 건물, 병원, 학교와 같은 대규모 전력 수용자가 신재생 에너지 사업자와 장기 계약을 할 수 도 있는 길이 열릴 수도 있다.
하지만 분산형 전원 확대를 달성하고자 하는 정책 수단은 다소 미흡해 보일 뿐만 아니라 과연 실효성이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정부의 분산형 전원의 확대는 시장 개방을 통한 민간 참여의 활성화에 크게 의존하고 있는 듯하다. 즉, 그 동안 에너지 공기업 독점과 대규모 민간 기업의 과점에 의해 전력 산업의 진입 장벽이 높아 민간에 의한 분산형 전원의 활성화가 제대로 되지 못했으며 이러한 민간의 시장 참여를 가로막고 있는 규제를 완화하여 에너지 신산업을 활성화시키겠다는 것이다.
즉, '규제 완화=에너지 신산업 활성화'로 보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시장 참여를 위한 진입 장벽을 제도적으로 없앤다고 당장 에너지 신산업이 활성화 될 수 있을까? 정부는 일반 소비자도 생산자가 되어 옥상 태양광과 같은 자체 발전 시설에서 남는 전력을 누진세 부담이 큰 이웃에게 팔 수 있도록 하는 프로슈머를 허용하기로 했다.
과연 주택에서 잉여 전기를 생산할 수 있는 가구는 얼마나 있을 것이며, 누진세 부담이 큰 사용자를 모집하고 계약을 체결하는데 드는 거래 비용을 고려한다면 과연 사업 마진을 남길 수 있을지 의문이다. 또 누진세 전기료가 부담인 소비자는 이웃에게서 전기를 사오는 대신 건물 및 기기 에너지 효율을 높이거나 혹은 자체적으로 태양광 시설을 설치할 수 있을 것이다.
민간의 시장 참여 문제도 중요하지만 보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전기 가격이 충분히 높지 않다는 데 있다. 서양 속담 중에 "마차를 말 앞에 둔다(put the cart before the horse)"라는 말이 있는데, 일의 순서가 뒤바뀐 경우를 두고 하는 말이다. 낮은 에너지 요금으로 인해 에너지 효율과 재생 가능 에너지 확대가 어려운 상태에서 민간의 참여만을 통해 시장을 활성화 하겠다는 정부의 앞뒤 바뀐 정책이 바로 그 모양이다.
이는 전력 산업 구조 개편 시 도입된 정부의 구역 전기 사업의 실패에서만 봐도 알 수 있다. 한국전력공사의 전기 가격이 너무 낮아 민간 사업자가 경쟁하기 어렵다면 아무리 시장 참여 장애 요인이 제거된다 해도 사업성이 유지될 수 없다. 산업부가 야심차게 내놓는 에너지 신산업 정책이 생색내기 사업에 그치지 않고 실효성을 갖기 위해선 보다 근본적인 전력 요금 체계의 개편이 따라야 할 것이다.
또 다른 한편으로는 에너지 신산업으로 제안된 기술들이 분산형 전력 시스템 나아가 에너지 전환에 어떻게 기여할 수 있을까 하는 문제가 있다. 발전소 폐열 이용이나 에너지 자립 섬, 그리고 친환경 에너지 타운을 신산업으로 같이 분류한다는 것 자체가 우선 기묘하다. 정부가 특히 강조하고 있는 전기차나 ESS가 과연 분산형 전력 시스템에 어떻게 기여할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전기차나 ESS는 그 기술 자체로만 본다면 분산형 전원(엄밀히 말한다면 분산형 전기 저장 장치)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현재 우리나라의 전력 믹스를 고려했을 때, 이들 기술은 기존의 대규모 전력원의 지위를 오히려 더욱 공고하게 만들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 미국 캘리포니아나 전 세계 태양광의 3분의 1인 40기가와트가 설치된 독일과 같은 경우는 낮 시간에 태양광 시설에서 발전되는 잉여 전기를 저장하기 위해 ESS에 대한 지원을 시작하였다.
이에 반해 우리는 기저 부하인 석탄 화력 발전소와 핵발전소에서 생산된 심야 잉여 전기를 저장해서 이를 수요가 높은 낮 시간에 사용하겠다는 것이다. 독일이나 캘리포니아의 ESS 활용이 에너지 전환을 위한 것이라면 우리나라의 ESS는 공급 안정성의 확보와 신산업 육성에 중점을 두고 있는 듯하다.
최근 크게 늘어난 기저 부하 발전소로 인해 첨두 부하를 담당하던 LNG의 이용률이 줄어 LNG 발전사의 사업성이 크게 악화되는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만약 전기차와 ESS가 정부의 지원을 바탕으로 급속하게 확대된다면, 석탄과 핵발전소만으로 전체 부하를 충당하게 되는 극단적인 상황까지 벌어질지도 모르는 일이다.
이렇게 된다면 이들 전기차와 ESS는 분산형 전원이라기보다는 대규모 전원을 보다 효율적으로 유지하기 위한 보조적 수단으로 기능할 수 있다. 여기에서도 정부의 에너지 신산업 정책의 정책 순서에 문제가 있다. 에너지 신산업 정책이 새로운 산업의 육성이라는 관점에서 진행되다 보면 에너지 전환을 가속하기는커녕 오히려 더디게 하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
얼마 전, 산업부 장관이 한 신문에 독일의 재생 가능 에너지 사업과 같이 에너지 신산업을 새로운 경제 도약을 위한 산업으로 발전시킬 필요가 있다고 주장하면서 과감한 규제 완화를 그 방안으로 제시한 바 있다. 독일의 재생 가능 에너지 산업이 과연 규제 완화를 통해 발전하였을까? 오히려 지난 수십 년간 에너지 전환을 위한 정책을 지속적으로 실천함으로써 오늘날 경쟁력 있는 독일의 재생 가능 에너지 산업이 가능하지 않았을까?
물론 에너지 전환(에너지원의 전환)을 통해 우리나라의 에너지 산업의 경쟁력이 자연스럽게 올라가리라는 보장은 없다. 즉, 중국산 태양광, 덴마크 풍력 터빈, 동남아 펠릿을 수입한다면 에너지원의 전환은 이룰 수 있겠지만 산업적 기반은 갖추지 못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에너지 시스템의 전환 없이 산업 육성에만 치중하는 것은 그 기회비용이 너무 클뿐더러 실현 가능성도 높지 않다.
지금 정부의 에너지 신산업 정책은 자칫 일부 에너지 기술의 산업적 역량 강화에만 치중한 나머지 국내 에너지 전환을 위한 중요한 자원과 시간을 허비해 버리는 것일 수 있다. 에너지 전환을 위한 시장의 활용 그리고 새로운 녹색산업의 육성을 위해 보다 체계적이고 통합적 접근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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