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습기 살균제 참사, 22년의 기록

[함께 사는 길] 달마다 날마다 사람이 죽었다

가습기 살균제가 처음 한국에 선보이고 참사가 알려지기까지 17년이란 세월이 걸렸다. 긴 세월 이유도 모르고 죽어간 사람이 신고된 수만 400명이 넘는다. 환경부 장관의 말처럼 어쩔 수 없는 인재였던 것일까. 하지만 가습기살균제 참사를 막을 기회는 여러 번 있었다.

가습기 살균제 첫 등장부터 유해성 검증했다면

우리나라에 가습기 살균제란 제품이 시중에 선보인 때는 1994년이다. SK케미칼(당시 유공)은 18억 원을 들여 인체에 무해한 가습기 살균제를 개발했다고 언론에 발표했다. 당시 한 일간지에 실린 기사에 따르면, 가습기 물에 타서 사용하면 각종 질병을 일으키는 세균이 완전히 사라지며 독성 실험 결과 인체에 아무런 해가 없는 것으로 나왔다고 밝히고 있다. 하지만 이는 SK케미칼 측의 주장일 뿐 실제로 정부의 유해성 검사는 이뤄지지 않았다.

ⓒ함께사는길

1991년부터 시행된 유해화학물질관리법에 따라 유해성 심사제도가 있었지만, 법 시행 이전부터 유통된 화학물질은 유해성 심사를 제외해줬다. 당시 SK케미칼이 사용한 물질은 CMIT/MIT로 알려져 있다. 미국에서는 독성 실험을 거쳐 농약으로 등록된 성분이었지만, 우리 정부는 이미 사용하고 있는 물질이란 이유로 유해성 심사를 면제해준 것이다. 우리 정부는 가습기살균제를 출시된 후부터 2011년 의약외품으로 지정하기 전까지 자율안전확인대상 공산품으로 분류했다. 즉, 인체 독성 실험 없이도 기업이 지정 검사기관에서 자율적으로 안전 확인을 받으면 얼마든지 판매할 수 있었다. 참사가 세상에 알려진 후 전문가들은 사람이 흡입하면 안 되는 살균제를 실내에서 분사한다는 것은 상당히 위험한 일이며 애초에 가습기 살균제는 절대 만들지 말았어야 하는 제품이라고 입을 모은다. 하지만 그 상식과 의문을 대한민국 어느 부처도 제기하지 않았다.

PHMG 유독물에 해당 안 된다는 엉터리 고시

PHMG는 2011년 판매가 중지되기 전까지 10년간 400만 개가 넘는 제품을 판매했고 시장점유율 80퍼센트에 달했다. PHMG는 애초부터 가습기 살균제 용도로 사용되지 않았다. 1996년 SK케미칼(당시 유공)은 PHMG를 카펫 항균제 제조용으로 환경부에 신고를 했다. 당시 제조신고서에는 "흡입 시 신선한 공기가 있는 곳으로 옮길 것, 섭취 시 물로 입을 씻어 내거나 충분한 물을 마셔 토해낼 것" 등이 적혀 있었지만, 환경부는 추가 독성 자료를 요구하지도 않고 그 이듬해인 1997년 3월 '유독물에 해당 안 됨'이라고 고시했다. 환경부의 고시로 PHMG는 추가 위해성 평가 없이 일반 공산품에도 사용이 가능해졌다. PHMG가 가습기 살균제 성분으로 사용된 것은 2001년 옥시에 의해서다. 옥시는 기존에 사용하던 '프리벤톨-R80'이라는 물질 대신 SK케미칼이 생산한 PHMG로 원료를 변경했다. 기존 물질 사용 시 이물질이 남는다는 소비자들의 민원 때문이었다. 옥시는 독일에서 수입한 프리벤톨의 경우 독일의 화학교수가 흡입 독성 시험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제시해 실험했지만, PHMG는 흡입 독성 실험을 생략했다. 유독물이 아닌 물질을 굳이 기업이 나서서 흡입 독성 실험을 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환경부는 PGH 역시 2003년 유독물에 해당 안 됨이라고 고시했다. 2003년 한 업체가 PGH에 대한 유해성 심사를 신청하면서 주요 경로를 스프레이, 에어졸 제품 등에 첨가/항균 효과라고 밝혔지만 환경부는 흡입 독성 시험에서도 없이 유독성이 아니라고 고시해버린 것이다.

2003년 호주엔 흡입 독성 경고, 한국은?

옥시는 PHMG의 흡입 독성을 이미 알고 있었다. 2013년 7월 12일 정의당 심상정 의원실에 따르면, 호주 국가산업화학물질 신고평가 기관(NICNAS)이 작성한 2003 보고서를 확인한 결과 SK케미칼이 생산한 PHMG은 이미 당시부터 흡입 시 유해한 것으로 평가됐다. 이 보고서는 SK글로벌(호주법인)이 SK케미칼의 PHMG를 호주로 수입하기 위해 호주의 '산업화학물질신고평가법'에 따라 PHMG에 대한 유독성 정보를 호주 국가산업화학물질 신고평가 기관에 제공하고 당해 기관이 공중건강에 대한 위험을 평가하는 보고서다. 심상정 의원실은 "통상적으로 독성 평가를 하는데 2~3년이 걸리기 때문에 SK케미칼은 2000년 전후부터 가습기 살균제 원료의 흡입 독성을 파악하고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SK글로벌이 호주 정부기관에 제출한 바에 의하면 PHMG에 대한 실험은 SK케미칼 특수화학물지부에서 시행됐다. 2003년 호주에서 흡입 독성을 경고한 그때 한국에 사실을 알리고 바로 잡았다면 피해는 지금과는 달랐을 것이다.

원인미상 폐 질환 환자 끝까지 추적했어야

2007년부터 2008년까지 원인을 알 수 없는 소아 폐렴 사례 30건이 학계에 보고됐지만, 정부는 이를 추적, 파악하지 않았다. 2008년에서야 질병관리본부는 실태 파악에 나서 원인 미상의 폐질환이 49.4퍼센트의 높은 사망률을 기록하고 있다는 심각한 문제임을 확인했다. 하지만 바이러스 때문인 것 같다는 애매한 결론으로 조사를 종결하고야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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