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신냉전'에 돌입한 이명박 정부의 남북관계

"분단고착 프로세스로 걸어가고 있다"

1. 전제조건 : 비핵화 vs. 6.15와 10.4 선언 존중
  
  이명박 행정부 대북정책의 모든 전제조건은 사실상 '비핵화'다. 이 대통령의 8.15 경축사에는 "6자회담과 국제협력의 진전"이라는 구절이 있다. 이는 '사실상의 비핵화'와 같은 말이다. 문제는 이것이 지난 달 11일 국회 개원연설보다 후퇴했다는 점이다. 이명박 행정부는 한미관계 개선을 통해 북미관계를 개선하고 이를 남북관계 개선의 선순환구조로 삼으려 한다. 한미관계를 주축으로 한 남북문제 해결방식이다. 말하자면 '통미봉북'이다.
  
  북한은 여전히 '통미봉남'이다. 동시에 '6.15공동선언과 10.4정상선언의 존중'이라는 전제조건에서 벗어남이 없다. "김정일은 역사적인 6·15 공동선언과 실천강령인 10·4선언을 마련하여 북남관계를 화해와 협력의 관계로 전환시켰다" 이건 지난 4월 김정일 국방위원장 추대 15주년 경축중앙보고대회에서 나온 김영일 내각 총리의 인사말이다. 김정일 위원장이 '직접 서명'한 남북간 합의서에서 시작하자는 것이다. 이 간극을 뛰어넘을 묘책은 아직까지는 보이지 않는다. 남북한 관계는 지금 '신냉전'의 흐름에 편승 중이다.
  
  2. 북한의 대남의존은 필연적인가
  
  북한은 자신들의 경제회생과 정치체제 보장에 대한 남한의 역할에 대해 회의적이다. 그래서 대남 의존성을 줄이고 대외관계 다각화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려 한다.
  
  이런 북측의 시도에 대해 이명박 행정부는 회의적이다. 결국은 남측에 손을 내밀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북한이 남북관계는 막고 세계로 교류협력관계를 확대하는 전략은 성공할 가능성이 높지 않다. 왜냐하면 국제사회는 남북관계가 막힌 상태에서 대외교류를 시도하는 북한을 신뢰하지 않기 때문이다"(서재진 통일연구원장)
  
  그런데 다각화 사례는 적지 않다. 지난 4월 북한과 러시아 철도공사는 나진-핫산간 55km에 이르는 철도협력사업 관련 계약을 정식 체결했다. 이때만 해도 북한은 "10.4 선언의 이행을 위한 일환(김철 철도성 부상)"이라고 했다. 이명박 대통령도 8.15 경축사에서 "부산에서 화물을 싣고 대륙횡단철도를 따라 중앙아시아, 서유럽까지 갈 수 있습니다. 해양시대와 대륙시대를 동시에 열면서 통일한국은 세계중심국가로 도약할 것"이라 했다. 하지만 우리가 TSR(시베리아 횡단철도)을 주도할 수 없음은 분명해졌다.
  
  그럼에도 이명박 행정부는 여전히 북핵폐기 2단계가 종료되면 비로소 대북지원 5대 패키지 프로그램(북한의 수출기업 육성, 산업인력 양성, 국제협력자금 조성 등) 가동에 착수하겠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3. 8월까지 북핵폐기 3단계 진입로드맵에 대한 합의는 가능할까
  
  이명박 행정부는 "8월까지 최소한 3단계 핵폐기를 위한 로드맵을 만들어놔야한다"(유명환 외교통상부 장관)고 강조한다. 그렇게 되야만 개성공단 2단계 확대사업을 시작할 수 있고, 10.4선언의 합의내용도 일부 시행할 수 있으며, 5대 패키지 프로그램의 착수가 가능하기 때문이다.(서재진, 남북 상생·공영을 위한 비핵·개방·3000정책의 이론적 체계연구, 13~14페이지 참조)
  
  지난 4월 8일 북한과 미국은 '농축우라늄 프로그램과 시리아 핵협력에 대하여 미국이 북한을 대신해서 신고하고 북한이 이를 인지(acknowledge)하고 이의(challenge)를 제기하지 않으며 이를 공식신고서가 아닌 북·미 비밀 의사록에 담기로 합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양국의 '체면'을 고려한 합의였다.
  
  북한은 이미 '행동 대 행동의 원칙'에 따라 핵시설을 불능화했고, 핵프로그램 목록을 신고했다. 6자회담 당사국들은 중유 95만 톤을 제공 중이고 '비공식'이나마 6자 외무장관회담을 개최했다. 또한 미국은 적성국 교역법을 이미 삭제했고, 테러지원국 해제절차를 진행 중이다. 물론 북한은 자신들의 이행 수준에 비해 미국 등 당사국의 이행정도가 지연되고 있는 데 대한 불만이 있다.
  
  비핵화 로드맵 3단계는 다시 2단계로 나눌 수 있다. 그 첫째 단계가 북한은 핵물질을 폐기하는 일이고, 북미와 북일은 수교협상을 개시하고 경수로 지원을 포함한 에너지 지원문제에 대해 합의해야 하며, 남북한 사이에는 종전선언과 평화협정 협상이 개시돼야 한다.
  
  결론적으로 따져보자. 현재와 같은 남북한 사이의 '신뢰배반' 속에서 남북한이 주도하고 정전협정의 당사자인 미-중도 합의하는 종전선언과 평화협정 개시가 가능할까? 미국과 미 의회는 부시 행정부가 스스로 배척했던 경수로 지원사업을 다시 합의할 수 있을까? 경수로와 미국의 북한에 대한 경제지원 문제는 이미 차기 행정부와 차기 의회의 몫이 아닐까.
  
  그렇다면 수교협상은 어떠할까? 일본인 납치문제가 해결돼야 하고, 핵검증 체계에 대한 합의가 선행되어야 한다. 이렇게 본다면 최소한 3단계 핵폐기를 위한 로드맵 구축은 우리 정부의 희망과는 달리 올 연말이나 최소한 내년 상반기까지는 어렵게 된다. 그만큼 비핵화를 전제로 하는 남북협력사업은 지연될 수밖에 없고, 북미관계에서 있어서 남한의 조정역할은 위축되고 말 것이다.
  
  4. 북한의 국제금융기구 가입은 가능할까
  
  그렇다면 현 시점에서 가능한 비핵화 로드맵의 단계는 어디까지일까? 첫째는 이미 합의한 공식 6자 외무장관회담 개최와 상징적인 의미의 라이스 미 국무장관 방북 건이다. 한미양국은 6자 외무장관회담을 추진하려 한다. 하지만 3단계에 대한 북미간 사전 합의에 이르지 못하는 이상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라이스 미 국무장관의 방북 건은 이미 물 건너간 것으로 평가된다. 미국의 관심사는 중앙아시아로 가 있다.
  
  그렇다면 남아있는 유일한 가능성은 미국의 테러지원국 해제절차의 완전한 이행 여부다. 최근 자유아시아방송(RFA)는 북한이 미국과의 핵검증협상과정에서 "국제통화기금과 아시아개발은행 가입을 위한 미국의 확실한 지원약속을 요구했다"고 보도했다. 사실일 것이다. 현시점에서 북한이 가장 간절하게 바라는 바가 이 부분이기 때문이다. 물론 이 부분은 이명박 행정부의 기대에 배치되는 측면이 있다. 이는 '상대적'으로 '북한의 독립'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미국과 일본은 테러지원국이라는 이유로 북한의 국제금융기구 가입을 반대해 왔고, 대북 금융지원에도 반대표결을 해 왔다. 국제금융기구에 가입하기 위해서는 각종 국가 통계의 건전성이 담보되어야 하고, 최대 주주인 미국, 일본 등의 동의가 있어야만 한다.(현재까지 세계은행 가입이 금지되고 있는 나라는 북한과 쿠바뿐이다) 대테러지원국 해제야말로 북한이 남한에의 의존성을 줄이고 국제적인 개방경제 체제로 나아갈 수 있는 마지막 관문이다.
  
  북한은 이제 더 이상 미국의 '적성국'이 아니다. 북한을 적성국으로 규정한 적성국교역법 조항이 삭제되었기 때문이다. 국제사회로 나아가기 위해 남은 마지막 규제가 '테러지원국'이다. 하지만 형식적 해제로는 실효성이 없다. 국제금융체제로 편입되고 국제금융기구의 혜택을 누릴 수 있는 담보가 있어야 한다. 바로 미국의 확약이다. 이렇게 되면 북한은 남한에의 일방적 의존도를 줄이고 국제경제사회시스템으로 진입하게 되며 북한경제를 다각화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게 된다. 이렇게 볼 때 핵 검증체계에 대한 확실한 담보를 요구하는 미국과 국제금융체제에의 전면적 편입과 담보를 요구하는 북한과의 거래는 충분한 가치가 있고 협상카드는 맞교환이 가능할 것이다.
  
  그렇다면 이 문제에 대해 이명박 행정부는 어떤 태도를 취할 것인가? 1991년 이래 우리 정부는 북한의 국제금융기구 가입을 사실상 찬성해왔다. 물론 김대중 행정부는 적극 추진하려 했다. 현재까지 이명박 행정부의 입장은 불분명하다.
  
  5. '신냉전'의 시대에 이명박 행정부는 어떻게 할 것인가
  
  세계화의 상징인 맥도날드가 들어선 곳에는 전쟁이 일어나지 않는다는 '골든 아치'(Golden Arch) 이론이 있었다. 하지만 베이징 올림픽이 시작되던 날 러시아와 그루지야 사이에는 전쟁이 발발했다. Z. 브레진스키 교수의 말을 빌자면 "러시아가 자임하는 유라시아적 사명과 러시아가 표방하는 신비적 슬라브주의 결과"일 것이다.
  
  포린 폴리시 불가리아 판 편집자인 이반 크라스테프는 지난 5월 기고문에서 푸틴과 그를 이어받은 매드베데프의 대외정책은 "앞으로 10년은 다극화가 될 것이며 이 시기는 러시아가 안으로 체제의 정당성을 강화하고 밖으로 강대국 자리를 되찾는 절호의 전략적 기회를 제공"할 것이라고 평가한다. 또한 그는 "(러시아가) 그 과정에서 더욱 독단적이고 공격적인 대외정책은 얼마든지 감수할 예정"이라고 예상했다. 결과는 그대로다.
  
  에너지와 종교, 민족문제가 여전히 신냉전체계의 기저에 자리잡고 있다. 우리는 탈냉전 시대에도 남북한 간 냉전 틀을 스스로 벗어나지 못했다. 그러는 사이 새로운 냉전의 시대가 도래하고 있다. 러시아와 중국의 국가주의는 탈냉전기인 지난 15년 동안 강화됐다. 미국은 대테러전쟁에 집중하느라 되레 고립되고 약화되어간다. 남북한은 국제무대에서 체제경쟁중이다. UN 동시가입 이전으로 되돌아갔다.
  
  지난 10년간 우리 정부는 '분단고착적'이 아닌 '통일지향적 평화 프로세스'를 구축하기 위해 노력해왔다. 그 중의 한 방편으로 남북화해와 협력, 경제교류를 강화하고, 단일경제권 구축이라는 경제적 냉전 극복을 통해 평화프로세스를 구축하려는 시도가 있었다. 물론 정치적 접근의 성격이 있다. 하지만 남북관계는 외교도 아니고 내치도 아닌 '특수한 관계'이고 '복합적 관계'이다. 단순한 경제관계, 시장경제적 대가관계로 규율할 수 없는 관계가 바로 남북관계이다. 외교도 내치도 아닌 특수한 영역의 존재를 인정하고 그 특수성에 기초한 대북정책이 존재해야만 하는 것이다.
  
  내치의 영역으로 규정하는 순간 북한은 국가보안법의 체계 내로 편입되고 만다. 그러나 외교의 영역으로 규정하는 순간 다자관계의 틀 속에서 북한의 독자성은 강화되고 남한의 조정능력은 약화되고 만다. 그렇다면 손을 놓을 수밖에 없다. 단지 '총성 없는 평화'에 만족하는 분단고착적 프로세스라는 함정에 빠지게 되는 것이다.
  
  진정 실용정부라면 실용의 눈으로 남북관계를 바라봐야 한다. 이념의 색안경을 스스로 벗어던져야 한다. 이 대통령은 미국산 쇠고기 문제에 '정무적 판단'이 필요했었다고 했다. 남북관계야말로 '정무적 판단'이 필요하다. 세계는 지금 냉전에서 '신냉전'으로 넘어가고 있다. 다시 한 번 남북관계에 대한 전략적 판단을 요청하고 싶다. 남북관계에 대한, 통일한국에 대한 분명한 전략적 비전과 가치가 재구축되어야 할 때다. 시간은 우리의 편이 아니다. 구글에서 프레시안을 더 자주 만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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