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판 '응사', <나의 소녀시대>

[강귀영의 중국 대중문화 넘나들기] 90년대 추억을 소환해 흥행 성공

얼마 전 한국에서도 개봉한 대만(타이완) 영화 <나의 소녀시대(我的少女時代)>가 역대 대만 영화가 세웠던 흥행 기록을 모두 갈아치우며 40만 관객 동원에 성공했다. 지난 해 대만에서 개봉한 〈나의 소녀시대〉는 박스오피스 147억 원 수익을 올리며 대만 영화 흥행사를 새로 썼을 뿐 아니라 홍콩, 싱가포르, 중국 등 아시아 전역에서도 크게 흥행했다.

이 영화는 유덕화(劉德華)와 결혼하는 것이 꿈인 평범한 여고생 린전신(林眞心)과 학교에서 불량 학생으로 낙인찍힌 쉬타이위(徐太宇)가 각자 좋아하는 이성 친구와 잘될 수 있도록 서로 도와주려다 오히려 그 둘이 풋풋한 사랑과 우정을 나누게 되는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이 영화가 큰 사랑을 받을 수 있었던 이유는 학창 시절을 경험한 모든 이들에게 순수했던 그 시절을 추억하게 만들기 때문이라 생각된다. 학창 시절 누구나 한번쯤 받아봤을 법한 '행운의 편지'와 친구들끼리 돌려쓰던 '앙케이트 노트' 같은 이야기에 공감하지 않을 사람이 있을까? 영화를 보다가 이러한 내용들이 등장하는 장면마다 한국 관객들이 까르르 웃는 모습을 보니 역시 이런 소재들은 국적을 초월하는 웃음 코드라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는 성인이 된 여주인공이 과거를 회상하면서 본격적인 스토리가 전개된다. 라디오에서 3인조 남성 아이돌 그룹 '소호대(小虎隊)'의 멤버 소유붕(蘇有朋)이 대만 대학교 휴학을 결정했다는 뉴스가 흘러나오고, 유덕화(劉德華)의 히트곡 '망정수(忘情水)'가 배경 음악으로 깔리며 관객들을 1994년으로 소환한다.

1990년대 초의 대만은 홍콩의 대중문화와 일본의 대중문화가 큰 인기를 구가하던 시절이다. 이런 시대상을 반영하듯 유덕화를 좋아하는 린전신의 친구인 샤오즈는 금성무(金城武)와 곽부성(郭富城)의 팬으로 등장하고, 주인공들이 걸어 다니는 주택가 골목 담벼락에는 홍콩 영화 〈천장지구(天長地久)〉의 상영 광고가 붙어 있다.

홍콩 영화의 황금기라고 불리는 그 시절, 멋을 아는 대만 남학생들은 홍콩 영화 속에 단골로 등장하던 야마하 바이크(오토바이)를 사기 위해 몇 달 동안 아르바이트를 하곤 했고, 영화 속 주인공들처럼 바이크에 친구를 태우고 떼거리로 달리는 '밤놀이(夜游)'는 대만 청소년들이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방법이었다.

쉬타이위와 린전신이 함께 길을 걷는 길가에도 1990년대 큰 인기를 끌었던 홍콩 여가수 GiGi(양용기, 楊詠琪)가 입었던 스타일의 바지를 파는 노점상 광고가 보이고, 그것을 구경하는 사람들 속에는 당시 큰 인기를 끌었던 일본 애니메이션 〈이웃집 토토로〉 속 토토로 인형 배낭을 멘 여성이 눈에 띈다.

어디 그 뿐인가! 주인공 린전신이 친구들과 공부하는 장소로 등장하는 찻집 '샤오시에(小歇)'는 버블티가 유행하기 시작했던 1990년대를 상징하는 장소였다. 마치 1990년대 한국에서 테이블마다 전화기가 놓인 카페가 유행했던 것처럼 당시 버블티를 파는 찻집(泡沫紅茶店) 테이블 위에는 동전을 넣어 별자리 운세를 볼 수 있는 작은 물건이 있는데 영화 속의 그 소품들이 반가움을 자아냈다.

당시 내가 다니던 타이베이의 대학가 앞에는 길 전체가 온통 버블티를 파는 카페가 있었을 정도로 버블티 카페의 인기는 정말 대단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현재 한국에서 유행인 커피 전문점의 숫자와 비슷할 정도로 번성했던 것 같다.

▲ 대만 영화 <나의 소녀시대>.

물론 이 영화의 백미는 유덕화가 카메오로 등장하는 그 순간일 것이다. 유덕화의 등장이 너무나 반갑고 놀라워 같이 영화를 보던 관람객들은 너나 할 것 없이 환호성을 질렀다. 그의 깜짝 출연은 이 영화의 신의 한 수였다. 다만 잠시 출연한 그의 존재감이 너무나 커 영화 후반부에 카메오로 등장하는 언승욱(言承旭)이 묻힐 정도여서 그 점이 아쉬웠다. 워낙 영화가 초반에 경쾌한 템포로 전개되어 기대감이 컸던 탓인지, 후반으로 갈수록 힘을 잃는 듯한 느낌을 받은 것은 나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만 특유의 아기자기한 정서와 1990년대를 완벽 재현하려고 노력한 제작진은 관객들에게 충분한 볼거리를 제공한다. 이 때문인지 이 영화를 본 많은 사람들이 한국 영화 〈써니〉, 〈건축학개론〉과 드라마 〈응답하라〉 시리즈가 떠올랐다고 말한다. '어쩌면 이렇게 생생하게 1990년 대 초 대만의 모습을 그려냈을까?' 영화를 보고 궁금해서 프렝키 첸 감독의 약력을 검색해보니, 역시 그녀는 여주인공과 같은 시기에 고등학교나 대학교 생활을 했을 법한 나이였다.

비록 이 영화가 거창한 예술을 논하거나 메시지를 전달하지는 않는다 하더라도 과거의 순수했던 시절을 추억하게 만들고, 영화를 통해 우리와 비슷한 정서를 가진 1990년대 초 대만 학생들의 문화를 엿볼 수 있다는 점에서 충분히 감상할 가치가 있어 보인다.

이 영화의 흥행으로 남자 주인공 쉬타이위를 연기한 왕대륙(王大陸)의 인기도 예사롭지 않다. 이미 6월 초 한국을 방문했던 그가 또 다시 한국 방문을 계획 중이라고 하니 대만 영화에 대한 한국 관객들의 관심도 점점 커지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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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귀영

한양대학교와 서울디지털대학교에서 강의하고 있으며 싱가포르 중국어 일간지 <연합조보>에서 서울특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대만국립정치대학교에서 정치학 석사 학위를 받았고 한양대학교 국제대학원에서 지역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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