뒷목 잡을 일에 술 드시면 안 돼요!

[김형찬의 동네 한의학] 곧잘 뒷목을 부여잡는 분께

"어제 가벼운 접촉 사고가 났어요. 상대방이 하도 상식 밖이라 언성을 좀 높였더니, 뒷목이 뻣뻣하고 머리가 아파서 죽겠어요."

진료실에 들어서는 모습에서 짐작은 했지만, 아직도 어제의 분이 다 풀리지 않았는지 얼굴은 상기되었고 목과 어깨가 경직되었습니다. 치료하기 전에 뒷머리와 어깨의 혈을 풀어주면서 이야기를 들어보니, 잘못을 저지른 상대방이 사과 한마디 없이 나와서 쓱 본 후, 곧바로 자기 차에 들어가 전화만 하더랍니다. '뭐 저런 사람이 다 있지?'하는 생각에 "나와 보라"고 했더니, 창문만 조금 내리고 말해서 도저히 참을 수 없었다고 하네요.

한의원을 찾아 목과 어깨의 불편함을 호소하는 분이 많습니다. 대부분은 거북목 증후군처럼 잘못된 자세나 생활습관 때문에 목과 어깨의 정상적인 구조가 깨지고(척추 전반적인 변화를 동반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근육이 뭉친 경우입니다. 이럴 때는 뭉친 부위를 풀어주고, 자세를 점검하고, 온 몸을 고루 쓰는 신체 활동을 처방합니다.

몸과 마음의 피로가 쌓여 근육이 지치고 무거워진 분도 있습니다. 늘 어깨에 뭘 올려놓은 것 같다고 하는데, 유속이 느려지면 퇴적물이 쌓이는 것처럼 체액의 흐름이 떨어지면서 피로 물질이 쌓이고 세포의 활성도가 떨어져 우리 몸이 '어떻게 좀 하라'는 신호를 보낸 것이지요. 이런 증상을 겪는 사람 중 마사지에 중독된 분이 많습니다. 잠시 풀어주면 시원하니 끊지 못하는 것이죠. 이럴 때는 몸속에서부터 활력을 높이고, 나를 지치게 만드는 것을 정리해야 합니다.

이와는 다르게 앞서 예를 든 환자처럼 열 받는 일이 많아서, 혹은 스트레스가 과해서 목과 어깨가 불편하다는 분이 꽤 있습니다. 이런 분은 '뒷목이 터질 듯하다', '뒷목이 뜨겁다', '어깨가 돌 같고, 머리가 아프다', '고혈압인 것 같으니 혈압 한 번 재 달라'고 말하곤 합니다. 머리와 경추가 만나는 부분과 목과 어깨 주위의 중요한 부위가 딱딱하게 굳은 경우가 많지요.

이런 분을 잘 살펴보면 머리와 목, 그리고 어깨에 과도한 압력이 걸린 상태임을 알 수 있습니다. 압력이 오르면 열 또한 발생하지요. 그럼 왜 이런 상태가 될까요?

우리가 과도한 스트레스를 받거나, 시쳇말로 '머리 뚜껑이 열리는 상황'이 발생하면 속에서 화가 일어납니다. 이에 따라 기(氣)는 과도하게 위로 치밀어 오릅니다. 마치 찌개가 끓기 시작하면 뚜껑이 들썩들썩하는 것처럼 말이지요. 적절할 때 불을 줄이지 않으면 끓어 넘치는데, 이 때 물만 넘치는 게 아니라 건더기도 함께 올라오지요. 그래서 급하게 불을 끄면(스트레스 상황이 해제되면) 끓던 국물은 쑥 가라 앉는데, 냄비 안쪽이나 주변에 함께 넘친 고춧가루는 남아 있습니다.

이와 같은 과정이 우리 몸에서도 동일하게 발생합니다. 화를 따라 기운이 치밀어 오를 때는 체액이 탁해져 함께 끓어오릅니다. 화가 식으면 기운은 내려가지만, 그 탁한 것들은 남습니다. 이것을 담음(痰飮)이라고 하는데, 좀 더 만성화해 완고하게 자리를 잡으면 적취(積聚)라고 표현합니다. 본래는 우리 몸을 구성하는 일부였지만, 제 갈 길을 벗어나서 독자적인 세력을 구축한 녀석들이지요. 이처럼 일시적으로 만들어진 세력이 일으키는 문제는 보통 우리 몸 스스로 해결합니다. 하지만 그 정도가 심하거나 만성화하면, 적취가 기의 순환을 방해합니다. 흐름이 막히니 우리 몸은 어떻게든 기의 원활한 흐름을 위해 더 큰 힘을 가합니다. 이에 따라 혈압도 높아지는데, 증상이 만성화하면 고혈압이 되지요.

이럴 때 열 받는다고 기름진 음식에 술을 마시면 어떻게 될까요? 잠깐 술기운이 돌 때는 기분이 좋을지 몰라도, 그 이후에는 몸에 독소가 쌓여 음주로 인한 담음이 더 쌓입니다. 자연히 몸은 더 괴로워지죠.

이런 분에게는 막힌 길을 열어 주는 치료는 물론, 화를 내리고 몸의 균형을 잡는 치료도 실시합니다. 그리고 자주 걷고, 천천히, 그리고 깊이 호흡하는 훈련을 권합니다. 족욕이나 발바닥 지압처럼 긴장을 풀고 기운을 아래로 내려주는 행위를 수시로 이행하시라고 말씀드립니다. 술을 즐기는 분께는 죽력고(竹瀝膏)와 같은 약술을 권하고, 차를 즐기는 분에게는 대나무 잎차를 권합니다. 화를 내리고 기의 소통을 돕기 위함입니다.

살다보면 하도 기가 막혀 뒷목을 움켜잡을 날들이 있습니다. 그런 일을 웃어넘길 수 있다면 좋겠지만, 마음대로 되지 않지요. 하지만 평소 틈틈이 화를 풀어내고, 화를 수용할 수 있는 그릇을 키울 수는 있습니다. 일상의 작은 움직임을 소홀히 하지 않는 것이야말로 건강을 잘 돌보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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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찬

생각과 삶이 바뀌면 건강도 변화한다는 신념으로 진료실을 찾아온 사람들을 만나고 있다. <텃밭 속에 숨은 약초>, <내 몸과 친해지는 생활 한의학>, <50 60 70 한의학> 등의 책을 세상에 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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