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렉시트 투표, 개헌 논의 반면교사"

[프레시안 뷰] 여론과 공론의 구분

'왜'가 아니라 '언제'부터 시작하는 개헌 논의

정세균 국회의장이 개원사에서 개헌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87년 체제의 산물인 현행 헌법의 개정을 언제까지 외면할 수 없고 누군가 반드시 해야 할 일이라고 했습니다. 18대부터 새로 취임하는 의장들마다 개헌을 이야기하니, 이제 정말 개헌이 눈앞에 다가온 것 같습니다.

그런데 하다못해 법률의 조그마한 조항을 하나 바꾸더라도 반드시 처음 제기되어야 하는 것은 '왜'라는 질문일 것입니다. 우선 그것이 충족되고 나서야 뒤따르는 '누가, 무엇을, 어떻게, 언제'가 뒤따릅니다.

하지만 개헌에 대해 우리 정치인들은 '언제'부터 말하는 것이 일상이 되었습니다. 육하원칙에 의한 서술은 '누가-언제-어디서-무엇을-어떻게-왜'라는 순서로 되어있지만, 이것은 서술의 순서이지 '사고', 특히 논리적 사고의 순서라고는 결코 할 수 없습니다. 사고의 순서는 정확히 그 반대, 즉 '왜'에서 출발합니다.

그래서 개헌을 우리가 해야 한다면 '왜' 하는 것이냐가 명확해야 하고, 그 주체가 '국민'이라면 국민의 상당수가 우선 그 이유에 대한 대체로 명확한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어야 합니다.

물론 그렇다는 주장은 많습니다. 지난 16일 리얼미터가 CBS 의뢰로 실시한 여론조사에서는 국민의 69.8%가 개헌에 '공감한다'고 했습니다. 이런 결과를 들어서 혹자는 이렇게 말할 수도 있습니다. "여론조사를 해 보니 국민의 상당수가 개헌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한두 번도 아니고 몇 년째 계속이다. 그럼 개헌의 필요성이 생긴 것 아니냐?"

이런 여론조사를 한번 해보면 어떻습니까? "지금의 대통령이 물러나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하는 여론조사를 실시한 다음, 그렇다는 대답이 반 이상 나오면 야당은 그 여론 조사에 따라 대통령을 탄핵해도 될까요?

아마도 여당과 정부는 물론이고, 언론과 심지어 그렇다고 대답한 국민들조차도 몰상식한 발상이라고 대번에 몰아붙일 것입니다. 대통령의 탄핵이 그런 식의 여론조사를 바탕으로 진행될 사안이 아니라는 것 정도는 모두가 알기 때문입니다.

지금 개헌 여론조사는 어떻습니까? 대한민국에서 현재의 삶에 크게 만족하는 사람이 아니라면 이런 질문에 진지하게 반대할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요? 게다가 한국 사람들은 유독 변화나 개혁이라는 말을 좋아하지는 않는가요?

덮어 놓고 전화를 걸어 "개헌에 찬성하느냐?"고 묻고는 그렇다는 답이 많이 나왔으니 개헌의 조건이 무르익었다고 말하는 소위 언론이나, 정치인, 평론가, 조사전문가들은 무책임한 정도가 아니라 자질에 문제가 있는 사람들입니다.

여론과 공론의 구분

이런 착각은 '여론'과 '공론'을 구분하지 못해서 생기는 문제입니다. 어떤 일들은 여론의 흐름을 파악하는 것으로 충분할 때가 있습니다. 대통령이 새로 장관이나 주요한 공직자를 임명할 때가 그렇습니다.

만약 장관 한두 명을 지명하는데 몇 개월 이상의 시간을 허비해가며 정당들이 국회에서 공청회를 열고, TV토론을 하고, 다양한 분야의 학자들이 다수 참여해서 의견을 내고, 신문은 연일 후보자의 장단점을 파헤치고, 다른 나라의 사례들을 면밀히 조사해서 국민들에게 알리고, 지난 수십 년 간의 각종 통계들을 통해 현재 우리의 상황과 변화의 추이를 확인하고, 그리고 나라의 미래상을 어떻게 설정할 것인가, 우리 국민들이 생각하는 '좋은 삶이란 무엇인가'라는 주제를 가지고 나라 전체가 떠들썩하게 토론을 한 후에야, '아, 그러니까 이 사람이 장관이 되어야 하겠다'고 한다면, 그것은 신중한 것이 아니라 말 그대로 '오바'하는 것입니다.

반대로 개헌을 하는데 위에 언급한 대로 하지 않고, 장관 한두 명 임명하듯이 한다면 그것은 무언이 잘못되어도 한참 잘못된 것입니다. 여론에 의지해야 할 것을 공론에 입각해서 하려고 해도 저렇게 우스운 꼴이 빚어질 것인데, 하물며 공론에 의지해야 할 것을 여론에 맡겨서 한다면 그것은 우스운 것으로 지나지 않고 나라가 결딴이 나도 별 이상할 일이 없을 것입니다.

실로 지금과 같은 식이라면 1~2년이 아니라 몇 년이 걸려도 개헌을 할 수 없습니다. 국민들이 그 필요를 느낀다고 해도, 그것을 공론에 붙여서 따져 묻고, 그 필요에 따라 어떤 방향으로 바꾸는 것이 바람직한지의 대략을 파악하고 합의하는 데에도 적지 않은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개헌을 왜 하는가?

결국 문제는 개헌의 이유입니다. 헌법 개정을 이야기하는 언론이나 호사가들은 주로 권력구조 개편과 선거제도의 변화에 집중합니다. 개헌의 핵심을 대통령 4년 중임제, 이원집정부제, 의원내각제 등 권력구조 개편에 놓습니다.

최근 중앙일보와 한국정치학회의 조사에 따르면, 국회의원 203명이 개헌에 찬성했는데 질문의 핵심 내용 역시 권력구조 개편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국회의원 217명이 응답해 이 중 135명이 대통령 중임제를, 35명이 이원집정부제를, 24명이 의원내각제를 선호했다고 합니다.

한심한 노릇입니다. 겨우 권력구조나 바꾸자고 헌법을 개정하고자 한다면, 그것이야 말로 정치적 술수에 다름없습니다. 생각이 좀 있는 국회의원이라면, "개헌에는 찬성하지만, 이 따위 조사에는 응할 수 없다. 개헌은 그런 이유로 하는 것이 아니다"라고 일침을 놓았어야 했습니다.

개헌의 이유와 순서를 다시 제대로 놓아야 합니다

개헌 논의가 지금처럼 권력구조나 선거제도 중심으로 논의되어서는 곤란합니다. 헌법은 그보다 훨씬 중요하고 많은 것을 담고 있고 또 담아야 합니다. 성문법으로서의 헌법은 한 사회가 지향하는 가치가 명문화 된 것입니다.

인간의 삶에 국가가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모든 가치와 비전이 헌법으로 집약됩니다. 간단치 않은 일입니다. 그 사회가 당면한 모든 정치, 경제, 사회, 문화의 다양한 문제점과 갈등요소, 균열 구조, 경제 상황에 대해 대단히 종합적인 진단과 토론, 합의가 있은 후에야 향후 수십 년을 내다보는 비전을 겨우 논의할 수 있을 따름입니다.

만약 권력구조나 선거제도를 논의한다고 하더라도 순서는 이래야 합니다. 먼저 한국인들에게 '좋은 삶'이란 무엇인지, 그 좋은 삶은 어떤 가치들도 채워지는지, 그 가치들을 잘 추구할 수 있는 정치공동체는 어떤 모습인지를 물어야 합니다.

그러고 나서야 그런 정치공동체에는 어떤 권력구조가 적절한지, 또 그 권력구조에 맞는 어떤 정치적 대표가 필요한지에 대한 논의가 나오고, 그런 후에야 그러한 대표들을 뽑기 위한 선거제도가 논의될 수 있습니다.

특정한 권력구조와 선거제도는 그것을 채택한 사회가 지향하는 정치적 목적과 가치를 달성하는 수단에 불과합니다. 제도를 논의하기에 앞서 한국이 어떠한 미래 비전을 갖고 있는가의 논의가 반드시 선행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그 논의가 충분치 않다면, 개헌을 할 수 없습니다. 개헌에 골든타임 같은 것은 없습니다.

▲ ⓒ연합뉴스


영국답지 않았던 브렉시트 투표, 개헌 논의의 반면교사로 삼아야

근대의 시간 동안 프랑스와 영국에서는 여러 가지 정치적 변화가 있었습니다. 불문법 국가인 영국에서는 성문헌법을 개정하는 것 같은 명백한 개헌 과정은 잘 드러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19세기 약 100년에 걸쳐 보통선거권과 여성참정권이 확대되는 과정은 분명히 개헌에 준하는 수준의 정치적 변화였습니다.

영국식 점진주의, 흔히 할부식 민주주의라고 불리는 이 과정에서는 정치적 권리를 요구하는 지속적인 운동이 있었고, 그러한 요구를 불가피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숙고한 정치가들의 노력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명시적으로 드러난 정치적 비용은 그렇게 크지 않았습니다. 1819년 '피털루 광장의 학살'이라고 불리는 맨체스터에서 벌어진 참정권 요구에 대한 진압에서도 십수 명이 사망했을 뿐입니다.

반면 프랑스에서는 1789년 혁명에서 1875년 제 3공화국이 수립될 때까지 약 90년에 걸쳐 수 차례의 헌법 개정이 있었고, 그 때마다 막대한 피를 흘렸습니다. 수천에서 몇 만에 이르는 목숨이 정치적 격변의 과정 속에서 사라졌습니다.

어느 편이 딱히 옳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강력한 독재 정부에 대항하기 위해서는 목숨을 건 투쟁과 단호한 행동주의가 필요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비슷한 결과의 정치적 변화를 달성하는데, 더 적은 혼란과 사회적 비용이 지불될 수 있다면 그런 선택을 마다할 이유는 없습니다. 오히려 정치적 발전이 어느 정도 진행되고 나면 그러한 신중함은 민주주의에서도 반드시 갖추어야 할 요건일 것입니다.

민주화 이후 우리 정치의 제도 변화는 대체로 프랑스 식이었습니다. 어떤 식의 변화가 필요하다고 하면, 단번에 그것을 해치우는 식입니다. 그리고는 프랑스가 90년 동안 그랬듯이, 그것을 또 뒤집어 엎었다가 다시 해보고 또 후회하고 나중에 또 시도하곤 합니다.

물론 그렇게도 답을 찾을 수는 있을 것입니다. 어쩌면 반드시 필요한 과정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제 민주화 이후 30년이 지났습니다. 선거제도나 권력구조의 개편도 함부로 논의하기가 어려운데, 헌법의 개정을 단기간에 뚝딱 해치울 수는 없습니다.

훙미롭게도 최근 영국의 정치가 프랑스 식이 되어 가고 있는 듯 합니다. 최근 5년 사이 영국은 두 번이나 국민투표를 했는데, 한번은 2011년의 선거제도 개혁에 대한 국민투표이고, 또 한번은 바로 어제 있었던 EU탈퇴 국민투표입니다.

2011년의 선거제도 개혁 국민투표는 부결되었습니다만, 당시 영국에서 상당수의 정치학 교수들은 국민투표 자체만 놓고도 '영국식 신중함을 잃어버리고 사생결단식 포퓰리즘에 매달리게 되었다'고 개탄해마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번의 브렉시트는 통과까지 되었으니 그 좌절감이 얼마나 깊을까 싶습니다.

자, 우리의 개헌을 생각해봅시다. 몇 가지 권력구조 개편안을 놓고 브렉시트 투표처럼 여론 몰이를 해서 결정해야 하는 걸까요? 아니면 조금 다른 과정을 거쳐야 하는 걸까요?

'개헌 논의'는 언제든지 항상적으로 해야 합니다. 하지만 '개헌'을 시한을 정해 놓고 할 수는 없습니다. '백년을 내다보는 개헌' 같은 환상을 가질 필요도 없습니다. 30년, 한 세대의 미래도 바라보기 어려운 세상입니다. 그저 작금의 사회적 문제, 한 10년 정도 뒤의 한국이 너무 불행해지지 않는 정도의 선택만 해도 잘 한 것일지 모릅니다.

대통령의 권한이나 임기, 국회의 권능에 대한 논의를 저 멀리 제쳐두고, 지금 살고 있는 사람들의 한 세대 뒤의 삶을 생각해보는 것에서 개헌 논의가 시작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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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관후

16대, 17대 국회에서 보좌진으로 일하고, 영국 런던대학교(UCL)에서 '정치적 대표'에 관한 논문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서강대 사회과학연구소와 경남연구원에서 일하고, 행정안전부 장관정책보좌관, 국무총리 메시지비서관을 지냈다. 정치의 이론과 현실에 모두 관심이 있다. 건국대 상허교양대학 교수로 있으며, <프레시안>을 비롯해 <경향신문>, <한겨레>, <피렌체의 식탁>에 칼럼을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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